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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겨우 다 왔네."


배가 텅 빈 기분이 들었어요.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어요. 6월, 7월에 여행을 가면 이런 점이 의외로 문제였어요. 6, 7월은 우리나라가 그렇게 더울 때가 아니라 더워지는 과정에 있을 때이다보니 더운 나라를 가면 갑자기 확 더워지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기온 25도와 30도의 차이가 30도와 35도의 차이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초여름이라고 반팔 막 입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한여름 폭염을 맞이해버린 기분이었어요. 동남아시아로 넘어온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몸은 아직 이 더위에 완벽히 적응이 되지 않았어요.



왓 마하탓. wat mahadhatu yuvarajrangsarit rajavaramahavihar. วัดมหาธาตุยุวราชรังสฤษฎิ์ราชวรมหาวิหาร. 타이 문자를 다 읽어보려 했지만 전부 읽어내지는 못했어요. 타이 문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어려웠어요. 같은 발음 다른 문자도 여럿이고, 글자 갯수도 많을 뿐더러, 발음을 위해서는 중자음, 고자음, 저자음 분류까지 알아야 해요. 아랍 문자보고 알레르기 반응 일으키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지만, 아랍 문자는 타이 문자에 비하면 정말 쉬운 문자에요. 게다가 아랍어는 띄어쓰기를 해주는데, 태국어는 띄어쓰기를 아예 하지 않아요. 일본어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지만 한자를 많이 쓰다보니 한자를 보며 쉽게 단어들 파악이 가능한데 태국 문자는 오직 악썬타이만 사용하면서 전부 붙여쓰기를 하니 읽어도 읽는 게 아니었어요. วัด 는 '절' 이라는 뜻을 가진 '왓'이에요. 이것으로 시작하는 지명은 일단 절이라 보면 되요. 표지판 볼 때 매우 유용해요. 참고로 라오스에서 사용하는 라오어의 문자인 악썬 라오는 타이 문자와 비슷하지만 훨씬 간단해요. 이쪽도 마찬가지로 띄어쓰기를 하지는 않지만요.


왓 마하탓은 방콕에 있는 왕실의 10대 절 중 하나로, 아유타야 왕조 시기에 건립되었고, 이 당시 이름은 왓 살락 wat salak 이었대요. 이 절에는 불교 대학교도 있어요. 이 불교 대학교는 1889년에 개교한 매우 유구한 역사를 가진 대학교로, 1997년에 일반 대학교로 전환되었어요.


"일단 조금 쉬고 구경해야지."


입구에 카페가 있어서 들어갔어요. 무엇을 주문할까 하다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카페 시얌'.


"카페 시얌은 뭐에요?"

"커피에 태국 차를 섞은 거에요."


점원은 카페 시얌은 외국인 입에는 안 맞을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그러자 더욱 마셔보고 싶어졌어요. 1600원으로 재미를 사고 싶었어요.


cafe siam


색깔부터 범상치 않았어요. 딱 사진 속 색깔이었어요. 태국 차를 섞은 커피라고 했는데 색깔만 보아서는 이게 어디 봐서 커피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언제부터 커피가 주황빛이었지? 커피를 입에 달고 살기는 하지만 커피를 잘 아는 것은 아니에요. 입에 달고 사는 것은 저가 커피 믹스거든요. 카페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많이 마셔보지 않았어요. 하지만 주황색 커피를 파는 카페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오! 이거 괜찮다!"


이것은 사실 커피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했어요. 커피맛이 있기는 했지만, 색깔처럼 커피맛이 중심은 아니었거든요. 홍차 밀크티에 커피를 가미한 맛이었어요. 이런 조합의 맛은 처음이었어요. 밀크티와 커피의 조합은 평소에 전혀 상상했던 맛이 아니었어요. 아침햇살을 커피 믹스에 섞어서 마셔보기까지는 했지만, 감히 차와 커피를 섞어 마셔볼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원래 차를 잘 마시지 않아서 집에 차가 없기도 했지만, 차와 커피가 섞여서 조화로운 맛을 만들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머리 속으로 홍차맛과 커피맛을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 결과는 '우웩'이었어요. 그러나 이것은 맛있었어요. 서로 으르렁거리는 홍차의 맛과 커피의 맛을 우유가 강제로 화해시켜주는 느낌이랄까요.


