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27 우즈베키스탄 히바 이슬람 호자 미나렛

좀좀이 2012. 11. 1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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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슬롬 호자 미노라 Islom Xo'ja minorasi 가 나타났어요. 이슬롬 호자 미노라 바로 옆은 1908~10년에 지어진 이슬롬 호자 마드라사였어요.




이 미나렛을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경찰에게 몰래 돈을 쥐어주고 올라가는 곳이 아니라 제대로 입장료를 주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게다가 이곳은 57미터로 히바에서 가장 높은 탑이자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높은 탑. 여기 올라가면 히바 전망을 매우 잘 볼 수 있다고 해서 여기는 정말 꼭 올라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어요.


"얼마에요?"

"3천숨."


입장료도 매우 저렴했어요. 입장료는 불과 3천숨. 1달러 조금 넘는 돈이었어요. 입장료가 얼마 하지 않아서 기분 좋게 안으로 들어갔어요. 위의 사진에서 오른쪽에 앉아 있는 분이 바로 입장료를 징수하시는 분이셨어요.



"이거 장난 아닌데?"


깜깜해서 계단이 잘 안 보이는데다 계단 한 개가 꽤 높았어요. 게다가 엄청나게 잘 닳아서 맨질맨질했어요. 열심히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커플이 제 뒤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어요. 여자는 굽이 있는 샌들을 손에 쥐고 올라오고 있었어요. 저도 속력을 낼 처지가 아니라 한동안 셋이 비슷한 거리를 유지하며 올라갔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저를 따라오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다 올라왔다!"


히바


Khiva


오른쪽에 보이는 높은 탑은 주마 모스크에 있는 미나렛이고, 가운데 보수 공사 하고 있는 곳은 파히아본 마흐무드 묘소, 그리고 멀리 뒤로 칼타 미노르도 보였어요. 역시 도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오니 전망 하나는 시원하게 잘 보였어요. 문제라면 탑 꼭대기 공간이 아주 좁아서 서로 잘 비켜주어야 한쪽을 보고 그 다음쪽을 보고 한다는 것이었어요. 즉 같이 보는 것은 없고 어느 방향을 보든 교대로 보아야 했어요.



이쪽은 토슈 다르보자 (남문) 방향.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남문도 보였어요. 남문 쪽은 확실히 볼 것은 없는 방향이었어요.


Xiva


이쪽이 폴본 다르보자 (동문) 방향. 동문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어요. 동문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쪽은 계단에서 올라오는 쪽이라 위험했어요.


우즈베키스탄 히바


'히바야, 미안해.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이 탑 위에서 내려다본 히바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어요. 하지만 제게는 전혀 인상적이지 못했어요. 이 흙빛, 이 평평한 지붕...이런 풍경은 한때 질리도록 본 것이었어요. 히바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너무나 많이 보았던 풍경이라 그 어떤 신기함도 느껴지지 못했어요. 그래도 올라와서 내려다볼 가치는 충분했어요. 단지 제 개인적 경험과 그때 본 풍경과 너무나 유사해서 깜짝 놀랐고, 그 이유 때문에 크게 아름답고 신기하다고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어요. 만약 이런 건조 기후의 도시를 처음 와 보았다면 저 역시 정말 너무나 아름답고 멋있어서 감탄을 쉬지 않고 했을 거에요.


매우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을 보고 내려가는 길. 신기함도 아름다움도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멋진 광경임은 분명했어요. 그래서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가려고 했지만...



내려가는 건 더 어렵잖아...


조심하며 내려가고 있는데 아까 제 뒤를 따라오던 커플이 보였어요. 둘은 계단 벽쪽에 앉아 잡담하며 놀고 있었어요. 커플을 피해 내려가다가 빛이 들어오는 창을 통해 밖을 보며 저도 잠깐 쉬었어요.



"어휴...힘들어."


이 탑을 올라가고 내려가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안이 컴컴하다는 것. 아예 깜깜해서 보이지 않는 곳도 있고, 계단 한 칸의 높이는 높고, 계단 폭은 좁았어요. 60여 미터를 올라가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래서 더욱 올라가고 내려가기 힘들었어요. 현지인들은 핸드폰에 달려 있는 손전등 불빛을 비추어가며 내려가고 있었어요. 저는 핸드폰을 카메라 가방 제일 아래에 집어넣어 놓아서 일단 그냥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었구요.


"아이구, 다리야..."


다 내려오니 허벅지가 얼얼했어요. 힘들어서 쉬고 있는데 간간이 현지인들이 이 탑에 올라가려고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 중에는 힐을 신고 온 여자도 없지 않았어요.


"저 여자, 분명히 고생 진탕 하겠다."


물론 전체적인 체력이 저질이 된 것도 있지만, 체력이 좋다고 해도 가볍게 웃으며 올라갈 높이는 아니었어요. 57m이면 못해도 15층 이상 되는 건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힐을 신고 올라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어요. 일단 계단 폭이 좁고 반질반질한 돌로 되어 있었거든요. 올라가는 것은 어떻게 한다고 해도 내려오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잠시 쉬다가 간 곳은 바로 옆에 있는 이슬람 호자 마드라사 Islom xo'ja madrasasi. 여기는 현재 민족 유형 예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어요.



