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23 - 강원도 삼척시 기차역 폐역 고사리역 폐교 소달중학교, 늑구리 성황당, 강원도 기념물 제59호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

좀좀이 2023. 2. 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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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비온다!"

 

빗방울이 투둑투둑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산 너머 남쪽 윗동네를 걸을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고사리역 도착하자 빗방울이 떨어졌어요. 그렇게 비가 오지 말라고 빌었는데 기어코 비가 쏟아질 모양이었어요. 하늘은 아까보다 더욱 우중충해졌어요. 하늘이 무거운 구름을 들고 흘리는 육수가 기분나쁘게 계속 떨어졌어요. 하늘을 올려보지 못했어요. 눈에 빗물 들어가면 눈 아파요.

 

비 한 방울에 짜증 한 방울

비 한 방울에 조급함 한 방울

 

비가 뚝뚝 떨어질 때마다 짜증과 조급함이 쌓여 갑니다.

 

빗방울이 제 머리와 스마트폰으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질 때마다 신경이 날카로워졌어요. 비가 내리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데 하필 걸어서 돌아다니려고 여행 온 날 날씨가 비였어요. 빗방울이 떨어질 수록 마음도 급해졌어요. 너무 머뭇거리다가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면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야할 거였어요. 우산 쓰고 돌아다니려고 하면 매우 불편해요. 우산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참 거추장스러운 일인데 한 손으로 우산 들고 한 손으로 사진 찍으면 사진 찍기 힘들어요. 수평 다 엉망되고, 그 이전에 스마트폰 액정에 빗방울 떨어져서 터치도 잘 안 되요.

 

'진짜 쏟아질 건가? 그러면 안 되는데...'

 

남은 길을 우산 쓰고 다닐 생각하니 최악이었어요. 신기역 거의 다 와서 비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신기역까지 가려면 한참 멀었어요. 이제 고사리역 왔어요. 운탄고도1330 8길에는 기차역 폐역이 총 3곳 있어요. 고사리역, 하고사리역, 마차리역이에요. 도계역에서 고사리역까지가 1구간, 고사리역에서 하고사리역까지가 2구간, 하고사리역에서 마차리역까지가 3구간, 마차리역에서 신기역까지가 4구간이라고 보면 이제 1구간 끝냈어요. 남은 길을 우산 쓰고 걸으라고? 생각만 해도 피로가 급격히 몰려왔어요.

 

고사리역 대각선 맞은편에는 늑구리 지명 설명이 있었어요. 대충 읽어봤어요. 이런 건 나중에 여행기 쓸 때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되요. 원래는 여행 다닐 때 나중에 여행기 쓸 계획한 상태에서 돌아다닌다면 이런 설명문이 적힌 비석, 표지판 사진도 빠짐없이 찍어요. 그러나 비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자 이런 건 나중에 여행기 쓸 때 인터넷에서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안 찍었어요.

 

영동선 기차역 폐역 고사리역이 있는 곳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에요. 늑구리는 한자로 訥口里에요. 과거 명칭은 눌구리였어요. 늑구리 명칭은 이 지역에 수택이 9개 있었다고 해서 늡구동이었지만 발음이 변해서 늑구리가 되었다고 해요. 현재는 수택이 1개만 남아 있다고 해요.

 

늑구리 지명에 나오는 수택이라는 단어는 한자로 藪澤 이에요. '수택'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쓰지 않는 단어에요. 수택 藪澤 이라는 단어는 네이버 사전에 없어요. 인터넷에서 수택 藪澤이라는 단어 의미를 찾아보면 '잡목,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藪는 물이 없는 곳, 澤은 물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고, '물건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수택 藪澤은 오늘날 말로는 늪이에요. 그러니까 늑구리는 원래 늪이 아홉 곳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에요. 한자를 보지 않고 '수택'이라는 단어만 보고 '택'을 宅으로 해석하면 아홉 가구가 있었던 동네라고 잘못 해석할 수 있어요.

 

1958년 건설된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 영동선 기차역 폐역 고사리역

 

'저놈의 기차역 때문에 여기 지명 엄청 헷갈리네.'

 

지금 늑구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눈 앞에 있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 영동선 기차역 폐역 고사리역 때문에 자꾸 제가 고사리에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어요. 잠깐만 별 생각없이 '고사리역'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바로 제가 고사리역에 있다고 착각했고, 그러다 잠시 뒤에 여기는 고사리가 아니라 늑구리였다고 깨닫기를 반복했어요. 늑구리에 고사리역이 있어서 이 동네가 늑구리인지 고사리인지 진짜 매우 헷갈렸어요.