카페 한쪽 구석에는 스님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계셨어요. 스님들이 담소를 나누는 것을 본 태국인 손님들은 매우 정중하게 인사를 드렸어요. 놀라운 것은 여자는 남자에 비해 거리를 두고 인사하고 절대 스님 몸에 몸이 닿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는 것이었어요. 스님들도 여자와 옷자락조차 닿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었어요. 태국에서는 여자가 스님과 몸이 닿아서는 안 된다고 하던데 그게 진짜였어요. 다른 스님들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어요. 종업원들은 깍듯이 인사하고 스님들이 주문한 커피를 정성스럽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돈은 받지 않았어요.


카페 시암을 마시며 카페에 앉아 있으니 다시 기운이 나기 시작했어요.


"이제 이 절 봐야지."


태국 사원



절 입구에서 마주친 것은 몸에 문신이 있는 스님들이었어요. 스님의 몸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예전에 동남아시아 민족들이 현재 중국 땅에서 살던 시절, 이들은 중국 한족과 달리 몸에 문신을 하는 문화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현재 베트남, 태국, 라오스 사람들은 아주 옛날 오늘날 중국 남부에서 살다가 점차 남하한 민족들이지요. 문신을 한 현지인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문신을 한 스님들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여기에 담배를 태우고 있는 스님도 보였어요. 엄청난 문화충격이었어요. 순간 이들이 옷만 스님 사리를 걸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어요.


왓 마하탓


Wat Mahathat


절 내부는 매우 한산했어요. 아까 왕궁과는 너무 대비되었어요. 갑자기 적막이 찾아오자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여기는 원래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곳이 아닌가? 아니면 오늘 일과가 다 끝나서 사람이 없는 건가?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것이 정상인지, 아니면 이게 이상한 것인지 혼란스러웠어요. 절이 문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했구요.


소승불교



상좌부불교


절 둘레 벽에는 불상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어요. 우리나라 절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었어요.



천천히 절을 둘러보고 있는데 아주머니들께서 저를 부르셨어요. 아주머니들은 커다란 통에서 국자로 무언가를 떠서 1회용 큰 플라스틱 컵에 따라 탁자 위에 올려놓고 계셨어요. 왠지 절에서 공양드리는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도 가끔 운이 좋으면 절에서 공양드리러 온 아주머니들께서 사람들에게 떡이나 그 외 먹을 것을 주실 때가 있거든요. 아주머니들께 가자 아주머니들께서 제게 죽 같은 음료 한 잔 하고 가라고 하시며 컵에 초록빛 도는 하얗고 걸쭉한 것을 따라주셨어요.


"꼬 쿤 크랍."


합장하며 고맙다고 인사를 드린 후, 컵을 받았어요. 컵 안에 담겨 있는 것은 죽 같았어요. 뜨거워서 한 번에 후루룩 마실 수 없었어요. 천천히 후후 불어가며 조금씩 마셨어요. 왠지 녹두죽 같았어요. 녹두 비슷한 것이 씹혔어요. 녹두죽에 우유를 붓고 설탕을 넣으면 딱 이 맛이 날 것 같았어요. 죽을 마실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감정이 누그러졌어요. 아까 조금 전 왕궁 근처에서 마오쩌둥 조각을 보고 기분이 상당히 나빠졌어요. 이제 방콕에서 상상하던 태국의 모습을 보는 것은 글렀다고 판단했어요. 그런데 죽을 마실 수록 아직 희망은 있고, 좋게 생각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작은 불상들이 있었어요.





방콕 사찰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보고 싶은대로 천천히 절을 감상할 수 있었어요. 사람들에 치이고 쓸려다니던 에메랄드 사원과는 전혀 달랐어요. 에메랄드 사원이 화려하기는 했지만, 거기는 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어요. 그에 비해 여기는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어요. 전날 밤에 본 절은 어두컴컴해서 제대로 못 보았고, 에메랄드 사원은 인파에 휩쓸려 제대로 못 보았어요. 왓 마하탓이 태국 와서 처음 제대로 보는 절이었어요.


