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랑 여행 같이 갈래?"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있는 친구가 제게 여행을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어요.
"어디?"
"서산."
"서산? 갑자기 왜?"
"거기 성지순례길 걷고 싶어서."
"너 그거 진짜 너 진심으로 가고 싶은 거야?"
친구는 제게 여행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곤 했어요. 저도 이 친구에게 여행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곤 하구요. 그렇게 해서 올해 둘이 여행을 같이 몇 번 갔다 왔어요. 여기에서 꽤 차이가 있었어요. 저는 정확히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이유도 확실해야 움직여요. 제가 친구에게 여행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할 때는 정확히 어떤 곳을 어떤 목표로 같이 여행가지 않겠냐는 것이에요. 반면 친구는 딱히 목적지고 목적도 제대로 정하지 않고 그저 막연히 아무 데나 여행 가지 않겠냐고 물어봐요.
목적지와 목표 없이 떠나는 여행. 이게 잘 되면 상당히 재미있어요. 그러나 아주 높은 확률로 여행이 지루해지고 돈만 엄청 쓰고 돌아올 확률이 높아요. 특히 자동차 여행으로 가면 이런 위험이 매우 높아져요. 정말 하루 종일 차만 타고 다니다 일정이 끝날 수 있어요.
드라이브 여행 즐긴다는 건 몇 시간 주구장창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게 아니에요. 중간에 자주 차 세우고 놀고 즐기며 가는 거죠. 특히 옆좌석 앉은 사람은 웬만해서는 길이 험하든 좋든 그게 그거에요. 진짜 정신나간 위험한 길을 달리지 않는 이상요. 옆좌석에서 가만히 앉아서 한 시간 넘게 차 타면 엄청 지루해져요. 그렇다고 둘이 떠들고 잡담할 게 엄청 많은 것도 아니구요. 설령 떠들고 잡담할 게 많다고 해도 이 소재 고갈은 하루 버티기도 어려워요.
자동차로 드라이브 여행을 가려면 그래서 중간에 어디에서 쉴 지, 어디에서 잠시 놀 수 있는지 꼼꼼히 살피고 움직여야 해요. 이게 배낭여행 스타일과 상당히 달라요. 특히 시골로 가면 이런 특징과 차이점이 확 커져요. 시골길은 차 세우기 마땅치 않은 길이 대부분이거든요. 갓길이고 뭐고 없이 좁게 난 1차선, 2차선 도로에서 차를 어떻게 세워요. 물론 길에 차가 아예 없다면 잠시 몰래 살짝 세우고 차에서 나와서 기지개 정도는 켤 수 있겠지만, 차를 오래 세우고 주변 둘러보고 돌아오는 것 같은 건 어려워요.
친구와 자동차 드라이브 여행을 몇 번 갔다가 아주 제대로 배웠어요. 친구는 자동차 몰고 여행가자고 하는데 목적지도 목표도 없고 가는 길에 여기저기 들르고 세울 곳 없으면 이거 정말 돈 아깝고 시간 아까운 여행 될 게 뻔했어요.
하필 서산이었어요. 서산은 딱히 크게 볼 게 없는 지역으로 알고 있었어요. 서산에서 유명한 거라고는 해미읍성 하나 있어요. 나머지는 그렇게까지 유명한지 모르겠어요. 친구가 서산에 가자고 하니까 당연히 진짜 가보고 싶고 가서 뭐 할지 정하고 가자고 한 거냐고 물어봤어요.
친구는 서산에 있는 성지순례길을 걷고 싶어서 간다고 했어요. 그래서 좋다고 했어요. 걷기 여행이야 재미있으니까요. 서산까지 차 타고 가서 거기에서 걸으며 여행하는 거라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응, 예수님께서 오지 말라신다.
친구가 제가 있는 의정부로 먼저 오겠다고 했어요. 그러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도착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어요. 한참 지나서야 연락이 왔어요. 의정부 거의 다 왔는데 길이 막혀서 한 시간째 발이 묶여 있다고 했어요.
친구가 간신히 의정부에 도착했어요. 친구 차에 올라탔어요. 서산에 가려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야 했어요. 잘 가는 중이었어요. 차가 점점 밀리기 시작했어요.
"야, 씨...차선 바꿔!"
"왜?"
친구에게 차선 빨리 바꾸라고 했어요.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물어봤어요.
영화에서나 보던 자동차 사고로 인한 화재. 친구도 저걸 보고 기겁하며 차선을 바꿨어요.