 

원래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에 위치한 하고사리역 자리에 고사리역이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늑구리에 탄광이 개발되자 석탄 수송을 위해 고사리역을 늑구리로 옮겼다고 해요. 고사리에 있던 기차역을 늑구리로 이설하면서 '고사리역'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늑구리에 고사리역이 있게 되었어요. 실제로 강원도 삼척시 늑구리에는 석탄 광산으로 태원탄광, 삼마탄광, 대방탄광 등이 있었어요. 고사리 근처에 풍원탄광이 있었지만 풍원탄광도 늑구리에 위치한 탄광이었어요. 그리고 태원탄광, 삼마탄광, 대방탄광, 풍원탄광 모두 현재는 폐광했어요.

 

고사리역을 보며 잠시 고사리역 사진을 찍으며 서서 쉬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께서 제게 다가오셨어요. 이 동네 주민이셨어요.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할머니, 하고사리역 가는 길이 이쪽 늑구리 은행나무 쪽으로 올라가는 길 맞나요?"

"맞아. 그쪽으로 올라가면 성황당 나오고 쭉 넘어가면 하고사리역 있어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하고사리역 가는 길을 여쭈어봤어요. 운탄고도1330 8길 길찾기의 핵심은 강원남부로를 따라가되 강원남부로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었어요. 카카오맵으로 고사리역에서 하고사리역으로 이어지는 길을 보면 강원남부로를 따라가면 안 되었어요. 잠시 강원남부로에서 벗어나야 했어요. 왜냐하면 강원남부로를 따라서 가면 도중에 고사1터널과 고사2터널이 나와요. 아무리 운탄고도1330 8길이 38번 국도 강원남부로 타고 가는 길이라고 해도 터널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피해가야 했어요.

 

고사리역에서 하고사리역까지 걸어가는 길은 두 가지 있었어요. 첫 번째는 다시 철로 건널목까지 돌아가서 삼척도계농공단지 옆길 늑구2길을 따라 오십천을 걸어가는 길이었어요. 이렇게 걷다가 농공단지교를 건너서 걷다가 다시 소달1교를 건넜다가 또 소달교를 건너면 하고사리역으로 갈 수 있었어요. 이 길은 매우 폭 좁은 차도로 걷는 길이었어요.

 

두 번째 길은 늑구리 은행나무 있는 곳 근처까지 가서 소달초등학교로 내려가는 길이었어요. 카카오맵에서 고사리역에서 하고사리역으로 도보이동 코스를 검색해보면 이 길이 나왔어요. 카카오맵 로드뷰는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로 가는 갈림길에서 소달초등학교까지 구간은 없었어요. 대신 늑구리 은행나무 바로 앞을 지나 그 너머까지 넘어가서 424번 지방도까지 이어지는 길을 로드뷰로 볼 수 있었어요.

 

이런 도보 여행길을 설정할 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차도로 걷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게 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운탄고도1330 8길에서 고사리역~하고사리역 구간은 두 번째 길로 가라고 할 것이 뻔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이 길은 강원남부로를 계속 걸어야 하는데 차도를 피해서 걸을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피해서 걷게 해야 하니까요.

 

"저 오솔길 같은 길로 쭉 가면 되요?"

"응. 저기 맞아요."

"저기 사람들 다니던 길이에요?"

"예전에는 다 저기로 다녔지."

 

그렇지만 이 길이 진짜 있는 길인지, 있어도 걸을 수 있는 길인지 확신이 없었어요. 할머니께서는 맞다고 하셨어요.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늑구리 성황당이 나오고, 더 가면 늑구리 은행나무도 나온다고 하셨어요. 고갯길을 넘어가면 소달초등학교, 소달중학교가 있다고 하셨어요. 예전에 사람들이 고사리로 갈 때는 다 오솔길처럼 생긴 고갯길을 넘어다녔다고 알려주셨어요.

 

"비 오는데 고생이네."

"아뇨, 괜찮아요. 여기 강원도에서 운탄고도 도보 여행길 만들었다고 해서 와봤어요."

 

할머니께서는 제게 고생한다고 하셨어요.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어요. 솔직히 안 괜찮았어요. 만약 여기에서 빗방울이 굵어지면 이 여행길은 고생길로, 더 나아가 고행길로 점점 더 힘들고 나빠질 거였어요. 아직 우산 없이 걸을만한 수준으로 비가 내릴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이 걸어야 했어요.

 

"도계 읍내는 안개비 수준이었는데 여기는 비 뚝뚝 떨어지네요?"

"읍내는 비 안 와요?"

"예. 아침에는 개었고 조금 전에 걸어올 때 안개비?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아니고 안개비 정도였어요. 여기처럼 비 떨어지지는 않았어요."

"읍내랑 여기는 날씨가 다를 때가 있어요."

