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룰 외국의 아랍어 교과서는 중앙아시아 국가인 투르크메니스탄의 중학교 아랍어 과목 1학년 교과서에요. 투르크메니스탄은 한국과 학제가 매우 달라요. 투르크메니스탄은 초등학교가 4학년까지 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초등학교 5학년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중학교 1학년이에요. 이 교과서는 투르크메니스탄 중학교 1학년 교과서이지만, 한국 기준으로 본다면 초등학교 5학년 과정에 속하는 교과서에요.
'중앙아시아는 아랍어 교과서가 어떨까?'
이슬람 국가에서는 아랍어 교육이 나름대로 발달해 있어요. 경전인 쿠란을 읽기 위해서는 아랍어를 알아야 해요. 쿠란은 아랍어로 되어 있고, 이슬람에서는 하느님인 알라가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오직 아랍어로 된 쿠란만을 쿠란이라고 인정해요. 쿠란을 다른 언어로 번역한 것은 쿠란이 아니라 일종의 해설서에 불과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권에서 아랍어 교육에 대한 수요는 항상 있어요. 얼마나 깊게 읽고 진짜 쿠란을 전부 읽을 수 있는 레벨까지 학습하는지와는 별개 문제로 아랍어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항상 많아요.
여기에서 핵심은 '수요는 있다'를 잘 해석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배우고 싶어하는 열망은 있어요.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이 의지대로 흘러가지는 않아요. 그래서 아랍어를 공부했다고 하고, 아랍어를 공부한다고 하는데 아랍어를 잘 모르는, 심지어는 진짜 아예 모르는 수준인 무슬림들도 상당히 많아요. 거의 일종의 주문 외우는 것처럼 쿠란 경구와 자국어 해석을 1:1 매칭으로 몇 개 외우고 아랍어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요.
이슬람권에서는 어쨌든 수요는 항상 있고 나름대로 관심도 꽤 있기 때문에 아랍어 교육은 나름대로 발달해 있어요. 아랍어를 아는 것과 별개로 아랍어 학습에 대한 욕구는 있다는 거에요.
중앙아시아 국가 중 타지키스탄의 아랍어 교과서를 구한 후 매우 놀랐어요. 타지키스탄의 아랍어 교과서는 무려 키릴 문자로 아랍어를 전사해서 1년간 배우도록 되어 있었어요. 상당히 흥미로운 점이었어요. 타지키스탄은 1년 동안 사실상 아랍 글자를 단 한 글자도 제대로 안 배우고 아랍어를 배우도록 되어 있었어요.
"타지키스탄 말고 다른 나라도 있을 건가?"
그래서 한 번 찾아보기로 했어요. 이왕 교과서를 찾기로 했으니 투르크메니스탄부터 찾아보기로 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은 인터넷에 자료 자체가 극히 드문 국가에요. 그래서 제일 기대가 안 되었어요. 제일 기대가 안 되었기 때문에 빠르게 찾아보고 빠르게 포기할 생각이었어요.
"뭐야? 있네?"
투르크메니스탄은 아랍어 과목이 정규 교과에 편성되어 있었어요. 아랍어 과목이 의무 교육은 아니었어요. 여러 외국어 선택 과목 중 하나로 아랍어 과목이 있었어요. 실제 학생들이 아랍어 과목을 얼마나 선택하고, 아랍어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가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중학교부터 아랍어 과목이 정식으로 있어요. 하지만 중학교는 고사하고 고등학교조차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학교가 거의 없어요. 그러니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상당히 큰 편인데, 이게 투르크메니스탄에도 해당할 수 있었어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투르크메니스탄에 아랍어 교과서가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게다가 이건 또 너무 쉽게 구해졌어요.
투르크메니스탄 중학교 1학년 - 5학년 아랍어 교과서는 이렇게 생겼어요.

맨 위에는 빨간색으로 اللغة العربية 이라고 적혀 있어요. 이것은 '아랍어'라는 말이에요.
그 아래에는 초록색으로 ARAP DILI 라고 적혀 있어요. ARAP DILI 는 투르크멘어로 '아랍어'라는 뜻이에요. 보통 아랍은 arab 이라고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투르크멘어에서는 아랍을 arap이라고 마지막에 b가 아니라 p를 써요.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요.
Umumy orta bilim berýän mekdepleriň V synpy üçin okuw kitaby
이 말은 일반 과정 학교 5학년 교과서라는 의미에요. 즉, 이 책은 투르크메니스탄 중학교 1학년 - 5학년 아랍어 교과서에요.

투르크메니스탄 중학교 1학년 - 5학년 아랍어 교과서는 처음에 이렇게 인사로 시작해요. 매우 평화롭고 정상적인 시작이에요.