사고 지점을 지나가자 이번에는 공사한다고 차가 또 엄청 막혔어요.
서산 도착하자 예상 시간보다 또 한 시간 늦게 도착했어요. 해미읍성 근처에 차를 세운 후 친구가 순례길을 걷자고 했어요. 순례길이 어떻게 되나 봤어요.
"야, 이건 오늘 못 걷잖아!"
서산 천주교 순례길은 11.3km였어요. 걸어가면 걸어서 돌아와야 하니 2를 곱해야 실제 걷는 거리가 나와요. 이거 다 걸어가면 22.6km. 이건 이미 늦었어요. 숙소도 안 잡았고 둘 다 밥을 아예 못 먹었어요. 22.6km면 초행길이니까 빨리 걸어서 시간당 3km씩 걷는다고 쳐도 7시간이 넘었어요. 오후 3시 넘어서 왔는데 무리였어요.
오직 편도로만 걷고 종점에서 돌아온다면 대충 4시간 잡아야 했어요. 그런데 이것도 매우 안 좋아보였어요. 하필 끝나는 지점이 '대곡리'였어요. '동'이 아니라 '리'였어요. 게다가 그냥 동에 있는 '리'도 아니고 '읍'에 있는 '리'도 아니고 무려 '면'에 있는 '리'였어요. 이러면 택시 타고 돌아오는 것도 쉽지 않을 거라 봐야 했어요.
이건 순례길이 아니라 순례길순례길이다.
시작부터 뭔가 느낌이 매우 나빴어요. 친구가 의정부 온다고 하다가 차에 갇혀서 1시간 늦었지, 서해안 고속도로 타고 가다가 사고 현장 봤지,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정체로 또 1시간 늦었어요. 이건 예수님이 오지 말라고 뜯어말리신 거였어요.
내가 지금 순례하는 길을 걸으러 온 게 아니라 순례길을 순례하는 길을 걸으러 왔다.
애초에 이 코스를 걸으려면 전날 밤에 이야기를 마치고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어요. 그래야 조금 걷다가 돌아오든가 하죠. 차까지 돌아와야 하니 2km 걸으면 걸어서 돌아오려면 4km 걸어야 하고, 4km 걸으면 걸어서 돌아오려면 8km 걸어서 돌아와야 했어요. 이렇게 2배씩 실제 걸어야하는 거리가 늘어났어요. 대중교통, 택시 타고 차 세운 곳으로 돌아온다 쳐도 아침에 시작해야 했어요.
사태 수습을 합시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둘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어요. 결론은 해미읍성 둘러보고 끝나는 길로 차 타고 가서 거기만 걷고 서산 시내로 돌아와서 밥 먹고 숙소 돌아가기로 했어요.
다행히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 한티고개 코스는 매우 마음에 드는 코스였어요. 길도 예쁘고 적당한 오르막이라 가벼운 운동도 되는 코스였어요. 보물찾기하는 것처럼 해미 한티 공소를 찾아가는 재미도 있었어요.
"우리 홍성 갈래?"
"홍성?"
"어. 홍성 여기에서 금방이야."
친구가 갑자기 홍성을 가자고 했어요. 홍성에 대해 알아본 것은 전혀 없었어요. 그러나 서산보다는 훨씬 보고 돌아다니고 놀 게 많을 거 같아서 홍성으로 가자고 했어요.
친구가 운전하는 동안 홍성 숙소와 홍성 맛집을 검색했어요.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홍성읍에서 숙소를 잡고 밥을 먹기로 했어요. 숙소를 찾아서 예약한 후, 맛집을 찾아봤어요.
"홍성 공식 블로그에서 맛집 쫙 정리해놨다!"
충청남도 홍성군 공식 블로그에는 홍성군 공식 맛집 26곳이 정리된 글이 있었어요. 충청남도 홍성군 보건소는 2021년 주민 설문조사와 전문가 선정위 심사를 거쳐서 홍성맛집 26곳을 선정했다고 해요. 홍성군은 이들 맛집을 누리집과 책자로 널리 홍보하는 한편 지역 관광자원과 연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관광부서 등과 협의하고 있다고 해요. 맛집은 2년마다 재심사하고, 대표자나 위치 등이 바뀌어도 다시 심사를 받아야한다고 해요.
충청남도 홍성군 추천 맛집 26곳을 쭉 살펴봤어요. 눈에 띄는 식당이 하나 있었어요. 김치말이 전골 맛집인 오누이 식당이었어요.
"저녁에 김치말이 전골 어때?"
"나야 좋지."