 

할머니께서는 도계 읍내와 늑구리, 고사리 날씨가 다를 때가 있다고 하셨어요. 도계 읍내와 늑구리, 고사리 사이는 산이 가로막고 있어요. 그러니 날씨 차이가 있을 수 있었어요.

 

할머니,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제 정신이 아닙니다.

 

할머니께서는 오랜만에 본 외지인이라 많이 대화하고 싶어하시는 눈치이셨어요. 할머니와 몇 마디 나누었어요. 그러나 비가 계속 빗방울로 떨어지니 대화할 정신이 아니었어요. 할머니야 비 오면 안으로 들어가시면 되요. 그러나 저는 계속 걸어야 해요. 할머니께서는 저와 밖에서 계속 대화하고 싶으시다면 안에서 우산 가져와서 우산 쓰고 다시 나오셔도 되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느긋하게 시간 못 보내요. 지금 걸을 길이 까마득했어요.

 

가만히 서있으니 발이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어요. 다리도 조금 피곤했어요. 벌써 적지 않게 걸었어요. 한 번 주저앉아서 쉴 때가 되었지만 이 근처에 쉴 곳이 없어서 서서 할머니와 대화하며 잠시 쉬고 있었어요. 그런데 서서 쉬려고 하니 오히려 다리에 피로만 더 쌓이고 있었어요. 신발을 벗고 어디 앉아서 조금 쉬면 딱 좋겠지만 그렇게 앉아 있을 곳이 아예 없었어요. 진짜로 운탄고도1330 8길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빗방울이 자꾸 저한테 너 지금 뭐하는 거냐고 머리를 기분나쁘게 툭툭 쳤어요. 빗방울이 나한테 너 지금 뭐하냐고 시비걸고 있었어요. 빗방울 한 방울 한 방울 모든 방울이 너 지금 하는 꼴을 보니 여기서 놀다가 나중에 버스 타고 신기역 갈 꼴이라고 빈정거리고 있었어요. 아, 여기는 버스가 언제 올 지도 몰라요. 버스 정류장은 있었지만 버스가 언제 올 지 기약이 없는 시골인데다 한참 기다려 간신히 보게 된 버스가 저를 못 보고 그대로 달려버릴 수도 있는 곳이었어요.

 

"할머니, 저 가보도록 할께요. 안녕히 계세요."

 

할머니께서는 저와 대화를 계속 하고 싶어하셨지만 제 정신이 맨정신이 아니었어요. 머리 한 편에서는 비 쏟아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고, 반대쪽 한 편에서는 발 벌써 아픈 게 엄청 신경쓰였어요. 이 생각들 뿐이라 도저히 대화를 즐겁게 나눌 수 없었어요. 원래 여행 가서 동네 주민분들과 대화하며 노는 것을 매우 좋아하지만 대화에 도저히 집중도 못 하겠고 정신은 온통 빨리 걸어야한다는 생각에 쏠려 있었어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할머니께서 알려주신대로 오솔길처럼 생긴 급경사 오르막길을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고사리역 승강장 입간판

 

고사리역 역사는 1958년에 준공된 건물이라고 해요. 철망 담장 너머로 고사리역 승강장을 들여다봤어요. 승강장 역명 입간판 표지판을 보니 그래도 근래에 폐역된 것 같았어요. 고사리역은 2007년 6월 1일부로 여객 업무가 중단되며 폐역이 되었어요. 신호장 기능을 한다고 하지만 일반인 기준으로 보면 폐역이에요. 일반인 기준에서 보면 여객업무 중단되면 폐역된 것과 똑같으니까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 성황당

 

할머니 말씀대로 오르막길로 쭉 걸어올라가자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 성황당이 나왔어요. 성황당이 있다고 해서 성황당 옆에 돌무더기도 있기를 내심 바랬지만 돌무더기는 없었어요.

 

"여기 진짜 경사 꽤 있네?"

 

경사가 꽤 심했어요.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숨이 가빠지고 있었어요. 잠시 서서 뒤돌아봤어요.

 

운탄고도1330 8길 고사리역~하고사리역 구간

 

이 철도로 지금도 석탄을 실은 열차가 달리고 있어요.

 

좀좀이의 여행 블로그 강원도 남부 여행기 석탄의 길 1부 23 - 강원도 삼척시 기차역 폐역 고사리역 폐교 소달중학교, 늑구리 성황당, 강원도 기념물 제59호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

 

지금은 잠깐 기찻길과 서로 헤어져 멀어질 시간이었어요. 이따 또 만날 거에요. 오늘 하루 종일 계속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할 기찻길과 첫 번째 작별을 하고 오르막길을 올라갔어요.

 

운탄고도 오르막길

 

"여기 길 왜 이렇게 힘들어!"

 

역병 사태 때 최대한 밖에 돌아다니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 때문에 체력이 많이 약해지기는 했어요. 그래도 이건 힘들었어요.

