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04 추억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좀좀이 2015. 6. 3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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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좀이님, 두체통 알아요?"

"예? 우체통요?"


2014년 봄 어느 날. 카카오톡으로 잡담을 나누던 중 P형이 뜬금없이 '두체통'이 재미있다면서 제게 두체통을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아니, 내가 우체통도 모르는 줄 아나.'


아무리 요즘 우체통이 보기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동네 곳곳에 우체통이 있었어요. 빨간 우체통에 직접 편지나 카드, 엽서를 써서 보낸 적도 여러 번이에요. 편지가 우체통 안으로 떨어질 때 편지가 별로 없으면 '퉁' 소리가 났고, 편지가 많이 있으면 '툭' 소리가 났어요. 80원 짜리 '하나 낳아 알뜰살뜰'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 집어넣은 것이 가장 오래된 기억이에요. 그 이후에 100원 짜리 곤충 시리즈 10장이 나왔어요.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동네 구멍가게에서 보통 우표를 팔았어요.


"당연히 알죠. 제가 나이가 몇 살인데 그걸 몰라요!"

"두체통 해요?"

"요즘은 편지 부칠 일 있으면 우체국 가서 편지 부치는데요."


그런데 P형과 T동생의 대화를 보니 제가 알고 있던 '우체통'과는 다른 무슨 프로그램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두체통이 우체통 아니에요?"

"우체통이 아니라 '두근두근우체통'이라는 어플이에요."

"그거 재미있어요?"

"일종의 펜팔 프로그램인데, 조금 친해지면 카카오톡이나 라인 아이디 교환해서 채팅 친구될 수 있어요."

"그거 나라 많아요?"

"웬만한 나라는 다 있을 걸요?"


펜팔?


마지막으로 펜팔을 해 보았던 것은 거의 10년 전. 이메일로 미국 거주 에리트레아 사람과 펜팔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영어로 펜팔을 했었는데, 제 영어 실력이 워낙 후달려서 제대로 답장을 잘 해주지 못해 결국 연락이 끊겨 버렸어요. 이 당시, 배워본 적이 전혀 없는 외국어 몇 개를 독학으로 공부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어요. 문제는 주요 외국어가 아니다보니 물어볼 곳조차 없다는 것. 그래서 당시 독학으로 공부하던 외국어들을 아는 외국인들을 알아내야만 했어요. 영어와 불어로 된 문법책을 더듬더듬 읽어가며 공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거든요. 게다가 그런 문법책에 나오지 않은 문법들도 마구 튀어나오고 있었구요.


게다가 두근두근우체통은 공짜 어플이었어요. 몇 번 사용해보고 재미없으면 지워버리면 끝이었어요.


"일본인 채팅 친구 생겼어요."


P형이 일본인 채팅 친구가 생겼다고 자랑했어요.


일본인!!!!!


고등학생때 일본어를 혼자 독학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일본어를 일본인에게 직접 사용해본 적은 손가락으로 꼽아요. 진짜 다섯 번 채 안 되요. 이상하게 일본인들과는 교류할 일도 없었고, 채팅이나 펜팔 같은 것에서도 일본인만큼은 대화를 나누어본 적 자체가 없었어요. 제게 일본어란 정말 혼자 공부했고, 일본 애니와 드라마 볼 때 자막에 덜 의존하며 보는 용도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일본인과 채팅이라도 몇 마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P형은 두근두근우체통을 통해 일본인 채팅 친구를 만들었다고 자랑하고 있었어요.



이때 P형이 진심 부러웠어요. 30년 모태솔로가 카사노바를 보는 심정이었어요. 저는 뭔 짓을 해도 안 생기던 일본인 지인을 저렇게 두근두근우체통을 사용하여 쉽게 만들다니! 두근두근우체통을 깔기만 하면 저도 일본인 지인들이 마구마구 생길 것 같았어요. 당장 핸드폰에 설치했어요. 핸드폰에 설치하자마자 일본 및 몇몇 국가로 엽서를 보냈어요. 하지만 단 한 통도 답장이 오지 않았어요.


"이거 답장 한 통도 안 오는데요?"

"그거 많이 뿌려야 해요."


아...역시 뿌린 대로 거두는 거구나!