그 다음에는 이렇게 아랍문자가 쭉 나와요. 여기까지는 이상할 게 없어보여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에서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아랍어 a 단모음이 투르크멘어 ä 라구?
투르크멘어 알파벳에도 a가 있어요. a가 없는 언어가 아니에요. 그런데 아랍어 a 단모음을 ä 로 전사해놨어요. ä 는 '아' 발음이 아니라 '애' 발음이에요. '애' 발음이 '아' 모음 쪽으로 가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아' 발음보다는 '에' 발음에 가까운 발음이에요. 아랍어 a 단모음은 a로 전사해놨으면 되었을 텐데 이걸 ä 로 전사해놨어요.

그 다음에는 이렇게 아랍어의 모음 발음과 모음 기호도 알려줘요.
여기까지는 그냥 별 특징 없어요. 시작에 이렇게 알려주는 교과서들도 있어요. 게다가 이건 중학교 교과서니까 충분히 감안할 수 있어요.

그 다음에는 이렇게 글자를 익히기 시작해요. 여기까지만 보면 매우 평범한 교과서에요. 매우 평화로워요.
그러나 이 다음부터 상당히 독특한 모습이 시작되요.

문장은 없다.
외우라는 단어는 많다.
신기할 정도로 문장은 안 나왔어요. 계속 단어만 나왔어요. 문장은 하나도 없고 단어만 계속 외우도록 시키고 있었어요. 두꺼운 영어 단어장 던져주고 일단 여기 있는 단어들 다 외우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게다가 더 특이한 점은 이 단어들을 하나씩 보면 주격인 것도 있고, 속격인 것도 있고, 대격인 것도 있고, 동사 미완료인 것도 있고, 동사 완료인 것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것에 대한 문법 설명은 단 하나도 없었어요. 진짜 무턱대고 닥치고 외우라고 하는 방식이었어요. 그것도 문장이 아니라 단어들만요.

게다가 글자를 알리프부터 야까지 순서대로 배우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전통 알파벳 순서인 아브자드로 배우는 것도 아니었어요. 다 배우기는 하는데 순서가 달랐어요.

맨 뒤에 이렇게 강독이 나와요.
이 문법들은 대체 다 언제 배웠대?
이게 참 신기한 일이었어요. 이 책은 문법을 제대로 안 알려줘요. 그저 알파벳 알려주고, 단어들만 쭉 나오고 단어를 외우게 해요. 그런데 정작 마지막에는 이렇게 지문이 있었어요. 게다가 이 지문을 보면 문법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에요.

이후 이렇게 단어 목록이 나와요.

맨 마지막은 이렇게 목차가 있어요.
아랍어 و는 뒷 단어와 반드시 붙여서 쓴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헷갈릴 지경이다
한국어 '그리고', 영어 'and'에 해당하는 아랍어 و wa는 뒷 단어와 반드시 붙여서 써야 해요. 한국어에서 조사 '와'를 반드시 붙여 써야 하는 것처럼요. '너와'라고 붙여서 써야지, '너 와'라고 띄어서 쓰면 안 되요. 아랍어 و wa도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비아랍권 교과서를 보면 이걸 띄어서 쓴 경우가 꽤 있어요. 이걸 하도 많이 보니까 이제는 저도 헷갈릴 지경이에요. 막 의심하게 되요. 이 오류는 이 책에서도 발견되요. 비아랍권 아랍어 교과서를 볼 때마다 계속 이 오류를 보다보니 멀쩡히 잘 알고 원래 절대 헷갈릴 수 없고 그 레벨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저조차 막 나의 믿음이 의심받는 경지에 다다른 기분이 들어요.
비아랍권 아랍어 교과서는 어느 나라 교과서인지를 떠나서 대체 왜 이런 오류가 계속 등장하는 걸까?
이 오류를 범하는 나라들은 특징이 있어요. 그 국가들 국어를 보면 띄어서 써요. 한국어에서 조사 '와'는 붙여서 쓰지만, 영어 'and'는 띄어서 써요. 이런 차이라고 보면 이 오류가 어떤 나라의 아랍어 교과서를 보든 비아랍권 교과서라면 한 번은 등장하는 게 납득이 되요.

참그나룬, 그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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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 중학교 1학년 - 5학년 아랍어 교과서 지문은 위의 구글 블로거 블로그 링크로 들어가면 볼 수 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중학교 1학년 - 5학년 아랍어 교과서는 상당히 딱딱한 편이었어요. 단어를 저렇게 많이 외우라고 할 거라면, 그리고 그게 단순히 주격 단수가 아니라 동사도 섞여 있고 복수도 섞여 있고 주격, 대격, 속격 형태도 섞여 있을 거라면 중간중간에 문장을 넣어주고 지문도 넣어줘서 외우라고 하면 괜찮았을 텐데 왜 저렇게 딱딱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