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잊혀진 어머니의 돌 (2022)

잊혀진 어머니의 돌 - 23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함백 라멘식 철교 조동철교

좀좀이 2022. 12. 1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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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는 매우 조용했어요.

 

 

'예전에 이런 곳 가본 적 있지 않았나?'

 

개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마을. 외국 여행 다닐 때 갔던 기억이 있었어요. 얼마 생각하지 않아서 바로 떠올랐어요. 아제르바이잔 셰키였어요. 아제르바이잔 셰키와 묘하게 비슷해 보였어요. 셰키도 칸 사라이로 올라가는 길에 개천이 있었고, 개천 양쪽으로 가옥이 늘어서 있었어요. 셰키도 산지에 있는 도시였어요. 차이점이라면 아제르바이잔 셰키는 지금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중요한 도시이고, 강원도 정선군 함백은 쇠락한 마을로 전락했어요.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 함백에 있는 개미촌은 이국적인 느낌도 있는 아름다운 동네였어요.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숨어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이 정도라면 여행 잡지, 여행 기사에 몇 번은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풍경이었어요. 오히려 지금까지 어째서 잘 알려지지 않고 이렇게 숨어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막연히 몰락한 탄광촌이라고만 알고 왔는데 매우 의외였어요.

 

 

 

 

'이런 곳은 공방촌으로 육성해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쇠락한 마을 중 아름다운 마을을 살리는 방법으로는 관광지로 조성하는 방법이 있어요. 새로운 산업을 유치할 수만 있다면야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는 것이 좋겠지만,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교통, 환경 등 따져야할 것이 매우 많아요.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동네를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관광지로 만드는 것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강원도 정선군 조동리 개미촌이 교통과 접근성이 좋은 지역은 아니에요. 자동차로 오려면 강원도 깊이 들어와야 했어요. 영월, 단양도 접근성이 별로 안 좋아서 제천을 통해 영월, 단양으로 여행와요. 제천을 베이스캠프 삼아서 제천에서 숙박하면서 영월, 단양을 여행하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함백은 가기 쉽지 않은 영월에서 더 내륙 산지로 들어가야 했어요.

 

기차로 가도 함백은 가기 좋은 곳은 아니에요. 함백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예미역이에요. 무궁화호 열차 타고 예미역까지 가서 예미역에서 다시 또 3km 정도 내부 산지쪽으로 들어가야 해요. 함백은 예미리가 아니라 조동리에요. 걸어서 못 갈 거리는 아니지만 동네를 다 둘러보기 위해 걷는 거리까지 고려하면 상당히 많아 걸어야하는 거리에요. 쉽게 갈 만한 곳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동네 구조를 보면 문화예술촌보다는 공방촌으로 육성하면 매우 아름답고 멋진 관광지가 될 거 같았어요. 공방촌이라고 해서 꼭 거창한 것을 만들어야 하지는 않아요. 소소하고 다양한 관광 기념품을 제작하고 다른 지역까지 판매하는 공방들도 있어요. 요즘은 인터넷 판매도 충분히 가능해요. 여러 소품과 기념품, 악세사리 만드는 공방이 이곳에 모여 있다면 엄청나게 아름다운 관광지로 변신할 수도 있을 거에요. 유명해질 때까지는 지자체에서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한 번 잘 조성되면 그때부터는 사람들이 오지 말라고 해도 몰려오는 곳이 될 거에요.

 

 

 

개울가로 내려갔어요.

 

 

 

개울가로 내려가서 주변을 둘러봤어요. 개울가에서 보는 풍경도 매우 아름다웠어요.

 

"여행 홍보를 하더라도 이런 곳을 홍보해야지!"

 

역시 여행은 강원도였어요. 풍경 감상은 무조건 강원도에요. 이건 우리나라에서 절대 진리에요. 예전에 우리나라 여행할 때 느꼈던 것이지만 다시 한 번 느꼈어요. 한편으로는 이런 관광자원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어요.

 

 

제가 걸어내려온 계단을 사진으로 찍고 개울물을 바라봤어요.

 

 

하천 물에 손을 담갔어요.

 

"역시 강원도 물이야."

 

물이 차가웠어요. 시렵다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제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의정부나 잘 놀러가는 서울의 물보다는 확실히 더 차가웠어요.

 

강원도는 물이 차갑다.

