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벌써 꽤 걸었네?"
최대한 덜 걸어야 하는데 꽤 걸었어요. 그렇게 엄청나게 많이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에 태백시 찜질방에서 나와서 24시간 카페와 24시간 식당 간다고 걸은 거리가 있었고, 삼척시 도계읍 와서는 흥전삭도마을을 돌아다니고 흥전항을 다녀왔어요. 이른 새벽부터 걸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앞으로 힘든 길을 걸을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걸은 거리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부담이었어요. 정말 하루 종일 걸어서 돌아다녀야 했거든요.
날이 아주 훤해졌어요. 누가 봐도 아침이었어요. 아까 도계 도착했을 때는 어스름한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어스름한 기운이 싹 다 가셨어요. 몇 시인지 봤어요. 2023년 10월 6일 오전 8시 조금 넘었어요. 모두가 하루를 시작하고 학생들은 등교하고 직장인들은 출근하고 있을 시각이었어요.
"이제 진짜로 운탄고도 8길 걸으러 가야겠다."
아침 8시였기 때문에 도계에서 더 돌아다니며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었어요. 시간적으로 여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걸어야할 거리를 고려하면 더 이상 불필요하게 많이 걸으며 돌아다니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어요. 운탄고도 8길 걷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운탄고도 8길 시작점까지도 못 갔어요. 여기에서 계속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피곤하다고 느껴버리면 앞으로 갈 길은 즐거운 길이 아니라 고통의 길로 변해버릴 거였어요.
탄광촌으로 알려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그러나 자연 풍경은 아무리 봐도 아름다웠어요. 태백에서 도계로 넘어온 길을 바라보다가 다시 도계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아직 운탄고도1330 8길 걷기가 시작되지 않았어요. 운탄고도1330 8길은 도계역에서 시작해요. 제가 있는 곳은 도계역에서 더 남쪽이었어요. 이곳은 운탄고도1330 8길이 아니라 운탄고도1330 7길이었어요. 운탄고도 7길 구간에서 8길 구간으로 넘어가는 것부터 해야 했어요.
조그만 공원이 하나 있었어요. 조그만 공원에서 보는 풍경도 매우 아름다웠어요. 조그만 공원에 심어진 가로수 중에는 붉게 단풍이 든 가로수도 있었어요.
"여기 나중에 단풍 제대로 들었을 때 오면 진짜 절경 아닐 건가?"
아직은 단풍이 제대로 들 때가 아니었지만 단풍이 제대로 들었을 때 오면 정말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설마 그때 여기를 또 올라구.'
그러나 단풍 보러 도계를 또 올 거 같지는 않았어요. 만약 단풍 구경하러 강원도에 또 온다면 단풍으로 유명한 태백을 가지 여기에 올 리 없었어요. 결정적으로 태백시는 24시간 찜질방과 4번 버스, 1번 버스가 있어서 단풍 구경을 저렴하고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반면 도계는 숙소도 몇 곳 없고 돌아다니는 버스도 별로 없었어요. 만약에 단풍 구경하러 이쪽으로 오게 된다면 태백으로 갈 거고, 혹시 그때 시간이 남는다면 기차 타고 도계를 잠시 들릴 수도 있을 거였어요.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제 생각에 없어보였어요. 제가 단풍 하나 보자고 여기까지 비싼 차비 들여서 올 리가 없었으니까요.
공원에는 화장실이 있었어요. 화장실에 들어가서 소변을 봤어요. 운탄고도 8길의 특징은 한 번 들어가는 순간 아무 것도 없었어요. 편의점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식당도 없었어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길을 계속 걸어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미리 화장실을 들려야 했어요. 도계역에도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도계역 화장실을 들리는 것도 방법이기는 했지만 여기에서 한 번 들렸어요.
'잠깐만 앉아서 쉬어야지.'
벤치 중 안 젖은 벤치를 찾아서 앉았어요. 신발을 벗었어요. 발이 슬슬 아프려고 하고 있었어요. 신발이 아직 길이 하나도 안 들은 상태라서 볼이 너무 안 맞았어요.
신발을 왜 발에 맞지도 않는 걸 신습니까?
새로 하나 사면 되지 않습니까?
'요즘은 신발이 내 발에 맞는 게 없어서 도저히 살 수가 없네.'
