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24시간 카페인 투썸플레이스 한국외대점에서 할 것 하다 보니 어느덧 동이 텄어요. 카페에 들어와서 주문한 커피 받아서 자리에 앉은 시각이 4시 반 넘어서였어요. 그때부터 부지런히 할 일 했어요. 촬영한 영상도 정리하고, 유튜브에 업로드해야 하는 영상도 업로드하고, 글도 열심히 썼어요.
24시간 카페에 가면 웬만하면 그 자리에서 24시간 카페 간 글을 다 쓰려고 해요. 글 안 쓰고 글감을 집으로 가져오면 귀찮아서 끝없이 미루거든요. 그런데 심야시간에 24시간 카페 가는 것은 제 취미라서 24시간 카페 글 밀리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다른 글감이야 미루다 너무 밀려서 안 쓰면 그만이지만, 24시간 카페 탐방기는 제 스스로 정한 숙제 같은 존재거든요.
게다가 투썸플레이스에서 안 마셔본 커피도 마셔봤기 때문에 이것도 글을 썼어요. 글감을 집까지 최대한 안 끌고 가려고 매우 노력했어요. 영상 촬영한 것을 하나씩 글로 쓸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보면 이미 글감 쌓인 게 무지막지한 양이었어요. 그러니 글감을 최대한 덜 집으로 가져가는 게 최우선이었어요.
투썸플레이스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대학교가 방학중인 데다 아침이라 매우 한가했어요. 그래서 매우 여유롭게 아침 시간을 카페에서 할 거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어느덧 10시가 넘었어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되었어요. 여전히 방학에 아침이라 한산한 카페였지만, 한없이 카페에서 죽치고 있을 수는 없었어요. 이왕 나왔는데 더 돌아다녀야 했어요. 나의 차비는 소중하니까요.
'밥 먹고 도심으로 갈까?'
오랜만에 외대로 왔으니 밥 먹고 서울 도심으로 가서 또 촬영할 만한 거 있는지 둘러보며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밥을 외대 근처 식당에서 먹고 나서 261번 버스나 273번 버스 중 아무 거나 먼저 오는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가서 조금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너무나 알찬 서울 라이프였어요.
"역시 외대 왔으면 닭터 가야지."
제가 외대 근처에서 살 때, 외대 상권 식당의 3대장은 비스마르크, 영화장, 닭터였어요.
"닭터 망했어?"
닭터가 완전히 없어졌어요. 닭다리 철판 스테이크를 팔던 닭터 식당이 이전한 것도 아니고 완전히 망해서 없어졌어요. 충격이었어요. 옛날에 방송에도 나온 적 있는 식당이었고, 외대 근처에서 꽤 유명한 식당이었어요. 외대 상권이 별 볼 일 없던 시절, 다른 곳에서 친구가 놀러오면 으레 닭터를 데려가곤 했어요. 닭터의 치킨 스테이크는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음식이라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특별한 거 사주는 목적으로 좋았거든요.
닭터는 20년도 넘은 식당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20년 넘으면 노포 소리 들어요. 그러니까 닭터도 나름대로 노포. 외대 상권에서 가장 특색있는 음식을 판매했고 한때 매우 인기 좋았던 닭터가 망했다니 충격이었어요.
영화장은 왜 그렇게 유명한지 모르겠고, 비스마르크는 과거에 비해 매장 규모가 작아졌지만 여전히 하고 있어요. 그런데 영화장이고 비스마르크고 11시 전에 문을 안 열어요.
"와, 통일 부대찌개랑 오뚜기 부대찌개가 아직도 있어?"
다시 한 번 충격. 통일 부대찌개와 오뚜기 부대찌개는 안녕하셨어요. 나는 솔직히 통일이랑 오뚜기가 닭터보다 먼저 망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심지어 오뚜기 부대찌개는 위치도 그 자리 그대로였어요.
"와...저기..."
