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가르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한 숙소는 1인당 35위안이었는데, 친구가 바이두 어플을 갖고 있어서 31위안까지 할인받았어요. 도미토리여도 상관없었어요. 어차피 잠은 대충 자도 되니까요. 숙박비로 돈을 지불하는 것은 저나 친구나 정말 아까워했기 때문에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가격이었어요. 게다가 체크인은 8시부터 가능했고, 체크아웃은 오후 2시까지였어요.
"여기 내가 자고 싶어했던 방이었는데!"
침대 배정을 받았는데 제가 사진으로 보며 자고 싶다고 생각했던 방에 있는 침대로 배정받았어요.
일단 씻어야 했어요. 친구가 먼저 씻으러 갔어요. 친구가 씻는 동안 노트북을 켜고 메모리 카드 속 사진을 컴퓨터에 저장시키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았어요.
"와이파이 된다!"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었어요. 진심으로 기뻤어요. 예전 사막 위를 지나가던 대상 행렬이 오아시스를 찾았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중국에서 핸드폰 심카드를 구입하지 않았더니 강제로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친구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기차표 예약 및 길 찾기, 숙소 찾기를 해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중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불편한 것은 없었어요. 그저 답답할 뿐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까지 잘 왔다고 알려주고 싶기도 하고, 여기까지 보며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여행 정보도 찾아보아야 했어요. 친구에게 미안한 말이기는 하지만, 친구의 구상과 계획대로 따라가기만 한다면 여행을 망칠 수 밖에 없었어요. 적당히 돌아다니다 쉰다는 계획은 필연적으로 많은 지출을 요구하게 되니까요. 지금 당장 한 푼이라도 더 절약해야 하는 상황에서, 숙소 들어가서 쉬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도시를 쉬엄쉬엄 돌아다닌다는 것은 꽤 많은 비용의 지출이 동반되었어요. 친구는 아직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지 못했어요. 이것은 결정적으로 저는 한국에서 들고온 외화가 전부였고, 친구는 중국에서 계속 있었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발생된 것 아닌가 해요.
인터넷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다시 문명세계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곧 좌절했어요. 스마트폰에는 VPN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해서 왔지만, 컴퓨터에는 특별히 다른 무언가를 설치해서 오지 않았어요. 그로 인해 컴퓨터를 이용한 인터넷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제한되었어요. 컴퓨터로 구글을 접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히 큰 문제였어요. 한국어로 된 이 지역 여행 정보는 거의 없었을 뿐더러 별 도움도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쪽 여행 정보를 찾으려면 중국어로 된 것을 찾거나 영어로 된 것을 찾아보아야 하는데, 저는 중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영어로 된 것을 찾아보아야 했거든요.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중국의 인터넷 검열 프로젝트 황금방패는 진짜 대단했어요. 인터넷의 절반을 먹통으로 만들어놓은 것처럼 체감되었어요.
친구가 씻고 오자 이번에는 제가 씻으러 갔어요. 씻고 돌아오니 직원이 베갯보, 침대 매트리스 커버, 이불 커버를 주었어요. 그것으로 끝이었어요.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걸 해야하다니!"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엄청나게 많이 했던 베갯보, 침대 매트리스 커버, 이불 커버 씌우기. 일하는 동안 많이 해본 거라 어렵지 않게 씌울 수 있기는 했지만 여행와서까지 이것을 하고 있다는 것에 웃음이 나왔어요. 커버를 씌우는 데에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어요. 더블 베드도 아니고 싱글 베드용 커버 씌우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사용할 것을 제가 씌우는 것이라 특별히 예쁘게 씌워야할 필요도 없었구요. 그런데 이렇게 알아서 커버 씌워서 사용하라고 커버를 던져주는 것을 처음 당하는 한국인들은 아마 상당히 충격받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야, 일어나!"
친구는 침구류에 커버를 제대로 씌우지도 않고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어요. 친구에게 일어나라고 소리쳤어요.
"좀 쉬게."
"일어나라구! 지금 자면 안 돼!"
"안 자!"