저라고 신발 사기 싫어서 안 사는 게 아니었어요. 저도 새 신발 사고 싶었어요. 신고 온 신발도 새 신발이기는 하지만 제 발 모양과 매우 안 맞았어요. 신발끈을 아주 느슨하게 풀고 신고 돌아다녀도 많이 걸으면 발이 아팠어요. 발바닥에 물집 잡히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발 볼이 너무 조여서 뼈가 아팠어요. 이러면 신발을 새로 사는 것이 맞았어요. 그러나 방법이 없었어요. 요즘 나오는 신발 디자인을 보면 전부 칼발 디자인이에요. 발 볼이 너무 좁은 디자인 신발만 나왔어요. 발 볼이 좁지 않은 신발은 아주 예전에 출시된 신발에서 찾아야 하는데 제가 신는 신발 사이즈는 285mm라서 애초에 많이 출시되지 않는 사이즈가 아니에요. 285mm 사이즈는 아예 출시 안 되는 디자인도 있고, 출시되도 다른 사이즈에 비해 적게 출시되요. 그래서 발 모양에 맞는 신발을 사려고 해도 마땅히 없어서 못 사고 있었어요.
운탄고도1330 8길 길이 자체는 하나도 안 부담스러웠어요.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한 산길을 걷는 것도 아니고 평지로 걷는 길이었어요. 이 정도면 아무리 역병 사태 내내 운동도 안 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거의 안 해서 근육이 빠졌다고 해도 걸을 만한 거리였어요. 무슨 하루에 30km 40km 주파하라는 것도 아니고 20km 채 안 되는 거리였어요. 하지만 신발이 발에 안 맞아서 많이 걸으면 발이 아팠고, 발이 아프면 걸음걸이가 이상하게 되면서 다리까지 급격히 피로해졌어요. 이게 문제이고 이게 우려되는 상황이었어요.
"어? 여기 젖었어?"
벤치에 앉아서 쉬는데 벤치에 닿은 허벅지가 매우 시렸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 엉덩이쪽을 만져봤어요. 눅눅했어요. 축축하지는 않고 눅눅했어요.
"걸어야겠네."
검은 바지에 바지가 다행히 축축해지지 않고 눅눅해지는 수준이었어요. 이 정도면 걸으면 금방 다시 마를 거였어요.
흥전육교로 올라갔어요.
이쪽은 철도 때문에 길이 조금 희안하게 꼬여 있었어요. 이쪽 뿐만 아니라 흥전리, 전두리 등 도계읍 읍내 전체가 철도 때문에 철도 건너는 길이 조금 복잡했어요.
철도 때문에 느껴지는 의정부와의 동질감?
제가 살고 있는 의정부도 시가지는 철도로 완벽히 양분되어 있어요. 의정부는 시가지 중심에 의정부역이 있어요. 의정부역을 중심으로 과거 미군부대 자리가 있었고, 지금도 지하철이 다니는 철도가 있어요. 그래서 의정부 시가지는 의정부역과 철도, 미군기지를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양분되어 있어요. 이렇게 의정부 시가지가 철로로 양분되어 있다 보니 의정부역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오가는 것이 매우 불편해요. 도계읍은 의정부와는 비할 바가 아니기는 했어요. 의정부는 철도가 시가지를 완벽히 양분해버렸지만 도계읍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묘하게 도계읍과 의정부 사이에 지리적인 동질감이 느껴졌어요.
흥전육교를 지나자 흥전리에서 다시 전두리로 돌아왔어요.
개도 만원짜리 물고 다녔다는 말은 진짜 맞는 말이야?
이건 당연히 틀린 이야기지만 한편으로 조금 비틀어서 생각해보면 당시 상황을 이보다 더 잘 묘사했을 수도 없다고 볼 수 있었어요. '개도 만원짜리 물고 다니는 동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동네는 한때 엄청난 호황기를 거쳤던 지역이에요. 그런데 이게 묘하게 웃긴 게 이런 표현이 붙는 동네들을 보면 갑자기 대호황이 찾아왔어요. 원래부터 잘 살고 엄청나게 발전한 동네가 아니라요. '이 주식은 영원히 안 됩니다', '이 주식은 상폐 예정', '물 타다 대주주되겠다' 조롱이나 들으며 맨날 바닥 박박 기던 개잡주가 다음날부터 갑자기 쩜상 랠리를 시작하며 2배 5배 텐베거 황금의 주식이 된 꼴이에요. 이런 동네들이다보니 당연히 소외지역에 물류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고 교통도 그다지 좋은 지역들이 아니에요.
