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서울

서울 중구 필동 필동로 남산 중턱 비탈 달동네

좀좀이 2023. 9. 2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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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먹자골목에서 아침식사와 디저트까지 먹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삼각지역에서는 서울 도심권으로 가는 방향과 이태원으로 가는 방향이 있었어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이유는 남산 때문이었어요. 남산 북쪽으로 가면 서울 도심권이고, 남산 남쪽으로 가면 이태원이었어요. 이태원을 갔다가 서울 도심권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게 가려면 정말로 남산을 그대로 올라가서 넘어가야 했어요.

 

"서울 도심권 가야겠다."

 

아침에 이태원 가봐야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을 거였어요. 아침에 이태원 가면 한산해서 영상 촬영하기는 좋겠지만 오직 영상 촬영하는 것만 할 수 있을 거였어요. 아침에 이태원은 매우 심심한 동네에요. 사람 없는 거리라면 밤새 많이 걸어다녔어요. 동이 텄고 날이 밝아졌기 때문에 번화한 서울 도심으로 가서 걷고 싶었어요. 그래서 발걸음을 서울 도심권으로 돌렸어요.

 

삼각지역에서 길을 따라 걸었어요. 명동으로 왔어요. 명동에서 어디로 갈지 고민했어요.

 

"잘 안 가는 곳으로 가볼까?"

 

명동에서 시청이 아니라 평소 잘 가지 않는 길을 걸어보기로 했어요. 서울 도심에는 대로가 3개 있어요. 종로, 을지로, 퇴계로에요. 이 중 종로와 을지로는 잘 다니는 곳이지만 퇴계로는 원래 잘 안 다니는 길이었어요. 그래서 퇴계로 쪽을 걷기로 했어요. 퇴계로로 가서 길을 따라 걸었어요. 문득 퇴계로에서 남산 방향으로는 진짜 안 간 지 매우 오래되었어요. 거리두기 이전에도 퇴계로에서 남산 방향은 거의 안 갔어요. 어렴풋 기억나기로는 외국인 친구가 우리나라에 놀러왔을 때 마지막으로 갔었을 거에요.

 

"남산 쪽으로 가봐야겠다."

 

충무로역까지 왔을 때 길을 건너서 남산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여기는 처음 와보는 길이네."

 

서울을 많이 돌아다녀봤지만 서울에는 여전히 제가 안 가본 곳이 많아요. 충무로역 1번 출구에서 동쪽으로 걸어가면 나오는 길은 필동로였어요. 필동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안 와본 곳이었어요. 퇴계로에서 남산 방향으로 걸어본 일 자체가 별로 없었고, 퇴계로에서 남산 방향으로 갈 때는 주로 소파로를 통해 남산을 넘어갔어요. 필동로는 그동안 있는 줄도 몰랐어요.

 

필동로를 따라 남산 방향으로 걸어갔어요. 오르막길을 따라가며 주변을 둘러봤어요.

 

"여기 예쁘다!"

 

필동로는 벚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었어요. 풍경 자체가 꽤 예쁜 동네였어요. 지금까지 왜 여기를 전혀 몰랐는지 이해되지 않았어요.

 

"여기는 나중에 벚나무 단풍 들면 다시 와야겠는데?"

 

서울 중구 필동로는 벚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을에 벚나무 단풍이 들면 그때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벚나무 단풍도 붉게 잘 들면 매우 아름다워요. 벚나무길은 벚꽃이 만개하는 봄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에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을에 벚나무 단풍 잘 들었을 때 가도 상당히 아름다워요. 벚나무 단풍이 유명하지 않은 이유는 벚나무 단풍이 기온 변화에 따라 색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일 거에요. 누렇게 물들 때도 있고 붉게 물들 때도 있거든요.

 

벚나무 길을 따라 계속 위로 올라갔어요. 필동로는 인쇄소가 많이 있었어요. 경치가 예쁜데 의외로 카페는 별로 없었어요.

 

"카페 별로 없는 게 의외네."

