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22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사모니 공원

좀좀이 2012. 11. 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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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크까지 다시 걸어가려니 엄두가 안 났어요. 점심 시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어요. 딱 지금이 점심을 먹어야할 시각. 걸어왔던 길을 돌아가서 아르크까지 가려면 2km 정도는 걸어가야 했어요.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지금은 특별한 계획이 없는 게 아니라 예상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각을 소비했어요. 오늘 일정을 끝내야하는 시각은 오후 6시. 6시 이후에는 사진 찍기 나쁘기 때문에 6시까지 일정을 마칠 생각이었어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동시간까지 다 포함해서 지금부터 2시간 동안 사모니 공원 및 서벽, 2시간 동안 시토라히 모히 코사, 2시간 동안 낙쉬반드 묘소를 돌아야 했어요. 아니, 이미 한 시간 전에 사모니 공원을 돌아다니고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택시를 잡았어요.


"아르크, 3천숨!"


대충 되는 대로 불렀어요. 제가 있는 곳에서 아르크까지는 약 2km. 이 정도면 당연히 3천숨일 리가 없었어요. 하지만 일단 빨리 가야했기 때문에 타슈켄트 기준으로 막 불러버렸어요. 타슈켄트에서 백주대낮에 3천숨이면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거든요. 2km에 3천숨이면 솔직히 세게 부른 가격. 부하라 물가가 타슈켄트 물가보다 비쌀 리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3천숨 불렀더니 택시 기사 아저씨는 별 말 하지 않고 타라고 했어요. 택시에 타자 아저씨께서 어느 아르크냐고 물어보셨어요.


'아르크가 아르크이지, 다른 아르크도 있나?'


арк는 타지크어로 '성채'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부하라 관광 지구 서쪽 끝 있는 성채를 '아르크'라고 하면 다 알아들어요. 그런데 이 아저씨께서는 어떤 아르크냐고 되물어보셨어요.


"볼로 하우즈 모스크 근처에 있는 거요."

"아! 그거?"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시토라히 모히 코사도 '아르크'라고 한다고 하셨어요. 이것은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씀을 듣고 처음 알았어요. 아저씨 말씀에 따르면 흔히 '아르크'라고 부르는 부하라 관광 지구 서쪽 끝에 있는 성채는 부하라 칸국의 겨울 궁전이고, '시토라히 모히 코사'라는 왕궁은 부하라 칸국의 여름 궁전이었어요. 제가 지금 갈 곳은 일단 부하라 칸국 겨울 궁전인 '아르크'였어요.


택시에서 내렸어요.



Bukhara Ark


멀리서 입구를 바라보았어요. 오늘도 입구 근처에서 얼쩡대다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관광객들이 있었어요. 안에서 나오는 관광객들도 있었구요.


'저건 해질녘에 가서 전망을 보아야 진짜 대박인 곳인데.'



부하라



혼자 웃으며 제가 가야할 곳을 향해 걸어갔어요. 일단 전날 어두워져서 대충 보고 나온 볼로 하우즈 모스크부터 갔어요.


볼로하우즈 모스크



이 모스크의 뒷모습은 이렇게 생겼어요. 전날 너무 어두워지고 배가 싸르르 아파서 그냥 앞만 보고 갔는데 지금은 속이 괜찮기도 하고 어차피 사모니 공원 가는 길이라 지나가며 보았어요.



앞과 뒤가 정말로 다른 모습이었어요.


'오늘 점심 안 먹어도 될 건가?'


전날 설사 때문에 숙소에서 준 아침 식사 외에 먹은 게 없었어요. 오늘도 마찬가지. 그런데 오늘은 야간 이동이 있는 날. 부하라발 우르겐치행 기차는 밤 9시 10분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 9시 31분 도착 예정이었어요. 오늘 하루 종일 굶으면 이틀째 사실상 굶는 것이었어요. 이러면 다음날은 정말 체력적으로 문제가 생길 거 같았어요. 어제도 오늘도 거리에서 사 먹은 간식조차 없었어요. 딱 두 번의 가벼운 아침 식사 외에는 음료수와 물만 먹고 있었어요.


