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겨울 강행군 (2010)

겨울 강행군 - 11 불가리아 소피아

좀좀이 2012. 2. 2.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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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4일


기차에 타자마자 외투 안주머니 속에 귀중품을 전부 집어넣고 위에 점퍼를 걸치고 정신없이 잤어요. 귀중품을 전부 외투 안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점퍼를 입은 이유는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어요. 강도야 어쩔 수 없지만 도둑은 조금만 신경쓰면 피할 수 있는데, 겨울에는 가장 좋은 것이 옷 속에 집어넣고 위에 외투를 걸치고 자는 것. 옷을 발가벗기고 훔쳐가면 그것은 강도. 기차에서 도둑을 한 번 당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확실히 도난을 당하지 않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었어요. 솔직히 깊이 잠들면 가방을 건드리는 것은 신경쓰기 어려워요. 친구와 불침번을 서며 자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친구는 기차에 타자마자 정신 못 차리고 잠들었어요. 솔직히 피곤한 상황에서 불침번을 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 군대라면 어쩔 수 없이 불침번을 서겠지만 이건 군대도 아니니까요.


잠에서 깨어났어요. 어느덧 아침. 친구는 계속 곤히 자고 있었어요.



기차는 어느덧 그리스-불가리아 국경에 도착했어요. 먼저 그리스 국경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이 기차 안을 돌아다니며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었어요. 그 다음은 불가리아 국경 차례. 불가리아 국경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이 여권을 전부 걷어갔어요. 확실히 국경에서의 입국 심사 및 출국 심사는 버스보다 기차가 훨씬 편해요.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을 때에는 내려서 입국 심사와 출국 심사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기차는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바로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거나 아니면 여권을 싹 걷어가서 도장을 찍어준 후 돌려주는 식이었어요. 그리스-불가리아 국경은 여권을 싹 걷어가서 도장을 찍어주는 식이었어요.


잠시 후. 불가리아 국경 직원들이 여권을 돌려주었어요.

"도장 잘 찍혔나?"

해외여행을 하며 도장을 받는 것은 해외여행 중 느낄 수 있는 작은 재미. 여권을 뒤적뒤적 넘겨보았어요.

"이놈들 몇 쪽에 찍어주었을건가?"

앞장부터 차근차근 넘겨보는데 도장이 보이지 않았어요.

"설마 이놈들 18쪽에 찍어주었나?"

입국도장 및 출국도장은 맨 앞쪽이나 맨 뒷쪽에 찍어주지만, 비자는 18쪽 - 즉 여권 한가운데에 붙여주는 경우가 많아요. 그 이유는 귀찮기 때문. 여권을 딱 펼치면 18쪽 근처가 나와요. 그러나 여권 한가운데에도 없었어요.

"얘네들 설마 맨 뒤에다가 찍었나?"

예전 튀니지와 모로코에서는 여권 맨 뒷장에 도장을 찍어주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찍어주었나? 계속 한 장 한 장 차근차근 넘겨보았어요. 그러나 여권이 없었어요.


"야, 너 여권에 도장 찍혔냐?"

"응."

친구 여권에는 도장이 찍혀 있었는데 제 여권에는 도장이 찍혀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급히 불가리아 국경 직원을 찾았어요. 다행히 직원들이 기차에서 막 내리려고 할 때 그들을 부를 수 있었어요.

"여권에 도장 없어요."

"응?"

"여권에 도장 안 찍혀 있어요!"

참고로 이때는 불가리아가 쉥겐조약의 적용을 받는 나라가 아니었어요. 즉 어느 쪽으로든 불가리아로 들어가려면 입국심사를 받아야했고, 입국심사를 통과하면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었어요. 여권에 도장이 안 찍혀 있다면 불가리아에서 출국할 때 상당히 피곤해질 수도 있었어요. 더욱이 불가리아는 다시 와야 하는 국가였고, 터키 - 불가리아 국경을 두 번 넘나드는 일정이 남아 있었어요. 터키 - 불가리아 국경은 국경에서 입국 심사 및 출국 심사를 매우 까다롭게 하는 국경. 솔직히 육로 이동시 국경 검사는 터키가 엄청 까다롭게 해요. 다 내리라고 하고 짐 검사도 해요. 짐 검사에서 짐을 다 풀지 안 풀지는 터키 직원 마음. 운 좋으면 가방을 열 필요도 없고 운이 나쁘면 가방 속을 다 보여주어야 해요. 그렇다고 불가리아에서 국경 심사를 허술하게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특히 불가리아의 경우, 구여권이면 입국 거부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 있는데 제 여권은 구여권. 사소한 것 하나라도 꼬투리 잡혀서는 안 되었어요.