 

삼척시 도보 여행 코스

 

"왔는데 늑구리 은행나무는 보고 가자."

 

고사리역에서 하고사리역으로 걸어가는 길은 엄밀히 말해서는 늑구리 은행나무를 지나서 가는 길은 아니었어요. 늑구리 은행나무 거의 다 가서 한 쪽은 늑구리 은행나무로 이어지고 다른 쪽은 소달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와요. 이 갈림길을 딱히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늑구리 은행나무 가는 길이라고 하는 거지, 늑구리 은행나무를 지나가는 길은 아니에요.

 

가뜩이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습한데 급경사 오르막길 올라오다보니 땀도 좍좍 쏟아졌어요. 이쪽은 산동네라서 추울 줄 알고 옷도 얇지 않게 입고 왔어요. 셔츠 속에 입은 티셔츠는 등이 땀에 젖었어요.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렀어요. 엄청 더웠어요. 더운 날씨가 아닌데 졸지에 산행길 같은 오르막길 올라가서 몸에서 열이 후끈 올라왔어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외투 속에 입은 겉옷 소매를 외투를 벗지 않고 걷어부쳤어요.

 

"비만 안 와도 카디건 벗고 소매 접어올릴 건데!"

 

외투를 벗고 속에 입은 가디건은 벗어서 가방에 집어넣은 후 셔츠를 벗어서 소매를 접어 다시 입고 싶었어요. 그 다음 외투도 소매를 접어서 입구요. 문제는 역시나 비였어요. 여기는 의자고 뭐고 없었어요. 등에 멘 가방을 벗어서 내리는 순간 가방 바닥 다 젖을 거고 가방 바닥은 흙투성이로 더러워질 거였어요. 외투를 벗고 가디건을 벗은 후 셔츠를 벗어서 소매를 접어서 다시 입고 외투도 소매를 접어서 다시 입는 일도 서서 하려고 하면 아주 고역이었어요. 앉아서 하면 쉽게 하지만 이걸 서서 하려고 하면 꽤 짜증나요. 게다가 서서 접으면 제대로 안 접혀서 조금 걷다가 접은 거 다 풀려서 신경 거슬리고 거추장스러워져요. 비 때문에 당장 덥고 땀나는데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외투 입은 상태로 속에 입은 옷을 윗쪽으로 잡아당겨 조금이라도 걷어부치는 것 뿐이었어요.

 

이렇게 땀 삐질삐질 흘리고 왔는데 조금만 더 걸어올라가면 강원도 기념물 제59호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였어요.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오르막길을 조금만 더 걸어올라가면 되었어요. 지금까지 올라온 오르막길도 힘들었는데 그거와 비교도 안 되는 길이란 게 문제였다. 그래도 이런 거 그냥 지나갔다가 나중에 그거 가볼껄 후회되면 그게 더 골치아파요. 지금 조금 더 많이 고생하기 아니면 나중에 두고두고 가볼껄 후회하다 결국 또 와서 이 길 다시 걷고 그때 위로 기어올라가기. 전자가 나았어요.

 

"와, 이걸 어떻게 차가 다니지?"

 

고사리역에서 갈림길까지 올라온 오르막길은 갈림길에서 늑구리 은행나무까지 올라가는 길에 비하면 아주 그냥 평지 고속도로였어요. 그깟 은행나무가 뭐라고 뵈러 가기 무지 힘들었어요. 지형 경사 자체가 상당한 급경사인데 그나마 덜 위험하게 만든다고 길을 구부러지게 만들어서 경사를 줄인 게 참 심한 급경사였어요.

 

대체 얼마나 진귀한 은행나무이길래 이렇게 사람 절하듯 기어올라오게 만드나 궁금해졌어요. 아주 편하게 평지 길 따라 가서 볼 수 있는 도계읍 느티나무는 무려 천연기념물인데 늑구리 은행나무는 고작 강원도 기념물이었어요. 강원도 기념물 따위가 천연기념물보다 더 보기 힘들었어요. 대체 얼마나 저평가되었길래 사람을 이렇게 고생시키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씩씩거리며 오르막길을 기어올라갔어요. 진짜 볼품없는 은행나무면 나중에 글 쓸 때 절대 보러 가지 말라고 악평을 확 갈겨버리기로 다짐했어요.

 

강원도 기념물 제59호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

 

2022년 10월 6일 오전 10시 33분, 드디어 강원도 기념물 제59호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에 도착했어요. 남들은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듣고 직장에서 열심히 오전 업무 보고 있을 때 저는 등산했어요.

 

"얼마나 잘 난 나무인지 한 번 봐보자."

