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03 라오스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인가요

좀좀이 2015. 6. 24. 08:00
728x90

라오스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T동생 때문이었어요.


라오스. 요즘은 관광 때문에 매우 많이 알려졌고, 심지어는 우리나라와 라오스 사이에 직항노선까지 운행되고 있지만, 2008년에만 해도 그렇게 잘 알려진 나라는 아니었어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반도 3개국 -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중 가장 안 알려진 나라가 라오스에요. 베트남이야 우리나라가 월남전에 참전했기 때문에 너무나 유명하고, 캄보디아는 킬링필드와 앙코르와트 때문에 유명해요. 타이어 문자는 캄보디아어 문자를 변형시킨 것이라 하더군요. 어쨌든 이 당시, 유명한 베트남, 캄보디아에 비해 정말 잘 알려지지 않은 라오스였어요. 이 무렵, '라오스'라고 하면 라오스에서 들고 나온 '불교 사회주의'와 수도가 '비엔티안'이라는 것 정도 알고 있었어요. 사실 불교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라오스에서는 공산화 이후 '불교 사회주의'를 국정이념으로 채택했다는것만 알 뿐, 불교 사회주의가 뭔지도 몰랐어요.


라오스의 불교 사회주의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니 1976년 라오스의 부수상은 연설에서 승려들에게 '승려들의 정치연구는 진보적 혁명정부에 맞도록 통합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전제하며 '우리는 혁명적 정치학과 부처님께서 실천하신 정치학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오직 그 조직과 실행만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중략) 승려들은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부처님의 정치적 간부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정치적 의무를 보다 깊이 이해해햐 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는데...그냥 '이런 것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단지 '승려들은 부처님의 정치적 간부'라는 표현을 보며 대체 어떻게 저런 발상을 해내었는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는 것 정도였어요. 그다지 큰 관심도 없었던 데다 인터넷을 뒤져도 한국어로 된 자료가 거의 없었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2014년 타이완 여행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동남아시아 자체에 아무 관심이 없었어요.


더욱이 성조 언어라면 치가 떨렸어요. 성조 언어를 정말 싫어했어요. 일반적인 외국어는 엉망진창 억양이라 해도 대충 의사소통이 될 수 있지만, 성조 언어는 성조를 잘 발음해야 해요. 그래서 자료를 찾을 때에도 성조 언어는 고생이에요. 책만 찾아서는 성조 표시를 보고 감이 오지도 않는데 음성 파일까지 구하려면 매우 힘들고 용량도 커요. 문서로 된 교재야 그냥 검색만으로도 찾을 수 있지만 음성 파일 교재를 구하려면 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해요. 그 뿐만이 아니에요. 문서로 된 교재는 노래를 들으며 공부할 수 있지만 음성 파일 교재를 이용하려면 오직 음성 파일 교재만 들어야 해요. 물론 성조를 한 번 깨우치면 성조언어가 매우 쉽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이 당시 성조를 전혀 깨우치지 못했어요. 성조 중 가장 쉽다는 중국어 1,2,3,4성조차 전부 똑같이 들릴 뿐이었어요. 공부할 때부터 난관.


태국어는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해도 안 되는 언어로 규정지은 후, 그 옆 나라에서 사용하는 라오스어를 공부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일단 라오스어 교재를 찾아보았어요. 국내에 나와있는 라오스어 교재로는 삼지출판사에서 출간한 교재 1권이 전부였어요. 그나마도 음성 파일이 없었어요.


성조 언어에 음성파일이 없다니!


이것은 렌즈 없는 망원경이에요.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외국 교재를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어요. 역시나 무료로 구하려 하니 음성 파일은 없었어요.


"이것들은 교재만 봐도 성조를 자연히 끼우치는 건가? 책에 무슨 최면이라도 걸어놓은 거야?"


자료를 못 찾아 나가지 않는 진도. 술 마시지 않고 음주운전하기 급의 난이도였어요. 문서 자료야 어떻게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었지만 음성 자료가 없으니 계속 답이 없었어요. 인사가 '사바이디'라는 것은 알겠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발음해야하는지 알 방법이 없었어요. 당연히 진도는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계속 '사바이디'.


"그냥 태국어 하세요. 라오스어 하기 전에 태국어 먼저 공부해야 한다니까요."