점심을 먹고 돌아다닐까, 아니면 사모니 공원을 보고 점심을 먹을까? 고민하며 사모니 공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조그만 좌판이 보였어요. 그 앞에서 멜론도 팔고 있었어요.


'일단 멜론으로 간단히 때우고 갈까?'


좌판 앞에 있는 멜론들을 보았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종류는 아니었어요. 그냥 '우즈베키스탄 멜론'하면 가장 유명한 길다랗고 상아빛 멜론이었어요. 그래도 부하라 멜론은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알아주는 멜론이니 한 번 먹어보아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런데 칼이 없는데...하지만 안 될 거 같지도 않았어요. 이미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에서 한 번 칼 없이 멜론을 먹어본 적이 있었거든요. 제가 멜론을 격파하여 조각들을 주워먹은 게 아니라, '멜론 사고 싶어. 그런데 나 칼 없네? 아이구 아까워라...' 이러면 알아서 칼로 그 자리에서 잘라주거든요.


"멜론 얼마에요?"

"3천숨."


제일 작은 멜론을 골라 얼마냐고 물어보자 좌판 옆에 있던 할머니께서 3천숨이라고 하셨어요.


"칼 있어요? 저 지금 칼이 없어서요..."

"나도 칼이 없는데..."

"음...그러면 안 되겠네요. 제가 칼이 없어서요."


사실 아쉬운 것은 멜론을 제게 못 판 할머니 뿐이 아니었어요. 대충 멜론으로 요기나 하려고 했던 저도 아쉽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좌판 주인 아저씨께서 갑자기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어요.


"내가 해줄게."

"감사합니다!"


거리에서 멜론을 잘라 먹는 방법은 멜론을 비닐 봉지에 집어넣은 후 칼로 썰어서 먹으면 되요. 어차피 멜론은 껍질을 깎아 먹는 과일이 아니라 수박처럼 썰어서 적당히 속의 과육만 먹는 과일이거든요. 아저씨께서는 비닐 봉지에 멜론을 집어넣고 좌판 뒤에 있는 의자에 멜론이 들어있는 비닐 봉지를 올려놓으셨어요.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칼로 썰어주시기 시작하셨어요. 멜론을 다 썰어주시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칼을 들고 다시 좌판으로 가셨어요.


거리에서 멜론을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어요.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멜론도 수박처럼 먹는 과일이라는 것. 껍질 근처까지 이빨로 박박 긁어먹는 게 아니라 대충 부드러운 속살만 베어 먹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저를 쳐다보았어요. 쪽팔리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여행을 할 최소한의 에너지는 충전시켜야 했거든요.


멜론을 다 먹어치웠어요. 정말로 배가 터질 듯 불렀어요. 매우 달고 맛은 좋았지만 나중에는 먹는 게 아니라 우겨넣듯 삼켰어요. 정말 우즈베키스탄 여행은 두 명이 적정 인원이라는 것을 다시 느꼈어요. 아저씨께 쓰레기는 어디에 버리냐고 여쭈어보자 그냥 두고 가면 자기가 알아서 버리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저씨께 1000숨 드렸어요.


"멜론 3천숨이야."

"알아요. 이것은 잘라주셔서 고마워서 드리는 거에요."


아저씨께서 멜론을 잘라주시고 쓰레기도 버려주실 거라서 1000숨을 드리고, 할머니께 멜론값으로 3000숨을 드린 후 사모니 공원을 향해 다시 걸어갔어요.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바로 사모니 공원. 하지만 '사모니 공원'이라고 크게 써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휴식 공원 Istirohat bog'i 라고 적혀 있었어요.


"앉아서 쉬었다 가야겠다."


너무 무리해서 멜론 한 통을 먹어치웠더니 걷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소화 좀 시키고 걷기 위해 적당히 앉을 만한 곳을 찾아 앉았어요.