 

삼척 명품 나무 늑구리 은행나무

 

강원도 기념물 제59호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 앞에는 설명문이 적힌 표지판이 서 있었어요.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어요.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

 

三陟 道溪邑 訥口里 銀杏나무

Ginkgo Tree of Neukgu-ri, Samcheok

강원도 기념물 제59호

Gangwon-do Monument No.59

 

늑구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1,500여 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20m, 둘레 12.6의 거목이며, 뿌리에서 13그루의 새끼 나무가 돋아 함께 자라고있다. 새끼 나무가 어미 나무를 감싸듯이 자라난다고 해서 효자목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이 매년 음력 9월 15일에 이 나무를 모시고 제례를 지낸다.

 

옛날에 어느 동자승이 이 은행나무에 오르기를 좋아하여 이를 막고자 한 스님이 은행나무의 껍질을 벗겼는데, 피가 흐르고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므로 황급히 잘못을 빌었다고 한다. 그러자 나무에서 흐르는 피를 마시라는 부처님의 목소리가 들려와 스님이 나무의 피를 마시자 몸이 구렁이로 변하여 지금까지 이 은행나무를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The Ginkgo Tree of Neukgu-ri is estimated to be more than 1,500 years old. This huge tree, standing some 20 meters tall, with a circumference of 12.6 meters, has given birth to thirteen "child" trees from its roots. It is also called the Tree of Fillial Piety because the "childe" trees look as if they are embracing their mother. The villagers of Neukgu-ri hold a memorial service for the tree every year on 15th day of ninth month on the lunar calendar.

 

A local legend has it that once upon a time, a boy novice monk liked to climb the ginkgo tree so much that an old monk stripped the tree of its bark to prevent him from climbing it. Then, the tree would bleed profusely. And it rained heavily. The monk hurriedly apologized for his sin and heard the voice of the Buddha exhorting him to drink the blood flowing out of the tree. The monk then drank the blood and was transformed into a large snake which is said to have protected the ginkgo tree evere since.

 

이 전설을 본 서양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거 성경을 문화 기본 베이스로 깔고 가는 서양인 관점에서 보면 완전 사탄의 나무 아냐?

 

동양인이라면 모르겠지만 불교와 거리가 멀고 성경을 문화의 기본 베이스로 깔고 가는 서양인 관점에서 본다면 완전 사탄의 나무로 볼 수도 있어보였어요. 결과를 보면 스님이 뱀이 되었잖아요. 뱀이 지키는 나무? 이거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을 때 뱀 아닌가요? 서양 문화에서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봐도 뱀은 별로 안 좋아요. 뱀이 지키는 나무는 영락없이 사탄의 나무. 게다가 스님이 피를 마신 건 더러운 피를 마시고 타락했다고 해석해버릴 수 있어요. 나무는 알고 보니 원래 사탄이 독을 키우는 나무였고, 부처님 말씀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니 사탄의 농간에 빠져 더러운 피를 마시고 타락한 뱀이 되어 나무를 지키고 있다. 말 되잖아요. 게다가 어미 나무를 새끼 나무 13그루가 감싸고 있어요. 13이 뭐에요. 서양에서 사탄의 숫자 13이잖아요. 13일의 금요일 같은 거요.

 

문화라는 게 이렇게 어려워요.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어요. 위와 같이 해석하면 여기는 완전 오컬트 성지에요.

 

늑구리 은행나무

 

"여기는 와서 볼 가치 있네."

 

강원도 기념물 제59호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는 매우 신기하게 생겼어요. 진짜 새끼 은행나무 13그루가 어미 나무를 감싸고 있었어요. 어미 나무는 오래 되어서 나무 껍질이 벗겨져 붉은빛 도는 갈색 기둥이었어요. 어미나무가 오래되어 껍질이 벗겨지고 속살이 드러난데다 비와서 물까지 먹다 보니 새끼나무 13그루가 어미나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매우 뚜렷히 보였어요.

 

"이게 왜 고작 강원도 기념물이지?"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가 왜 고작 강원도 기념물에 불과한지 의문이었어요. 천연기념물 95호 삼척 도계리 긴잎느티나무가 매우 크기는 하지만 그건 정말 크기만 했어요. 매우 인상적이고 신기한 맛은 없었어요. 반면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는 크기도 크고 새끼 나무 13그루가 어미 나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고 진귀한 모습이었어요. 그렇다고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가 오래되지 않은 나무인 것도 아니었어요. 이 나무도 무려 수령이 1500년 된 나무에요. 하지만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는 고작 강원도 기념물에 머무르고 있었어요.

 

역시 문화란 어려워요.