제가 도장이 안 찍혀 있다고 하자 직원은 더 높은 직원을 찾다가 이미 기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간 것을 알고는 툴툴거리며 제 여권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요. 기차는 슬슬 출발하려고 했고 직원은 오지 않아서 슬슬 불안해졌어요.

"저 건물로 직접 가서 여권을 받아와야 하나?"

한참 지나서야 직원이 제게 여권을 가져다 주었어요. 도장이 잘 찍혀 있었어요.


이제 드디어 불가리아.



밖을 보니 막 추울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어요.



차창을 보다가 또 잤어요. 어차피 도착하려면 멀었어요. 이 동네 기차가 시간을 칼같이 지킬 거라고는 전혀 바라지도 않았어요.


친구와 사이좋게 자다 깨다를 반복했어요.

"아직도 멀었냐?"

친구가 물어보았어요. 하지만 저도 알 방법이 없었어요. 저도 이렇게 아테네에서 소피아로 오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이스탄불에서 소피아로 가는 버스야 타본 적이 있기 때문에 대충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요. 거의 마지막 버스를 타면 다음날 아침 일찍 도착해요.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소피아를 돌아다니면 되요. 그러나 이 구간은 저도 처음.

"아마 많이 늦을 거야."

비록 이 구간 기차를 타 본 적은 없지만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 헝가리 부다페스트 - 체코 프라하 구간을 기차로 타 본 적은 있었어요. 그 때 단 한 번도 정시에 도착한 적이 없었어요. 어차피 소피아는 중간 경유지였기 때문에 몇 시에 도착하든 별 관심 없었어요. 이왕 늦어지는 것 차라리 왕창 늦어버리기를 바랬어요. 괜히 어정쩡한 시각에 도착해서 이스탄불행 버스 타기도 애매하고 돌아다니기도 애매한 것보다는 차라리 바로 버스타고 이스탄불로 이동하는 것이 났다고 생각했거든요.


오후 3시. 드디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도착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환전. 불가리아는 유로존이 아니에요. 물가는 착하지만 대신 반드시 환전을 해야 빵이라도 사먹을 수 있어요.


"저놈의 환전소는 문 여는 꼴을 못 본다."

기차역에서 나와 버스 터미널로 갔어요. 소피아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은 붙어 있어요. 버스 터미널 안에 은행이 있는데 제가 다녀본 바에 의하면 여기 은행의 환율이 가장 괜찮아요. 문제는 문 여는 꼴을 못 보았다는 것. 이 은행에서 환전을 한 적은 딱 한 번 있어요. 참고로 은행 옆 환전소의 환율은 완전 날강도 수준. 역시나 버스 터미널의 은행 환전 창구는 문을 닫았어요.


환전을 하기 위해서는 소피아 시내로 나가야 했어요. 버스 터미널에서 소피아 시내로 가는 방법은 매우 간단해요. 버스 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무조건 직진만 하면 소피아 시내까지 갈 수 있어요. 거리도 생각보다 멀지는 않아요.



"어우...추워..."

하루만에 기후가 확 바뀌어 버렸어요. 전날만 해도 따뜻해서 점퍼를 걸칠 필요가 없었는데 여기는 사진 속에서처럼 눈이 쌓인 진짜 한겨울. 점퍼를 걸쳐야만 했어요. 게다가 길은 눈이 녹아서 질퍽질퍽 했어요.

"신발에 또 물 새네."

짜증이 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어요.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신발 속에 물이 한가득 들어왔어요.

"무슨 은행이 문을 다 닫았어?"

환전소도 은행도 모두 문을 닫았어요. 여기는 12월 25일에 성탄절을 쇠는 나라가 아니에요. 동방정교에서 성탄절은 1월에 있어요. 더욱이 주말도 아닌데 환전할 곳이 없었어요. 일단 시내 중심가로 향하며 환전소를 열심히 찾은 끝에 겨우 한 곳을 찾아 환전할 수 있었어요.


"배고파. 밥 먹자."

친구가 밥을 먹자고 했어요. 환전을 해서 현지화인 레바가 있었기 때문에 식당에 들어갔어요. 친구가 음식을 고르자 저도 음식을 골라 주문했어요. 제가 시킨 것은 돼지고기 스테이크. 고기는 얇고 컸어요. 양과 가격은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식사를 다 마치고 다시 밖으로 나와 걸었어요.