그래서 많이 뿌려보았어요. 하지만 답장이 단 하나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한참 뒤에야 두체통을 통해 펜팔 친구가 몇 명 생겼어요. 물론 원하는 국가로 두체통 엽서를 날리는 법을 알아낸 뒤에의 일이었지요. 엽서를 마구 뿌려봐야 돌아오는 답장도 없고, 전혀 흥미도 없고 친구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는 중국, 미국, 독일 등에서나 가끔 답장이 날아와서 지울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P형이 어떻게 원하는 국가로 엽서 날리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었어요. 이때는 번체 한자를 사용하는 타이완의 중국어를 공부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P형이 알려준 대로 타이완으로 두체통 메세지를 날려보았어요.


5전 4승 1패!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승률. 두체통은 불특정 다수에게 보낼 때 5명에게 메시지가 날아가요. 지금까지 10통 날려서 1통 답장 날아오면 잘 날아온 것이었는데, 타이완을 딱 집어서 보내자 한 번 보냈을 뿐인데 4명이 응답을 해 주었어요. 아, 역시 타이완! 타이완 최고! 진짜 '니하오'만 해줘도 매우 좋아하는 타이완 사람들. 게다가 한국어를 잘 하는 타이완인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최소한 한글을 아는 타이완인들은 매우 많았어요.


이렇게 타이완 사람들과 두체통을 통해 채팅 친구가 된 후, 혹시 다른 나라 사람들과도 이 방법을 사용해서 친해질 수 있을까 궁금해졌어요.


된다!!!!!


정말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채팅 친구들도 여럿 생겼어요. 여러 나라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과거 skype 에서 skype me 설정을 이용해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나던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어요. 비록 제가 필요로 하던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은 만나지 못했지만요. 정말 오랜만에 다시 느끼는 그 재미였어요. 제가 영어를 잘 몰라서 자유로운 대화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채팅이라 그것이 그렇게 크게 제약 사항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어요. skype 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입으로 대화하자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는데, 두근두근우체통은 그 자체에 음성메시지 기능이 없고, 카카오톡, 라인 모두 음성 통화보다는 채팅 프로그램에 가까운 것이다보니 말을 해야 한다는 부담도 거의 없었어요. 게다가 채팅이다보니 반드시 서로 같은 시간에 해야 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베트남어가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항상 한 번 쯤 공부해보고 싶었던 언어였는데 성조 때문에 공부를 못 하고 있던 언어였어요. 하지만 이렇게 채팅 친구를 사귀면 어떻게든 방법이 나올 것 같았어요. 발음은 음성메시지로 녹음해서 전송하고, 이것을 확인받고 상대가 발음해주는 것을 들으면 양쪽 다 부담 없고, 도움은 꽤 많이 되거든요.


그래서 두체통으로 베트남 사람들을 찾아보던 중 문득 무언가 떠올랐어요.


'심심한데 인도네시아 사람이나 찾아볼까?'


이것은 밑져봐야 손해볼 것이 없는 장사나 마찬가지였어요. 친구가 생긴다면 좋고, 아니면 말구. 손가락 몇 번 까딱까딱 움직이는 것에 들어가는 칼로리 소비 외에는 날릴 것이 없었어요. 만약 생긴다면 인도네시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은 것이었구요.


엽서를 보내고 학원에 가서 쉬는 시간에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답장이 와 있었어요. 간단히 인사를 주고 받은 후 어디 사냐고 물어보았어요.


"나는 jokjakarta 에서 살아."

"아...자카르타 사는구나!"

"아니야, jokjakarta 에서 살아."


상대는 '자카르타'가 아니라 '족자카르타'에서 산다고 하는데 왜 자꾸 그것을 강조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이때는 인도네시아 도시들에 아는 것이라고는 주요 섬과 도시명 정도 뿐이었어요. 제게 '자카르타'와 '족자카르타'의 관계란 잘 쳐줘야 '서울'과 '일산' 수준이었어요. 그냥 자카르타 근교에 만들어놓은 신도시, 또는 자카르타 내부에 있는 어떤 구역 이름이 '족자카르타'인 줄 알았어요. 아예 모르면 찾아보기라도 할 텐데 '자카르타'는 일단 아니까 '족자카르타'에 대해 찾아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교통수단이 안 좋아서 바로 옆 도시쯤 되는 곳을 매우 멀다고 강조하는구나.'