 

아랫쪽 을지로, 충무로 쪽은 공장이 있는 골목에 맛집, 카페가 낑겨들어가고 있는데 필동로는 아직 식당, 카페가 그렇게 많이 안 보여서 의외였어요. 경치만 보면 여기도 맛집, 카페 거리로 조성되고도 남을 곳이었어요. 교통도 충무로역이 필동로 입구 바로 옆에 있어서 매우 편리했구요.

 

길을 따라가다 보니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왔어요. 영 가고 싶지 않게 생겼어요. 으슥한 산 속으로 들어가는 풍경이었어요. 하필 이날은 부슬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어서 남산 산책로 길바닥이 더욱 안 들어가고 싶은 모습이 되었어요.

 

막다른 길까지 왔어요. 옆쪽으로 또 오르막길이 있었어요.

 

 

벽에는 하얀 페인트로 '길X'라고 적혀 있었어요.

 

"뭐지? 길 있는데?"

 

길이 있는데 길이 없다고 표시되어서 궁금해서 가봤어요.

 

 

 

남산 산책로보다 훨씬 더 걷고 싶게 생긴 길이었어요. 비가 와서 살짝 미끄럽기는 했지만 시멘트로 잘 포장된 길이었어요.

 

 

첫 번째 오르막길을 다 올라왔어요. 갈림길이 나왔어요.

 

 

"왼쪽부터 가봐야겠다."

 

왼쪽 길부터 쭉 올라가보기로 했어요.

 

 

 

 

"여기 달동네 있었어?"

 

몇 걸음 채 안 걸어서 놀랐어요. 여기는 달동네였어요. 2019년에 한창 달동네 찾아다닐 때 몰랐어요. 2019년에 달동네 찾아다닐 때 서울 중구 달동네도 갔었어요. 그때는 약수역 쪽 달동네를 갔었어요. 여기는 있는 줄 몰랐어요.

 

서울 종로구와 중구는 달동네가 여러 곳 있는 곳이에요. 흔히 종로구와 중구는 도심이기 때문에 달동네와는 거리가 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달동네가 여러 곳 있는 지역이에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종로구에는 낙산, 인왕산 등이 있고, 중구에는 남산이 있어요. 도심권인데 산이 있으니 달동네가 형성되기 최적의 조건이에요.

 

달동네도 아무 곳에나 형성되지는 않아요. 달동네 형성 최우선 조건이 바로 직주근접이에요. 종로구 낙산, 중구 남산은 최고의 직주근접 위치라서 이쪽에 있는 달동네들은 상당히 이른 시기에 형성된 곳이에요. 단순히 이른 시기에 형성된 정도가 아니라 형성된 후 여러 정비 사업을 거쳐서 주거환경이 완전히 바뀐 후 다시 또 달동네가 된 동네들이 여러 곳 있는 지역이에요. 심지어 기원을 따져보면 일제강점기 이전인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달동네도 있는 지역이에요.

 

 

 

 

매우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옆쪽 펜스 너머를 바라봤어요. 펜스 너머에는 원래 집이 있었어요. 집은 철거되었고 공터로 남아 있었어요.

 

 

주변을 둘러보며 계속 길을 따라 걸었어요.

 

 

 

 

길 끝에는 집이 있었어요.

 

 

왜 길이 있는데 '길X' 라고 적어놨는지 이해되었어요. 여기는 길 끝에 가옥이 있어요. 아마 처음부터 이 마을을 올 생각으로 온 것이 아니라 더 좋고 잘 정비된 남산 올라가는 길이 있는 줄 알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을 거에요.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래서 이쪽은 남산 올라가는 길이 없고 길 끝은 집이 가로막고 있다고 '길X'라고 표시해놓은 거였어요.

 

 

집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되돌아나갔어요.

 

 

 

 

입구에 있는 삼보아트 건물이 보였어요.

 

 

이번에는 반대쪽 골목을 걸을 차례였어요.

 

 

주차장 같은 공간이 있었어요.

 

 

이쪽 역시 '길X' 표시가 되어 있었어요. 여기에서 두 갈래로 길이 갈렸어요. 먼저 오른쪽 길부터 가봤어요.