진지하게 가서 먹어보고 싶었어요. 제가 이래뵈도 의정부에서 부대찌개 먹는 사람이에요. 잘났다는 게 아니라 의정부에서 혼자 식당 가서 밥 사먹을 때 제일 좋은 메뉴가 부대찌개라 부대찌개는 툭하면 먹어요. 의정부는 부대찌개 식당에서 1인분만도 판매하거든요. 혼자 가서 1인분 주문해서 먹어도 눈치 아예 안 보여요. 1인분만 주문해서 먹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의정부에서 부대찌개를 먹고 있는 사람으로써 저 통일 부대찌개와 오뚜기 부대찌개를 너무나 오랜만에 다시 먹으면 어떤 맛이 느껴질지 너무 궁금했어요. 그런데 아마 1인분만은 판매 안 할 거 같았어요.
"아지매도 건재한데!"
아지매 식당도 건재했어요. 아지매 식당은 예전에 제가 외대 근처에서 살던 시절 극강의 가성비 식당으로 유명했어요. 2층에 있는 식당이라 1층에서는 잘 안 보여요. 아지매 식당은 제육쌈밥이 맛있어요. 하지만 제육쌈밥은 2인분부터 판매해요. 제가 이문동 살 때는 아지매 식당의 참치김치볶음밥이 가성비 매우 좋기로 유명했어요. 1인분 시키면 성인 남성 한 명이 배터지게 먹을 만큼 나왔고, 주문하면서 많이 달라고 하면 '무식하게 많이 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이 줬어요. 지금은 물가가 많이 올라서 과거만큼 많이 주지는 않겠지만, 과거에는 정말 그랬어요.
하지만 아지매 식당은 2층에 있는 데다 예전 기억으로는 내부가 허름한 식당이었어요. 그런 아지매 식당도 건재했어요. 게다가 무려 '치즈제육'이라는 과거에 없었던 메뉴까지 개발해서 판매하고 있었어요.
아지매 식당은 영업중인 거 같았어요. 2층에 있는 식당이라 안 올라가면 확인이 어려웠지만, 입구에 입간판이 나와서 서 있는 걸로 미루어봐서 영업중인 듯 했어요.
"완전 오랜만에 아지매 갈까?"
아지매 식당을 일단 들어갈지 고민하다가 옆에 있는 본가할머니보쌈이 보였어요.
"보쌈 먹어?"
닭은 육상 동물, 돼지도 육상 동물.
그러니까 꿩 대신 꼬꼬댁 대신 꿀꿀이.
외대 본가할머니보쌈은 제게 추억이 그렇게 많은 식당은 아니에요. 외대 본가할머니보쌈은 1인분 메뉴인 보쌈 정식을 판매해요. 이문동 살 때는 주머니 사정이 너무 가벼워서 아무리 1인분 보쌈 정식이 있다고 해도 자주 먹을 사정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말 보쌈이 먹고 싶으면 어쩌다 한 번 가서 먹었었어요. 보쌈은 맛있는 집이었어요.
"보쌈 먹자."
본가할머니보쌈 안으로 들어갔어요.
본가할머니보쌈 좌석은 전부 의자에 앉아서 먹는 좌석이었어요. 특징이라면 모두 테이블석인데 신발을 벗지 않고 먹는 자리와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오직 신발을 벗는 것 여부 외에는 모두 똑같은 자리였어요. 자리 배치는 신발 벗고 올라가야 하는 자리가 더 좋기는 했지만, 테이블의 공간 배치 외에는 둘 사이에 차이가 없었어요.
저는 신발 벗기 싫어서 신발 안 벗는 자리에서 제일 구석 자리로 가서 앉았어요.
메뉴를 봤어요. 여러 가지 보쌈이 있었어요. 제가 먹을 건 보쌈정식이었어요.
보쌈정식도 곱빼기가 있다!
'예전에는 곱빼기 없었던 거 같은데?'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어요. 예전에는 곱빼기가 없었던 것 같은데 있었을 수도 있어요. 곱빼기야 양이 더 많은 거니까 메뉴에 곱빼기가 추가된다고 해서 일이 특별히 늘어나지는 않아요.