대충 저렇게 생각하며 넘어갔어요. 어쨌든 이렇게 인도네시아인 친구가 하나 생겼어요.


인도네시아인 친구는 친절하고 말도 자주 걸어주었어요. 한글도 알고 있어서 간단한 한국어는 타이핑할 수 있었고, 영어도 잘 했어요. 자꾸 족자카르타가 자카르타가 아니라고 하는 것 외에는 매우 좋았어요. 


인도네시아인 친구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던 어느 날이었어요.


"여행가고 싶다."

"어디?"

"글쎄."

"족자카르타 와."

"거기에 뭐가 있는데?"


인도네시아인 친구가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그게 왜 거기 있지?


친구가 보내준 사진은 바로 보로부두르 사원 사진이었어요.



보로부두르 사원이라면 동남아시아의 불교 유적 관련 글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유적. 어려서 학습그림사회에서 본 기억이 있었고, 학교 교과서에서 본 기억도 어렴풋 있었어요. 사진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던 그곳. 그곳이 족자카르타에 있다고 하자 매우 혼란스러워졌어요. 저 유적이 자카르타 근처에 있었던 것이었나? 그런데 자카르타 갔다가 보로부두르 사원을 보고 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이게 자카르타 근처에 있었다면 분명히 자카르타 갔다온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왔다고 이야기했을 것이었어요.


대체 얘는 어디 살고 있길래 보로부두르 사원이 족자카르타에 있다고 하는 거지?


구글 검색창에 'jokjakarta'를 입력했어요.


이건 자카르타가 아니었구나!


여태껏 인도네시아 친구가 자카르타 또는 그 근처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얘에게 계속 jakarta 어떻냐고 물어보았고, 얘는 종종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어요. 그때마다 무슨 자기 동네도 모르나 한심하게 여겼는데, 한심한 것은 얘가 아니라 저였어요. 이건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어떤 외국인이 부산 사는 사람에게 부천 어떻냐고 계속 물어보았던 것과 같은 것이었어요.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에요. 도로 사정 및 실제 거리를 따져보아도 자카르타와 족자카르타는 부산-부천보다 먼 거리였어요. 인도네시아인 친구는 제가 자카르타를 물어볼 때마다 솔직히 대답해준 것이었어요.


인도네시아 친구는 사진 몇 장을 더 보여주었어요. 보여주는 사진들마다 굉장했어요.


"족자카르타 꼭 가고 싶어!"

"응, 여기 꼭 와! 다른 나라보다 여기부터 와야 해!"

"응!"


인도네시아 친구에게 다음 여행은 꼭 족자카르타로 가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이 약속 이후 며칠 후, 인도네시아의 국어책을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어요. 그런데 진짜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었어요. 다운로드 받다가 자꾸 끊겨서 초등학교 국어책을 다운로드하는데 며칠 걸리기는 했지만요. 예상치도 못했던 인도네시아의 국어책을 구하자 인도네시아어에 대한 흥미가 다시 생겨났어요. 방 한쪽 벽에 쌓여 있는 책 박스를 뒤적였어요. 대학교 1학년때 보았던 그 책이 있었어요.


"이게 그런 말이었구나!"


그때는 솔직히 그 책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고립어니 교착어니 굴절어니 하는 것은 하나도 몰랐고, 시제니 상이니 하는 것도 제대로 몰랐을 때였어요. 그 책을 보며 수업 들은 것 중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인도네시아어에서는 h 발음이 될 때와 안 될 때가 있다는 점, e 를 인도네시아에서는 '으', 말레이시아에서는 '어' 로 읽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리고 p를 인도네시아에서는 'ㅃ', 말레이시아에서는 'ㅍ' 에 가깝게 발음한다는 점 정도였어요. 이런 것은 시험에 나오지 않았고, 시험에서 풀 수 있는 문제 자체가 별로 없었어요. 책을 봐도 모르고 설명을 들어도 모르고, 그나마도 졸거나 잔 시간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제 보니 설명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요. SVO 라든지 전치사라든지 하는 것들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았어요.


그 박스를 같이 뒤지다 덩달아 튀어나온 책이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라오스어 교재 두 권.


명동 거리에서 외쳤던 싸바이디.