 

 

 

바로 집 앞 공터로 이어졌어요. 그래서 되돌아나와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갔어요.

 

 

 

 

 

 

'아, 여기 기억났다!'

 

이 달동네를 와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아예 모르는 곳은 아니었어요. 2019년에 서울의 달동네를 찾기 위해 서울 지도를 매일 샅샅이 들여다보던 때였어요. 서울 남산 자락에 달동네가 몇 곳 있었어요. 그때 여기도 지도에서 봤어요. 그 당시에 여기를 안 온 이유는 규모가 매우 작았기 때문이었어요. 길 끄트머리에 몇 가구 없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굳이 갈 필요를 못 느꼈어요.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 규모가 큰 달동네만 찾아다녔거든요.

 

이후 필동로 끄트머리에 아주 조그마한 달동네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그러다 정작 길을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2019년에 달동네 돌아다니던 것이 떠오르면서 같이 여기를 지도에서 본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어요.

 

 

 

 

 

이 길도 마찬가지로 마지막에는 집이 있었어요. 집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더 갈 수 없었어요.

 

 

 

다시 아래로 내려왔어요.

 

 

"누구세요?"

 

할머니 한 분께서 창문으로 얼굴을 들이대며 저를 쳐다보셨어요.

 

"안녕하세요. 저 아래에서 길 따라 올라오다가 보니 여기에 마을 있어서 신기해서 와봤어요."

 

할머니께 필동로 따라 올라왔는데 여기에 길이 있고 마을이 있어서 신기해서 와봤다고 말씀드렸어요. 할머니께서는 별 반응 없으셨어요. 저처럼 필동로 따라서 남산 쉽게 넘어갈 줄 알고 쭐쭐쭐 올라왔다가 이 마을로 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었어요.

 

"할머니, 이 마을 이름 뭔가요?"

"여기는 이름 없어요. 그냥 필동이에요."

 

이 마을은 이름 없는 달동네였어요. 굳이 어디라고 명명하자면 '필동로 남산 중턱 비탈 달동네'라고 해야 했어요.

 

지리적 특성을 보면 어쩌면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달동네일 수도 있었어요. 서울 도심권 달동네는 이름 없는 달동네도 여러 곳이에요. 그냥 동네 자체가 오래 되었고, 동네 이름이 오늘날 지명으로 그대로 쓰이는 곳들이 여러 곳이에요. 대표적으로 신당동이 있고, 필동도 지명 자체가 오래된 지명이에요. 필동 지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필동에 남부의 부사무소(部事務所)가 있어 부동(部洞)이라고 했는데 부동이 와전되어 '붓골'이 되었고, '붓골'을 한자로 표기해 필동이 되었어요. 그러니 특별한 마을 이름이 없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었어요.

 

마을 지명이 있는데 주민들이 모르는 일도 있어요. 오래 전에는 마을 지명이 있었지만 사라진 경우도 있고, 현대에 마을 이름을 붙였지만 마을 이름이 정착하지 못해서 주민들이 아예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경우는 버스 정류장 이름 보면 되요. 그런데 필동로에는 버스 정류장도 없었어요.

 

"여기 오래된 동네죠?"

"예, 내가 여기에서 산 지도 50년이 넘었으니까요."

 

예상대로였어요. 이 마을은 매우 오래된 마을이었어요.

 

"여기 예전에는 규모 컸나요? 공터 보니까 공터도 원래 집 있었던 거 같던데요."

"예전에는 저 아래에 일본인들 집들이 있었는데 도로 넓히면서 철거했어요. 공터는, 그 집 산 사람이 철거하기는 했는데 그 다음에 아무 것도 안 하더라구."

 

할머니께 이 동네가 오래되었고 과거에는 필동로 아랫쪽에 적산가옥이 여러 채 있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서울 중구 필동로에서 남산 방향으로 올라가면 길 끝나는 지점에 아주 조그마한 달동네가 있어요. 그러나 달동네를 통해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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