'사람들 왜 안 타? 휴게소인가?'
처음에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휴게소에 들리는 거라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어요. 버스 안에 있는 라오인들이 정말로 멀미 때문에 못 견뎌하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이 밤에 또 누군가를 태우기 위해 기다리는 거라 생각하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어요. 버스에서 잠깐 내려서 바람이나 좀 쐴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어요. 이번에는 라오인들이 대체 뭘 갖고 짐을 어떻게 싣고 타나 창밖을 바라보았어요. 아까 주유소에서 사람들이 짐을 다 못 실어서 몇 명이 못 탔거든요.
창밖으로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보였어요.
"애들 멀미하다가 버스 밖으로 나오니까 신났구만."
애들이 뛰어놀고 있었어요. 아마 조금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멀미하며 또 엉엉 울고 헛구역질을 해댈 거에요. 사람들이 뭘하나 바라보며 계속 창밖을 쳐다보았어요.
"어? 뭐야!"
저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 그런데 땅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기 시작했어요.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봐야 했어요. 상당히 안 좋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어요. 아무리 둔해빠졌다 하더라도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저렇게 바닥에 자리깔고 드러누워 대놓고 자기 시작했다면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어요.
버스에서 내려서 운전기사를 찾아갔어요.
"무슨 일이에요?"
"도로에 문제 있어요."
영어를 몇 마디 아는 라오인 한 명이 있었어요. 그 라오인에게 다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어요. 도로에 문제가 있어서 아침에 출발한다고 했어요. 서양인들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들 역시 사람들이 도로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는 말만 할 뿐이었어요. 그 누구도 도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보지도 않았고, 그저 도로에 문제가 있다는 아주 짧은 영어만 들은 후 아주 당연하게 납득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도로 사정이 안 좋은 곳을 여행하다보면 이런 일이 일어날 때도 있어요. 도로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야간 이동하기 워낙 위험해서 도중에 차를 정차시키고 동이 트면 그제서야 다시 이동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더욱이 이건 2층 버스니 일반 승용차나 승합차보다 훨씬 둔하구요.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이것 또한 그렇게 딱히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까지는 없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죄다 도로에 문제가 있다고만 말해대냐?'
라오인들이야 영어가 짧아서 그렇다 하지만, 서양인들도 라오인의 그 짧은 영어를 듣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버스에 타고 있던 그 어떤 사람도 왜 차가 안 가고 있는지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어요. 이렇게 이 상황에 아무 의문도 갖지 않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신기했어요. 외국인 중 아무도 정확히 어떤 일이 발생해서 버스가 정차하고 아예 안 가고 있는지 몰랐어요.
주변에는 이거 말고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냥 너른 공터였어요.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저게 은하수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은하수를 보았어요. 왜 여기에서 기약없이 버스가 다시 출발하기를 기다려야하는지 모르는 이 밤. 은하수를 처음 보고 감격했어요. 저게 바로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마리 그 은하수구나! 라오스 들어온 첫날 밤. 드디어 그렇게 보고싶어했던 은하수를 보게 되었어요. 이것도 엄청나게 운이 따라주는 것인가? 버스만 금방 출발한다면 완벽한 밤인데!
왜 도로에 문제가 있는지 도로를 보았어요.
너무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차가 도로 한쪽으로 매우 길게 늘어서 있는 것만 보였어요.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는 공터 외에는 빛이 단 한 줄기도 없었어요. 저 앞에 있는 빛이라고는 별빛 뿐이었어요.
제가 타고 있던 파란색 2층 버스 앞에서 라오인들이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며 유유자적하게 이 밤을 보내고 있었어요.
라오인들을 보니 이 사람들은 아예 여기에서 대놓고 푹 잘 기세였어요.
"너 핸드폰 배터리 있지?"
"응."
"그거 잠깐 좀 줘봐."
"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좀 보고 와야겠다. 뭐 다 몰라. 길에 문제가 있다고만 말해."