책을 펼치는 순간 라오스어와 관련된 일들이 하나 둘 주마등처럼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글자도 못 외우고 음성 교재 파일도 못 구해서 책 표지만 멍하니 보던 것도 기억났고, 음성 교재 파일을 구하려고 밤새 인터넷을 뒤적였던 것도 떠올랐어요. 그런 기억의 끝에는 다시 도전해 반드시 라오스어를 하고 싶다는 오기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니, 최소한 싸바이디라도 직접 손으로 쓰고 라오스 사람에게 말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라오스어 글자를 외우기 시작했어요. 자음까지는 어찌어찌 외울 수 있었어요. 문제는 모음. 모음은 잘 외워지지 않았어요.


'따라읽다보면 외워지지 않을까?'


아, 라오스어는 성조가 있었지!


따라읽으려고 시도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라오스어는 성조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어요. 간신히 외운 자음과 책에 나와 있는 모음을 맞추어보며 떠듬떠듬 읽을 수는 있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제대로 읽어낸 것이 아니었어요. 라오스어는 성조가 있기 때문에 성조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했거든요.


라오스어 역시 태국어와 마찬가지로 중자음, 고자음, 저자음 구분이 있고, 이 자음 구분이 성조를 결정하는 것이 기본 구조였어요.


글자 새로 외워야하잖아!


그래도 모르는 글자를 처음부터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던 글자의 순서를 새로 외우는 것이라 그렇게까지 많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이제 드디어 성조를 공부할 차례. '한눈에 보는 라오스어 회화'를 펼치고 mp3 파일도 틀었어요.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싸바이디. 그것을 따라서 읽었어요. '싸바이디'야 원래 알고 있었던 것인데다 하도 많이 들어서 잘 아는 말. 그래서였을까요.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성조 부분을 펼쳐서 맞추어 보았어요. mp3과 뭔가 안 맞는 부분이 있었어요. 설명대로라면 '바이'와 '디'의 성조는 같아야 했어요. 그런데 mp3 파일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서 '바이'와 '디'는 성조가 달랐어요. 제 귀가 문제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지만 mp3 에서 흘러나오는 '싸바이디'는 예전부터 몇십 번이고 반복해 들어왔던 그 '싸바이디'가 맞았어요. 게다가 '바이'의 'ㅂ' 발음과 '디'의 'ㄷ'는 같은 중자음에 해당하는 자음이었어요. 이건 제 귀의 문제가 아니라 설명에 문제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때 그 책을 펼치지 말았어야 했어. 그 책을 펼친 순간 문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



'한눈에 보는 라오스어 회화'와 '가장 알기 쉬운 라오스어 회화' 에 나와 있는 성조 설명은 안 맞는 것이 너무 많았어요. 둘을 비교해본 결과가 바로 저 사진. 라오스어를 아는 상태에서 이것을 접했다면 둘 중 제가 아는 것과 비슷한 것을 택해서 공부했겠지만, 저는 라오스어라고는 '싸바이디' 하나 아는 상태. 둘에 나와 있는 성조 설명의 차이가 꽤 커서 뭘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며칠간 인터넷을 뒤지고 물어보기도 하고 해서 얻은 결론은 하나였어요.


이건 그냥 답이 없다.


조사 결과 라오스어는 '표준 발음'이라는 것이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방언이 없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다보니 지역마다 성조가 달랐고, 어느 지역을 따르느냐에 따라 성조 갯수까지 달라졌어요. 4성조라고 하는 글에서부터 8성조라고 하는 글까지 있었어요. 이런 경우 대체로 한 국가의 수도에서 사용하는 발음을 기준으로 잡기 마련인데, 비엔티엔에서의 성조에 대한 설명조차 제각각이었어요. 결론은 이것을 책이나 글을 가지고 익히는 것은 불가능. 어느 발음이든 간에 사람에게 직접 배우는 수 밖에 없었어요. 매주 토요일마다 라오스어 스터디가 열린다고 해서 참가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문제는 학원. 시험 기간만 되면 토요일, 일요일에 자습지도 및 보강을 나오라고 해서 꾸준히 나갈 방법이 없었어요.