친구는 눈이 이미 반쯤 감긴 상태로 누워도 안 잔다고 소리쳤어요.
"일어나! 지금 나가야한단 말이야! 지금 빨리 향비묘 갔다가 돌아와서 쉬어."
저도 조금 더 앉아서 쉬다가 나가고 싶었지만 친구가 벌러덩 드러누워서 잠을 자려고 하는 것을 보니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어요. 친구 눈을 보니 이미 졸려서 눈이 풀려 있었어요. 이때 시각이 오전 10시 50분. 어차피 향비묘는 입장료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안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친구가 들어가겠다고 하면 들어가고, 아니면 그냥 밖에서 건물 모습만 보고 돌아올 생각이었어요. 우리나라 시각 기준으로는 한숨 자고 나가는 것도 괜찮은 시각. 그러나 여기는 카슈가르였어요. 여기에서 3시간을 빼야 태양의 움직임과 맞는 시각을 계산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 이제 아침 7시 50분이라는 이야기였어요. 조금이라도 날이 선선할 때 움직이고, 날이 엄청나게 더운 한낮에 숙소에 들어와 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어요. 여기에서 한낮이라면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이 시각 즈음에 숙소로 돌아와 더위도 피하고 피로도 풀며 낮잠 한숨 자는 것이 체력에 좋았어요. 어설프게 지금 자고 나가면 제일 더운 시각에 향비묘를 찾아가야 했어요.
친구에게 입아프게 이것을 다 설명할 필요는 없었어요. 친구도 이 지역 시각이 상당히 이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거든요. 전날 여기 한낮이 얼마나 더운지 사이좋게 깜둥이가 되어가며 깨달았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전날 공원에서 잠을 푹 잤고 숙소 오자마자 씻었기 때문에 향비묘 하나 다녀올 체력은 충분히 확보되어 있었어요. 향비묘를 다녀와서 숙소 돌아가 쉬다가 나와서 야시장 가면 오늘 일정은 힘들지 않게 소화할 수 있었어요.
숙소에서 나와 버스를 타러 걸어갔어요.
식당은 이제 아침 장사를 마치고 점심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여기도 이제 라마단 준비 들어갔구나!"
대추야자를 판매하는 것을 보니 라마단이 이제 코앞이라는 것이 실감났어요. 2016년 라마단은 6월 6일부터 시작되었어요. 이날은 6월 3일. 라마단 시작이 진짜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어요. 이 지역에서 대추야자가 날 리가 없는데 대추야자를 저렇게 수북히 쌓아놓고 팔고 있다는 것은 라마단이 이제 임박했음을 알려주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라마단 기간 중 단식을 끝내고 처음 먹는 것이 대추야자거든요.
가게들을 대충 훑어보듯 구경하며 길을 걸어갔어요.
만두를 찔 때 사용하는 도구를 직접 수공업으로 제작해 판매하고 있는 가게도 있었어요.
모든 가게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 가게는 아니었어요.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지만, 이렇게 일상 용품을 팔고 있는 가게도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런 것들을 직접 수공업으로 만드는 장면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어요.
길거리에 있는 커다란 독 안에는 물이 들어 있었어요. 식당에서는 이 물로 접시를 가볍게 씻었어요. 하지만 마시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았어요.
수공업과 관련된 가게가 많아서 그런지 이쪽에는 수공업과 관련된 동상들이 있었어요.
"저거 어제 우리가 먹었던 카슈칸 케밥이다!"
이제 점심 장사 준비중이라 그런지 아직 익히지 않은 카슈칸 케밥이 진열되어 있었어요. 전날 거리를 돌아다니며 본 카슈칸 케밥은 거의 다 익힌 후의 모습이었어요. 보자마자 침이 나왔어요. 저것은 또 먹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저것을 또 먹을 리 없었어요. 여기 음식을 하나라도 더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저것도 어쨌든 한 끼 식사는 되는 음식이었어요. 하나라도 더 다른 것을 먹어보기 위해서는 저것을 또 먹지 말고 다른 것을 먹어야만 했어요. 오른쪽 아래에 있는 것이 아직 익히기 전의 카슈칸 케밥이고, 왼쪽 솥 안에 들어있는 알록달록한 것이 이 지역 기름밥인 폴로에요.