모두가 이렇게 태연자약하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액티비티 좋아해서 눈탱이 멍들고 깁스 하나씩 해도 좋다는 서양인들조차 그 누구도 아무 것도 안 알아보려고 하는 이 상황이 매우 이상했어요. 서양인들 중 라오어를 하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었어요. 얘들은 그냥 이 나라가 후진국이고 도로 사정이 안 좋아서 동트면 그제서야 버스 갈 건가 보다 하는 듯 했어요.
친구에게 핸드폰을 받았어요.
"어디 갈 건데?"
"길 따라서 한 번 가보려고. 도로에 뭔 문제가 있는지 보게."
라오인들은 자리 깔고 대놓고 드러누워 자고 있지, 서양인들은 지들끼리 모여서 잡담이나 나누고 있지, 그 누구도 이게 왜 문제인지 확인하려 하지 않는 상황. 모두가 이 밤에 취해 헬렐레거린다 해도 저는 그럴 수 없었어요.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상황이었고, 왜 잘못되었는지 확인을 해봐야 했어요. 사람들은 아침이 되면 다시 출발할 거라는 말만 하고 있었어요.
대체 무슨 일이길래 아침에 간다는 거야?
깜깜한 어둠. 스마트폰 후레시를 끄면 밤하늘 별과 은하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어둠을 따라 쭉 걸어갔어요.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갈수록 아주 불길한 예감이 느껴졌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어두워서 문제가 있는 지점이 버스 근처에서 안 보이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길을 따라 거대한 화물 트럭이 줄지어 길게 정차해 있었어요.
"어? 저거 뭐야?"
어둠 속에서 뭔가 흐릿하게 보였어요.
"뭔데 저러고 있어?"
이제 문제가 되는 곳까지 거의 다 온 거 같았어요. 계속 앞으로 걸어갔어요.
아...상황 개같네...
도로에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은 바로 거대한 화물 트럭 두 대가 사고가 났기 때문이었어요. 이 트럭이 길 전체의 3/4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버스를 비롯한 커다란 차량들이 이 길을 통과할 수 없었던 것이었어요. 버스 기사 및 영어를 몇 마디 아는 라오인이 길에 'problem'이 있다고 했어요. 이건 problem 이 아니라 accident 였어요. 이것은 동이 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어요. 견인차가 와야 해결이 될 상황이었어요. 조그만 것으로는 안 되고 힘 좀 쓰는 견인차가 와야 하는데, 그게 여기까지 오려면 그것이 또 몇 시간은 걸리게 생겼어요.
솔직히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서 드러눕는 거 보고 무슨 산사태라도 난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닌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 하지만 참 재수없는 경우임에는 분명했고, 동트자마자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어둠을 스마트폰 후레시 불빛에 의지해 다시 친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어요.
"내일 아침에 못 떠나겠다."
"왜? 무슨 일인데?"
"앞에 사고났어. 대형 트럭 두 대가 박아서 길 막아버렸더라구. 째깐한 견인차 갖고는 될 일이 아니겠더라."
친구가 깜짝 놀랐어요.
"우리도 적당히 누울 만한 곳 찾아보자. 저거 경찰 오고 레카차 와야 해결될 거 같아."
그나마 잠을 청할 만한 자리를 찾아보았어요. 딱히 좋은 자리랄 곳이 하나도 없었어요. 냉정히 말해서 포장된 도로 위가 그나마 제일 드러누울만한 자리였는데, 거기 드러누웠다가는 밤새 또 다른 차에 밟혀도 할 말이 없었어요. 흙과 돌멩이 때문에 누울 자리가 없었어요. 등이라도 기댈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한국인 여자 한 명이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국인 여자 옆에 앉았어요. 모기가 자꾸 날아왔어요. 말라리아가 걱정되었어요. 모기를 계속 쫓아내었어요.
"모기기피제 빌려드릴까요?"
"예."