"이 다리도 유적이겠지?"


다리도 꽤 옛날에 만든 다리 같았어요. 일반 구역 탐험에서 드러났듯이 여기는 뭐가 유적이고 뭐가 아무 것도 아닌지조차 구분하기 힘든 곳. 이것도 유적이라고 표시하지만 않았지, 생긴 것만 보아서는 충분히 유적이라고 생각해도 되게 생겼어요. 다리를 구경하고 있는데 슬슬 덥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한여름에 여기 왔다면 아찔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자 쓰는 것도, 선글라스 쓰는 것도 싫어서 그냥 맨눈에 맨머리로 다니고 있었는데 우즈베키스탄의 폭염 속에서 그렇게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하거든요. 게다가 여기는 타슈켄트보다 더 더운 곳. 한여름 타슈켄트에서도 맨날 햇볕이 퍼붓는다고 말하며 바퀴벌레처럼 햇빛을 피해 응달로 기어들어가기 바빴는데 여기를 햇볕 다 맞아가며 돌아다녔다면 꽤 아찔했을 거였어요.


"슬슬 가야겠다."


일단 사모니 공원 입구에 있는 마드라사들부터 보기로 했어요. 이쪽에는 마드라사가 3개 있었어요. 론니플래닛 중앙아시아편 부하라 지도에는 마드라사가 2개 있다고 나오지만 타슈켄트에서 구입한 부하라 지도에는 확실히 세 개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정말 론니플래닛 중앙아시아편은 이쪽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들고 다니지, 정보만 충분했다면 바로 찢어버렸을 거에요. 그만큼 론니플래닛 중앙아시아편은 분노를 일으키는 책. 부하라 와서 론니플래닛 중앙아시아편을 펼친 이유는 오직 두 가지 이유 밖에 없었어요. 부하라에서 볼 만 한 게 무엇이 있나 한 번 읽어보기 위해서, 그리고 타슈켄트에서 구입한 지도는 길과 유적들이 자세히 나와 있기는 했지만 축적이 안 나와 있어서 거리를 파악하기 위해서였어요.


제일 먼저 간 마드라사는 18세기에 지어진 마블로노이 아시리 마드라사 Mavlonoi Asiri Madrasasi. 타지크어로 мавлоно는 '주인, 귀족'이라는 뜻이고 асир는 '포로'라는 뜻이에요. 직역해보면 '포로의 주인 이슬람 신학교'. 하지만 mavlono가 단순히 '주인, 귀족'을 뜻하는 게 아니라 아랍어의 압둘라 عبد الله 처럼 '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어요. 즉, '마블로노이 아시리'는 특별히 해석이 필요 없는 그냥 사람 이름 중 하나 아닐까 하고 있어요.


입구 앞에 할머니 두 분이 계셨어요.


"안녕하세요. 말씀 좀 여쭈어보아도 될까요?"

"응."

"이곳 안에 들어갈 수 있나요?"

"지금 수리중이야."


하지만 진짜 수리중인지 아닌지 믿을 수 없었어요. 우즈벡인들은 부술 게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다 수리한다고 'remont'라고 말하거든요. 정말 타슈켄트의 흉물인 호텔 초르수 정도가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는 건물은 'remont'라고 해요. 혹시 안에 들어갈 수 있나 보니 문은 열려 있었어요. 그래서 안에 들어간 후 문을 닫았어요.


Mavlonoi Asiri Madrasasi




이제는 안 놀랄 거야...


고지욘 마드라사는 관광 지구에서 떨어져 있는 곳에 있어서 그렇다고 해요. 하지만 여기는 관광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었어요. 사마니 공원 입구 바로 앞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방치중. 그냥 웃었어요.



문으로 돌아가 나가려는데 이런 위로 가는 아주 비좁은 통로가 보였어요. 아무도 없었고 버려진 곳이라 위로 기어올라갔어요.



