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야기 중 가장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라면 단연 음식 역사에요.
음식 문화와 음식 역사는 아예 달라요. 음식 문화는 기본적으로 '현재'를 이야기해요. 현재 보이는 모습을 다루는 것이 기본이에요. 한국인들이 인스턴트 라면을 많이 소비하고 있다면 현재 한국 음식 문화 중 한 모습으로 인스턴트 라면을 많이 소비한다고 이야기하고 끝내도 되요. 지금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어떤 집단에서 특히 많이 소비하는지, 어떤 집단에서 특히 선호하는지 등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이 기본이에요.
이렇게 보면 음식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이때 크게 주의할 점이 있어요. 많이 소비한다고 해서 많이 좋아한다고 급히 공식화해버리면 안 되요. 경제학을 보면 '열등재'라는 것이 있어요. 소득이 감소함에 따라 수요가 감소하는 재화애요.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유독 인스턴트 라면을 많이 소비한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인스턴트 라면을 특히 좋아한다고 하면 안 되요. 진짜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라면만 먹는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관찰해야 해요.
음식 문화를 이야기하다보면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음식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쪽으로 흘러가요. 음식의 기원이라든가 유래와 보급, 확산의 역사 같은 거요. 음식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의할 점은 상당히 많아요. 어느 날 갑자기 도입되어서 유래와 시작이 아주 확실한 음식이라면 쉽지만, 음식들 보면 그렇지 않은 게 훨씬 더 많아요.
심지어 어느 순간 갑자기 문화가 뒤바뀌면서 전혀 다르게 전개되어 오늘의 모습으로 과거를 추측했다가는 제대로 틀리는 경우도 있어요. 대표적인 사례로 숙주나물이 있어요. 현재 한국인들은 숙주를 잘 안 먹어서 숙주가 들어가면 중국풍, 일본풍으로 여기고, 콩나물이 들어가야 한국풍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어요. 그런데 원래 한국인들도 숙주나물을 더 좋아하고 콩나물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것으로 여겼어요. 숙주나물은 비싸고, 보관 조금만 잘못하면 쉽게 쉬어버려서 밥상 위의 고급 반찬 같은 존재였어요. 하지만 한국인들도 원래는 콩나물보다 숙주나물을 더 좋아했어요. 과거 기록들을 보면 한국인들도 돈 조금이라도 있으면 콩나물 안 사먹고 숙주나물 사먹으려고 했다고 해요. 그런데 숙주나물이 계속 밀려나면서 이제는 숙주나물 들어가면 중국풍, 일본풍으로 여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여기에 잘못된 애국심과 특정 집단의 이해 때문에 역사 왜곡, 더 나아가 역사 날조까지 이뤄져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대표적인 사례로 삼겹살이 있어요. 삼겹살은 원래 싼맛에 먹는 저렴한 부위였어요. 한국인들이 원래 고기 구워 먹는 것을 좋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아주 옛날부터 원래부터 한국인이 삼겹살을 좋아했다고 하면 역사 왜곡 수준이 아니라 역사 날조에요. 원래 한국인이 좋아했던 고기는 바로 갈비에요. 한국인이 갈비를 좋아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치고, 갈비를 구워먹었다는 증거 역시 차고 넘쳐요. 닭갈비, 고갈비 같은 '갈비'가 들어간 음식 이름들, 갈비탕, 갈비찜, 갈비구이 같은 갈비로 만드는 여러 음식 같은 거요. 반대로 삼겹살이 무슨 역사 있는 한국의 대표 음식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삼겹살 구이는 한국의 기본 음식문화와 전혀 안 어울리는 음식이에요. 삼겹살로 만드는 음식 종류도 별로 없고, 삼겹살 이름이 들어간 거라고 해봐야 오겹살, 우삼겹, 대패삼겹 정도 뿐이에요. 삼겹살은 구이에서 거의 못 벗어나 있어요. 기껏해야 보쌈 수육 정도 있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밖에서 고기 먹는다고 하면 '가든' 가서 '갈비' 뜯는 것을 의미했어요. 고기 잘 먹는 기준은 갈비 몇 대를 먹을 수 있는지였구요. 회사에서 삼겹살 회식? 돈 지지리 없거나 사장 마인드가 쓰레기 같은 거지 회사라고 욕 바가지로 처먹었어요. 그런데 갈비가 여러 이유로 인기가 확 떨어졌고, 삼겹살이 엄청 뜨면서 이제 과거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던 고기가 갈비였다는 사실 자체가 잊혀져 버렸어요. 여기에 잘못된 애국심과 여러 이해관계가 엮여서 한국인들은 원래 삼겹살을 선호했다고 조작과 날조하려 들고 있어요. 이게 의외로 사람들에게 많이 먹히고 있구요. 아무래도 지금 20대는 갈비 선호 문화와 가든을 알 리가 없기 때문일 거에요.
