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02 - 강원도 남부 석탄의 길 발굴 개척 조사

좀좀이 2022. 12. 2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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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다시 뛴다

피가 다시 흐른다

 

두근두근

 

운탄고도 8길 코스를 보는 순간 느낌이 왔어요. 이 여행은 저 혼자 가야 했어요. 서울 달동네를 찾아다닐 때 느꼈던 그 설렘과 흥분이 다시 찾아왔어요. 멎어 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어요. 꺼져버렸던 여행에 대한 의지가 다시 살아났어요. 2019년 서울 달동네 찾아다닐 때 이후로 몇 년만에 다시 찾아온 신나는 감각이었어요. 정말 진심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졌어요.

 

그동안 목적지가 없어서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여행의 감도 여행기 쓰는 감도 무디어져 있었어요. 신기하게 진심으로 가고 싶은 곳이 생기고 너무 궁금한 곳이 생기자 옛날 그 감이 다시 살아났어요. 무디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억지로 끄집어내고 살리려고 하니 안 되었던 거였어요. 가고 싶은 곳이 생기자 자연스럽게 예전 여행할 때 감이 부활했어요.

 

이 여행은 나 혼자 간다.

 

강원도 석탄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저 혼자 가기로 했어요. 강원도 동해시 여행과 남부 지역 여행은 2017년 중국 여행을 같이 다녀온 친구와 같이 다녀왔어요. 이후 두 차례 여행을 더 같이 다녀왔어요. 친구는 더 이상 2017년에 같이 여행을 갔던 그 친구가 아니었어요. 친구가 2018년부터 급격히 나쁜 쪽으로 바뀌어간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여행 같이 다니며 깨달았어요. 그 친구는 더 이상 없었어요.

 

친구는 말로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실제 하고 싶은 것은 여행이 아니라 도피였어요. 현실도피성 여행이 아니라 현실도피였어요. 여행을 무려 4번이나 같이 갔기 때문에 확실했어요. 여행하는 것도 노는 것도 뭣도 아니었어요. 그저 도망치고 싶어할 뿐이었어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자고 하는 거였지, 진짜 여행을 가고 싶은 게 아니었어요. '현실도피성 여행'과 '현실도피'는 비슷할 것 같지만 달라요. 친구가 제게 여행가자고 하는 건 같이 현실에서 도망치자는 거였지, 여행가자는 게 아니었어요. 여행 다니는 중 정말 머리 끝까지 화나는 일이 무수히 많았지만, 돌아와서 친구가 원한 건 여행이 아니라 현실로부터의 도망이었다는 걸 깨닫자 대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강원도 석탄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저 혼자 가기로 결정했어요. 신나고 재미있는 길에 방해꾼 끌고 갈 이유가 없었어요.

 

"운탄고도 8길 다녀와야겠다!"

 

운탄고도 8길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어요. 운탄고도 8길 정보는 인터넷에 없었어요. 운탄고도1330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정보가 전부였어요. 운탄고도1330 페이스북에 들어가봤어요. 운탄고도 관련 정보가 몇 개 있었어요.

 

운탄고도 8길 미개통이랍니다.

 

"뭐야? 미개통?"

 

운탄고도 1330 중 7길, 8길, 9길은 미개통 구간이 있었어요. 7길은 전구간이 걷기 불가 구간이었고, 8길은 도계역부터 대평리 구간이 걷기 불가 구간이었어요. 9길은 신기역부터 미로역까지 구간이 걷기 불가 구간이었어요. 제가 걷고 싶은 길은 8길이었어요. 운탄고도 8길은 도계역부터 신기역까지 구간이에요. 이 중 도계역부터 대평리까지 걷기 불가이고 걸을 수 있는 구간은 대평리부터 신기역까지 구간이었어요. 대평리부터 신기역까지 구간은 얼마 안 되었어요. 도계역부터 대평리 구간이 걷기 불가 구간이라면 전구간 걷기 불가나 마찬가지였어요.

 

 

도전의식이 타오른다.

 

"여기 내가 뚫어?"