"라오스에도 국어책 있나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라오스에 계신 블로거분께 여쭈어보았어요. 이 질문을 드릴 때, 당연히 없다는 대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했어요. 태국 교과서를 빌려서 쓰거나 무슨 종이 쪼가리를 복사해서 교사들이 사용하고 학생들은 열심히 판서된 것을 어딘가에 베껴적는 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질 거라 추측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라오스도 국어책이 있었고, 라오스에 계신 블로거분께서 제게 선물로 라오스 초등학교의 국어책을 선물로 보내주셨어요.


이제 포기란 없다.


라오스어 성조 문제 때문에 라오스어 공부를 아예 그만두고 책은 죄다 중고서점에 팔아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라오스 교과서를 선물받았어요. 이렇게 된 이상 포기할 수 없었어요. 선물로 교과서를 받았는데 '라오스어는 성조가 답이 없어서 공부 때려칠 거에요'라고 하는 것은 그분을 놀리는 행동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명동 거리에서 싸바이디를 외친 정신으로 교과서 10쪽이라도 성심성의껏 보아야 했어요. 사실 성조만 무시한다면 공부를 못할 정도도 아니었구요.


이 무렵, 두근두근우체통은 태국인들의 공습이 이어지고 있었어요. 하루에도 열 통 넘게 태국인들이 보낸 엽서가 도착하고 있었어요. 태국 온라인 세계에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제게만 해당된 문제는 아니고 일반적으로 태국인의 공습이 이어지고 있었어요. 태국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보내는 족족 지워버리고 있었는데, 라오스어 성조가 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 후 T동생의 말이 떠올랐어요.


"태국어랑 라오스어랑 거의 똑같아요."


태국인 중에 라오스어를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T동생의 말이 맞다면 태국인에게 라오스어를 배우는 것도 그렇게까지 나쁠 것은 없었어요. 어차피 정답이 없는데, 태국인에게 조금 이상한 성조를 배워서 말한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온갖 자료를 다 찾아본 결과, 라오스어를 공부하려면 결국 태국어도 공부하기는 해야 했어요. 라오스어에 대한 자료가 워낙 없다보니까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가면 태국어 자료를 가지고 라오어를 공부해야 했어요. 그 레벨까지 올라갈 일은 요원한 일이기는 했지만, 미리 아주 아늑히 먼 미래를 지금 준비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었어요.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준비'라는 거창한 목적이라 포장하기는 했지만, 실상 그 방법 외에는 라오어를 제대로 공부할 방법이 없없어요.


그래서 태국인들이 두근두근우체통으로 엽서 공습을 보낼 때마다 하나하나 답장해주고, 태국인들에게 라오어를 아냐고 타이핑한 엽서를 보내보았어요. 태국인들에게 라오어를 아냐고 물어보면 거의 전부 다 라오어를 안다고 대답했어요. '태국어랑 비슷해서' 라는 말과 함께 할 줄 안다고 하는데 정작 물어보면 잘 몰랐어요. 대부분이 나이가 매우 어렸고, 채팅이라도 하게 되면 스티커만 남발해서 짜증이 났어요. 나중에는 라인의 북극곰 스티커를 보기만 해도 짜증이 머리 끝까지 치솟았어요.


태국인에게 라오어를 물어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건가?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어요. 아제르바이잔어를 공부할 때, 터키인들이 아제르바이잔어를 '터키어와 비슷하다'고 하면서 아제르바이잔어를 안다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뭣 좀 물어봤다 하면 에프킬라 앞 모기떼처럼 전멸이었어요. 왠지 태국인과 라오스인 사이의 언어 관계도 이와 매우 유사할 것 같았어요.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터키 책, 방송, 음악을 자주 접하며 터키어를 잘 알았던 것에 비해 터키인들은 아제르바이잔의 책, 방송, 음악을 접할 일이 없으니 아제르바이잔어에 대해 잘 몰랐어요. 태국인과 라오스인 역시 전술한 경우처럼 라오스인들은 태국 책, 방송, 음악을 자주 접해 태국어를 잘 아는데, 태국인들은 라오스의 책, 방송, 음악을 접할 일이 없으니 라오스어를 잘 모르는 것 아닌가 하는 가설을 세울 수 있었어요.


"두근두근우체통은 왜 라오스는 선택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거야!"