 

강원도 도보 여행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 아래에서도 앉아서 쉴 수 없었어요. 은행이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은행은 구리구리한 고약한 냄새를 풍겼어요.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를 조금 더 보고 싶었지만 은행 악취 때문에 더 머무르지 않고 갈 길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좀좀이의 여행

 

아까 올라올 때 못 봤던 풍경을 바라봤어요. 여기는 첩첩산중이었어요. 뾰족뾰족한 산이 장벽을 이루고 있었어요. 제가 서있는 쪽도 만만치 않았어요. 이런 산과 산 사이로 오십천이 졸졸 흐르고 있었고, 오십천변 좁은 평지에 마을과 38번 국도 강원남부로가 있었어요. 지형만 보면 호랑이가 뛰어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풍경이었어요. 멧돼지는 당연히 어딘가에 있을 거구요.

 

바로 앞에는 콩밭이 있었어요. 콩밭을 보자 대한민국 전설의 명곡 칠갑산이 떠올랐어요. 칠갑산은 가사에 콩밭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노래에요. 콩밭이 노래 중간에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노래 가사 시작이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에요. 그래서 '콩밭'이라고 하면 한국인 대부분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노래가 바로 칠갑산이에요.

 

잠깐만!

칠갑산은 충청도 산 아니오!

 

칠갑산은 충청남도 청양군에 있는 산이에요. 여기는 강원도 삼척시에요. 무려 태백산맥 너무 동쪽 영동지역이에요.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과는 까마득히 멀어요. 충청남도도 과거 보령에 탄광이 있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보령에 탄광이 있었기 때문에 인적교류는 이쪽과 매우 적었을 수 있어요. 충청남도 사람들이 광부로 일할 거라면 첩첩산중 충청북도를 넘어서 멀리 떨어진 더욱 험한 첩첩산중 강원도까지 오기보다는 보령으로 갔을 테니까요. 강원도 남부가 우리나라 제1의 탄전이고, 충청남도 보령이 제2의 탄전이었어요.

 

이 무슨 중국집에서 돈까스 시켜먹는 기분이지?

 

눈 앞의 콩밭을 보고 자연스럽게 칠갑산 노래 떠올렸다가 칠갑산이 여기에서 까마득히 먼 충청남도 청양군에 있는 산이라는 사실이 떠오르자 기분이 이상해졌어요. 충청도 여행 가서 산 보며 불러야할 칠갑산 노래인데 강원도 산간지역 콩밭 보고 '콩밭 메는'까지 흥얼거리다 멈추자 완전히 중국집에서 돈까지 시켜먹는 기분이 들었어요.

 

'여기에 어울리는 노래 뭐 있지?'

 

안 떠올랐어요. 강원도 대표 노래라면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에요. 춘천은 여기에서 마찬가지로 까마득히 멀어요. 다른 노래를 떠올려봤어요. 떠오르는 노래가 이등병의 편지였어요. 이등병의 편지는 육군훈련소가 충청남도 논산시에 있어서 충청도 노래일 거 같지만 예전에는 춘천에도 102보충대가 있었어요. 이것도 역시 춘천이었어요. 강원도 다룬 노래이거나 강원도 이미지 노래를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춘천 가는 기차와 이등병의 편지만 떠올랐어요.

 

콩밭 보고 칠갑산 떠올렸다가 역시 강원도의 심장, 강원도의 힘은 역시 무려 지하철도 다니는 춘천시라고 다시 한 번 깨닫기만 했어요.

 

"그냥 듣던 노래나 듣자."

 

무한반복으로 듣고 있던 아이유의 Eight를 계속 듣기로 했어요.

 

강원도 도보 여행 여행기 석탄의 길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강원도 과수원 사진

 

여기에도 감나무 과수원이 있었어요.

 

내려오는 것은 금방이었어요. 급경사라서 달리듯이 내려왔어요. 다시 갈림길로 돌아왔어요. 바닥에 주저앉았어요. 잠깐 주저앉아서 쉬었다가 가기로 했어요. 외투 끝자락이 땅에 닿지 않게 조심스럽게 주저앉았어요. 아주 잠시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났어요. 물 한 모금 마셨어요.

 

운탄고도1330 이정표

 

'역시 내 추측이 틀릴 리가 없지. 아니, 틀릴 수가 없지.'

 

운탄고도1330 이정표가 있었어요. 소달초등학교까지는 0.5km 더 가야한다고 나와 있었어요.

 

이제 여기까지 온 길과 반대로 경사가 꽤 있는 내리막길을 걸어내려가야 했어요. 갈림길에서 소달초등학교로 걸어내려가는 길은 임시도로 - 줄여서 임도였어요. 이것은 일부러 이런 느낌으로 만든 길이 아니라 예전부터 있었던 임도 같았어요.

 

강원도 삼척시 운탄고도 트래킹 코스

 

"왜 사진이 이렇게 나오지?"

 

경사진 내리막길인데 사진으로는 오히려 급경사 오르막길처럼 나왔어요.

 

'이거 어떻게 찍었더라?'