 

이미 운탄고도 8길 걸으러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걷기 불가 지역이라고 해서 포기할 수 없었어요. 당장 언제 떠날지 날짜 보고 있는데 걷기 불가 구간이라고 해서 안 갈 리 없었어요. 갈 준비 하고 있는 중인데 고작 걷기 불가 지역이라고 해서 접기에는 운탄고도 8길 보고 너무 흥분해버렸어요. 되살아나버린 여행의 감과 욕구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어요.

 

내가 서울 달동네 돌아다닐 때는 무슨 정해진 길 있어서 다녔냐?

 

서울 달동네 다닐 때도 그랬어. 달동네라고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이 있었던 것도 아냐. 카카오맵에서 위성사진으로 서울 지도 싹싹 훑어보면서 달동네 직접 찾고 이동경로 짜서 돌아다녔어. 길이 있어서 그 길을 따라 걸은 것이 아니라 없는 길을 개척하고 뚫으면서 다녔어.

 

서울 달동네 돌아다닐 때 뿐만이 아니야. 항상 그래왔어. 여행 다닐 때 대부분은 없는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뚫어가면서 갔어. 2009년 알바니아, 코소보 갈 때 무슨 정보가 있어서 거기를 갔겠어. 우리나라는 고사하고 서양에조차 알바니아 여행 정보는 거의 없었어. 무턱대고 가서 다 뚫어가며 돌아다닌 거야. 그 이후 여행간 나라들 다 그랬어.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 여행에서도 길 뚫어가면서 갔는데 이건 고작 국내여행에 불과할 뿐이야. 나도 한국어라면 원어민 화자.

 

예전에 외국 여행 갔을 때 길 뚫어가며 돌아다녔던 거에 비하면 이건 비교 대상 자체가 아니었어요. 그때에 비하면 이건 난이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쉬운 레벨이었어요. 아무리 인터넷에 정보가 별로 없는 지역들이라고는 하지만 예전에 제가 갔던 알바니아, 코소보 같은 곳에 비할 바가 아니었어요. 지도는 카카오맵 보면 되고, 물어보는 거야 한국이니까 한국어로 물어보면 되요. 더욱이 도계는 이미 한 번 다녀왔어요.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어요.

 

카카오맵 보면 됨.

 

간단했어요. 운탄고도 8길이 아직 미개통 상태라고 해도 길이 있을 거였어요. 내가 이래뵈도 무려 제주도 출신이에요. 제주도 올레길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을 봤어요. 이런 길은 있는 길에 약간 손대고 정비하고 보행자가 걸을 수 있도록 시설물 조금 설치해서 만들어요. 무슨 없는 길 새로 뚫고 다리 새로 놓아가며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며 지도를 바꿔버리는 것이 아니라요.

 

운탄고도 8길이 미개통 상태라 해도 길은 있을 거였어요. 없는 길을 새로 만드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길을 정비해서 도보 여행 코스로 만들어놓았을 게 분명했어요. 우리나라의 걷기 여행 코스의 시초는 제주도 올레길이라고 볼 수 있고, 전국 대부분의 도보 여행 코스는 제주도 올레길 개발 과정을 거의 따라가요. 없는 것을 완전히 새로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길을 조합해서 하나의 코스를 만들고 조금 손대는 방식이에요. 그러니 운탄고도 8길도 이러한 틀에서 별로 벗어났을 리 없었어요.

 

카카오맵에서 도게역부터 신기역까지 길찾기를 해봤어요.

 

 

"내 이럴 줄 알았다."

 

 

카카오맵 도계역~신기역 도보 이동 길찾기 결과와 운탄고도 8길 코스는 거의 완벽히 일치했어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어요.

 

 

길은 외줄기, 오십천 따라가기.

 

철도가 막음.

산이 막음.

오십천이 막음.

 

다른 길 나올 구멍이 없음.

 

도게역부터 신기역까지 이어지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었어요. 중간에 잠깐 마을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 있기는 했지만 큰 줄기는 딱 하나였어요. 우회로고 나발이고 없었어요.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지형이 그렇게 생겼어요. 지형 문제 때문에 다른 길을 뚫을 방법이 아예 없었어요. 길이라고는 오십천 따라가는 길 하나 뿐이었어요. 다른 길은 나올 수 없는 곳이었어요.