 

강원도 춘천을 처음 놀러갈 때였어요. 춘천 사는 친구가 춘천은 서울보다 물이 확실히 차다고 이야기해줬어요. 춘천에서는 여름에도 찬물이 아주 시렵도록 차가운데 서울 가서 찬물 틀면 춘천에 비하면 아주 뜨뜻미지근한 물이 콸콸 쏟아져나온다고 했어요. 춘천 사는 친구의 말을 듣고 그건 한여름에 물탱크 뜨겁게 달아올라서 물이 뜨뜻해진 걸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줄 알았어요. 춘천 도착해서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였어요. 물이 정말 확실히 차가웠어요.

 

예전 춘천 처음 놀러갔을 때 화장실에서 손 씻을 때 찬물이 아주 차가워서 살짝 신기해했던 것이 떠올랐어요. 여기 물도 아주 시원했어요. 가슴에 바르면 심장마비 걸릴 위험이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다른 곳 물보다는 확실히 시원했어요.

 

개울가에서 다시 위로 올라왔어요.

 

 

이것이 바로 강원도의 친환경 담장

 

보고 웃었어요. 밭 가에에 연탄재를 쌓아서 담을 만들어놨어요. 연탄재 담장은 서서히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물 먹은 연탄재 담장은 진한 살구색과 검은색이 점묘파 기법으로 그려놓은 것처럼 뒤섞여 있었어요.

 

동네를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확실히 많이 봤던 가옥 형태야.'

 

도계에서도 봤었고, 멀리 서울에서도 달동네에서 봤던 가옥 형태였어요. 과거에 빠르게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한 긴 단층 주택이었어요. 2019년에 서울 달동네 돌아다니던 때가 떠올랐어요.

 

'그때는 카메라 들고 사진 참 열정적으로 찍었는데...'

 

2019년에 서울 달동네를 돌아다니며 '사람이 있다' 시리즈를 쓰게 된 계기는 그때 제주도 다녀와서 그때까지 사용하던 후지필름 HS10 디지털 카메라를 수리맡기면서 새로운 디카를 구입했기 때문이었어요. 그 디카가 바로 캐논 파워샷 SX70 HS였어요. 정말 아주 오랜만에 새로운 디카를 구입해서 열심히 사진찍으러 다녔고, 글도 열심히 썼어요. 서울을 가장 재미있게 돌아다녔던 때였어요.

 

'그해 이후로 정성껏 연재기 길게 쓴 글이 없지?'

 

2019년에 캐논 파워샷 SX70 HS를 들고 서울 달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사람이 있다' 시리즈를 썼고, 일본 도쿄 여행 다녀와서 '예습의 시간' 여행기를 썼어요. 그 이후에는 그렇게 특별히 정성껏 긴 연재물을 쓴 적이 없었어요.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2022년 되어서 여름에 동해 여행을 갔다 와서 쓰고 있는 여행기는 아직 끝이 안 났어요. 동해 여행기를 쓰면서 예전 감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느끼고 있었어요.

 

'나만의 새로운 여행을 하면 다시 살아날까?'

 

동해 여행기가 지지부진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친구와 같이 간 여행이었지만 친구와 같이 간 것도 아니고 혼자 간 것도 아닌 애매한 여행이었어요. 지금 이 여행처럼요. 혼자 다니며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딱히 없었고, 친구와 다니며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딱히 없었어요. 이렇게 밋밋하고 특징없는 여행으로 글을 쓰려고 하면 매우 힘들어요. 글을 쓸 때 포인트를 잡고 강약 조절이 쉬워야 글이 술술 잘 나오고, 글 쓰는 재미도 있고 결과물도 좋게 잘 나와요. 포인트도 안 잡히고 밋밋하면 쥐어짜가면서 글을 써야 해서 힘들고 재미없는데 결과물도 영 시원찮아요.

 

혼자 여행하면 심심하고 무료한 부분이 있어요. 그렇지만 이 친구와 이렇게 다니는 것이 과연 혼자 다니는 것보다 나은지 의문이었어요. 어쩌면 다시 나만의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는 것이 여행도 훨씬 재미있고, 돌아와서 여행기도 즐겁게 쓸 수 있을 거였어요. 당장 지금 이 여행도 혼자 다니는 것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다음에 여기를 혼자 올까 고민하며 계속 걸었어요.

 

 

 

 

개미촌은 매우 조용한 동네였어요. 개 짖는 소리도 안 들렸어요.

 

 

 

 

 

 

 

 

 

개미촌에는 조그만 분식집과 칼국수집이 있었어요.

 

"둘 중 한 곳에서 밥 먹고 가자."

 

두 곳 모두 숨어 있는 동네 맛집일 거 같았아요. 특히 칼국수집은 식당 이름이 '칼국수집'이었어요. 식당 이름 때문에 한 번 가보고 싶어졌어요. 대체 얼마나 맛있는 식당이길래 식당 이름이 '칼국수집'인지 궁금했어요.

