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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리학 - 장소 개념의 스펙트럼

좀좀이 2017. 2. 12.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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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공간의 대안으로서의 장소 - 인본주의 지리학에 의한 부상


- 인본주의 지리학이 대두되기 전, 패티슨은 지리학의 연구 대상과 주제를 기준으로 지리학의 4대 전통을 정리.

1. 지구과학으로서의 전통

2. 인간-환경 관계로서의 전통

3. 지역 연구로서의 전통

4. 공간 분석으로서의 전통

- 이 네 가지 전통 중 장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전통은 지역 연구로서의 전통.


- 하트숀은 지리학이란 지표면 간의 차이에 의해 나타나는 지역의 특성 - 즉 지역성을 밝히는 것이라 정의하고, 지역 region 이란 지형, 기후, 식생, 토양, 인구, 자원, 취락 등의 종합에 의해 다른 영역과 구분되는 일정한 영역이며 지리학의 임무는 A라는 지역이 B라는 지역과 구분되게 하는 고유한 지역성을 밝혀내는 일이라 주장. 따라서 지역 연구로서의 지리학은 주로 지역의 고유성, 특수성을 찾아내는 데 주력.

- 하지만 당시의 지역 개념과 현재의 장소 개념에는 두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음.

1. 당시의 지역 연구에서는 지역 주민을 비롯해 사람들이 지역에 대해 갖는 인식, 의미, 가치, 태도를 의도적으로 연구 대상에서 제외.

= 하트숀은 지리학을 다른 사회과학과 구분하기 위해 제외.

= 사우어를 중심으로 한 문화경관학파는 지역 연구가 자신들이 받아들인 독일 지리학의 경관 연구 전통에 의해 철저하게 가시적인 것만 연구 대상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제외.

= 경관이란 일정한 땅의 물리적 형태에 시각 개념을 결합한 것으로, 보는 주체는 항상 경관 밖에 위치. 그러나 장소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전제한 개념으로, 장소를 장소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특성인 사람들이 장소에 부여하는 의미 또는 가치가 이 시기 지역 연구에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과 장소를 동일시하기 어려움. 참고로 오늘날 지역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지역에 대해 가지는 인식도 중요한 연구 대상 중 하나.

2. 당시의 지역 연구에서는 지역의 규모가 어느 정도 제한적. 일반적으로 당시의 지역은 대륙보다는 작고 로컬 local 보다는 큰 스케일로 설정. 반면 최근 지리학에서 뜨거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개념이 바로 스케일인데, 일반적으로 스케일은 global, national, regional, local - 이렇게 네 수준으로 유형화.

= 인본주의 지리학자는 지구에서부터 개인의 의자 하나까지도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봄. 그래서 현재는 지역의 스케일이 매우 유연해짐.

- 하트숀을 중심으로 한 지역 연구의 전통 시기까지는 장소가 지리학의 독자적 연구 대상으로 출현하지 못하고, 지역과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됨.


- 하트숀을 중심으로 한 지역 연구 전통은 1950년대에 이르러 쉐퍼 등에 의해 공간 분석적 전통으로부터 비판을 받음. 비판의 주된 내용은 기존의 지리학이 지역의 특수성, 고유성 같은 예외적 현상만 고집함으로써 보편성이나 법칙, 이론을 생산해야 하는 과학적 학문으로서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

-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인 경제 성장의 흐름 속에서 지역 개발 및 도시 계획 분야에서 '입지론'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지리학은 기존의 지역 연구 전통에서 공간 법칙을 추구하는 공간 분석적 전통으로 선회.

- 이에 따라 공간 space 가 지리학의 주요 연구 대상으로 부상 -> 공간 개념의 발달.


- 공간이란 보편적인 지리적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을 도출해내기 위해 추상적으로 가정된 동질적 영역으로,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

- 공간 분석적 전통은 1950년대 이후 사회과학 전반을 지배했던 실증주의 패러다임 속에서 발달.


- 장소 개념은 실증주의 패러다임 속에서 간과되었던 인간을 다시 중심에 놓고자 하는 인본주의 패러다임으로의 변화 속에서 출현.