친구가 김치말이 전골 좋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녁은 오누이식당 가서 김치말이 전골을 먹기로 했어요.
오누이 식당으로 갔어요.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좌석으로 가면서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지 쭉 봤어요. 전부 김치말이 전골을 먹고 있었어요. 김치말이 전골에 면사리 같은 것을 추가해서 먹고 있었어요. 친구와 메뉴 고민 없이 김치말이 전골을 주문했어요.
밑반찬이 나왔어요. 전골이 끓기 전에 밑반찬부터 하나씩 먹어봤어요.
"여기 오이무침 엄청 맛있어!"
"어! 이건 한국 최강이다!"
밑반찬으로 나온 오이무침이 정말 맛있었어요.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오이무침 중 가장 맛있었어요. 아직 김치말이 전골을 안 먹어봤지만, 오이무침 하나만으로 만족도가 폭발했어요. 여기는 정말 오이무침 맛집이라고 소개해도 되는 집이었어요. 그냥 오이무침 맛집이 아니라 전국 최강 오이무침 맛집이라고 소개해도 충분할 맛이었어요. 오이무침이 정말 예술이었어요.
오이무침은 일반적인 오이무침에 비해 조금 더 매콤했어요. 신맛은 별로 없었고, 단맛은 있기는 했지만 절제되어 있었어요. 깔끔하고 뒤끝없는 매콤한 오이무침이었어요. 밥도둑 수준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간식으로 팔아도 맛있다고 사람들이 줄서서 먹을 맛이었어요.
친구와 오이무침을 순식간에 다 먹었어요. 오이무침을 리필해달라고 했어요. 오이무침을 리필받아서 또 다 순식간에 먹어치웠어요. 세 번 리필하는 건 정말 아닌 거 같아서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참았어요. 오이무침을 아주 산처럼 쌓아놓고 먹고 싶었어요. 다른 오이무침들과 차원이 다른 맛이었어요. 다른 오이무침이 3차원 세계 속 음식이라면 여기 오이무침은 4차원 세계 속 오이무침이었어요.
"여기 오이무침 맛집으로 글 써야하는 거 아냐?"
친구와 웃었어요. 진짜 오이무침이 너무 맛있었어요. 김치말이 전골 안 먹어도 오이무침만으로도 엄청 만족스러웠어요.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누이식당 김치말이 전골은 위 사진과 같아요. 김치말이만 따로 사진 찍는 것은 까먹었어요. 김치말이도 맛있어서 김치말이 사진 찍는 것을 잊어버리고 먹는 것만 열심히 먹었어요.
김치말이 전골 국물맛은 살짝 얼큰했어요. 국물 자체는 맛있기는 하지만 평범한 것 같은 맛이었어요.
김치말이는 주먹만한 크기였어요. 한 사람당 3개씩 먹도록 되어 있었어요. 김치말이 3개면 양이 꽤 되었어요.
김치말이는 만두에서 만두피를 밀가루 피 대신 김치를 쓴 음식이었어요. 왕만두에서 만두피가 밀가루 피가 아니라 배추김치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되요. 김치말이는 매우 크기 때문에 잘라먹으라고 가위도 같이 나왔어요. 가위로 김치말이를 잘랐어요. 안에서 갇혀 있던 육즙이 찍 쏟아졌어요. 순간 국물맛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김치말이를 자르기 전에는 김치찌개와 김치국 중간 정도 되는 깔끔한 국물이었는데 김치말이를 자르자 김치 만두국 같은 맛으로 확 변했어요.
"여기는 국물 맛을 두 종류로 먹을 수 있네?"
김치말이를 자르면 김치 만두국 비슷한 맛이고, 김치말이를 안 자르면 김치국과 김치찌개 중간쯤 되는 맛이었어요. 개인 그릇을 2개 써서 하나는 순수한 국물, 다른 하나는 김치말이도 넣고 김치말이 잘라서 육수 섞인 국물로 만들어서 먹으면 두 가지 맛을 즐길 수 있었어요.
오누이 식당 김치말이 전골은 매우 맛있었어요. 건강 챙기고 다이어트 신경쓰면서 먹는 기분이 들었어요. 밀가루 반죽 대신 배추김치 먹는 거니까요. 양도 적지 않았어요. 다른 테이블에서는 전부 면사리 추가해서 먹는데 저와 친구는 오직 전골만 먹었어요. 그래도 충분히 식사가 되었어요.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에 있는 오누이식당은 오이무침과 김치말이 전골이 매우 맛있었어요. 저녁 식사로 먹기 참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