 

도계역부터 신기역까지 걸어서 가는 길은 오십천 따라 강원남부로를 걸어가는 길이 전부였어요. 도계역부터 신기역까지의 지형을 보면 양쪽이 험준한 산악지형이고 가운데 골짜기 같은 좁은 평지에 오십천이 흐르고 있는 지형이었어요. 오십천 주변으로 아주 좁게 평지가 있었고, 이 평지에서 오십천도 흐르고 철도도 부설되어 있었어요. 강원남부로에서 벗어나 샛길로 들어가서 신기역까지 가는 길이 없었어요. 군데군데 샛길이 있기는 했지만 전부 이어지지 않고 끊겼어요. 강원남부로를 피해서 가려고 하면 산이 가로막고, 철도가 가로막고, 오십천이 가로막았어요. 강원남부로 우회로가 나올 수 있는 곳이 몇 곳 안 되었고, 그나마도 신기역까지 그대로 쭉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강원남부로로 합류하게 되어 있었어요.

 

카카오맵 도계역~신기역 도보 이동 길찾기 결과를 따라가면 그게 운탄고도 8길이었어요.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는 무시해도 되는 수준이었어요. 원래 올레길도 괜히 쓸 데 없이 마을 안으로도 들어가보고 조금 멀리 돌아가보게 만들어놓은 길이에요. 정해진 지점만 잘 찾아가면 그만이에요. 도보여행 코스가 대체로 이렇게 되어 있어요. 정해진 길만 따라가라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잠깐씩 샛길로 빠져서 돌아다니는 것을 유도하고 조장해요. 그래야 지역 경제에 보다 많은 도움이 되니까요. 정해진 코스 외에 주변 마을까지 사람들이 찾아가서 지출을 해줘야 보다 넓은 지역까지 도보 여행 코스로 인해 경제가 활성화되거든요.

 

카카오맵 도계역~신기역 도보 이동 길찾기 결과와 운탄고도 8길 사이에 약간의 오차가 있기는 했지만 무의미한 오차일 수 밖에 없었어요. 길이 결국 그거 뿐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정말 등산을 해서 산등성이 타고 계속 가라고 할 게 아니라면 길은 외줄기 오십천 따라가는 강원남부로 타고 가는 길만 있었어요. 산, 철도, 오십천이 다른 길이 나올 방법을 모조리 틀어막아버렸어요.

 

"카카오맵 따라서 걸어가면 되겠다."

 

아직 미개통이라는 운탄고도 8길 뚫는 것은 상당히 쉬웠어요. 선택지가 하나 뿐이라 그거 따라가면 끝이었어요.

 

"도계에서 1박 해야 하나?"

 

운탄고도 8길 총 거리는 17.73km였어요. 운탄고도1330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소요시간은 5시간 38분이었어요. 이 길은 처음 가보는 길이었어요. 길 찾으며 헤멜 일이 별로 없는 곳이기는 해도 처음 가는 길이니 지도 보면서 걸어야 했어요. 게다가 사진 찍고 경치 구경한다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거였어요. 한 시간에 3km 정도 걷는다고 보고 그보다 훨씬 더 못 걸을 수도 있었어요. 험한 길은 아닐 테니 시간당 2km까지 잡고 계산할 것까지는 없었지만, 도중에 구경하고 쉬는 시간까지 다 합치면 시간당 2.5~3km 정도 이동할 거라 예상했어요.

 

청량리역에서 도계역 가는 첫 기차는 아침 7시 34분에 있었어요. 도계역에 11시 43분 도착 예정이었어요. 신기역에서 청량리 가는 마지막 열차는 오후 6시 37분에 있었어요. 이론적으로는 당일치기도 가능했어요. 도계역 도착하자마자 부지런히 걷기 시작해서 신기역 가서 청량리 가는 기차 타고 돌아오면 되었어요. 그러나 이렇게 가면 시간에 쫓기며 걸어야했고, 돈도 아까웠어요.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걸으려면 도계에서 1박하고 걸어야 했어요.

 

도계에서 또 1박?