위로 기어올라가서 보니 큰 길까지 보였어요. 주변을 둘러보기 나쁜 자리는 아니었어요.


우즈베키스탄



사진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마드라사가 바로 압둘라혼 마드라사. 그 맞은편에 있는 마드라사가 모다리혼 마드라사였어요.


다시 구멍 같은 통로를 통해 아래로 내려와 마드라사에서 나왔어요. 압둘라혼 마드라사와 모다리혼 마드라사를 보고 사모니 공원을 둘러보고 공원 끝에 있는 성벽을 보면 부하라에서 서쪽 끝은 일단 끝이었어요.


먼저 모다리혼 마드라사로 갔어요. 모다리혼 마드라사 Modarixon Madrasasi는 16세기에 지어졌어요.


Bukhara Modarixon Madrasasi



이곳은 보수가 진행중인 듯 했어요. 그다지 볼 게 없어서 바로 모다리혼 마드라사 앞에 있고 1587~90년에 지어진 압둘라혼 마드라사 Abdullaxon Madrasasi 로 갔어요.


Bukhara Abdullaxon Madrasasi



이 마드라사는 안으로 아예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래서 벽의 문양만 사진으로 찍고 바로 대망의 '사모니 공원'으로 갔어요.


'이까짓 공원, 금방 둘러보겠지?'



이 공원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우는 어머니 동상. 여기도 한 주의 수도라서 이 우는 어머니 동상이 있었어요.



역시 이쪽은 매우 잘 꾸며놓았어요. 하지만 이미 타슈켄트, 안디존, 카르쉬에서 본 적이 있어서 신기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발걸음을 재촉했어요.



뒤돌아보니 압둘라혼 마드라사와 희생자 공원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압둘라혼 마드라사와 희생자 공원을 따로 보는 것보다 풍경이 훨씬 나아 보였어요.


이 공원에서 볼 것은 딱 세 개. 12~16세기에 지어진 차슈마 아유브 묘소 Chashma-Ayub Maqbarasi, 9~10세기에 지어진 이스마일 사모니 묘소 Ismoil Samoniy Maqbarasi, 그리고 부하라 성벽이었어요. 이 공원에 있는 성벽은 부하라 시를 감싼 성벽. 이렇게 세 개만 보면 끝이었어요.


"저 사람 일본인일까?"

"한 번 물어봐."

"우즈벡어 모를 걸?"

"영어로 하면 되잖아."


제 앞에 걸어가던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들이 저를 보더니 서로 깔깔 웃으며 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학생들이 우즈벡어로 이야기해서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타지크어로 이야기했다면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감으로만 알 수 있었겠지만, 우즈벡어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었어요.


'응대를 해줄까, 말까?'


현지어를 아니 이런 재미가 있었어요. 사람들은 외국인은 영어나 할 줄 알고 현지어는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고려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어나 영어 정도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래서 외국인 앞에서 현지어로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들끼리 농담을 해요. 그때 현지어로 이야기하면 매우 깜짝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이렇게 깜짝 놀래키는 것도 현지어를 알고 여행다닐 때의 한 가지 재미였어요.


"야, 네가 물어봐."

"네가 영어 제일 잘 하잖아!"


애들은 안경 쓴 여자애에게 '제일 영어 잘 한다는 이유'로 제게 한 번 영어로 인사해 보라고 시켰어요.


"헬로!"


안경을 쓴 소녀가 제게 '헬로'라고 했어요. 이 장난을 받아줄까, 말까? 받아준다면 영어로 받아줄까, 우즈벡어로 받아줄까? 이왕 받아주려면 우즈벡어로 받아주어야 재미있겠지?


"Salam!"


제가 인사를 우즈벡어로 하자 애들이 깔깔 웃었어요.


"너희 학생이야?"

"어머머, 우즈벡어 해!"


애들은 매우 깜짝 놀라며 깔깔 웃어대었어요. 걔네들은 8학년이라고 했어요.


"일본인이세요?"

"아니야, 나 한국인이야."