P형과 T동생의 주장. 그것은 제게 태국어를 공부하라는 것이었어요. 핵심 근거는 라오스어나 태국어나 비슷해서 이왕 라오스어 공부할 거라면 태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었어요. 라오스어는 어차피 교재도 제대로 되어 있는 게 없으므로 태국어 공부를 먼저 하는 게 맞고, 태국어 잘 하면 라오스어는 저절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어요.


오기가 고개를 든다.


가뜩이나 라오스어 학습 자료는 안 구해지고 엉뚱한 외국어 자료만 덤으로 구해지고 있는데 P형과 T동생은 계속 왜 하필 라오스어를 공부하냐고 하며 태국어 공부나 하라고 했어요. 둘은 제가 성조 언어에 다시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 자체는 좋아했지만 이분들이 원하는 성조언어에서 라오스어는 빠져 있었어요. 사실 이 두 분이 악의를 가지고 제게 장난치는 것은 아니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당시 라오스어는 실용성도 전혀 없었을 뿐더러 언어 자체가 태국어랑 많이 비슷하다고 했어요. 그러니 이왕 할 거면 자료도 풍부하고 조금이라도 써먹을 수 있는 태국어를 하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사실 둘은 제가 두 분이 저를 말릴 수록 바득바득 라오스어를 하겠다는 것을 보는 것을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어요.


인터넷으로 자료를 계속 찾아보았지만 음성 교재는 도무지 구할 길이 없었어요.  음성 교재는 둘째치고 제대로 된 교재 자체를 구경하기 힘들었어요.  다른 외국어였다면 그냥 포기하고 넘어갔겠지만 라오스어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어요.  라오스어 자료를 구하고 공부를 시도해보는 것은 이제 단순한 호기심을 뛰어넘어 저의 오기와 관련된 문제가 되었어요.


"라오스에서는 교과서 만들 돈도 없어서 태국 교과서 수입해서 쓴대요."


T동생의 발언. 어차피 라오스에서는 교과서 만들 돈도 없어서 태국 교과서 수입해 쓰기 때문에 태국어가 잘 통하니 얌전히 태국어 공부하라는 것이었어요.


"태국어를 먼저 공부하시고 라오스어를 나중에 봐요. 지금 좀좀이가 하는 것은 이집트 방언 먼저 공부하고 표준 아랍어 공부하겠다는 거랑 같아요."


P형의 발언. 인터넷 보면 표준 아랍어와 아랍어 방언의 차이에 대해 모르고 어디서 아랍어 방언 몇 마디 주워듣고 와서 아랍어랍시고 올린 자료가 많아요. 이렇게 어디서 대충 방언 몇 마디 주워듣고 아랍어랍시고 올린 자료 대부분이 이집트 방언. 심지어는 이집트 방언 몇 마디 배워와서 현지인에게 배운 거라면서 바득바득 이게 표준 아랍어 맞다고 우겨대는 놈도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집트 방언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P형은 제가 싫어하는 '이집트 방언'을 예로 들며 저를 말리려 했어요.


더욱 분노.


둘이 저를 말리자 더욱 오기가 생겼어요.


"내가 이거 반드시 자료 찾아내서 공부하고야 만다!"


하지만 잔인한 현실. 제가 분노를 하든 오기와 끈기로 도전하든 일단 자료가 없다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어요. 무슨 드래곤볼에서 손오공 분노해 3단 초사이어인 변신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아무리 분노하고 오기와 끈기로 도전한다 해도 일단 없는 자료는 없는 것이었고, 자료가 없으니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더욱 말도 안 되는 것이었어요.


라오스. 그 당시 우리나라에 그나마 알려진 것이라면 루앙프라방과 수도 비엔티엔. 그나마 비엔티엔도 베트남 비엔디엔푸보다 더 잘 알려졌을지 의문. 비엔디엔푸야 프랑스군이 베트남군에게 대참패했던 비엔디엔푸 전투가 있어서 많이 알려졌지만 비엔티안은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졌을지 의문이었어요. 얼마나 우리나라로부터 먼 나라인지 그렇게 흔히 접할 수 있는 동남아 원정 결혼에서조차 라오스는 없었어요. 그나마 캄보디아는 워낙 우리나라 사람들이 캄보디아 여성들과 결혼을 많이 해서 시중에 '쭘립쑤어 캄보디아' 라는 캄보디아어 교재가 있었는데 라오스는 어떻게 보아도 정말 우리나라와 어마어마하게 교류가 없는 것 같았어요.


라오스어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은 태국어 문자가 캄보디아어 문자를 차용해 약간 수정했다는 것이었어요.