 

2019년에 서울 달동네 여기저기 다닐 때 경사가 잘 보이도록 사진을 찍었었어요. 그때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났어요. 무릎도 굽히고 어떻게 찍어서 내리막길도 급경사가 잘 보이도록 찍었는데 그때 어떻게 찍었는지 떠오르지 않았어요. 경사가 잘 나오게 찍는 방법이 있거든요. 내리막 경사가 잘 보이게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결과물은 오히려 급경사 오르막처럼 나와버리는 황당한 상황. 그러나 머뭇거릴 수 없었어요. 지금 과거에 사진을 어떻게 찍어서 내리막 급경사가 잘 나오게 찾아봤는지 찾아볼 때가 아니었어요. 비가 쏴아아 퍼붓지는 않고 있었지만 여전히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신경 거슬리게 머리를 툭툭 치며 떨어지고 있었어요.

 

강원도 여행 사진

 

한 장 더 찍었어요. 역시나 오르막길처럼 나왔어요. 실제로는 내리막길이에요. 오르막길처럼 보이는 경사가 정반대로 있는 내리막길이라 보면 되요.

 

"여기 때문에 8길 반바지에 샌들로 못 오겠다."

 

길은 수풀이 우거져 있었어요. 뱀 나오게 생겼어요. 뱀이 길 가운데에 똬리 틀고 있어도 하나도 안 이상한 길이었어요. 한여름에는 독한 풀모기가 떼로 앵앵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어도 오히려 그게 정상으로 보일 길이었어요. 풀도 너무 잘 자라서 걸을 때마다 풀이 다리를 쓸었어요. 반바지 입고 걷다가는 풀에 다리 쓸려서 풀독 오를 수도 있게 생겼어요. 걸어가는 데에는 아무 지장없는 길이었지만 반바지에 샌들로 갈 길은 아니었어요.

 

홍수벽 저류지

 

'여기도 뭐 있기는 했네.'

 

홍수벽과 저류지 시설이 있었어요. 이로 미루어보아 이쪽 어디께에도 원래는 뭔가 있었던 것 같았어요.

 

삼척 운탄고도1330 트래킹 코스 여행

 

내리막길을 쭉 걸어내려갔어요.

 

"다 내려왔다."

 

강원도 여행 사진

 

감나무 과수원이 나왔어요. 내리막길을 다 내려왔어요.

 

'왜 고사리 사람들이 고사리역이 늑구리로 이전하자 자기들이 직접 하고사리역 건설했는지 알겠다.'

 

몸으로 배웠어요. 마을에 있던 기차역이 없어지고 기차 타고 싶으면 이런 길 걸어서 고사리역까지 가라고 하니 기차역 세우죠. 이게 이해 안 될 수도 있는데, 이 지역은 1990년대 되어서야 버스가 다녔다고 해요. 그 전까지는 이 지역의 유일한 교통수단이 기차였다고 해요. 기차역 옮기면서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면 일단 험한 고갯길부터 넘어가라고 하니 가만히 있었겠어요.

 

삼척 여행 사진

 

소달초등학교에 도착했어요. 소달초등학교 바로 뒷편까지 왔어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운탄고도1330을 관통하는 스토리인 한국 현대 석탄산업 역사를 놓고 보면 매우 의미 깊은 지점이었어요.

 

여기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운탄고도1330 탄광 스토리에서 벗어난 지점.

 

운탄고도1330은 운탄고도 3길부터 석탄 생산 지역을 쭉 걸어요. 운탄고도1330 트래킹 코스에서 강원도 남부 탄전 석탄 생산지역은 과거에 석탄을 생산했던 지역까지 다 포함했을 때 도계읍 늑구리에서 끝나요. 늑구리까지가 석탄 생산지역이었어요. 고사리부터는 석탄 생산지가 아니에요. 늑구리까지는 석탄생산지이자 석탄 운반의 길이지만, 고사리부터는 운탄고도1330을 관통하는 주제인 '한국 현대 석탄산업의 역사'에서 석탄 운반의 길만 남아요.

 

운탄고도1330 8길 시작점인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서 전두리는 현재도 석탄을 생산하고 있는 지역, 전두리 넘어서 늑구리까지는 석탄을 생산했던 지역, 늑구리 넘어 고사리부터는 탄광과는 관련없고 오늘날까지도 석탄 실은 기차가 달리고 있는 길이라고 보면 되요.

 

"여기에서 어떻게 가야 하지?"

 

카카오맵을 봤어요. 제가 있는 곳에서 소달중학교를 거쳐 하고사리역 가는 길을 찾아봤어요. 카카오맵 로드뷰는 이쪽을 비춰주지 않았어요. 방향을 찾아야하는데 헷갈렸어요. 설마 학교를 관통해서 가라는 것은 아닐 거 같았어요. 그러나 소달초등학교를 관통해서 가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나왔어요. 만약 학교를 관통해서 가려면 소달초등학교 정면으로 가서 건물을 따라 쭉 걸어가야 했어요.