애들은 제가 우즈벡어로 한 마디 할 때마다 꺅꺅거리며 웃었어요. 참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시끄럽게 웃어서 제가 말을 이상하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저희 갈게요."

"응. 잘 가."


애들과 헤어져서 차슈마 아유브 묘소로 갔어요.


부하라 차슈마 아유브 묘소


여기도 입장료를 받고 사진촬영비를 따로 또 받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안에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니 내부에 볼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서 그냥 입장료만 내고 안이 어떻게 생겼나 둘러보았어요. 크게 인상적인 것은 없었어요. 그냥 물이 나오는 곳이 하나 있었다는 것 정도가 다른 묘소와 다른 특징이라면 특징이었어요.


차슈마 아유브 묘소 앞에 있는 이맘 알 부하리 기념관.



이 기념관 역시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했어요.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관리인에게 돈을 내었어요. 저는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이 있어서 매우 저렴한 돈에 들어갔어요. 원래 사진 촬영하려면 돈을 더 받는 거 같았는데 그 돈은 따로 내지 않았어요.


"여기 지하에는 사마르칸트에서 가져온 알-부하리의 유물이 있어요."

"예."


먼저 1층을 둘러보았어요.



"이거 진짜에요?"

"예. 진짜에요."


관리인이 진짜라고 말하며 제가 왜 물어보나 궁금해하며 제 쪽으로 다가왔어요.


"아...이게 떨어져 있었네요."


이 유물 및 다른 유물이 전시된 칸에 설치된 설명이 떨어져 있었어요. 관리인은 설명을 보라고 하며 진짜라고 다시 한 번 말해주었어요.


"이것을 여기에서 사진 찍네."


이 아랍 문자가 적혀 있는 종이는 단순히 오래되어서 특별하다기 보다는 정말 아랍어가 아주 오래 전 자음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시를 기억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쓰일 때 사용하던 오래된 문자로 적여 있었기 때문에 특별했어요. 종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랍어에서 자음을 구분하는 점이 단 한 개도 찍혀 있지 않았어요.




지하 전시실 역시 우즈베키스탄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크게 눈여겨볼 것이 안 보였어요. 다리가 아픈데 지하는 매우 시원해 조금 앉아서 쉬다가 나와서 다시 공원을 걷기 시작했어요.


이스마일 사모니 묘소


드디어 이스모일 사모니 묘쇼에 도착했어요. 여기 역시 입장료도 내야 하고 안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촬영비도 내야 하는 곳이었어요. 저는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이 있어서 이렇게 계속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이 없는 사람이라면 꽤 짜증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렇게 돈을 내고 들어가는 곳이 한 두 곳도 아닌데 돈을 내고 들어가는 곳이라고 해서 반드시 볼 것이 있다는 보장도 없었거든요. 이런 곳이 한 두 곳이라면 입장료가 얼마 하지 않으니 상관 없겠지만, 한 두 곳이 아니다보니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돈이 줄줄 새어나가구요.



내부는 꽤 괜찮았어요. 색을 칠하지 않고도 이렇게 화려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Bukhara beauty


이스모일 사모니 묘소 주변에 연못이 하나 있었어요. 여기에서 보니 꽤 아름다운 건물이었어요. 입장료만 받지 않는다면 관광 지구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가서 볼 만한 곳이었어요.


"부하라 도시 성곽은 왜 안 보이지?"


공원이 작은 줄 알았는데 절대 작지는 않았어요. 부하라 관광 지구에 있는 상인과 거주자들 다 와서 쉬어도 될 정도는 될 것 같았어요. 마음은 점점 급해지는데 성벽은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Bukhara


"드디어 보이는구나!"


조그만 호수가 나오고, 그 너머에 드디어 부하라 관광 지구 서쪽 끝에 있는 도시 성벽이 모습을 드러내었어요.