이렇게 음식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상당히 조심해야 해요. 오늘날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과거에도 좋아했을 거라고 판단한다면 완전히 틀리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사람 입맛은 잘 안 변하니까 음식 문화가 어지간해서는 안 변할 것 같고 서서히 변할 것 같지만 음식 문화도 순식간에 격변하면서 완전히 뒤바뀌어버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더 나아가 아예 기원을 찾는 게 부질없다 못해 오히려 무식한 짓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면 무수히 많은 김치찌개 종류들요. 김치찌개 끓이는데 고기 대신에 참치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둘이겠고, 스팸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둘이겠어요. 이런 건 최초로 상업화한 사람은 찾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최초로 개발했다고 했다가는 영원히 답 안 나오는 논란에 빠져요.
또한 매우 골치아픈 경우도 있어요. 바로 유입과 시작은 확실한데 그 다음 발전 및 변화 과정에서 여러 흐름이 생기고 서로 얽히고 설키며 복잡해지는 경우에요. 한국 햄버거 역사가 대표적인 사례에요.
한국의 햄버거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를 예시로 들자면, 한국 햄버거 역사는 주한미군 부대 및 그 근처에서 시작된 게 맞아요. 유입과 시작은 아주 확실해요. 하지만 한국 햄버거 역사를 보면 순탄하게 미국 스타일 햄버거만 따라가지 않았어요. 한국 햄버거 역사가 시작된 후 최소한 세 가지 갈래가 있어요. 첫 번째는 미국 스타일이에요. 미국 스타일은 요즘 수제버거 가게들에서 많이 보여요. 두 번째는 일본 스타일이에요. 일본 스타일은 또 두 가지로 갈려요. 첫 번째는 일본 스타일이 그대로 들어온 경우에요. 누가 뭐래도 롯데리아 새우버거는 일본 스타일이에요. 한국 튀김 문화 자체가 일본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은 영역이에요. 튀김 패티가 들어간 건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햄버거가 아니에요. 두 번째는 미국 스타일을 일본이 먼저 자기네 스타일로 바꾼 후 그게 한국으로 유입된 경우에요. 세 번째는 한국 자생 스타일이에요. 빵집 햄버거가 바로 여기에 속해요.
그 많던 빵집 햄버거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종종 하는 생각이에요.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동네 빵집 가면 빵집 햄버거가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동네 빵집 가도 빵집 햄버거 보기 쉽지 않아요. 빵집 햄버거가 많이 사라졌어요.
서울을 돌아다니던 중이었어요. 종로3가역 근처에는 서울 종로3가역 대한민국1등왕만두가 있어요. 지나갈 때마다 종종 보던 가게였어요. 이날도 이 앞을 지나가던 중이었어요.
"야채 사라다?"
메뉴를 봤어요. 야채 사라다빵이 있었어요.
"저거나 하나 사먹을까?"
사라다빵 가격은 1개에 1500원이었어요.
야채 사라다빵을 바라봤어요.
동네 빵집에서 많이 보이는 사라다빵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동네 빵집에서는 햄버거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모닝롤로 만든 샌드위치와 더불어 사라다빵이 차지하고 있었어요.
"사라다빵 하나 먹어봐야지."
재래시장 빵집이나 동네 빵집 가서 참 많이 본 사라다빵이었어요. 그런데 정작 단 한 번도 안 사먹어봤어요. 이번에 하나 사서 먹어보기로 했어요.
사라다빵 하나 구입해서 청계천으로 갔어요.
야채 사라다빵을 먹기 시작했어요.
"이거 맛있는데?"
달콤한 도넛 속에는 케찹과 마요네즈로 버무린 야채가 들어 있었어요. 오이와 양배추 등이 들어 있었어요. 기름지고 달콤한 도넛과 새콤한 야채 사라다 맛의 조화가 매우 좋았어요. 하나만 사서 먹었는데 하나 더 사와서 또 먹고 싶었어요. 케찹의 새콤한 맛이 도넛의 기름진 맛을 잘 잡았어요. 고소하고 달콤한 도넛 맛은 뾰족뾰족한 새콤한 맛으로 무장한 야채 사라다에게 품위 있는 외투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빵집 햄버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형태가 변했을 뿐.
