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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외국어 수능 아랍어의 역사 - 프롤로그. 일본어 제국 강점기

좀좀이 2016. 11. 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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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제2외국어 과정이 정상이었던 적은 있는지 아주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우리나라 고등학교 제2외국어 교육은 1990년대 중반 끔찍한 암흑기를 맞이했어요. 본고사가 폐지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제2외국어 영역은 아예 없었기 때문에 입시에 제2외국어가 실상 아예 반영되지 않게 되었어요. 제2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려는 고등학생은 가뭄에 콩 나듯 존재했어요. 체육은 남학교에서 사랑을 받지만, 제2외국어는 남녀 막론하고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어요.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모두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어요.


이렇게 모든 제2외국어가 학생들의 힐링 타임으로 전락해버렸던 시절. 모두가 힘들기는 했으나 아직까지는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가 나름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4강대국 시대였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힘내자고 격려도 하고 서로의 고통을 공유하던 괴로웠지만 우정이 있던 시대랄까요.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슬슬 상황이 바뀌어가기 시작했어요. 학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면서 제2외국어 선택이 학교 선택에서 학생 선택으로 바뀌어가게 된 것이었어요. 이로 인해 균형을 이루고 있던 불독일중 4강대국 시대에 엄청난 태풍이 닥쳐왔어요.


제2외국어 과목 선택을 학생 선택을 보장해주는 쪽으로 가자 학생들이 대거 일본어를 신청해버린 것이었어요. 이런 현상은 이미 1970년대에도 일어날 뻔 했다고 해요. 그런데 그 당시 서울대에서 일본어를 본고사 과목에서 제외하면서 다른 제2외국어 과목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제동을 걸 제도적 장치가 아무 것도 없었어요.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맡겨버리면 일본어로 지나치게 쏠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어요. 일본과 일본어는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운 동네 편의점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다깡, 와리바시, 스메끼리 등 일본어를 공부한 적이 없는데 국어시간에 국어 순화를 배우며 저 단어들이 일본어라는 것을 배우고, 적당히 비슷한 한자를 써서 한자만 알아도 뭔가 될 거 같아 보이는데 어순까지 같다고 국어 시간에 배우니 왠지 조금만 해도 될 것 같아보이는 언어. 여기에 일본 문화는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운 존재.


여기에 영어 교과서를 볼 때마다 '양키 고홈'을 외치는 위정척사파들이 선택할 선택지로는 일본어밖에 없었어요. 불어, 독어는 영어와 비슷하다고 하니까요.


이렇게 해서 2000년대 들어오면 이미 우리나라 고등학교 제2외국어 교육은 일본어 제국 강점기에 빠진 상태였어요. 프랑스어 교사 및 독일어 교사는 연수를 받고 일본어 교사 및 정보산업 교사 등으로 과목을 바꾸어야 했어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국어 시간에 '일본어는 쉽다'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 어떤 선입견 없이 학교 수업만 따라가도 학생이 일본어를 선택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에요. 국어 시간에 일본어가 쉬우니 일본어를 선택하라고 하지는 않지만, 언어순화, 한국어의 언어 계통을 배울 때 한국인에게 일본어가 쉬운 언어라는 것을 덩달아 배우게 되거든요.


이렇게 하여 2000년대에 이미 제2외국어 영역은 파행으로 운영되고 있었어요. 말이 좋아 제2외국어 영역이지, 실상 일본어 영역이나 다름 없었어요. 일본어 영역과 변방의 찌끄래기들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일본어가 제2외국어 영역을 점령해 버렸어요.


그러나 문제는 일본어가 공부를 안 한다고 저절로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일본어 제국의 백성이 된 수많은 고등학생들이 아이우에오를 외치며 쓰러져갔어요. 설령 와오응을 넘기고 곤니찌와를 외치더라도 모두가 처음인줄 알았던 그 세계는 이미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존재했어요. 일본 문화에 별 관심없고 단지 쉽다는 이유로, 또는 양키고홈을 외치며 넘어온 위정척사파들은 이 불평등의 끝판왕을 보며 그저 시험시험 근근히 보아가는 소시민으로 전락했어요. 어차피 중요한 과목도 아니었으니까요.


2001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00년에 실시된 수능) 부터 제2외국어 영역이 실시되기 시작했어요. 아직 대학 입시에 제2외국어 영역이 반영될 때가 아니라 수험생들이 제대로 응시하지도 않았고, 이때만 해도 학생들은 체념하듯 자기가 학교에서 배운 제2외국어를 선택했어요. 왜냐하면 아무리 변방의 찌끄래기로 전락한 불어, 독어라 해도 나름 기득권이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었거든요.


이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마치 아랍어만 없어지면 제2외국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처럼 보도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아랍어가 등장하기 전에 일본어에 거의 다 점령당한 상황이었어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단순히 '학교에서 배운 것을 시험친다'에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는 것이에요. 일제강점기를 겪고 많은 문화를 공유하고 이래저래 교류도 많은데다 문법, 어휘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은 일본어를 전혀 쌩뚱맞은 불어, 독어, 중어 등과 똑같이 대우하는 것 자체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는 아랍어가 제2외국어 영역에서 대제국을 세우는 데에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해요.


우리나라 제2외국어 교육 역사를 간단히 간추리면


- 독일로 광부, 간호사를 파견할 때에는 독일어 인기가 좋았음.

- 동백림 사건으로 독일과의 관계가 서먹해지자 정부가 불어 교육을 밀어줌.

- 1970년대 일본어가 광풍을 일으키려 했지만, 서울대에서 본고사 제2외국어 과목에서 일본어를 제외시켜서 광풍이 불지 않음.

- 이후 '남자는 독어, 여자는 불어'라는 이미지가 굳고, 독어, 불어, 일본어가 각자 균형을 이룸.

- 한중수교 이후 중어도 성장함.

- 제2외국어 선택이 학교 선택 우선에서 학생 선택 우선으로 변화해가면서 일본어가 제2외국어 교육을 독식해버림.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수능 제2외국어 영역은 일본어 편중이 심각한 문제였어요. 그리고 이것은 지금 아랍어 때문에 덮혀서 그렇지, 수능이 아니라 학교 교육으로 가면 여전히 진행중이에요.



2000년에 실시된 2001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일본어 과목 문제. 車만 알면 풀 수 있는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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