"저거 혹시 요일별 불상인가?"





"이거 요일별 불상 맞다!"


요일별 불상 모두를 완벽히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어요. 완벽히 기억하고 있는 요일별 불상의 모습은 딱 두 개. 바로 옆으로 누워 있는 불상과 뱀 위에 앉아 있는 불상. 이 두 개는 워낙 모양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NHK 아시아어락기행에 나왔던 요일별 불상을 실제 보다니 너무 기뻤어요. 이 역시 태국 가서 실제 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거든요. 게다가 때마침 친구들로부터 자기가 태어난 요일을 알려주는 메시지도 받았어요. 오늘 목표가 하나 생겼어요. 그것은 선물로 요일별 불상을 사가는 것. 아까 부적시장에서 딱 한 곳에서 작은 요일별 불상을 팔고 있었어요. 거기에서 요일별 불상을 구입하면 친구들 선물은 모두 해결할 수 있었어요.



스님 조각에도 금박이 많이 붙어 있었어요. 동남아시아 소승불교에서 불상에 금박을 붙인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스님 조각에 금박을 붙인다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었어요. 이렇게 금박이 덕지덕지 붙은 스님 조각을 보니 이 스님 조각의 정체가 매우 궁금해졌어요. 금박을 붙일 정도면 무언가 숭배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금박을 붙인 불상과 조각은 확실히 개금한 불상과 다른 느낌을 갖고 있었어요. 불규칙하게 덕지덕지 붙어있고, 제대로 붙어 있지 않고 떨어지려고 하는 것도 있다보니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태국인들의 불심이 느껴졌어요.




왓 마하탓에서 나와 걸어온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이제 오늘 볼 것은 다 보았어요. 유적을 더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늦어버렸어요.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아까 큰 길만 보았던 부적시장을 골목골목 들어가보며 보기로 했어요.


BKK


아...늦었구나...


이미 시장 가게들은 문을 닫아버렸어요. 시각을 확인해보니 오후 5시 20분. 저녁 7시까지 가게들이 문을 여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어요. 6시까지는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왓 마하탓에서 나오면서 시장을 보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전부 문을 닫아버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문을 열어놓은 가게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들도 거의 없었어요.


휑한 시장을 쭉 걸어나가자 짜오프라야강이 나왔어요.


방콕 짜오프라야강


태국의 제단도 있었어요. 태국의 제단은 베트남에서 본 제단보다 훨씬 화려하게 꾸며놓았어요.


태국 불교


불상을 제작하는 가게에서는 제작중인 불상의 머리에 붉은 천을 씌워 놓았어요. 아직 머리는 완성되지 않은 불상들이었어요.



다시 짜오프라야 강변으로 갔어요.


수상가옥


"저게 수상가옥이구나."


열대기후에서는 수상가옥을 짓고 산다고 배웠는데, 짜오프라야 강변에 진짜 수상가옥이 있었어요. 왠지 우리나라 판자촌 같은 곳 아닐까 싶었어요. 저 집들이 단순히 땅이 없어서 저렇게 지은 것인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자연적 이유가 있어서 저렇게 지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딱 봐도 너무나 허름해서 일반인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는 것 뿐이었어요.



골목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어요. 저녁때가 되어서인지 요리를 하는 집이 몇 곳 있었어요. 골목을 구경하고 큰 거리로 다시 나왔어요. 아까 부적을 팔고 있던 노점상들은 좌판을 정리하고 있었고, 그 자리에 먹거리 좌판이 하나 둘 나와 장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낮에는 부적 노점상, 저녁에는 먹거리 노점상이 거리를 차지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나라라면 한 노점상이 아침부터 밤까지 쭉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요일별 불상 호신불을 유일하게 팔고 있던 좌판도 슬슬 정리를 하고 있었어요.


"한 개 50바트요."