갑자기 찾아온 대호황에 인구는 급증하고 온갖 재화와 서비스 수요가 갑자기 폭증했어요. 사회간접자본과 기존 생산시설은 부족한데 인구가 늘었으니 물가가 폭등했어요. 여기에 또 임금도 타지역에 비해 많아서 사람들의 소비 여력이 꽤 되었어요. 이로 인해 물가가 살벌하게 높았어요.
결국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실제 대호황을 불러일으킨 산업에 종사한 근로자들이 아니라 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던 사람들이었어요. 미국에서 골드러시가 일어났을 때 떼돈 번 사람들은 작업복 청바지 팔아먹은 리바이스라고 해요. 딱 그 꼴이에요. 그러니 근로자들이 만원 물고 다니는 게 아니라 개가 만원 물고 다닌 셈이죠.
이런 현상은 과거 강원도 남부 탄전지대 전역, 그리고 근래에는 거제도 조선소에서 발생했었어요. 공통점은 대호황이었을 때 모두 물가가 살벌하게 비싼 곳이라고 유명했고, 힘들게 돈 벌어서 유흥으로 돈이 줄줄 새어나간다는 말이 꽤 있었어요. 그러니 개가 만원 물고 다닌다는 말은 조금 비틀어서 보면 맞는 말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근로자가 만원 물고 다니는 게 아니라 근로자 가족 외의 사람들이 떼돈 버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전두리가 錢頭里는 아니겠지?'
오십천을 바라보며 전두리 한자가 궁금해졌어요. 석탄산업 호황기일 때는 개도 만원짜리 물고 다니는 동네 소리 듣던 삼척시 도계읍이었어요. 이 삼척시 도계읍의 중심지는 바로 전두리에요. 전두리가 도계읍의 읍내에요. 주변 흥전리, 늑구리 같은 곳은 도계읍 소속 마을이기는 하지만 읍내는 아니에요. 보통 읍내, 마실이라고 하면 중심지 번화가를 이야기하고, 도계읍에서 중심지 번화가는 전두리에요.
설마 진짜 전두리가 돈의 대장 마을 錢頭里인지 찾아봤어요. 당연히 아니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 한자는 江原道 三陟市 道溪邑 田頭里였어요. 여기는 밭의 대장 마을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름을 잘 지었다고 볼 수 있었어요. 먼 옛날, 누가 이 동네가 황금바닥주 발바닥 각질이라고 보고 이름을 이렇게 붙였는지 모르겠어요. 밭 전 田이 반드시 농사짓는 밭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비유적으로 뭐가 많이 매장되어 있고 생산되는 땅도 이 한자를 써요. 대표적으로 유전 油田이 있어요. 석유가 많이 매장되어 있고 생산되는 곳은 유전이고, 석탄이 많이 매장되어 있고 생산되는 곳은 탄전 炭田이라고 해요.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와서는 전두리를 탄전의 대장 마을이라고 봐도 되요. 태백시 장성동이 무슨 소리냐며 크게 발끈할 수도 있지만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는 2024년 폐광 예정이고 도계광업소는 2025년 폐광 예정이에요.
지형적으로 본다면 전두리는 제일 강원도 남부 탄전지대 중 가장 동쪽 부분에 위치해 있어요. 강원도 남부 탄전지대 중 동해안과 가장 가까운 탄전지대에요. 그러니 석탄밭 머리라고 볼 수도 있어요. 강원도 남부 탄전지대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탄전지대는 아마 역시 태백시겠지만요.
피식 웃었어요. 전두리가 錢頭里면 전두리를 가로지르는 하천인 오십천 五十川은 과거 전 단위도 쓸 때 50전이 흘러내려가는 하천, 또는 그 뒤에 50원 50만원이 흘러가는 하천이라고 오십천이겠어요.
전에 왔었을 때는 임시 철교처럼 생긴 다리로 내려가보지 못했어요. 이번에는 혼자 왔으니 제 마음 가는대로 움직여도 되었어요. 그래서 전에 가보지 못한 임시 철교처럼 생긴 다리로 내려가보기로 했어요.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어요. 길이 있었어요. 오십천변으로 내려갔어요.
오십천변으로 내려오자 까치발 건물 하부가 매우 잘 보였어요.
다리 위로 올라갔어요. 다리 폭은 승용차 한 대 지나가기에도 벅차게 매우 좁았어요.