 

빗방울이 스마트폰 화면에 떨어져서 스마트폰 터치가 제대로 먹히지 않고 이상하게 먹혔어요. 계속 옷으로 빗물을 닦아내며 지도를 확대도 하고 축소도 하며 길을 찾았어요. 아무리 봐도 학교를 관통해서 가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소달중학교로 가는 길이 그게 맞았어요. 소달초등학교를 관통해 건너갔어요.

 

토종벌 양봉

 

토종벌 양봉통이 있었어요. 토종벌 양봉통을 지나가서 조금 걸어가자 폐교 소달중학교가 나왔어요.

 

강원도 삼척시 폐교 소달중학교

 

소달중학교는 1985년 12월 24일에 도계중학교 소달분교로 개교했어요. 당시에 9학급으로 인가받았다고 해요. 이듬해인 1986년에 165명이 입학했다고 해요. 이후 1989년 11월 17일에 소달중학교 승격이 인가되어서 도계중학교 소달분교에서 소달중학교로 독립했어요. 소달중학교는 2018년까지 졸업생을 총 1176명 배출했어요.

 

하지만 20여년 후인 2018년 2월 9일 금요일, 소달중학교의 마지막 학생 2명이 졸업했고, 학생이 없어진 소달중학교는 2월 28일에 폐교되었어요.

 

소달중학교

 

"이 코스 짠한데?"

 

고사리역에서 하고사리역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는 기차역 폐역 고사리역과 중학교 폐교 소달중학교가 있었어요. 중학교가 건립될 정도면 한때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살던 동네였다는 말인데 석탄산업이 몰락하고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늑구리 탄광들이 폐광하자 인구가 급감하며 고사리역은 폐역, 소달중학교는 폐교되었어요. 석탄산업의 흥망성쇠에 따른 동네의 변화를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어요.

 

재미있는 점은 소달초등학교는 여전히 학교 기능을 수행중이에요. 예전에 교사인 지인으로부터 중학생부터는 조금 먼 길도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중학교는 그래도 인구가 좀 되고 번화한 곳에 있지만 초등학교는 아동들이 멀리 다니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학교가 운영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중등교사는 아무리 시골로 가도 그래도 그 시골에서 나름 번성한 지역까지만 가지만 초등학교는 시골로 가게 되면 어마무시한 곳까지 기어들어간다고 제게 알려줬었어요. 실제로 벽지, 오지에도 조그마한 초등학교 분교장이 있지만, 중학교부터는 그래도 나름 인구가 되는 곳에 있어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한국 여행 사진

 

좀좀이의 여행 여행기 석탄의 길

 

운탄고도1330

 

오십천과 다시 만났어요. 제가 잠깐 외도해서 산길로 들어왔다가 다시 오십천 곁으로 돌아왔어요.

 

강원도 삼척시 하천 오십천

 

마을 입구에 교회가 한 채 있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교회

 

"교회 예쁜데?"

 

마을 입구에 있는 교회는 디자인이 매우 특이했어요. 사진으로만 본 북유럽 목조 건물처럼 생겼어요.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서 아주 그냥 인스타그램 사진 맛집이었어요.

 

'이거 사진 보여주고 약속된 메탈의 땅 북유럽 왔다고 하면 분명히 믿는 놈 있다.'

 

매우 독특하게 생긴 고사리 마을 교회 사진 보여주고 나 지금 약속된 메탈의 땅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왔다고 하면 믿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였어요. 제가 강원도 삼척시에 온 사실을 모른다면 진짜 믿을지도 몰랐어요.

 

설마 여기는 한국 헤비메탈의 숨겨진 약속의 땅인가.

 

그럴 리는 없었어요. 너무나 평화롭고 한적한 농촌이었어요. 그런데 약속된 메탈의 땅이라는 북유럽 사진 보면 매우 평화로운 풍경이에요. 일설에는 북유럽 사람들이 너무 삶이 단조롭고 지루해서 세계적으로 유독 강렬한 메탈 음악에 열광하는 거라는 말도 있어요. 그러니 어쩌면 여기가 먼 훗날 한국의 약속된 메탈의 땅이 될 수도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교회와 주변 풍광 보니 스스로 그럴싸한 헛소리라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강원도 농촌 풍경 사진

 

2022년 10월 6일 가을 초록빛 새싹이 무성히 자라나고 있는 논 너머로 폐교가 된 소달중학교를 바라봤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골목길 사진

 

비는 아직 우산 쓸 정도는 아니었지만 더 많이 내리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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