"태국어 하시라니까요."

"태국어는 캄보디아어 글자 가져와서 약간 수정한 후 쓰고 있잖아."

"라오스는 태국으로부터 교과서도 수입해 쓰고 있다니까요."


태국이 캄보디아로부터 글자를 차용한 후 약간 수정해 쓰고 있다는 것도 라오스가 태국으로부터 교과서를 수입해 쓰고 있다는 것에 바로 졌어요. T동생과 P형의 연대는 더욱 굳건해 졌어요.


"P형, 정말 인터넷 검색으로는 라오스어 자료 구할 길이 없어서 그런데 혹시 이뮬로 찾아봐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니요.  태국어 하세요."


바로 거절. 다른 외국어 자료는 찾아봐주시는 P형이셨는데 라오스어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했어요.


선전포고


어떻게 해도 라오스어 학습 자료를 구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라오스어 자료 찾기는 중단하고 다른 공부들을 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P형과 만나 햄버거를 먹고 교보문고로 갔어요. 평소 P형과 만나 교보문고에 가서 하던대로 기타외국어 코너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삼지출판사의 '가장 알기쉬운 라오스어 회화' 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 책의 존재는 물론 알고 있었어요. 그 동안 이 책을 외면했던 이유는 바로 음성 파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책에 비해 가격은 엄청나게 비싼데 그 가격에 음성파일이 있는 CD조차 없다는 사실에 어이없어 구입하지 않았어요. CD는 고사하고 카세트 테이프조차 달려 있지 않았어요. 단가를 낮추기 위해 CD를 제공하지 않을 수는 있어요. 그렇다면 홈페이지에서 mp3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성조언어를 CD도 없이 소프트커버로 된 얇은 책만 18000원에 팔고 있어서 학습 자료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판단해 구입을 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구해보고자 노력했던 것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선택권 따위란 없었어요. 인터넷으로 라오스어 자료를 구하려던 계획은 이제 확실히 '실패'였어요. 이것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이었어요. 그래서 라오스어 교재를 집어들고 고민을 했어요. 일단 몇 마디라도 외우면서 음성 파일을 찾을까? 아니면 시간을 가지고 계속 기다려볼까?



"좀좀이님, 태국어 하세요. 그 교재 음성파일도 없네."


P님의 한 마디. 그래서 바로 구입해 버렸어요. P형과 T동생에 대한 정면 도전 선언이었어요.


집에 돌아와 책을 펼쳤어요. 역시나 글자부터 막막했어요. 예전에 태국어 글자 외우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었어요. 그런데 라오스어 글자는 태국어랑 거의 비슷했어요. 일단 한 마디라도 해야겠는데 글자부터 외우려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한 마디라도 외워서 P형과 T동생에게 라오스어 공부에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글자를 외우다가 포기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글씨 따위는 포기하는 거다!


문맹이라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요. 못 외우면 어쩔 수 없는 거에요. 일단 한 마디라도 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글자를 모르니 성조 표시도 볼 수 없어...


성조를 알 수 없다는 치명적 문제가 발생했어요. 다행히 아래 한국어 발음이 적혀 있어서 발음이 구리든 못 들어줄 지경이든 어떻게 외우면 되긴 하는데 성조를 모르니 한국어 발음만 가지고는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문제가 새로 등장했어요. 그래서 비싼 돈 주고 구입한 책은 실상 별 소용이 없어졌어요.


그러나 하늘은 저를 버리지 않았어요. 드디어 어떻게 라오스어 음성 파일을 구하게 되었어요. 비록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쓸 만 했어요. 다른 할 것이 많았기 때문에 라오스어만 잡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에 음성 파일은 라오스어와 영어로 되어 있었어요.


"T동생, P형, 라오스어 음성 파일 구했어요!"


그러나 시큰둥한 T동생과 P형. 매우 아쉬워하는 것 같았어요. 더욱 의욕이 생겼어요. 하지만 문제는 다른 할 것 때문에 라오스어를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딱 한 마디라도 정말 완벽히 발음해보자!"


목표를 약간 수정했어요. 이제 라오스어를 공부해 마스터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P형과 T동생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어요. 그래서 무엇을 외울까 생각해 보았어요.


밥 먹었니? 이건 별 감흥이 없어.


저는 라오스어를 공부합니다. 이것은 그다지 쓸모 없는 말.


고맙습니다. 가장 쉽고 가장 많이 외우는 외국어 표현이지만 이것 역시 특별한 느낌이 없었어요.