그때 4만원이었던 거 알지?

 

다른 사람과 여행을 같이 가면 좋은 점이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어요. 고민되었어요. 혼자 숙박비로 4만원 지출하려고 하니 돈이 엄청 아까웠어요. 그렇다고 해서 여행 엄청 못 하는 수준을 넘어서 여행에 아예 소질 없고 툭하면 징징거리고 정해진 일정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며 여행 엉망으로 만드는 친구와 같이 가는 건 최악이었어요. 그 친구와 여행 갈 바에는 차라리 안 가고 마는 게 훨씬 나았어요.

 

'도계는 아침 먹을 곳도 없는데...'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서 1박하는 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어요. 운탄고도 8길 지도를 보면 딱 봐도 걷는 도중 밥 먹을 곳이 없었어요. 신기역 가서도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운탄고도 8길 걷기 시작하는 순간 신기역 도착해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주구장창 걸어야 했어요. 아침부터 걷는다고 가정했을 때, 점심까지 굶고 저녁을 먹어야할 수도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웬만하면 아침을 먹고 걷기 시작해야 했어요.

 

도계에서 1박을 하고 나와서 걷기 시작한다고 가정하자 이번에는 아침 식사할 곳이 없었어요. 도계는 이미 한 번 가봤기 때문에 알고 있었어요. 여기는 11시 점심 시간이 되어서야 밥 먹을 곳이 있는 동네였어요. 도계에서 1박한다면 숙소에서 아주 늦게까지 푹 자고 점심 즈음에 나와서 점심 먹고 출발해야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갈 거라면 도계에서 1박해야 할 이유가 없었어요. 차라리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이 더 저렴하고 더 나았어요.

 

'태백?'

 

순간 떠오른 곳이 있었어요. 바로 강원도 태백시였어요.

 

'태백에서 찾으면 답이 있을 건가?'

 

태백도 한 번 가기는 했어요. 이때 친구가 여행을 제대로 망쳐놔서 태백시는 제대로 본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황지연못과 황지자유시장 본 게 전부였어요. 말 그대로 스쳐지나가는 꼴이 되어버렸어요. 강원도 태백시는 한 번 가기는 했지만 제대로 본 게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운탄고도 8길 가는 길에 같이 가도 괜찮았어요. 태백시는 도계읍보다 훨씬 번화한 곳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관광도시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구요. 여행 다녀온 후기들 보면 태백 여행은 만족도가 상당히 높아요. 태백시는 아직 제대로 못 가봤기 때문에 운탄고도 8길 가는 김에 같이 묶어서 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어요. 게다가 태백시는 숙소도 도계와 비교할 바가 아니게 많았어요.

 

어느덧 야심한 새벽시간이 되었어요. 뜨거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찾아와 밤공기가 매우 선선했어요. 세상은 매우 고요했어요.

 

'태백에 24시간 찜질방 있을 건가?'

 

먼저 강원도 태백시에 24시간 찜질방이 있는지 찾아봤어요.

 

"있다!"

 

황지동에 '성지24시찜질방'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24시간 영업하는 곳이었어요. 태백시에 있는 24시간 찜질방인데 위치도 매우 좋았어요. 태백시에 있는 태백역과 태백버스터미널은 거의 붙어 있어요. 길 하나 놓고 마주보고 있다시피 해요. 태백시 황지동 24시간 찜질방인 성지사우나는 태백역, 태백버스터미널과 가까웠어요. '기어갈 거리'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걸어서 널널하게 갈 수 있는 거리였어요.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다.

태백 보고 8길 걸으면 된다.

 

"잠깐만, 태백에 24시간 카페 있었지?"

 

태백시에 갔을 때였어요. 황지시장에서 태백역으로 걸어가는 중에 무인 24시간 카페를 봤어요. 그때 친구가 저한테 너 여기도 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었어요. 제가 심야시간에 24시간 카페를 찾아다니니까 태백에 있는 24시간 카페도 한 번 가야하지 않겠냐고 했어요. 이때 저는 비록 24시간 카페이기는 하지만 무인카페인데다 이거 하나 때문에 태백 갈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안 간다고 했어요.