- 땅의 점유자인 사람이 제거된 상태에서의 지리적 연구는 현실의 반쪽만 보여줄 뿐.

-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 대해 어떻게 지각하고 경험하고 어떤 가치와 태도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앎으로써 나머지 현실의 반을 이해할 수 있음. 왜냐하면 인간은 땅과 긴밀한 정서적 끈을 형성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 이때 땅은 '장소'가 됨.

- 동질적 공간은 우리가 그 공간을 더 잘 알게 되고 가치를 부여하게 됨에 따라 장소가 되며, 공간이 장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 장소에 대해 장소감 sense of place를 갖게 됨.

- 인본주의 지리학이 추구한 것은 사람마다 다양하게 갖고 있는 장소감.


- 현상학적 방법론에 토대한 장소는 공식적 지리학의 지식으로 가공되기 이전에 실재하는, 지식보다 우선하는 생활 세계로서의 장소.

- 장소는 본질적으로 인간 실존의 근원적 중심이며, 인간의 실존이란 '거주한다'는 것으로, 거주란 인간과 세계가 관계맺음으로써 장소를 갖는 것. 즉 '거주한다'는 것은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와 관계맺는 것.

- 현상학적 장소론은 인간의 장소 경험에 내재된 보편적 특성을 연구하고자 함. 그래서 집, 고향, 성소 같은 구체적 장소가 아닌 보편적 장소에 더 관심을 갖고, 수많은 장소 중 집home을 가장 이상적이고 진정한 장소라 봄.

- 장소 경험이 갖는 보편적 특성 중 하나는 사람마다 장소를 주관적으로 고유하게 경험하기 때문에 장소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

-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라는 보편성으로 인해 타자의 주관성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상호 주관성 intersubjectivity 가 가능해서 사람들은 장소에 대해 경험과 의미를 공유할 수 있음.


- 렐프는 현상학적 장소론에 토대해 장소와 장소 경험의 주체인 인간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장소의 고유한 특성을 장소의 정체성 identity of place 로 개념화.

- 렐프가 제시한 장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3요소는 물리적 환경 physical setting, 인간 활동 (기능)  activities, 의미 meaning. 이 요소별 특성 및 요소 간 관계를 통해 장소의 정체성을 분석.

- 렐프의 장소론이 이룬 가장 큰 공헌은 무장소성 placelessness 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는 점.

- 장소 개념이 정립된 후, 현대 세계는 점점 장소가 훼손되거나 사라져 가고 있으며 이런 장소 상실 현상이 무장소성.

- 무장소성의 본질은 사람들이 점점 진정한 authentic 장소감이 아닌 비진정한 inauthentic 장소감을 경험하게 됨. 이때 진정함과 비진정함을 나누는 기준은 인간이 장소와 맺는 관계의 방식. 인간의 장소 경험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가, 수동적, 강제적, 관습적이어서 장소로부터 소외되어 있는가 여부가 중요함.

- 렐프는 현대 세계에 오면서 점점 비진정한 장소감을 느끼게 된 배경에 대해 우리 삶의 환경이 전근대적 수공업적 사회에서 현대 산업 사회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라 주장. 현대 산업 사회의 주요한 특징인 매스커뮤니케이션, 대중 문화, 대기업, 중앙 집중화된 정치 체제, 경제 체제가 무장소성을 끊임없이 조장.

- 렐프가 지적한 무장소성의 대표적 현상은 장소의 획일화와 상품화된 가짜 장소의 생산.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장소 - 비판적, 구조주의 지리학과의 결합


- 렐프는 경제의 세계화와 그로 인한 문화의 세계화가 지구 곳곳을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며, 그로 인해 사람들의 장소 경험은 점점 진정성을 잃어갈 것이므로, 진정한 장소 만들기를 위한 새롭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


- 렐프의 주장은 사람들이 보편적이고 상식적으로 공감하는 문제였지만,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이 제기됨.