얼마입니까? 라오스어에서는 '니 타오다이'인데 태국어는 '니 타오라이'에요. 이걸 완벽히 발음해보았자 P형과 T동생의 반응은 시큰둥할 게 분명했어요. 보나마나 '그거 봐요. 비슷하대니까요. 지금이라도 태국어 공부하세요.'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 뻔했어요. 비록 외국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표현 중 하나였지만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어요.


무언가 간결하고 짧으면서 상대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한 마디. 그 한 마디를 찾아서 외워야 했어요. 그때 발견한 한 마디.


싸바이디


싸바이디!


바로 이거야!


그래요. 거의 모든 외국어 교재 맨 앞에 나오는 '안녕하세요'에 해당하는 말. 싸바이디. 태국어에서는 '싸왓디'에요. '싸'로 시작하고 끝이 '디'로 끝나는 것은 같으나 가운데가 달라요. 비슷한 듯하면서 다른 미묘한 맛이 있었어요. 더욱이 의미 자체가 '안녕하세요'.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그래서 '싸바이디'를 정말 라오스인 발음처럼 하기 위해 계속 연습했어요.


싸바이디 발음을 갈고 닦던 어느날. P형과 T동생을 만나 가볍게 맥주를 마시고 차가 끊겨 새벽에 명동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어요. 우연히 성조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라오스어에서 인사가 뭐였죠?"


"싸바이디!"


오직 우리들만 있는 새벽의 명동 거리에 울려퍼진 싸바이디. 찰나의 적막. 그리고 입이 쩌억 벌어진 P형과 T동생. 해냈어요. 두 분 모두 정말 라오스인이 발음하는 것 같다는 찬사를 보냈어요. '싸바이디' 발음을 갈고 닦은 보람이 있었어요. 비록 P형과 T동생은 싸바이디 이후에도 계속 저의 라오스어 도전을 좌절시키기 위해 많은 공작을 펼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저는 만족했어요.


집에 돌아와 TV를 켜니 EBS에서는 황금미소의 태국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메콩강 기행을 하네요.

초반에 라오스 빈민이 나옵니다. 개그지 나라라서 그런지 강에서 빨래를 합니다. 여행자가 쌈바이디!를 마구 외치고 사탕을 주자 라오스 빈민 어린이들이 빈민국 주민답게 멸치떼처럼 몰려왔습니다.


라고 P형께서 예전에 제가 재미로 썼던 '나의 외국어 방랑기' 에서 사용했던 말투를 흉내내며 저의 라오스어 도전을 계속 방해하려 했지만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비록 아직도 라오스어 글자도 모르고 아는 말은 몇 마디 없지만 언젠가는 라오스에 꼭 가볼 것이고, 가서 외칠 거에요.


싸바이디!


하지만 '싸바이디'를 마스터한 이후,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큰 변화들이 생겼고, 라오스어 교재 역시 책 박스 구석에 처박히고 말았어요.


여기까지가 바로 2011년까지의 이야기. 2012년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1년을 머무르며 우즈베크어를 공부했고, 그 이후에도 한동안 그 어떤 동남아시아 언어들을 손대지 않았어요. 모든 공부했던 것은 먼지처럼 작아지다 못해 정말 먼지가 되어 두뇌 속 어딘가에 머무르지조차 못하고 멀리멀리 날아가 버렸어요. 2014년 초에 기억하던 것이라고는 '싸바이디' 하나 뿐이었어요. 그나마도 위에 나온 그 사건에 대한 추억 때문에 기억하는 것일 뿐이었어요. 베트남, 라오스, 태국, 인도네시아 모두 관심 밖이었어요. 튀니지, 모로코에서 시작된 여행은 동쪽 우즈베키스탄까지 왔어요. 이렇게 되니 여행에 대한 흥미 또한 매우 떨어져 버렸어요. '나중에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이나 가 봐야지. 위구르까지 가면 비단길을 완성하는구나', 그리고 '언젠가는 꼭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말리, 세네갈을 가 봐야지'라는 막연한 생각 뿐, 어딘가를 딱 짚어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사라져 버렸어요. 애초에 자유를 만끽하러 여행을 다녔던 게 아니라 공부했던 것이 진짜 맞는 건가 확인해보고 싶어서 여행을 다녔던 것이었거든요. 동남아시아는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보니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이렇게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라오스어에 대한 일들은 그저 먼지 같은 추억이 될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