다리에서 바로 전까지 제가 있던 도계역 방향을 바라봤어요.
'오십천 따라서 걷다가 윗쪽으로 올라가야겠다.'
걸을 수 있는 데까지 걸어가다가 윗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면 다시 위로 올라가기로 했어요.
다시 한 번 대한석탄공사 도계갱을 바라봤어요. 산에 설치된 강삭철도가 보였어요.
저 강삭철도는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철도의 강삭철도는 아니에요. 대한석탄공사 도계갱에서 석탄 채굴에서 발생한 폐석을 산 위로 나르기 위해 설치한 강삭철도라고 해요.
위로 올라왔어요.
도계 전두시장 입구가 나왔어요. 도계 전두시장 건물 중 오십천변에 세워진 건물들은 전부 까치발 건물이에요.
다리 위에서 다시 도계 전두시장 까치발 건물을 바라봤어요.
태백시 철암동은 박제된 호랭이
삼척시 도계읍은 야생의 살아있는 호랭이
바로 전날 오후에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철암탄광역사촌을 갔을 때 떠올랐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어요.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에서는 과거 철암동에 강원탄광이 있었을 시절을 기념하고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철암천변에 있던 까치발 건물을 전부 철거하지 않고 몇 곳은 남겨서 철암탄광역사촌을 조성했어요.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어요.
반면 제 눈 앞에 펼쳐진 도계 전두시장 근처 오십천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잘 활용하고 있는 까치발 건물이 우글우글했어요. 도계 전두시장 근처에만 까치발 건물이 있는 게 아니라 도계역과 도계 전두시장이 있는 방향 오십천변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잘 사용하고 있는 까치발 건물이 널려 있었어요. 게다가 오십천변 산책로로 내려오면 까치발 건물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고 까치발 건물 기둥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도 있었어요.
'이러니 처음부터 논란거리였지.'
만약 태백시 장성동에 까치발 건물이 있어서 거기에 있는 까치발 건물을 보존한다고 했다면 그래도 도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고 교통이라도 불편하니 나름 남겨서 관광지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도 좋게 받아들여졌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철암동과 여기 전두리는 황지동과 전두리까지는 아니지만 대중교통으로 가기 딱히 불편하지 않아요. 철암동에서 버스나 기차로 동백산역 가서 기차 타고 한 정거장 가면 도계역이고, 도계역에서 나와서 조금만 걸어가면 오십천 위에 세워진 다리가 있어요. 이 다리 위에서 보면 도계 까치발 건물을 아주 잘 관람할 수 있어요. 꼭 기차가 아니더라도 철암동에서 1번 버스 타고 황지동으로 올라와서 태백역이나 태백버스터미널로 가서 도계로 넘어오는 방법도 있구요. 태백버스터미널로 가서 버스 타고 도계로 넘어오면 도계버스터미널이 전두리 남쪽 끝에 있어서 이렇게 살아있는 까치발 건물이 우글거리는 풍경을 보기 위해 조금은 걸어야한다고 추측할 수도 있지만 도계버스터미널에서 나와서 바로 옆에 있는 오십천변 다리 위로 올라가면 역시나 도계읍 까치발 건물을 매우 잘 관람할 수 있어요.
전날 태백시 철암동 철암탄광역사촌을 보며 조금 시큰둥했던 데에는 이렇게 타당한 이유가 있었어요. 전에 도계 와서 까치발 건물 보고 갔기 때문에 철암탄광역사촌 까치발 건물이 신기할 게 없었고, 어차피 다음날인 이날에 또 도계 올 거였기 때문에 도계 오면 무조건 까치발 건물 보게 될 건데 까치발 건물 다시 본다고 흥분이나 감동을 느낄 리 없었어요. 야생의 살아있는 호랑이 보다가 박제된 호랑이 보면 무슨 감흥이 있겠어요.
'이쪽은 이게 또 예상 외의 난제네.'
태백시 전역과 삼척시 도계읍은 강원도의 대표적인 석탄산업 중심지에요. 두 지역은 통리재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어요. 옛날옛적에는 통리재가 넘기 힘든 길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어차피 걸어가는 사람 없고 다 차 타고 지나가요. 아니면 기차 타고 통과해서 가든가요.