"안 되요. 80바트."

"한 개 60바트요."

"예."


아까보다 가격이 내려갔어요. 확실히 장사를 끝내려고 하니 가격을 잘 깎아주었어요. 일단 토요일 불상 2개를 골랐어요. 한 개는 제 것, 하나는 친구 것이었어요.


"두 개 100바트요."

"안 되요. 120바트에요."

"110바트로 해주세요."

"예."


어? 진짜 잘 깎아주네?


이제 남은 두 친구 것도 골랐어요. 이제 4개.


"네 개 200바트로 해주세요."

"알았어요."


얼렐레? 100바트에서 50바트까지 깎았네?


베트남 기준으로 본다면 매우 잘 구입한 것이었어요. 베트남 현지인 친구가 알려준 베트남에서의 흥정방법에 의하면 1/2까지 가격을 깎을 수 있고, 외국인이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대략 70~80%까지 깎을 수 있을 거라고 했거든요. 흥정 기술이 매우 뛰어나거나, 아니면 씬 짜오, 못, 하이, 바 등 현지어 아는 것을 최대한 동원하면 상인들이 베트남 초짜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현지인처럼 50%까지 가격을 깎을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어요. 태국어 숫자는 대충 외웠기 때문에 베트남에서 흥정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태국어 숫자로 말하며 흥정을 시도했어요. 처음 1개 가지고 흥정할 때에는 가격을 많이 깎지 못했지만, 2배씩 올려가며 계속 깎아나가니 결과적으로 50%까지 가격을 깎았어요.


'이거 내가 제대로 산 거 맞나?'


태국에서의 흥정 방법에 대해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어요. 베트남에서 50% 깎은 것이라면 흥정을 매우 잘 한 것이었어요. 그러나 여기는 태국. 의외로 쉽게 가격을 절반까지 깎으니 이게 제대로 흥정한 것인지, 원래는 개당 25바트 짜리인데 바가지를 쓴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어요. 제대로 잘 산 것이라면 아마 장사가 거의 끝나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흥정이 쉽게 된 것이었을 거구요. 어쨌든 200바트에 요일별 불상 호신불 4개를 구입해서 만족스럽기는 했지만 뭔가 어리둥절했어요.


다시 왕궁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왔어요.



후아람퐁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25번 버스를 탔어요. 요금은 6.5바트. 당연히 에어컨은 없었어요. 그냥 덥든 말든 창문을 열고 달리는 버스였어요.



바닥은 6.5바트 버스답게 목조 바닥이었어요. 아까 왕궁에 올 때도 이것과 같은 구조의 버스를 타고 왔어요. 두 번째 타는 것인데도 이 버스의 나무 바닥이 전혀 적응이 되지 않았어요. 특별히 승차감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이런 버스를 타고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색했어요. 워낙 낡고 시설이랄 것도 없는 버스라 교통비가 저렴한 것은 좋지만, 이렇게 낡은 버스를 계속 굴려도 되나 의문이었어요.




일단 후아람퐁 기차역으로 돌아오기는 했는데, 그냥 숙소로 돌아가자니 뭔가 아쉬웠어요. 게다가 숙소 근처에 저녁을 먹을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도 않았어요. 후아람퐁역 맞은편에 노천 식당이 있기는 했지만, 전날 저녁에 먹어본 결과 맛있지 않았어요. 이왕 이렇게 된 것, 다른 곳 한 곳 더 보고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일단 숙소로 돌아갔어요. 숙소로 돌아간 이유는 다음날 짐을 맡기고, 그 다음날 다시 돌아오는 예약을 하기 위해서였어요. 1박 2일로 아유타야를 다녀와서 다시 머무를테니 짐 좀 맡아줄 수 있냐고 물어보자 그러라고 했어요. 어차피 치앙마이 기차표를 끊었기 때문에 방콕을 마음대로 떠날 수도 없었어요. 카오산에서 머무르고 싶은 생각도, 방콕 숙소를 또 알아보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바로 남은 방콕 일정만큼 방을 예약했어요.