1. 세계화, 지구화의 진전으로 인해 정말로 모든 곳이 똑같아 질 것인가? 다시 말해 장소는 사라질 것인가?

2. 장소의 획일화를 막고 장소의 고유성을 지켜야할 만큼 장소는 선한 것인가?


- 경제지리학의 로컬리티 locality 연구학파는 구조와 행위 주체 간 이원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 structuration theory 에 상당한 뒷받침을 받음.

- 이들의 핵심 주장은 1980년대부터 진행된 전 세계적인 경제 재구조화의 물결 속에서도 장소들이 획일화되지 않고 장소 간의 차이를 여전히 보여준다는 것. 왜냐하면 세계화라는 거대한 경제적 흐름이 모든 장소에 동일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각 장소가 갖고 있는 물리적 특성, 역사적 전통, 사회문화적 제도, 사람들의 개인적 성향 및 조건 같은 다양한 층위를 통과하면서 굴절되고, 이로 인해 각 장소는 타 장소와 다르면서 이전 장소와도 다른 새로운 장소가 되기 때문. 또한 자본주의는 서로 다른 장소 간 연결성과 상호의존성을 통해 장소의 차이를 계속 생성해왔고, 세계화 시대에도 장소간 연결의 원인이자 결과로서 장소의 차이가 이전 시대보다 더 강화되고 있고, 그에 따라 새로운 형태로 장소의 분화가 발생하고 있음.

- 장소란 고정되어 있고 경계가 분명한 정적 실체가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변화하는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시각.


- 르페브르는 공간을 변증법적으로 접근해 사회적 공간 개념을 부상시킴. 공간이란 '공간 그 자체'로 인식될 수 없고 공간은 그 공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 그 사회가 갖는 생산력 수준과 상호 작용을 통해 구성된다고 봄.

- 메리필드는 공간과 장소의 변증법으로 르페브르의 공간론을 설명. 공간과 장소가 분리된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동일한 것의 두 측면을 지칭. 장소란 사회적 실천이 일어나는 구체적 위치이면서 동시에 공간적 과정의 흐름 속에서의 특정한 순간으로 구성. 따라서 장소란 흐름의 공간상에서 특정한 실천이 이루어지는 구체적 위치이자, 여러 공간 요소 (공간적 실천, 재현의 공간, 공간의 재현)들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순간. 실천의 장으로서 장소는 과정으로서 공간 속에서 실현되며, 동시에 장소의 구축을 통해 공간이 형성되고 재형성됨.


- 인본주의 지리학에서는 진정한 장소라는 고정된 어떤 특성을 정해놓고, 그 특성으로부터 멀어지면 장소적 특성이 사라져가는 비극이 발생한다고 봄. 이는 장소는 선이며 무장소는 악이라는 경직된 이분법적 도식을 만듦.

- 그러나 장소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구성론을 받아들이면 장소에 대한 평가는 유연해짐.


- 도린 매시는 기존 장소 개념은 한 장소에는 동질적인 하나의 정체성이 존재하며,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분명하다는 내부 지향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의 장소감이 강했고, 이로 인해 한 장소 안에 잇는 소수자들의 정체성은 무시되거나 억압되어야 했고, 우리가 아닌 타자에 대한 배제나 폭력 또한 용인됨.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전 지구적인 이동과 섞임의 세계에서는 장소 자체의 성격이 변함. 지구화는 장소의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선에 구멍을 내어 투과적 장소 porous places로 만듬. 따라서 장소는 더 이상 모자이크적 장소가 아니라 지구적 시스템의 회로들을 연결시키는 스위칭 포인트 switching points 나 네트워크상의 결절점 nodes 라고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

- 이러한 장소의 특성 변화는 자연스럽게 지구적 장소감 global sense of place 라는 외향적이고 진보적인 장소감을 요구.

- 지구적 장소감은 장소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이며, 한 장소 안에도 다수의 정체성이 존재하며, 내부에 의해 정의되기보다 외부와의 관계를 통해 정의된다는 것.

- 지구적 장소감은 다양한 특성을 지닌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서나 쉽게 뿌리내리고 쉽게 이동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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