사라다빵은 원래는 일본 음식일 거에요. 애초에 마요네즈에 버무린 샐러드인 '사라다'가 일본 음식이니까요. 그렇지만 이게 일본 사라다빵을 기원으로 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먼저 한국에서 일본 사라다빵이 동네 빵집, 재래시장 빵집에 들어갈 만큼 인기가 대폭발한 적이 없어요. 인기를 크게 끌 구석도 없는 게 빵 사이에 속재료로 마요네즈로 버무린 샐러드 집어넣어서 먹는 건 너무 흔해요. 오죽하면 학교에서 간단히 요리 실습할 때 잘 만들어 먹는 것이 이런 샐러드를 집어넣어서 만든 샌드위치겠어요.
그리고 속재료를 보면 한국에서 아주 흔히 보이는 케요네즈에 버무린 양배추 샐러드에요. 한때 엄청나게 흔했던 샐러드에요. 빵집 햄버거도 야채는 기본적으로 케요네즈에 버무린 양배추 샐러드가 들어갔어요.
한국에서 사라다빵 역사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저도 정확히 몰라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동네 빵집, 재래시장 빵집에서 사라다빵은 보기 어려운 존재였어요. 특정 지역, 특정 빵집에서 계속 만들어서 팔았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빵집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사라다빵이 진열되어 있는 자리가 과거에는 햄버거가 진열되어 있는 자리였어요.
이 가게 것 뿐만 아니라 요즘 동네 빵집, 재래시장 빵집에서 보이는 사라다빵을 보면 빵은 고로케 빵과 비슷해요. 고로케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어요. 햄버거만 없어졌을 뿐이에요.
한국 빵집 햄버거의 역사는 오늘날 다시 두 갈래로 갈린다?
충분히 가능해 보였어요. 첫 번째는 모닝롤 샌드위치에요. 모닝롤 샌드위치 기본 구성을 보면 햄조각 대신 고기 패티를 집어넣으면 영락없는 빵집 햄버거에요. 한 가지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은 이 모닝롤 샌드위치가 퍼져나가면서 빵집 햄버거가 급속히 사라져갔다는 점이에요. 빵집 햄버거 자리를 모닝롤 샌드위치가 차지하기 시작했어요. 형태과 구성이 비슷하니 일부러 패티 따로 구입하고 가공해야 하는 햄버거가 밀려났다고 볼 수 있어요. 이것은 확실해요.
두 번째는 사라다빵이에요. 이건 순수하게 빵집 햄버거의 계보를 잇는다고 보기 보다는 빵집 햄버거와 도넛이 교미해서 탄생한 자식 같은 존재 아닐까 싶었어요. 빵집 햄버거에서 패티와 치즈가 빠진 속재료를 도넛을 반으로 갈라서 채워넣으면 그게 사라다빵이니까요. 이건 완전히 형태가 바뀌었고, 도넛 만드는 김에 같이 만들 수 있으니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햄버거 전용 빵, 패티, 치즈를 통째로 생략할 수 있어요. 재료나 준비가 특별히 더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빵집에서 도넛은 기본적으로 판매하고 있고, 햄버거를 만들고 있었다면 오히려 순전히 햄버거 제작할 때만 필요한 재료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어요. 이로 미루어봤을 때 빵집 햄버거와 빵집 사라다빵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고 보기는 어려울 거에요.
사라다빵이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크게 인기를 끈 적이 없는데 동네 빵집, 재래시장 빵집에서 사라다빵이 잘 보인다면 거기에는 어떤 경제적, 경영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게 아마 빵집 햄버거의 몰락과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고 있어요.
한국 햄버거 역사에서 한 축을 담당하던 빵집 햄버거가 오늘날 사라진 것이 멸종일지 형태가 바뀌어 계속 존재하는 것일지 종종 궁금해져요. 그리고 만약 형태가 바뀌어 존재한다면 그 계보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궁금하구요. 저는 사라진 빵집 햄버거는 모닝롤 샌드위치와 사라다빵으로 형태가 변했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서울 종로3가역 대한민국1등왕만두 사라다빵을 맛있게 먹으며 빵집 햄버거와 사라다빵의 관계에 대해 추측해봤어요. 입도 즐겁고 머리도 즐거운 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