 

칼국수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칼국수집은 일반 민가였어요. 할머니께서 민가에서 장사하고 계셨어요. 실내에는 칼국수면 반죽이 얇게 펼쳐져서 건조되고 있었어요.

 

 

"지금 식사 되나요?"

"되요."

 

오후 3시 반 조금 넘은 시각이었어요. 점심 시간은 끝났고 저녁 시간은 아직 한참 남은 매우 애매한 시각이었어요. 할머니께 지금 식사 되는지 여쭈어봤어요. 할머니께서는 된다고 하셨어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칼국수 2개를 주문했어요. 잠시 뒤 칼국수가 나왔어요.

 

 

 

"여기 진짜 맛집이다!"

 

칼국수는 꼬꼬면과 맛이 비슷했어요. 국물맛은 꼬꼬면과 비슷했지만 꼬꼬면보다 닭고기 향이 훨씬 강했어요. 칼국수 면발은 매우 얇고 부드러웠어요. 칼국수 면발은 안 씹고 그대로 삼켜도 될 정도로 얇았어요. 면발을 젓가락으로 집을 때 면발이나 밀가루 반죽을 집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물에 젖은 한지를 가볍게 뜨는 느낌이 들었어요.

 

국물에 다진 고추를 집어넣자 맑고 얼큰한 국물이 되었어요. 얼큰한 하얀 국물이 되자 국물이 더욱 맛있어졌어요. 국물을 한 숟갈씩 떠서 마실 때마다 속이 든든해졌어요. 칼국수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여기 칼국수는 면과 국물 모두 너무 맛있었어요.

 

칼국수는 양도 많았어요. 다 먹자 매우 배불렀어요. 다 먹고 할머니께 계산한 후 이 동네에 대해 여쭈어봤어요.

 

"할머니, 여기에서 오래 계셨어요? 이 가게 매우 오래된 가게 같아요."

"오래 있었지."

"그러면 아주 오래 전부터 여기에서 장사하셨어요?"

"응. 86년부터 했으니까."

 

할머니께서는 1986년부터 이 동네에서 식당을 하셨다고 하셨어요.

 

"할머니, 여기는 탄광촌 마을인가요?"

"여기? 아니야. 여기는 홍수 후에 지은 집들 있는 곳이야."

"어? 그러면 탄광이랑 관련 없어요?"

"응. 옛날에 홍수 이후에 이재민들이 만든 마을이야."

 

할머니께서는 개미촌은 탄광과 관련없는 동네라고 하셨어요. 의아했어요. 개미촌에서 멀지 않은 동네인 함백광업소 마을은 탄광마을이었어요. 개미촌과 함백광업소 마을은 멀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붙어 있는 마을이었어요. 그런데 함백광업소 마을 쪽에서는 탄광 마을이라고 했는데, 칼국수집 할머니께서는 개미촌이 탄광과 관련없는 동네라고 하셨어요.

 

"이쪽에 탄광 관련된 건 없나요?"

"그런 건 다 옛날에 없어졌어. 이제 흔적도 없지."

 

할머니께서는 이 일대에 탄광 관련된 것은 이제 더 이상 남아 있는 것이 없다고 하셨어요. 바로 붙어 있다시피 한 옆동네에서 들은 말과 완전히 달랐어요.

 

'누가 맞는 거지?'

 

식당에서 나오며 누가 맞는 말을 한 건지 궁금해졌어요. 함백광업소 마을과 개미촌이 아주 먼 동네라면 그럴 수 있지만, 둘은 연결되어 있다시피 한 동네였어요. 한 동네라고 해도 될 정도였어요. 종로3가에서 들은 동네 이야기와 종로1가 - 종각에서 들은 동네 이야기가 완전히 다른 것과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렇게 동네에 대한 주민분들의 이야기에 많은 차이가 발생할 거리가 아니었어요. 정말 많이 차이가 난다고 해봐야 을지로와 종로 차이만도 안 나는 두 동네였어요. 종로는 주로 상업 지역이고 을지로는 상업지역과 공업지역이 뒤섞여 있는 지역이라 실제 가보면 차이가 꽤 있어요. 그러나 개미촌과 함백광업소 마을은 아무리 봐도 크게 차이가 있다고 해봐야 번화가와 번화가에 있는 오피스텔 밀집지역 정도였어요. 한쪽에서는 탄광 마을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탄광 마을이 아니라고 하는 말이 나올 만한 곳이 아니었어요.

 

 

이 문제는 나중에 여행 끝나고 돌아와서 한참 후에야 정답을 알게 되었어요.