'곱빼기 먹을까?'
보쌈정식 일반은 10,000원이었고, 곱빼기는 13,000원이었어요. 3천원 차이였어요.
"사장님, 보쌈정식 곱빼기 하나 주세요!"
곱빼기로 주문했어요.
보쌈정식 곱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식당을 둘러봤어요. 보쌈정식은 금방 나왔어요.
반찬은 묵, 천사채, 실멸치볶음이 나왔어요. 여기에 보쌈을 먹기 위한 야채로 생마늘과 풋고추가 나왔고, 보쌈고기를 그냥 먹을 때 필요한 쌈장과 새우젓이 나왔어요. 이와 더불어서 된장찌개도 나왔어요.
본가할머니보쌈의 보쌈 정식을 먹기 시작했어요. 저는 보쌈 고기에 생마늘을 쌈장에 찍어서 올린 후, 보쌈김치를 올려서 먹었어요.
"여전히 맛있네."
본가할머니보쌈의 돼지고기는 매우 부드러웠어요. 두께가 두꺼운 편이었지만 야들야들한 고기 씹는 것처럼 부드러웠어요. 보쌈고기는 너무 기름지지 않았고, 돼지 잡내도 깔끔히 잘 잡은 고기였어요.
보쌈 김치는 맛이 과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은 맛이었어요. 젓갈향이 별로 안 느껴졌고, 단맛도 너무 강하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 삭은 젓갈향을 썩 안 좋아하기 때문에 김치가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여기에 단맛도 너무 과하지 않고 김치맛을 업그레이드하는 선에서 단맛이 더해져 있었어요. 달기는 했지만, 많이 절제된 단맛이었어요. 또한 보쌈 김치는 당연히 짠맛이 있었지만, 짠맛이 너무 강하지 않았어요.
보쌈 김치 맛을 전체적으로 보면 맛이 과격하지 않았어요. 보쌈으로도 먹고, 밥 반찬으로도 먹기 위해 만든 김치로, '옛스러운 맛'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보쌈김치였어요. 백종원씨가 마리텔에서 식당 음식 맛 핵심 비법이 설탕이라고 폭로하며 도래한 설탕 대폭주 시대 이전의 보쌈 김치 맛이었어요. 달기는 하지만 너무 과하게 달지 않고, 전체적으로 밥 반찬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맛이었어요.
뭐든지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어요. 요즘 식당들의 겉절이, 보쌈김치를 보면 단맛을 매우 강하게 잡아서 맛있기는 한데 이게 밥반찬으로 내놓은 건지 밥 다 먹고 디저트로 먹으라고 내놓은 건지 분간 어려운 곳들이 있어요. 이런 김치들 특징은 밥 반찬으로 먹기에는 너무 달지만, 대신에 김치만 먹어도 맛있어요. 그래서 먹다가 김치가 많이 남으면 김치를 마구 집어서 먹어도 괜찮아요. 밥반찬인지 간식인지 분간 안 되는 맛이라 간식처럼 여기고 먹어도 되니까요.
본가할머니보쌈의 김치는 밥이나 보쌈고기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김치였어요. 밥이나 보쌈 고기와 먹을 때는 맛있지만, 대신 김치만 먹는 건 달갑지 않은 맛이었어요. 그래서 김치 양과 보쌈 고기 양에 신경쓰며 먹어야 했어요.
이렇게 써놓으면 별로인 것 같지만 꽤 맛있었어요. 고기는 잡내 없고 두툼하고 부드러웠고, 보쌈김치도 고기맛을 느끼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배추와 고춧가루 양념 맛을 김치에 더해줬어요. 생마늘까지 같이 먹으면 생마늘이 고추 매운맛과는 다른 매운맛을 더해주며 포인트가 생겨서 더 맛있었구요.
본가할머니보쌈은 부담없이 맛있는 맛이었어요. 편하게 먹기 좋은 맛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