사자 다리. 이 다리를 건너서 또 계속 걸었어요. 날이 흐려서 해가 금방 질 것 같았지만 우리가 여기를 열심히 돌아다녀야 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예정에 없는 불가리아 방문이다 보니 소피아를 나누어서 보기로 했거든요. 소피아를 오늘 다 보고 이스탄불 갔다가 이스탄불에서 바로 벨리코 터르노보로 간 후, 벨리코 터르노보에서 1박 하고 소피아로 나와서 소피아를 조금 본 후 바로 기차 타고 베오그라드로 가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었어요. 사실 이번 여행에서 프라하까지 그 중 이스탄불을 제외하면 제가 친구를 위한 가이드 역할도 하고 있었어요. 소피아는 볼 것이 많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동네는 아니었어요. 일단 소피아 중심지까지만 가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되요. 소피아 중심지에서 알렉산드르 넵스키 교회로 가면 웬만한 건 다 볼 수 있어요.



바냐 바시 모스크. 이제 스베타 네델랴 광장까지 다 왔어요.



아무리 봐도 정말 잘 만든 동상. 그냥 황금색으로 통일했다면 별 감흥이 없었을 거에요. 하지만 세련되게 검은 옷을 입혀 놓아서 매우 강한 인상을 준 동상. 전에 왔을 때에도 소피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이 동상이었어요. 두 번째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교회.



뒤를 돌아보니 구름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러나 해가 거의 저물었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어요. 물론 남자 두 명이라 특별히 걱정되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유럽의 밤은 한국의 밤과 달라요.



스베타 네델랴 광장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

"뚱땡이 교회 보러."

지난 여행에서 알렉산드르 넵스키 교회에 제가 붙여준 별명은 '뚱땡이 교회'. 참고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사바 교회에 제가 붙여준 별명은 '슈퍼 뚱땡이 교회'. 알렉산드르 넵스키 교회가 원래 발칸 반도에서 가장 큰 동방정교 교회였는데 세르비아가 사바 교회를 새로 지으면서 2위가 되었어요. '알렉산드르 넵스키 교회'라는 정식 명칭을 항상 외우고 다닐 수는 없어서 편의상 붙인 이름이 바로 '뚱땡이 교회'.



오페라 극장 앞에 스케이트장을 설치해 놓았어요. 여기도 포근한 겨울 느낌. 그러나 제 신발은 추운 겨울. 신발에 계속 물이 들어가서 발이 매우 시렸어요. 한여름에 신발 속에 물이 들어가도 짜증나는데 한겨울에 신발에 물이 들어가니 짜증은 물론이고 동상이 걱정되었어요.



이것은 소피아의 러시아 정교 교회. 시간 관계상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보기만 했어요.


"다 왔다!"


불가리아 소피아


이 푸근한 느낌. 발칸반도에서 한때 가장 큰 동방정교 교회였던 알렉산드르 넵스키 교회!



정면에서 보면 좀 별로에요. 이 교회는 딱 옆에서 봐야 푸근하고 웅장한 느낌이 확 살아요. 정면에서 보면 왠지 비리비리해 보여요.



코카콜라가 성당 근처 공원에 트리 장식을 해 놓았어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예쁘지는 않았어요. 예쁘다기 보다는 그냥 산만했어요.


'뚱땡이 교회' 알렉산드르 넵스키 교회도 보여주었고 여기까지 오면서 친구에게 대충 소피아를 보여주었어요. 큼직큼직한 것은 다 보여주었고, 이제 자잘한 것들이 남았는데 그것들은 벨리코 터르노보에서 돌아와서 보여주면 되는 것들. 더 돌아디니려면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친구는 피로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고, 저는 젖은 신발이 계속 신경 쓰였어요. 그래서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어요.


버스 터미널에 돌아와 껌 한 통을 샀어요. 급한대로 신발 밑창에 난 구멍을 껌으로 때울 생각이었어요. 입으로 껌을 씹어서 단물이 빠지자 신발 밑창에 껌을 붙였어요. 나름 잘 붙였다고 생각하며 바닥에 껌이 붙지 않게 껌 위에 휴지를 붙였어요. 일단 이렇게 때워서 버틸 생각이었어요.

"왜 안 붙어!"

껌이 붙어있는 동안에는 물이 분명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러나 껌은 금방 떨어져 버렸어요. 다시 껌을 신발 밑창에 펴서 발랐지만 이상하게 껌이 신발 밑창에 달라붙을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밑창이 젖어 있어서 안 붙나?"

어차피 이제 밖에서 돌아다닐 일이 없기 때문에 신발 밑창에서 떨어진 껌을 휴지통에 버리고 이스탄불행 버스표를 사서 버스에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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