박물관 안에서 미흐랍을 찾아내었어요.


박물관 내부는 그렇게까지 인상적일 것은 없었어요. 중앙아시아에서 6개월 넘게 살며 주변에서 많이 접하던 것들이라서 제게는 크게 인상적이지 못했어요. 게다가 부하라에서도 충분히 보았구요.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을 휙휙 지나가며 보다가 마드라사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았어요.



마드라사 안쪽을 보고 있는데 위에서 사람 소리가 났어요. 그래서 마드라사 위쪽을 쳐다보았어요. 위에는 우즈베키스탄 청년 1명과 처녀 2명이 사진을 찍으며 놀고 있었어요.


"거기 올라가도 돼?"

"응! 돼!"


청년이 알려준 대로 위로 올라갔어요.


"머리 조심해!"


빨리 말해 주어야지...청년은 제가 머리를 천장에 박는 것을 보고 나서야 머리 조심하라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계속 박던 곳을 박아서 땜빵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었어요. 박은 자리는 이미 부어올랐는데 또 박아서 그다지 세게 박은 것 같지도 않은데 아팠어요. 머리를 문지르며 위로 올라갔어요.


"너 어디에서 왔어?"

"한국. 너희들은?"

"우즈베키스탄."

"그건 나도 알아. 우즈베키스탄 어디?"

"우리는 카슈카다리오에서 왔어."


카슈카다리오? 거기면 사마르칸트 바로 아래 있는 주인데? 사마르칸트 아래가 카슈카다리오이고, 카슈카다리오 아래가 수르혼다리오, 그리고 그 아래가 아프가니스탄이에요. 얘네들 정말 멀리서 왔구나.


"같이 사진찍자."


여자애들이 제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어요. 여자애들이 제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남자애는 여자애들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셋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한 여자애는 남자애와 사귀는 듯 했어요. 여자애들은 남자애에게 '너 외국인한테 왜 영어로 이야기 안 해?'라고 면박을 주었어요. 굳이 그런 외국인 전용 서비스 안 해 주어도 되는데...나는 오히려 영어로 해주는 것이 싫은데...남자애는 영어로 제가 몇 마디 걸어보려 했지만 영어를 잘 몰라서 영어 단어를 조금 섞어 쓰며 우즈벡어로 이야기했어요.


우즈벡 사람들이 내려간 후, 느긋하게 사진을 찍었어요.



"여기서 보는 전망도 괜찮은데?"





제가 걸어온 쪽 풍경도 꽤 볼 만 했어요.




마드라사 바로 앞에서 좌판을 깔고 기념품을 팔던 상인은 좌판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밥을 먹기는 먹어야 할텐데..."


슬슬 오후 2시가 되어 가고 있었어요. 이미 점심을 제대로 먹을 시간은 지났어요. 주변에 식당이 있기는 했지만 전부 관광객 상대용 식당들. 조금만 더 가면 시장이 있을 것 같았어요. 히바 이찬 칼아 자체가 워낙 크기가 작아서 오타 다르보자 (서문)에서 폴본 다르보자 (동문)까지 거리가 멀지도 않았거든요. 이것저것 보며 간다면 그 거리가 짧다고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아무 것도 안 보고 오직 주파한다고 생각하고 간다면 매우 짧은 거리였어요. 하지만 시장에서 밥을 먹고 싶다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 있었어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1시간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거나, 다음날 점심까지 기다리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시장에 있는 식당에서 2시면 인기 제일 없어서 마지막까지 남은 음식들, 아니면 카봅 (샤슬릭) 뿐이었어요. 아니면 적당히 핫도그를 사먹거나요.


갑자기 57미터 탑을 기어올라가서 다리는 아픈데 밥시간까지 지나버리니 의욕이 뚝 떨어졌어요. 그다지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굶고 싶어서 굶는 것과 굶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굶는 것은 전혀 다른 기분. 일단 동문을 향해 걸어갔어요.


"논 굽네?"


마을 아주머니께서 조그만 화덕으로 논을 굽고 계셨어요.


'저거 파는 건가?'


화덕이 크지도 않았고 논의 양으로 보아서는 일단 애매했어요. 논을 구워 파는 가게는 사람 사는 곳이라면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해서 이 사람들이 얼마나 구워대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거든요. 제대로 팔기 위해 굽는 동네 논 가게이라면 밀가루 반죽과 구워져 있는 논의 양이 이렇게 적을 수는 없었어요. 아주머니가 구워놓은 논은 대충 20여개. 밀가루 반죽 남은 것을 보니 거의 다 구웠어요. 이 정도 구웠다면 팔기 위해 굽는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택도 없는 양이었어요.


"얼마에요?"

"3천숨."