한국인 여자가 모기기피제를 빌려주었어요. 모기기피제를 양팔과 목에 발랐어요. 한국인 여자 또한 차가 언제 갈지 기다리는데 왜 안가는지는 모르고 있었어요. 한국인 여자에게 앞에 트럭 두 대가 제대로 박아서 못 가는 거라 설명해주었어요. 한국인 여자는 버스에 저와 친구, 그리고 이 한국인 여자 말고 한국인들이 또 타고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그러고보니 휴게소에서 한국어를 하는 남자들 무리를 본 것이 기억났어요. 그때 그들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아마 그들이 이 버스를 탄 다른 한국인들인 것 같았어요.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밖에서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계속 날아드는 날벌레와 슬슬 쌀쌀해져가는 기온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친구도 밖에서 자는 것보다 버스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서 자는 게 낫겠다고 했어요.
"저희는 버스 들어가서 잘께요."
한국인 여자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 안으로 들어갔어요. 저와 친구 자리에 서양인이 드러누워 자고 있었어요.
"헤이, 헤이!"
서양인을 깨웠어요.
"여기 내 자리야."
서양인에게 저와 친구 자리에서 비키라고 한 후, 잠을 자기 위해 자리에 앉았어요.
"야, 아까 치앙라이에서 절 안 해서 이렇게 되었잖아!"
"뭔 말이야?"
"치앙라이에서 절 안 하니까 부처님 화나셨네."
"아니야. 여기 라오스잖아. 태국에서 쌓은 부처님 행운 마일리지가 안 통하는 거야."
아, 그렇습니까? 대한 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마일리지가 호환 안 되듯 태국에서 쌓은 부처님 행운 마일리지는 태국에서만 통하는 것이었습니까.
친구에게 장난으로 치앙라이 왓 롱쿤에서 우리가 귀찮다고 절 안 했다가 부처님 삐지셔서 이런 사태를 겪게된 거라고 말하자 친구는 아니라고 반박했어요. 우리가 국경을 넘으면서 태국에서 쌓은 부처님 행운 마일리지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어요. 여기에서는 라오스 부처님 행운 마일리지를 적립해서 사용해야 된다고 했어요. 둘 다 장난으로 한 말이었지만 왠지 친구의 말에 납득이 가버렸어요.
"라오스 부처님이 오늘 라오스 절 안 갔다고 삐진 거야?"
"응. 라오스 부처님 완전 속 좁아. 절 있지도 않았는데."
친구의 재치에 낄낄 웃으며 잠을 청했어요.
정신 놓고 자고 있었어요. 누가 저를 거칠게 흔들었어요.
'뭐야? 이번엔 또 뭔 일이야?'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떠지지 않는 눈으로 누가 흔들어대는지 찾아보았어요. 친구가 저를 계속 거칠게 흔들어 깨우고 있었어요.
"아, 왜!"
"밖에 지금 서양인들 난리났어! 지들끼리 루앙프라방까지 히치하이킹해서 간다고 난리야!"
저놈들은 밤에는 자기들끼리 히히덕대며 노닥대다 왜 동트니까 난리피우는 거야? 아주 노동환경 좋은 나라에서 살아서 잠자는 시간 철저히 잠자고 출근 시간 되어서야 무슨 일인지 확인해본 거야?
일단 버스에서 내려서 뭔 난리인가 확인하러 갔어요. 이곳에 있는 라오인 전체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몇 마디라도 할 줄 아는 라오인이 화가 나서 방방 뛰고 있었어요. 서양인들에게 짧은 영어로 계속 뭔가 말하고 혼자 열받아서 하늘과 땅에 대고 성질을 버럭버럭 내고 있었어요. 라오인은 서양인들을 선동하는 모양이었고, 그 선동에 서양인들이 선동당한 모습이었어요. 선동당한 서양인들은 정말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아무 차나 잡아타고 가자고 하며 버스에서 짐을 내리고 있었어요.
"여기에서 히치하이킹하면 차가 잡히겠냐? 저 짐 메고 길 가봐라. 한 시간에 1km도 못 가."