후아람퐁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시암으로 갔어요. 태국인 친구가 시암에 커다란 서점이 있다고 알려주었거든요. 그 서점에 가서 서점 구경도 하고,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태국어판도 구입할 계획이었어요. 저녁도 시암에서 간단히 먹고 오구요. 태국 여행이 처음이었지만, 워낙 많이 듣고 읽어서 방콕에 짜뚜짝 시장, 시암, 수쿰윗, 카오산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쇼핑하고 맛있는 것 먹으러 가는 곳이 시암, 여행자들끼리 퍼질러 노는 이태원 같은 곳이 카오산, 짜뚜짝은 주말 시장 - 이 정도는 그냥 알고 있었어요.


siam


버스에서 내려서 육교 위로 올라가 보았어요.


방콕 시암


육교에서 내려왔어요.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 중 늙은 백인 남자가 젊은 태국 여자를 옆에 끼고 다니는 모습이 많이 보였어요.


'진짜 별 걸 다 본다.'


할 말을 잃어버렸어요. 아까 낮에는 중국화되어가는 태국, 밤에는 젊은 태국 여자를 옆에 끼고 다니는 늙은 백인 남자들. 환락을 즐기러 태국 오는 사람들 많다고 하던데 이 모습을 보니 딱 맞았어요. 이런 장면은 정말 보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공부하러 온 건가 싶었어요.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지만,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았어요. 이렇게 관광객들에게 굽실거리는 모습을 배워야 하는 건가? 이것이 태국이 관광대국인 이유인 건가? 이래서 방콕에 여행자들이 몰리는 거라면 아예 이름을 '티딘소돔'이라고 바꾸어버리지? 이 모습 역시 이번 태국 여행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이 모습부터 시작해 여행중 계속 목도한 태국의 모습을 통해 여러 관광객들의 오만방자 무례한 태도의 원인이 과연 정신줄 놓고 다니는 관광객들의 잘못에만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빨리 책을 구입하고 저녁 먹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친구가 시암에 서점이 있다는 것만 알려주고, 어느 건물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서점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가라고 알려주었어요.



"여기로 가는 것 맞나?"


사람들이 알려준대로 쭉 걸어갔는데 점점 화려한 곳과 거리가 멀어져만 갔어요. 태국인 친구는 잠을 자는지 쉬는지 메시지를 읽지 않고 있었어요. 직감적으로 이건 아니라는 느낌이 왔어요. 서점은 분명히 번화한 곳 어딘가에 있지, 절대 번화한 곳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친구 말에 의하면 무슨 큰 빌딩 안에 있다고 알려주었거든요. 게다가 작은 서점이 아니라 진짜 큰 서점이라고 알려주었구요. 친구가 서점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 사진에는 'se-ed book center'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어요. 사람들에게 서점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어디에 붙어있는 건지 전혀 몰랐어요.


"아, 몰라! 건물 다 들어가보자!"


건물을 하나씩 들어가서 안에 서점이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하나씩 물어보다보니 결국 한 빌딩 안에서 서점을 찾았어요. 그 빌딩은 바로 siam paragon. 시암 파라곤 3층 (한국식으로는 4층)에 큰 서점이 있었어요. 일본계 체인 서점인 kinokuniya 서점이었어요. 친구가 알려준 se-ed book center 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큰 서점이 있었기 때문에 들어가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태국어판부터 찾았어요. 이제 9시를 넘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널널하지 않았어요. 일단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태국어판을 구입했어요.



책을 구입한 후, 서점 내부를 천천히 구경했어요. 의정부 영풍문고 정도는 되는 것 같았어요. 그만큼 꽤 크고 현대적인 서점이었어요. 영어책이 많이 있었고, 태국어 책도 꽤 있었어요. 서점에 태국어 책이 많은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자국어로 된 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학문과 문화가 발달했다는 증거니까요. 정말 아쉬웠던 것은 제가 태국어를 몰랐기 때문에 좋은 책을 살 수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태국 전래동화 및 전설 책을 구입하고 싶었는데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서 구입할 수 없었어요. 활자체는 몇 글자 더듬더듬 읽을 수 있었지만, 바로 위,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책에 적힌 태국어 글자체는 아예 알아볼 수가 없었어요. 얼핏 보면 라오스어 문자처럼 생겼지만 절대 라오어 문자는 아니었어요. 가뜩이나 글자를 잘 몰라서 태국어 단어도 안 외워지는데, 그나마 외운 글자들도 저런 글자체 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었어요.


kinokuniya


서점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였기 때문에 밖으로 나와 멀찍이서 서점 사진을 찍었어요.