"하나 주세요."


어차피 점심 먹기는 글렀고, 저녁 먹는 것도 사실상 포기했어요. 어차피 이 동네도 저녁은 카봅 아니면 관광객용 식당일 테니까요. 정말 우즈베키스탄 여행에서 쉽게 하는 실수이자 하루 일정에서 가장 커다랗고 심각한 실수는 바로 점심 시각을 놓치는 것. 대충 11시에서 1시 반까지를 점심 시간이라고 보면 되는데, 저처럼 게으름 피우거나 야간이동해서 조금 쉬고 나오면 이 시각이 한창 관광의 재미를 느낄 시각.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다니면 이런 중대한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에요. 굶는 것, 대충 끼니 때우는 것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우즈베키스탄 여행시 점심을 잘 찾아먹어야 해요.


갓 구운 논이 아니라 조금 식은 논을 하나 샀어요. 갓 구운 논은 정말 화덕에서 바로 나온 거라 맨손으로 잡을 수도 없었고, 조금 식은 논이라고 주는데 그것도 뜨겁기는 엄청 뜨거웠어요.


"사진 한 장 찍어도 되요?"

"응, 찍어."



"이것 찍었어?"

"이거요?"

"화덕 안도 찍어."


아주머니께서는 이왕 찍는 거 화덕 안도 찍으라고 하셨어요. 화덕 안은 당연히 열기 때문에 뜨거웠어요.



"이게 논 모양 찍는 거야."


아주머니께서는 이것도 찍으라고 하셨어요.


Non


이것이 굽기 전 호라즘 논이에요. 확실히 다른 지역과 차이가 눈에 띄게 보였어요.


화덕 근처에 의자가 있어서 앉아서 논을 먹었어요. 아주머니께서는 목마르겠다고 물을 주셨어요. 조금 식은 호라즘 논의 맛은 딱 건빵 맛이었어요. 건빵에서 바삭함과 단 맛을 빼면 딱 호라즘 논의 맛이었어요. 크기만 작다면 부담없이 간식으로 먹기 좋은 맛이었어요. 그래서 먹기 부담스러운 맛은 아니었어요. 게다가 사마르칸트 논처럼 한국인이 먹기에는 조금 힘든 것도 아니었구요. 열심히 논을 뜯어먹고 있는데 관광객들이 아주머니가 논을 굽고 제가 옆에서 논을 뜯어먹는 것을 보더니 아주머니께 논 얼마냐고 물어보았어요. 아주머니는 역시나 3천숨이라고 대답하셨고, 2개 파셨어요.


"화덕, 모두의 것이에요?"

"응. 여기 사람들 다 사용해."


논이 꽤 컸기 때문에 후딱 먹고 일어날 수는 없었어요. 어차피 다리도 아팠고, 이것 외에는 특별히 식사로 먹을 게 없어서 앉아서 논을 뜯어먹으며 앉아 있었어요. 꼬마들이 와서 떠들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아주머니께서는 조금 식은 논을 쭉 찢어서 꼬마들에게 나누어주었어요. 꼬마들은 입으로 논을 뜯어먹으며 다른 곳으로 놀러갔어요.


"너 우즈벡어 어디에서 배웠어?"

"타슈켄트요."

"한 달에 얼마 내?"

"200달러요."

"우와~비싸다. 집은?"

"아파트에서 살아요."

"월세 얼마인데?"

"250달러요."

"헐...여기는 집 하나 빌리는 데에 30달러야. 여기 와서 공부해."


아주머니께서는 마지막으로 구운 논까지 다 꺼내자 정리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셨어요. 저는 논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이제 슬슬 동문으로 가볼까나."



동문 근처까지 금방 갔어요. 오른쪽 하얀 건물이 바로 이름 자체가 '하얀 모스크'라는 뜻인 '오크 마스지드' Oq masjid 에요.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1804~12년에 지어진 쿠틀룩 무로드 이녹 마드라사 Qutlug' Murod Inoq Madrasasi. 여기에서 왼쪽으로 가면 북문 (보그차 다르보자)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이렇게 흰 모스크와 쿠틀룩 무로드 이녹 마드라사 사잇길로 쭉 나가면 동문 (폴본 다르보자)으로 이어졌어요.


'동문으로 갈까, 북문으로 갈까?'


일단 결정은 뒤로 미루고 쿠틀룩 무로드 이녹 마드라사부터 보기로 했어요.



볼 게 없었어요. 유럽 여행 다니며 왔던 '그 성당이 그 성당'이라고 느껴졌던 문제가 여기에서는 '그 마드라사가 그 마드라사'로 바뀌었어요.



이것은 쿠틀룩 무로드 이녹 마드라사 맞은편에 있는 마드라사에요. 이 마드라사는 1855년에 지어진 압둘라혼 마드라사 Abdullaxon madrasasi 로, 현재는 자연박물관이었어요. 여기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일단 밖으로 나가기 전에 주변에 있는 거나 다 보고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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