 

강원도 정선군 조동리에 있는 개미촌은 1972년 조동리에서 대홍수가 발생했을 때 수재민을 위해 건설한 사택이 모여 있는 마을이에요. 이때 수재민들이 사택을 건설하면서 실의를 딛고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자는 의미로 마을 이름을 '개미촌'으로 명명했다고 해요. 안경다리 탄광마을 - 함백광업소 마을은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 때문에 생긴 마을이지만, 개미촌은 함백광업소가 아니라 1972년 조동리에서 발생한 대홍수 때문에 생긴 수재민 마을이에요. 마을 생성 원인이 달라요.

 

한국에서 석탄합리화정책 시행 이후 탄광이 폐광될 때, 정부에서는 폐광 복구비를 지원했어요. 광산 근로자들은 타지에서 큰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광산이 폐광 되면 보상금을 받고 순식간에 썰물처럼 타지역으로 빠져나갔어요. 사람이 떠난 사택촌은 광산회사에서 빠르게 철거했다고 해요. 강원도 남부 많은 탄광들이 폐광된 지 시간이 꽤 흘렀고, 과거 흔적은 대부분 철거되었기 때문에 현재 그 흔적을 찾아보기 매우 어려워요. 사택 자리가 밭으로 이용되고 있어서 흔적이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수풀이 우거지며 아예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에요.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는 1994년 1월에 폐광했어요. 제가 갔을 때는 2022년이니 폐광된 지 10년이 아니라 30년이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이러니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 흔적이 제대로 남아 있을 리 없었어요. 거의 다 없어졌고, 아주 일부만 남아 있을 뿐이었어요.

 

저는 그 당시 전혀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할머니께 탄광 및 탄광촌 흔적이 남아 있냐고 여쭈어본 것은 '30년전에 철거한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있는지'를 물어본 꼴이었어요. 당연히 할머니께서는 30년전에 철거한 흔적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다고 대답하신 거였어요. 이렇게 과거 사정을 반영해서 보면 조동리에 함백역이 남아 있고 안경다리 탄광마을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어요.

 

조동철교쪽으로 돌아갔어요.

 

 

길가에는 과거 자미갱 자리였던 곳에 함백탄광 기념공원이 건립되어 있다는 이정표가 있었어요. 3.5km 떨어져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이정표는 우거진 수풀에 뒤덮여가고 있었어요.

 

"저기 갈까?"

"아니. 우리 이제 시간 없어."

 

친구는 또 싫다고 했어요. 친구가 시간이 없다고 말한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어요. 아무리 영월로 돌아가야한다고 해도 여유가 있었어요. 가기 싫은데 시간 없다고 핑계댈 뿐이었어요. 친구와 같이 다니고 있었고, 쏘카로 차를 빌려서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다녀오겠다고 할 수도 없었어요. 혼자 다녀오겠다고 하면 엄청 삐지고 징징거릴 거였어요.

 

조동철교에 도착했어요.

 

 

매우 운이 좋았어요. 조동철교를 보고 있는데 때마침 무궁화호 열차가 조동철교를 지나갔어요. 기차가 조동철교를 지나가는 사진을 열심히 찍었어요.

 

조동철교는 우리나라 유일의 라멘식 교량이에요. 라멘식 교량은 다리 상판, 보, 교각 등을 전부 일체형으로 지은 다리에요. '라멘식 교량'에서 '라멘'은 일본어 라멘이나 라면과는 관련없는 말이에요. '라멘'의 어원은 독일어 Rahmen이에요. 의미는 '골조'라는 뜻이에요.

 

조동철교가 라멘식 철교로 건설된 이유는 태백선 화물철도는 석탄 화물, 시멘트 화물 등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 철도이다 보니 교각도 엄청난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해야 했어요. 태백선을 건설하던 1960~70년대에는 엄청난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하고 건설할 기술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조동철교를 라멘철교로 건설했어요.

 

우리나라가 해방된 이후 강원도 정선 지역 탄광 개발은 1948년 영월읍에서 조양강으로 유입되는 의림천 상류지역인 신동읍 함백, 예미에서 시작되었어요. 이후 철도 건설과 병행해서 동남천 상류 지역인 사북으로 이동했어요. 특히 영월~신동, 신동~고한, 증산~정선, 정선~구절리, 고한~태백간 정암터널로 철도 연결망이 급속히 구축되면서 사북, 고한, 더 나아가 태백 지역까지 탄광 개발이 본격화되었고, 운송 기반이 크게 확충되었어요.

 

운좋게 조동철교를 지나가는 무궁화호 기차를 본 후 다시 쏘카로 빌린 승용차에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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