저놈들은 눈에 썩은 동태 껍질 붙이고 머리 속에 두뇌 대신 삶은 파스타 면발 넣고 다니나? 지도가 없었지만 상황을 보니 길을 따라 걸어가며 히치하이킹할 상황은 절대 아니었어요. 주변에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요. 사고 지점까지 갔을 때 아주 멀리까지 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보였어요. 이는 절망적으로 이 근처에 제대로 된 마을 따위는 없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게다가 여기는 첩첩산중이었어요. 보통 무난한 산행을 1시간에 1km 가는 것으로 보는데, 여행을 위한 짐을 다 끌고 이동한다면, 그것도 초행길을 가는 거라면 한 시간에 1km 는 절대 갈 수 없었어요. 루앙프라방까지 버스로 한참 가야 하는 거리가 남았는데 히치하이킹으로 루앙프라방까지 간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어요. 루앙프라방은 고사하고 근처에 있는 버스 터미널까지도 꽤 멀 거였어요. 그나마도 그 동네에서 출발하는 버스만 이용할 수 있었구요. 훼이싸이에서 넘어가는 버스는 지금 이렇게 길이 사고난 트럭으로 막혀서 못 가고 있었으니까요. 그 이전에 그 동네가 대체 어디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었구요.
흥분해서 방방 날뛰는 영어를 조금 아는 그 라오인에게 가서 물어보았어요.
"여기 경찰 몇 시에 와요?"
"몰라요! 안 올 수도 있어요!"
"안 와요?"
"예! 내일 올 수도 있어요! 여기는 라오스에요!"
여기는 라오스에요!
여기는 라오스에요!
여기는 라오스에요!
여기는 라오스에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어요. 서양인들은 걸어가며 히치하이킹하겠다며 열심히 짐을 내리고 있었어요. 짐이 워낙 많아서 짐을 바로 뺄 수가 없었어요. 모든 짐을 다 들어내야 했어요. 저는 충격을 받았어요. 전날 밤, 경찰과 견인차만 오면 다시 길이 열릴테니 마음놓고 푹 자고 일어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라오인의 그 한 마디 - '여기는 라오스에요!' 속에 지금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 꽉꽉 압축되어 담겨 있었어요.
라오인은 차량을 불러서 타고 가자고 했어요. 다행히 서양인들 머리 속에 파스타 면발이 아니라 두뇌가 들어 있었어요. 라오인은 전화를 했어요. 전화를 끊더니 한 사람당 20달러씩 내야 한다고 했어요.
20달러 내고 다른 차를 타고 루앙프라방으로 가야 하나, 경찰과 견인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친구가 제게 소리쳤어요.
"한국인들 히치하이킹한다고 걸어간다!"
"뭔 미친 개헛소리야?"
전날 어둠이 내리깔린 휴게소에서 본 한국인 남자 세 명과 몇 시간 전 저와 친구에게 바르는 모기약을 빌려주었던 한국인 여자가 화를 내며 짐을 짊어지고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어요.
"저것들은 여기 어딘지나 알고 저러나? 힐링힐링하러 와서 킬링킬링하네."
히치하이킹만은 어떻게든 피하기로 다짐했어요. 한국인 무리에 붙으면 인원이 6명으로 늘어나버려요. 이러면 히치하이킹 성공 확률은 0에 수렴해요. 히치하이킹 할 때 최상의 인원은 2명. 1명은 위험하고 3명부터는 과한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2명이 가장 이상적이에요. 중요한 것은 루앙프라방까지 한 번에 가는 차는 절대 잡을 수 없다는 것. 설령 차를 세웠다 하더라도 '루앙프라방!' 외치는 순간 '버' (아니오) 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 뻔했어요. 루앙프라방은 여기에서 엄청나게 멀었으니까요. 도착 예정시간이 오늘 아침이었고, 버스는 자정에 여기 정차했어요. 도로 상태는 중요하지 않아요. 버스가 낑낑거리며 가는 길을 인간이 경공술 써서 날아다닐 건 아니니까요. 이 상황에서 골백번 생각해봐도 히치하이킹은 미친 짓이었어요. 그러나 그냥 알아서 하라고 놔두었어요.