모바일 세계에서 라오스는 그야말로 엄청난 오지였어요. 안드로이드에서 라오어 글자가 깨지는 것은 기본이고, 펜팔 프로그램에서 라오스가 쏙 빠져 있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어요. 소말리아는 있는데 라오스가 왜 빠져 있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주어진 현실은 받아들여야 했어요. 기껏 라오스가 있는 펜팔 프로그램을 찾아내면 거기에는 정작 '라오스인'이 없었어요.


성조를 무시하고 라오스어로 '빠'가 물고기라는 것을 공부하고 있던 어느 날. 이제는 습관적으로 라오스어 아냐고 두근두근우체통으로 엽서를 보내고 있었어요. 이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응. 라오스어 알아."


처음에는 지금껏 엽서를 주고 받았던 수없이 많은 태국인들과 같을 줄 알았어요. 하도 많이 당해보다보니 요령이 생겼어요.


"라오스어 배웠어?"

"아니. 하지만 주변에 라오스인들이 있어서 조금 알아."


어?


돌아온 답장은 무수히 많은 태국인들이 보내주던 뻔한 답장들과 달랐어요. '태국어와 비슷해서' 안다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라오스인들이 있어서' 안다는 것이었고, 잘 안다고 대답하지도 않았어요. '조금 안다'는 말에 매우 큰 신뢰가 갔어요. '조금 안다'는 것은 최소한 '태국어와 라오어는 다르다'라는 것을 어느 정도 잘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였어요. 게다가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어보다 알게 된 것은 대학교를 졸업한 태국인이었다는 것이었어요.


카카오톡 아이디를 교환한 후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 시작했어요.


"고향이 어디야?"

"아유타야."

"거기에는 뭐가 있는데?"


현재 방콕에서 살고 있다는 아유타야 출신 친구는 여러 유적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유타야는 태국에서 꽤 유명한 역사적 도시였어요.


이렇게 된 이상, 태국어를 먼저 한다!


서점에 가서 국어를 이미 공부한 적이 있는 T동생이 추천해준 태국어 교재를 구입했어요. 그리고 시작된 글자 외우기.


"이거 라오어랑 글자 닮았잖아!"


T동생이 라오어 글자는 태국어 글자 대충 쓴 거 같다고 이야기했었어요. 그때는 그냥 제게 장난으로 말한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 글자를 외우기 위해 글자를 자세히 보니 정말로 글자가 많이 닮았어요. 차이점이라면 태국어에는 같은 발음 다른 글자가 매우 많다는 것. 불경을 최대한 원음 가깝게 표기하려고 하다보니 같은 발음 다른 글자가 무수히 많이 생겼다고 했어요. 같은 발음 다른 글자들을 외우는 것은 고역이었어요. 게다가 글자 자체도 매우 많았어요.


나름 열심히 외워서 중자음, 고자음까지는 외웠는데, 저자음은 글자가 너무 많아서 하루에 다 외울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물론 당연히 모음은 외우지 못했구요.


그런데 라오스어 문자는?


태국어 문자를 외우자 점점 라오스어 문자를 잊어가고 있었어요. 이때부터 시소 놀이가 시작되었어요. 태국어 문자를 공부하면 라오어 문자를 잊어보리고, 라오어 문자를 공부하면 태국어 문자를 잊어버렸어요. 둘 다 해보려 했지만 그건 무리였어요.


이렇게 태국어 문자와 라오스어 문자 사이에서 홀로 우왕좌왕하며 둘 다 까먹어가고 있던 때였어요. 정말 우연히 라오스인과 만나게 되었어요. 하루 약속을 잡고 점심을 같이 먹은 후, 라오스어 성조를 배웠어요.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어요. 그 라오스인과의 연락은 끊겨버렸어요. 점심을 같이 먹고 라오스어 성조를 배운지 며칠 후, 안부 메시지를 보내고 앞으로 계속 연락하고 지내자고 'keep in touch'라고 보냈는데, 이게 문제였던 것 같았어요. 이것을 전혀 엉뚱한 의미로 해석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락이 두절되었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연락이 끊겨버렸는지 정확히 알 방법이 없었어요.


"내가 라오스 가서 라오스인들에게 배우고 만다!"


조금씩 깨작깨작 책을 보아나가며 인도네시아, 라오스가 가보고 싶어졌어요. 인도네시아는 공부했던 것을 직접 사용해보고 싶어서, 그리고 라오스는 정말 라오어를 쓰는 라오스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가고 싶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태국에는 큰 관심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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