 

"찜질방에서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24시간 카페 가면 되겠는데?"

 

두드려라. 문이 열리리라.

 

열려라 참깨! 이프타흐 씸씸!

아니지, 열려라 석탄! 이프타흐 파흠!

 

태백시가 답이었어요. 태백시를 뒤지기 시작하자 강원도 남부 정복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강원도 남부 석탄의 길 정복을 위한 열쇠는 태백에 있었어요. 태백시를 뒤지기 시작하자 미션을 완수하기 위한 필수 발견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도계나 삼척에서 헤멜 게 아니라 태백에서 찾아야 했어요. 태백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어요.

 

"설마 24시간 식당도 있을 건가?"

 

태백시를 처음 갔을 때 매우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여기는 온통 한우 실비식당이었어요. 한우 실비식당이 왜 이렇게 많은지 신기했어요. 여기가 횡성도 아닌데 왜 한우 실비식당이 많은지 궁금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태백은 과거 탄광이 많을 때 고기를 즐겨 먹었다고 해요. 돈이 있으면 쇠고기를 구워먹었고, 평소에는 삼겹살을 구워먹고, 주머니가 가벼우면 물닭갈비를 먹었대요. 그 당시 식생활이 지금도 남아 있어서 태백은 실비식당이 매우 발달해 있다고 해요. 그래서 태백시는 물닭갈비와 더불어 한우 구이, 소고기 국밥이 발달했다고 해요.

 

네이버 지도에는 매우 좋은 기능이 있어요. 바로 현재 영업중인 식당만 검색하는 기능이에요. 야심한 새벽시간이었기 때문에 영업중인 식당만 검색하면 바로 24시간 식당을 찾을 수 있었어요. 네이버 지도에서 태백시 황지동에서 이 야심한 새벽에 영업중인 식당이 있는지 검색해봤어요.

 

 

태백시 황지동에는 24시간 식당도 있다!

 

황지시장에 부래실비식당이 있었어요.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이었어요. 태백시에 있는 유일한 24시간 식당이었어요. 이러면 풀세트 다 만들었어요. 성지사우나에서 자고 새벽에 나와서 24시간 카페인 티타임커피 가서 커피 한 잔 한 후 부래실비식당 가서 밥 먹고 시외버스 타고 도계로 가면 되었어요.

 

 

태백시에서 삼척시 도계 가는 시외버스 첫 차는 새벽 5시 50분에 있어요. 예상 소요시간은 25분이었어요. 완벽했어요. 태백시에서 새벽 5시 50분 도계행 버스 첫 차를 타고 도계로 넘어가면 새벽 6시 30분쯤 도착 예정이었어요. 이때부터 걷기 시작한다면 점심 즈음에 신기역에 무난히 도착할 거였어요. 점심 즈음 신기역 도착하면 선택지가 매우 많았어요. 신기역에서 기차 타고 서울로 돌아와도 되고 동해시로 이동해도 되었어요. 버스 타고 삼척시로 이동해도 되었어요.

 

'태백시 여행은 어떻게 하지?'

 

운탄고도 8길을 가는 방법은 완성되었어요. 태백시에서 찜질방에서 자고 새벽에 나와서 24시간 식당 가서 밥 먹고 24시간 카페 가서 커피 한 잔 마신 후 새벽 5시 50분 도계행 시외버스 타고 도계 가서 걷기 시작하면 되었어요. 이제 해결해야 할 문제는 태백시 여행 일정이었어요. 의정부에서 태백시 가는 방법은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의정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태백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에요. 다른 하나는 청량리역까지 가서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기차 타고 태백시 가는 방법이었어요. 태백에 순전히 잠자러 가는 게 아니라 태백시도 둘러봐야 했어요. 지난 번에 태백시 갔을 때 친구 때문에 태백시는 아무 것도 못 보고 왔어요. 이번에는 저 혼자 가기 때문에 태백시도 다 둘러볼 작정이었어요.

 

"태백시 유명한 게 뭐 있지?"