11시 15분.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얼마 기다리지 않아 향비묘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어요.
"여기도 사람들 엄청 많이 타네."
우루무치만 유독 그런 줄 알았는데, 카슈가르의 버스도 사람들이 정말 많이 탔어요. 여기도 우리나라처럼 버스 뒤쪽은 서서 가더라도 조금 여유가 있었고, 앞쪽은 사람들이 미어터졌어요. 버스에 탑승한 사람들 가운데 한족은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거의 다 위구르인들이었어요.
버스는 전날 들렸던 중앙아시아 국제 무역 바자르 앞을 지나갔어요. 중앙아시아 국제 무역 바자르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 향비묘를 가기 위해 내려야하는 버스 정류장이 나왔어요.
"향비묘 생각만큼 그렇게 멀지 않은데?"
"그러게. 이따 걸어서 돌아갈까?"
"너 괜찮으면. 이 정도면 그냥 느긋하게 사진 찍고 거리 구경하면서 걸어와도 될 거 같은데. 어짜피 우리 점심 먹으려면 시장 가야하기도 하구."
친구가 이따 걸어서 돌아가냐고 물어보자 친구만 괜찮다면 걸어가도 좋다고 대답했어요. 저렴하게 점심을 먹으려면 식당이 많이 몰려 있는 시장에서 내려야 했어요. 매우 먼 거리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버스를 타고 오며 보니 그렇게까지 먼 거리가 아니었어요.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어요. 버스비가 얼마 하지 않고, 시장에 있는 식당과 숙소 주변에 있는 식당의 가격 차이가 그렇게 크게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푼이라도 절약하면 어쨌든 좋은 것이었어요. 그리고 길을 걸으며 구경하는 것과 버스에서 차창 밖을 내다보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어요.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걸어다니며 이곳을 보고 싶었어요. 그것은 친구도 마찬가지였구요.
버스 정거장에서 향비묘 입구까지 걸어가는 길. 이것이 유적이나 관광지로 가는 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몇몇 건물들이 공사중이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그냥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에 가까웠어요.
향비묘가 가까워지자 흙으로 지은 오래된 건물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저기 들어갈 수 있을 건가?"
문이 굳게 잠겨 있었어요. 문 틈으로 안을 보고 싶었지만 그 정도의 틈조차 나지 않았어요.
"여기 담장 위로 올라가면 향비묘 보이는 거 아니야?"
"그랬다가는 우리 바로 체포될 걸?"
친구와 아주 비생산적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향비묘 앞으로 걸어갔어요. 향비묘가 가까워지자 기념품 가게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건 진짜 사고 싶다.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만들었지?"
옥으로 만든 포도. 보자마자 이것이 옥인지 포도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너무나 잘 만들었어요. 싱싱한 포도를 물로 잘 씻어서 꺼내었을 때 그 영롱한 것 같은 초록빛을 잘 살렸어요. 이것이 옥이 맞는지 한 알 따서 입에 집어넣고 깨물어보고 싶었어요. 이것은 옥 여러 알을 매달아 포도 모양으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무게가 꽤 나갔어요. 마음 같아서는 하나 구입하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어요.
"너 어떻게 할래? 여기 들어갈래?"
"아니. 나 이런 거에 별로 관심 없어."
"진짜? 진짜로 안 들어가도 돼?"
"응."
저는 돈 내고 향비묘에 꼭 들어가지 않아도 상관 없었어요. 이런 것은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 상당히 많이 보았거든요. 제게는 내부에 특별한 것이 없고, 건물도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유적이었어요. 우즈베키스탄 가면 발에 채인다고 해도 될 수준의 유적이었어요. 여기에 온 이유는 이것이 워낙 유명해서 그냥 앞이라도 다녀오자는 생각에 온 것 뿐이었어요. 입장료 30위안이나 내가면서 들어갈 생각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어요. 위구르인들이 이곳을 하나의 정신적인 유적지로 생각하는 것도 있었구요. 그러나 친구는 이 지역의 이 문화 그 자체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친구가 들어간다고 하면 같이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친구는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러면 일단 그냥 들어가보자. 운이 좋으면 여기도 공짜로 보는 거고, 아니면 그냥 나오면 되는 거구."