이제 남은 일은 저녁 먹기. 시암 파라곤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가기 위해 식당가로 내려갔어요.


그래서 맥도날드를 갔다.


9시 반도 넘었어요. 이제 거의 10시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식당들은 전부 문을 닫거나 닫는 중이었어요. 문을 닫지 않은 곳은 딱 한 곳 - 맥도날드 뿐이었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이제 시간이 진짜로 늦어서 이대로 후아람퐁역으로 가면 먹을 것이 정말 없을 것 같았어요. 편의점에서 과자와 빵, 음료수로 저녁을 때우지나 않으면 감지덕지라 여겨질 것이 뻔했어요.


"밥 있다!"



맥도날드 역시 내부 촬영은 금지. 그래서 제가 먹은 59바트 짜리 spicy red hot rice 사진만 찍었어요. 맛은 꽤 맛있었어요. 59바트 내고 먹을 가치가 충분했어요.


이제 시암에서 할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시간도 10시를 넘었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갈 일만 남았어요. 내일 또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전철을 타고 가기로 했어요. 시암은 지상철인 BTS, 제 숙소가 있는 후아람퐁역은 지하철인 MRT. 둘은 무료환승이 되지 않아요. 먼저 BTS 시암역에서 쌀라 댕 역 Sala Daeng Station ศาลาแดง 으로 가는 표를 끊었어요. 요금은 22바트였어요.



티켓 판매기 옆에 붙어있는 경고판.



쓰레기 버리지 말고, 담배 태우지 말고, 음식물 먹지 말고, 애완동물 데리고 타지 말고, 불 내지 말라는 건 그냥 평범했어요. 흥미로웠던 것은 어깨에 짐을 지고 다니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개찰구를 통과해 BTS를 타고 쌀라댕역으로 갔어요. 쌀라 댕에서 MRT 씰롬역으로 바로 환승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어요.


Si Lom station in Bangkok


MRT 씰롬역으로 가는 통로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래는 아직도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어요.


씰롬역으로 가서 다시 표를 끊었어요. 이번에는 19바트였어요. 시암에서 후아람퐁역까지 전철을 타고 오면 무려 41바트. 단순히 환율 33원을 곱해도 우리나라와 맞먹는 요금. 버스는 시암역에서 후아람퐁역까지 한 번에 가고 6.5바트. 버스비에 비해 6배 이상 비쌌어요. 41바트는 태국에서 그 가치를 무시할만한 액수는 아니에요. 바로 위, 맥도날드에서 판매하는 밥이 59바트였어요. 이 나라 사람들이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잘 모르겠지만, 편의점에서 파는 음료수 가격을 보았을 때 하루 왕복 교통비 82바트라면 적은 돈이 아닐 것이었어요. 우리나라의 버스 - 지하철 무료환승제도는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어요.


"태국에서 돈 없는 사람들은 전철 타지도 못하겠네."


매우 씁쓸했어요. 정말 하루 종일 왓 마하탓에서 죽 얻어먹은 것을 제외하고는 좋은 모습을 본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방콕이 나를 너무 좋아해서 처음부터 씻지도 않은 맨얼굴로 마중나온 건가 싶을 지경이었어요. 특별히 방콕에 대해 삐딱하게 볼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방콕을 제대로 처음 돌아다닌 이날, 하루 종일 본 것들이 모두 매우 부정적인 것들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후아람퐁역에서 내려서 편의점에 가서 야구르트를 하나 구입해 마셨어요. 야구르트는 참 맛있었어요.



방에 들어오니 밤 11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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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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