 

태백시에서 유명한 관광지라면 부동의 원톱 황지연못이 있었어요. 황지연못은 지난 번에 봤어요. 황지연못은 태백역, 태백버스터미널에서 가까워요. 황지연못 외에 유명한 곳, 오일장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봤어요. 통리에는 통리 5일장이 있었어요.

 

"통리 5일장 가볼까?"

 

통리 5일장은 5일장이기는 한데 장이 서는 날이 일반적인 오일장과 달랐어요. 5일장이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5일장 - 1일 6일 장, 2일 7일 장, 3일 8일 장, 4일 9일 장, 5일 0일장 의 의미가 아니었어요. 5로 끝나는 날에만 열리는 장이었어요. 일반적으로 5일장이라고 하면 5일마다 한 번씩 열리는 재래시장을 의미하지만, 통리 5일장에서 5일장은 5로 끝나는 날에만 열리는 장을 의미했어요. 즉, 통리장은 정확히 말하면 5일장이 아니라 10일장이었어요.

 

"통리장에 맞춰서 가려면 10월 5일에 가야겠다."

 

통리장을 보려면 10월 5일에 태백으로 가야 했어요. 2022년 10월 5일 새벽 5시 50분에 의정부에서 태백 가는 버스를 타고 태백시로 간 후, 태백터미널 주변에서 돌아다니다가 이른 점심으로 물닭갈비 먹고 통동으로 넘어가서 통리장 보러 가면 딱이었어요. 이번에는 태백버스터미널에서 통리장이 열리는 통리역 근방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찾아봐야 했어요.

 

 

"뭐야? 이거 너무 사기인데?"

 

태백시 관광 버스 태백 시내버스 4번

 

강원도 남부 산간지역은 배낭여행 스타일로 돌아다니기 매우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이건 저 뿐만 아니라 전국민 다 똑같을 거에요. 강원도 남부 여행 간다고 하면 무조건 자기 차를 끌고 가야만 제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대중교통이라고는 버스 뿐인데 그 버스가 몇 시간에 한 대, 심하면 하루에 2대나 다닐까 말까한 곳이 허다하니까요.

 

그렇지만 태백시는 배낭여행 스타일로 여행하기 매우 좋은 곳이었어요. 바로 태백 시내버스 4번 때문이었어요. 태백시 4번 버스는 순환노선이었어요. 태백시 한 바퀴를 뱅 돌았어요. 태백 4번 버스는 아침 6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운행하는 버스였어요. 총 15시간 30분 동안 일 49회 운행된다고 나와 있었어요. 배차 간격은 대충 20분이었어요. 실제로는 20분보다 조금 안 되었어요.

 

배차 간격 20분이면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치지만 않으면 되요. 버스 타고 이동해서 둘러보고 버스 정류장 와서 의자에 앉아서 조금 쉬면 바로 버스가 올 거였어요. 버스 배차 시간을 보면 태백시 여행은 태백 버스 4번 하나면 충분했어요. 태백 외곽으로 나갈 계획이 아니라 태백시 안에서만 놀 거라면 태백 버스 4번 타고 태백 한 바퀴 뱅 돌면서 놀아도 충분했어요.

 

"이거 노선 최고다!"

 

태백영프라자 정류장에서 태백 4번 버스를 타면 통리역, 동백산역, 철암동, 돌꾸지, 구문소, 상장동 벽화마을을 갈 수 있었어요. 태백 주요 관광지는 싹 다 도는 코스였어요. 통리역에는 통리5일장과 태백 오로라파크가 있어요. 철암동에는 철암 단풍군락지와 철암역두 선탄시설이 있어요. 구문소는 원래 유명한 곳이고, 구문소에서 조금 걸어가면 강원도 최남단 기차역인 동점역이 있어요. 상장동 벽화마을 바로 앞에서 버스가 정차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장동 벽화마을 근처에서 버스가 정차하기 때문에 상장동 벽화마을도 4번 버스 타고 갈 수 있어요.

 

제가 갈 계획은 아니었지만 자녀를 데리고 간 부모님 만족이 그렇게 높다는 365세이프타운도 4번 버스 타고 갈 수 있었고, 구문소 옆 태백고생대 자연사박물관도 4번 버스로 갈 수 있었어요.