친구가 안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친구가 이것을 안 보고 그냥 가는 것이 영 찝집해서 일단 그냥 모르는 척 들어가보자고 했어요. 아주 자연스럽게 안으로 걸어들어갔어요. 바로 뒤에서 불렀어요. 입장료를 내라고 했어요. 당연히 입장료를 내지 않고 안 들어갔어요.
위구르인들에게 정말 미안한 말이기는 하지만, 향비묘보다 훨씬 화려하고 크고 비슷한 것을 우즈베키스탄에서 실컷 보았어요. 처음 인터넷에서 사진을 보았을 때만 해도 그냥 유명하니까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실제 와서 보니 밖에서 살짝 보이는 향비묘는 사진보다 더 볼품이 없었어요. 저것을 감동하며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내부에는 아팍 호자 일가의 묘소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굳이 30위안 내고 들어가서 볼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위구르인들이 여기를 매우 소중히 여긴다 하더라도 굳이 들어가야할 필요가 있을까? 전부 아니었어요. 이것을 그냥 보고 아무 흥미도 못 느끼는 친구를 데리고 들어간다면 친구가 재미있도록 뭔가 설명이라도 해주어야 하는데, 마땅히 친구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건덕지가 하나도 없어보였어요.
향비묘의 다른 이름은 아팍 호자의 묘소에요. 이곳에 아팍 호자 일족의 묘소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 향비묘 옆에는 모스크가 있었고, 이것은 쇠울타리 틈으로 구경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이 모스크는 두 개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하나는 야스닥 모스크, 하나는 오이 모스크였어요. 이 모스크는 아팍 호자의 묘소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높은 쪽은 여름 예배에 사용하고, 낮은 쪽은 겨울 예배에 사용한대요.
이 모스크 내부 역시 회화로 장식되어 있었어요. 위구르 문화에서 모스크는 회화로 장식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다른 지역, 다른 문화권에 있는 모스크에서 이렇게 그림으로 모스크를 장식하는 경우는 정말 거의 못 보았거든요.
쇠울타리 밖에서 모스크를 구경하고 있는 동안 친구는 옥팔찌 하나를 구입하려고 흥정을 하고 있었어요.
"이거 봐! 나 이거 15위안에 샀어! 너도 살래?"
"15위안? 엄청 싸네! 하나 살까?"
보통 옥팔찌 하나에 30위안을 부르고 있었는데 여기는 15위안에 구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귀가 솔깃했어요. 친구가 구입한 가게로 갔어요. 상인은 1개를 사니 20위안에 팔아야겠다고 했어요.
"안 사."
팔찌에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친구가 같이 구입해서 차고 다니는 것 어떻겠냐고 해서 구입할까 생각했던 것이었어요. 게다가 친구가 15위안에 산 것이 불과 몇 분 전 일이었어요. 친구가 팔찌를 2개 사서 할인받은 것도 아니고 친구 또한 1개를 샀어요. 저는 팔찌를 못 산다고 해서 아쉬울 것이 전혀 없었어요. 15위안에 구입하면 좋은 거고 아니면 그냥 마는 것이었어요.
"15위안."
그냥 가려고 하자 상인이 제게도 15위안에 팔겠다고 했어요.
15위안에 옥팔찌 하나를 구입해 팔에 찼어요. 옥도 돌이라 이것은 돌팔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묵직한 무게가 팔로 전해졌어요.
"돌아가자."
더 이상 여기에서 할 것이 없었어요. 이제 슬슬 숙소까지 걸어가며 시장 나오면 괜찮아보이는 식당 들어가서 점심 먹는 일만 남았어요.