'탄광촌'이라는 소재는 분명히 좋은 여행 소재에요. 다른 곳에서 매우 보기 어려운 풍경이에요. 한국 산업화 역사, 한강의 기적, 고도성장기를 다룰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한민족 5천년 역사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유래없이 잘 살게 된 시기가 바로 이 고도성장기부터이니 이는 두고두고 역사책에 기록될 거고 끊임없이 관심을 받을 거에요. '만주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가 한국인의 민족주의 심금을 울리는 것처럼요. 그리고 그 중심의 한 축이 바로 강원도 남부 석탄산업이었어요.
현재는 아직 한국 산업화 역사가 역사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 머물러 있어요. 그래서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있고, 논란도 상당히 심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역사의 영역으로 넘어갈 거고, 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평가가 급상승할 거에요. 과정이 어쨌든 결과는 한민족 5천년 역사상 최고로 잘 살고 한민족 국가 5천년 역사상 가장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세계적으로 부강한 국가로 도약하게 되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인해 어떻게 손 쓸 틈도 없이 강원도 남부 석탄산업지대 전역이 급격히 쇠락했어요. 이렇게 기승전결이 아주 화끈한 스토리는 흔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진귀해요.
자기 지역의 근원이자 정체성인 석탄산업이라 자기 지역의 역사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도 있을 거고, '석탄산업'이라는 소재가 한국에서는 너무 화끈하고 장대하고 기승전결 모두 극적으로 자극적인 서사가 있다 보니 관광자원이기도 해요. 그러니 석탄산업, 탄광촌을 테마로 관광업을 육성하고 싶기도 할 거에요. 영월, 정선은 탄광이 모두 폐광된 지 너무 오래되어서 흔적만 남았지만, 태백시 철암동은 장성동 덕분에 아직도 석탄 관련 시설이 가동중이고, 도계는 진짜로 탄광촌이에요. 영월, 정선과 태백, 도계의 차이는 이걸 보고 대체 뭐 어쩌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옛날 절터 'ㅇㅇ사지'와 지금도 웅장한 절인 법주사, 불국사 급의 차이에요.
문제는 태백과 도계가 붙어 있는 동네에요. 태백은 가기 쉽고 도계는 가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가는 난이도도 솔직히 별 차이 안 나요. 두 곳 모두 석탄산업과 탄광촌이라는 역사-산업 관광자원을 개발하려고 하면 바로 붙어 있는 두 동네가 중복으로 개발이에요. 이러면 당연히 둘 다 장사가 영 시원찮기 딱 좋아요. 그렇다고 '태백 너는 자연 관광자원 넘쳐나니까 역사-산업 관광자원은 도계한테 넘겨라'라고 할 수도 없을 거구요.
그렇다고 태백 서부와 도계를 묶어서 같이 역사-산업 관광자원을 개발하기에는 통리재 넘는 길이 엄청 험해요. 어떻게 보면 둘이 같이 묶어서 개발하는 게 제일 좋기는 한데 그러려면 관광객들이 통리재를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그쪽에 또 뭔가를 개발하든가 해야 해요.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서 레일바이크 표 구매 및 입장을 통리, 도계 양쪽에서 가능하게 해주고 둘 사이에 셔틀버스 운영하며 통리, 도계 양쪽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고 도계에서 도계역까지 레일바이크 시간에 맞춰 버스 운영하면 되니까요.
허나, 이렇게 잘 되려면 결국 동해시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는 관광객이 상당히 많아야 해요. 여행 경로를 짤 때 기차,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간다면 동해부터 간 후에 태백, 도계 가는 것이 그 반대보다 훨씬 더 좋거든요. 동해시가 얼마나 태백, 삼척과 잘 협력해줄지 미지수에요. 애초에 동해시가 그렇게 협조적이었다면 운탄고도도 9길로 끝나지 않고 동해시 구간까지 만들어서 10길로 끝났을 거에요.
결정적으로 아무리 석탄산업과 탄광촌이 꽤 좋은 관광자원이라 하더라도 관광산업 특성상 너무 여기에만 얽매이면 또 안 되요. 관광업 육성이 괜히 어려운 게 아니고 될 거 같은데 참 안 되는 게 아니에요.
'하긴, 쉬웠으면 벌써 개발되고도 남았지.'
역시 세상일 쉬운 거 하나도 없어요.
까치발 건물에서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깎아 줄에 묶어서 매달아놨어요.
"이제 진짜 시작해야겠다."
운탄고도1330과 관련없는 도계 여행은 마침표를 찍어야 했어요. 도계역을 향해 걸어갔어요.
2022년 10월 6일 8시 43분, 도계역 앞 광장에 도착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