 

태백시로 기차나 버스 타고 가서 4번 버스 타고 간다면 4번 버스 타는 정류장인 태백영프라자 가는 길에 황지연못을 볼 거에요. 황지시장도 이쪽에 있구요. 황지연못, 황지시장, 태백 오로라파크, 철암 단풍군락지, 철암역두 선탄시설, 구문소, 상장동 벽화마을 다 4번 버스 하나로 해결되었어요. 이렇게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에 진짜 드물어요.

 

일정은 이제 완벽해졌다.

 

잠깐!

어디로 나올 것이오?

 

출발지는 정해졌어요. 태백이었어요. 의정부에서 새벽 5시 50분 태백행 시외버스를 타고 태백시 가서 태백시 구경한 후 찜질방 가서 잘 거에요. 찜질방에서 새벽에 나와서 24시간 카페와 24시간 식당을 갔다가 새벽 5시 50분 도계행 시외버스를 타고 도계로 가서 운탄고도 8길을 걸을 거에요. 운탄고도 8길을 다 걸으면 신기역에 도착 예정이었어요. 신기역에서 어떻게 할 지 봐야 했어요.

 

동해시로 가?

 

이왕 가는 거 동해시를 다시 한 번 또 가고 싶었어요. 동해시는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묵호항과 논골마을을 또 가고 싶었어요. 신기역에서 바로 서울로 돌아오는 것보다 동해시 가서 동해시 구경 조금 하고 다음날 서울로 넘어가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어요.

 

운탄고도 9길도 같이 끝내?

 

운탄고도 8길 종점 신기역에서 운탄고도 9길이 시작되었어요. 운탄고도 9길은 신기역에서 삼척 소망의 탑까지였어요.

 

"이거 운탄고도 맞아?"

 

강원도 남부에서 생산된 석탄은 기차로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으로 운송했어요. 삼척으로 운송된 석탄도 있기는 했어요. 지금은 없어진 삼척화력발전소가 석탄 발전소였고, 이쪽으로도 석탄이 운송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석탄 대부분은 동해시 묵호항으로 운반되었어요. 한반도 내륙 철도로 운송할 수 있는 석탄은 화물 열차로 이동되었고, 선박을 이용해 운송해야 하는 석탄은 전부 묵호항으로 이동되었어요.

 

"이쪽은 탄광 지역이 아니지 않나?"

 

운탄고도 8길과 9길을 하루에 끝내는 것은 진짜 무리였어요. 운탄고도 9길은 총 거리 25.15km에요. 8길과 9길을 합치면 40km가 넘는 길이에요. 오직 길만 걷겠다고 해도 엄청나게 걸어야해요. 그런데 저는 단순히 운탄고도 8길 완주가 목표가 아니었어요. 운탄고도 8길을 걸으며 여행하는 게 목표였어요. 운탄고도 9길을 걸으려면 신기역에서 다시 태백으로 돌아가서 다음날에는 버스 타고 신기역으로 가야 했어요.

 

문제는 운탄고도 9길은 석탄과 연관이 깊은 지역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최소한 신기역부터는 석탄 생산지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래도 신기역은 석탄 운반의 길이라는 의미가 있기는 했어요. 문제는 미로역 너머부터였어요. 미로역에서 마평교 구간까지는 석탄 운반의 길이 맞아요. 하지만 마평교에서 석탄은 도경리역을 거쳐 동해시로 이동해요. 운탄고도 9길은 마평교에서 오십천을 따라 동해안 삼척항으로 가서 해안가 따라 소망의 탑으로 올라가구요.

 

"석탄의 길로 가?"

 

운탄고도 8길을 마친 후 태백으로 돌아가서 다음날 운탄고도 9길을 완주한 후 삼척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것보다는 차라리 신기역에서 기차 타고 동해시로 이동하는 것이 더 나았어요.

 

"동해시에 게스트하우스 하나 있다."

 

동해시에는 게스트하우스가 한 곳 있었어요. 1박에 2만원으로 해결할 수 있었어요. 1박에 2만원이라면 동해시로 넘어가서 동해시 구경하고 다음날 서울 돌아가는 것도 좋은 선택지였어요.