"저기는 공짜로 들어갈 수 있겠지?"
향비묘 옆에 다른 오래된 큰 건물이 하나 있었어요. 문이 잠겨 있었어요. 마침 위구르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계셨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희 한국에서 왔어요. 이 오래된 건물은 무엇인가요?"
"이 건물? 이것은 마드라사야. 그런데 너 어떻게 우리말 아니?"
"우즈베키스탄에서 우즈베크어 공부했어요."
우즈베크어로 이야기를 하자 분위기가 좋아졌어요.
"이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나요?"
"이 건물 안에 묘소 하나 밖에 없어."
"이 건물 들어가보고 싶어요."
"정말 아무 것도 없어. 따라와. 보여줄께."
아주머니는 문을 힘껏 밀었어요. 그러자 틈이 벌어지고 내부를 볼 수 있었어요.
진짜로 묘소 하나만 덜렁 있었어요.
마드라사 내부에는 볼 것이 없었어요. 그러나 마드라사와 골목길이 어우러지니 상당히 그럴싸한 사진이 한 장 나왔어요.
마드라사를 뒤로 하고 다시 갈림길로 돌아왔어요. 순간 머리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향비묘 내부에 들어갈 필요는 전혀 없었어요. 아마 개구멍도 찾기 어려울 거에요. 하지만 뒷편으로 돌아가면 왠지 건물 모습을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입구 사진만 찍고 가기에는 아쉬운 것이 사실이었어요.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온 김에 다른 각도에서 향비묘를 보고 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향비묘 뒤편으로 가려는데 길에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었고, 아저씨 한 분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섰어요. 이쪽으로 가면 그냥 사람들 사는 곳이며, 관광객은 출입을 금지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여기가 무슨 강제 수용소 입구도 아니고, 못 갈 이유가 아무 것도 없었어요. 사실 한 블록 더 넘어가서 돌아서 들어가면 되는 일이니까요. 아저씨께 그냥 조용히 거리를 보고 오겠다고 하자 조용히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여기가 무슨 군사 지역도 아니고 뭘 사진을 찍지 말고 가지 말라고 하지?"
"그러게. 희안한 아저씨야. 괜히 사람을 잡고 있어."
사실 여기로 못 가게 막은 이유는 따로 있었어요. 길에 철문을 설치해 잠가놓고 통행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원래는 이 길로 가면 돈 내지 않고 향비묘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즉, 진짜로 마을 주민들 사는 곳이라 사진을 못 찍게 하고 외부인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개구멍으로 향비묘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놓고 있는 것이었어요.
향비묘 주변은 평범한 마을이었어요.
마을 길에는 죽어버린 커다란 나무가 있었어요.
번잡하고 북적이는 카슈가르 구시가지와 달리 여기는 조용했어요.
"돌아가자."
친구와 다시 돌아나오며 주변 풍경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어요.
향비묘 들어가는 길에서는 건물 짓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어요.
'지금 지어지고 있는 저 집에서는 위구르인들이 살겠지?'
사실 허름한 집이 관광객 입장에서는 더 아름다워보이는 것이 사실이었어요. 허름한 흙집과 마드라사의 조화는 상당히 매력적이었어요. 분명히 우리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이국적인 건조 기후 마을 풍경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관광객이 보기 좋다고 계속 그 허름하고 불편한 집에서 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에요. 저 사람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좋은 집에서 살고 싶겠죠. 하지만, 만약 저렇게 새로 지어지고 있는 집에 한족들이 들어와서 산다면 정말 싫을 거에요. 왜냐하면 여기는 위구르인들의 땅이지 한족의 땅이 아니니까요. 여기에서 한족들이 산다면 여기 풍경을 볼 때 뭔지도 모르고 웃통 벗고 몸에 해골 그려놓고 아프리카 부족 해적 춤이라고 장기자랑하는 사람들을 볼 때 느꼈던 그 기분과 아주 비슷한 기분이 들 거에요.
별로 심각한 것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친구와 시시껄렁한 잡담을 하며 큰 길로 걸어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