저는 친구를 끌고 화를 버럭버럭 내는 라오인과 서양인들 무리를 관찰했어요. 여기에서 경찰을 기다릴지, 아니면 어서 서양인들 무리에 붙을지 고민했어요. 라오인과 서양인들이 부른 차가 왔어요. 첫 차에는 서양인들만 탔어요. 그리고 두 번째 차가 왔어요.
'저 라오인 없어지면 여기서 진짜 답이 없어진다!'
핸드폰 심카드도 아직 없는 상태인데다 라오어를 못 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저 영어를 아는 유일한 라오인이 없어지면 이곳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라오인들처럼 멍하니 앉아 경찰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요. 라오인이 차를 타고 가려는 것을 보자 어떻게든 저기 차에 낑겨타든 새로 차를 잡아달라고 애걸복걸 부탁하든 해야 한다고 상황판단이 아주 명확하게 되었어요.
"저도 이 차 탈께요."
"이 차는 정원 다 찼고, 다음 차 타요."
다행히 서양인 인원이 애매해서 차가 한 대 더 올 상황이었어요. 서양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이었어요. 이스라엘인들이 이미 1인당 20달러로 흥정까지 다 끝낸 상태였어요. 저와 친구는 제때 그 서양인들에게 붙었어요.
아침 7시 52분. 20달러를 내고 승합차를 탔어요. 이스라엘인들은 승합차에 타자 마음이 바뀌었는지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도시로 가겠다고 했어요.
승합차를 타고 가는데 사고 현장에서 얼마 못 가서 아까 히치하이킹하겠다고 걸어갔던 한국인 무리가 보였어요.
"웨이트! 웨이트!"
기사에게 잠깐만 차를 세워달라고 한 후, 창문을 열고 한국인들을 불렀어요.
"이 차 타고 가요! 한 사람당 20달러에요. 여기 걸어서 절대 못 가요!"
한국인들이 다행히 제 말을 듣고 한 사람당 20달러를 내고 승합차에 올라탔어요.
마을이라고 생긴 것이 나타났어요. 당연히 차는 이때까지 한 대도 보이지 않았어요.
마을에서는 닭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이 길을 걸어가면서 히치하이킹하겠다고?'
그냥 웃음만 나왔어요. 이 길을 걸으며 히치하이킹해볼 바에는 그냥 얌전히 아까 거기에서 라오인들과 사이좋게 넋놓고 앉아서 버스가 다시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게 훨씬 나았어요.
차는 계속 산길을 달렸어요. 마을 따위는 보이지 않았고, 간혹 오두막 같은 집 몇 채만 보일 뿐이었어요.
"어제 버스로 이런 길을 가야 했던 거야?"
포장된 도로라지만 도로 폭이 정말 좁고 커브도 많았어요. 왜 훼이싸이를 통해 라오스로 입국하는 것을 사람들이 한결같이 추천하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어요.
"여기는 산 진짜 많구나. 어제 태국에서 본 것들이랑은 완전 차원이 다르네. 이거 완전 강원도, 충북 아냐?"
차가 산능성이까지 올라왔어요.
"여기는 흙이 라테라이트네? 진짜 빨간 흙이구나!"
세계지리 시간 때 배웠던 그 라테라이트 토양이었어요.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퇴적물이 다 쓸려내려가고 토양의 철 성분이 산화되어 붉게 보인다는 그 라테라이트 토양이 계속 눈에 들어왔어요.
오전 9시 46분. 이스라엘인들 때문에 우돔싸이 주에 있는 어느 도시에 도착했어요.
이 도시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어요. 나중에 여행기 쓰며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간판 중 하나에 적힌 전화번호를 읽을 수 있었고, 그 전화번호의 지역 번호가 081이었어요. 081은 라오스 우돔싸이 지역 번호에요. 그래서 이 도시가 우돔싸이 Oudomxay ອຸດົມໄຊ 주 어디엔가 위치한 도시라는 것만 뒤늦게 알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