 

"동해시에 내가 갈 만한 곳 있나?"

 

석탄의 길을 쫓아가는 거니까 묵호항역으로 가서 묵호항으로 가야 했어요. 동해역에서 버스 타고 발한동으로 넘어가서 묵호항역으로 간 다음 묵호항까지 가면 진짜로 석탄의 길이었어요. 묵호항역은 지난 번에 동해 여행 갔을 때 안 갔던 곳이었어요. 그러나 오직 묵호항역만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도 갈 만한 곳이 있다면 가고 싶었어요. 이번에는 동해시 지도를 찾아봤어요.

 

"여기 뭐지?"

 

<08 동해시 미스테리 지역>

 

여기는 무조건 사연 있는 동네다.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에 '시장용 연립주택'이라고 표시된 지역이 있었어요. 시장용 연립주택이라고 표시된 곳 주변을 보면 매우 좁은 건물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이런 곳은 특별한 사연이 있는 동네일 확률이 99.99%였어요. 아무리 우리나라가 평지가 부족하고 인구밀도가 세계적으로 높은 국가라고 해도 저런 식으로 건물을 지어놓는 일은 별로 없어요.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 시장용 연립주택과 그 근처인 향노봉 일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봤어요. 딱히 나오는 것이 없었어요. 그저 낙후된 곳이라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예정이라는 기사 뿐이었어요.

 

"여기 뭔가 있을 건데..."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 새시장길 마을. 어떤 사연이 있는 곳인지 궁금했어요. 블로그로 교류하는 동해시에 대해 잘 아시는 분께 블로그 댓글로 새시장길 마을에 대해 아시냐고 질문했어요. 그분도 그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어요.

 

아무도 모른다.

아무 것도 없다.

 

여기는 정말로 가볼 가치가 매우 높음!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 새시장길 마을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은 딱 하나 뿐이었어요. 제가 직접 그 동네로 가서 동네 주민분들께 여쭈어보며 정보를 수집해야 했어요. 여기는 어떤 깊은 사연이 있는 동네였어요. 어떤 사연이 있는 곳인지 알 수 없었어요. 그것을 밝히러 가야 했어요. 정해진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며 그 속에 숨겨진 여러 이야기를 찾아내는 여행이었어요.

 

여행 일정이 완성되었어요.

 

2022년 10월 5일

새벽 5시 50분 의정부발 태백행 시외버스 타고 태백으로 이동.

태백에서 물닭갈비 먹고 4번 버스 타고 돌아다님.

밤에 성지사우나 가서 1박

 

2022년 10월 6일

새벽에 찜질방에서 나와서 24시간 카페 티타임커피, 24시간 식당 부래실비식당 감.

새벽 5시 50분 태백발 도계행 시외버스 타고 도계로 이동.

도계에서 신기까지 운탄고도 8길 걸음.

신기역에서 기차로 동해역 이동.

동해역에서 버스 타고 묵호로 이동.

묵호에서 새시장길 마을, 향로시장, 묵호항역 들리고 묵호항으로 가서 석탄의 길 마침표 찍기

동해시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

 

강원도 남부 석탄의 길 일정이 완성되었어요. 2022년 10월 7일은 어떻게 할 지 동해시 가서 결정하기로 했어요. 일기예보를 보면 10월 5일이 아니라 뒤로 더 미뤄야했지만 미룰 수 없었어요. 통리장을 보려면 무조건 10월 5일에 태백시를 가야 했어요. 만약 10월 5일에 태백시를 안 가면 10월 15일이 되어야 태백시 가서 통리장을 볼 수 있었어요.

 

'날씨가 제발 조금이라도...'

 

태백 통리장 때문에 뒤로 미룰 수 없고 무조건 2022년 10월 5일에 강행해야 하는데 일기예보는 비 퍼부을 거라고 하고 있었어요. 특히 동해시는 풍랑 경보까지 겹쳐 있었어요. 최악의 날씨 예정이었어요. 정 안 되면 전에 도계 갔을 때처럼 우비 사서 뒤집어쓰고라도 걸을 거였어요. 그러나 그런 일이 발생 안 하기만을 바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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