부하라 성



와서 본 보람은 있었어요. 보존 상태도 괜찮았고, 남아 있는 성벽도 매우 컸어요. 성벽을 다 걸어볼까 하는 마음은 멀리서 성벽을 볼 때 애초에 버렸고, 위에 올라가서 돌아가는 방향으로 걸어볼까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성벽 끝에서 옷을 버리지 않고 내려갈 방법이 마땅치 않아 보여서 관두었어요.


"돌아가자."


마음 같아서는 택시를 타고 싶었어요. 지도상으로는 가까워보일지 몰라도 이게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거든요. 볼로 하우즈 모스크까지 직선 거리로 500m 정도 되었어요. 이 정도 거리에 시간을 고려하면 그냥 택시를 타는 것이 현명한 선택. 하지만...


공원 안에 택시가 돌아다닐 리 없잖아?


아주 당연한 이야기. '휴식 공원' 안에 택시가 다닐 리가 없었어요. 시장쪽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아탈까 생각도 했지만 택시를 타고 가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거리. 단지 걸어가기에 조금 먼 거리였을 뿐이었어요.



성벽에서 본 제가 걸어가야할 길. 저 작은 호수쪽으로 가서 놀이공원이 있는 쪽으로 가야 했어요. 시계를 보니 어느덧 3시. 이미 계획과 시간이 크게 어긋나고 있었어요. 여기에서 이렇게 시간을 많이 보낼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 했거든요. 여기는 그냥 공원이고 멀다고 해 보아야 500m 정도 되어 보이니 길어야 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공원으로 바로 와서 빨리 대충 넘어가며 돌아다니지 않아서 시간이 더 걸린 것도 있었지만, 이제 만회하기 어려울 정도로 계획과 시간이 안 맞았어요. 원래 지금쯤이면 한창 시토라히 모히 코사를 보고 있어야할 시각. 그런데 시토라히 모히 코사 구경은 고사하고 제가 지금 있는 곳은 공원 가장 깊숙한 곳.


'시토라히 모히 코사랑 낙쉬반드 묘소...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나?'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낙쉬반드 묘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래도 부하라까지 왔는데 부하라 칸국의 왕궁만은 보고 싶었거든요. 낙쉬반드 묘소에는 무엇이 있는지 잘 몰랐지만 시토라히 모히 코사에는 무엇이 있는지 딱 하나만큼은 알고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연못. 거리를 돌아다니며 본 부하라 엽서들 가운데 연못에 비친 시토라히 모히 코사 사진 엽서도 있었어요. 이 사진을 보니 예전 알함브라를 구경하던 때가 떠올랐어요. 아침 일찍 들어가서 사람들 몰려오기 전에 후다닥 달려가 사진을 찍었던 작은 연못에 비친 알함브라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에 그 장면만은 꼭 보아야겠다는 결심했거든요.


'아직 포기하기는 일러.'


포기한다면 낙쉬반드 묘소를 포기하겠지만 아직 두 개 다 포기할 때는 아니었어요. 론니플래닛 중앙아시아 지도에 따르면 낙쉬반드 묘소는 부하라 기차역과 같은 방향이었어요. 그렇다면 먼저 시토라히 모히 코사를 본 후, 낙쉬반드 묘소를 보고 기차역으로 가는 방법이 있었어요. 그러면 동선이 그다지 나쁜 편이 아니라 시간을 더 줄일 수 있었어요.


오늘 남은 일정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길을 걷는데 기념품 가게가 보였어요. 그 기념품 가게에서는 우즈벡인들이 손으로 기념품을 만들고 있었어요.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찍어요."


기념품을 만드는 우즈벡인들은 제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자 찍으라고 하고는 다시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했어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그릇을 만드는 우즈벡인들 사진을 찍은 후 기념품점을 둘러보았어요.


chess


이 체스 너무 가지고 싶어!


너무 가지고 싶지만 체스를 두는 방법도 잘 모르고, 체스를 같이 둘 사람도 없어서 그저 구경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은 후, 기념품점에서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몇 개 구입하고 공원을 빠져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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