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03 우즈베키스탄 코칸드 쿠도요르콘 궁전

좀좀이 2012. 10. 1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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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었으니 이제부터는 볼 것 보러 돌아다닐 차례였어요. 가장 먼저 가기로 한 곳은 쿠도요르콘 궁전. 우즈벡어로는 Xudoyorxon O'rdasi, 영어로는 Khudayarkhan's palace. 코칸드에서는 이곳을 가장 가 보고 싶었어요. 이유는 오직 하나였어요. 왕궁이니까요.


소련에게 점령당하기 전, 우즈베키스탄에는 칸국이 3개 있었어요. 그 칸국들은 코칸드 칸국, 부하라 칸국, 호라즘 칸국이에요. 이들의 수도는 코칸드, 부하라, 히바. 타슈켄트는 현재 우즈베키스탄 수도이기는 하지만 왕궁이 없어요. 복원이 된 왕궁도 있고, 아직까지 보전이 된 왕궁도 있고, 홀라당 날아가 버린 왕궁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이 왕궁들은 칸국의 수도에 가야 볼 수 있다는 것. 중앙아시아의 왕궁은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나 궁금했어요. 아제르바이잔 셰키에서 본 왕궁과 비슷할지, 차이가 있을지도 궁금했구요.


"무키미 공원 어떻게 가요?"

"다마스 타고 가."


사람들에게 무키미 공원 Muqimiy bog' 에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자 다마스를 타고 가라고 알려주었어요. 왕궁이 무키미 공원에 있는데, 궁전을 saroy 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즈벡어를 알아서 어떻게 가고 싶은 곳을 설명해서 궁전이 무키미 공원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것이었어요. 론니플래닛 중앙아시아편의 참 나쁜 점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유적지를 자기 멋대로 다 영어로 번역해 놓았다는 것. 'Khan's palace'라고 번역을 해 놓았는데 이렇게 해 놓으면 물어서 찾아가기 매우 어려워요. 그렇다고 지도 보며 다 걸어서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궁전을 찾아가는 길에서부터 느낀 것은 말이 통하면 여행 난이도가 확 낮아진다는 것. 사실 외국 여행 전 긴장과 스트레스는 대부분 '언어'에서 와요. 우리나라 안을 돌아다니며 여행할 때에는 '안 되면 가서 부딪히며 해 보자'는 생각으로 쉽게 넘어가는 것들이 많아요. 하지만 외국에서 말이 안 통하면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한국 안에서 돌아다닐 때 너무나 쉽게 해결해 버려서 문제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것조차 문제가 되고 변수가 되요. 만약 여기에서 현지어를 몰랐다면 이 여행기도 길 찾느라 고생한 이야기로 한 바닥 적었을 거에요. 그러나 여기는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저는 여기에서 우즈벡어를 공부하는 학생. 그래서 마음이 매우 편했어요. 길 물어보는 것 정도는 한국에서 여행 다니는 것과 거의 비슷한 난이도. 예전 7박 35일에서 발칸 유럽을 다닐 때보다 훨씬 마음도 편했고 제게 난이도 자체가 매우 낮았어요.


'왜 마슈르트카를 '다마스'라고 하지?'


이유를 알아내는 데에 몇 초 걸리지도 않았어요. 정말로 다마스 승합차였거든요. 작고 콩벌레 (쥐며느리) 처럼 생긴 그 다마스였어요. 맨 뒷좌석만 남아서 맨 뒤로 기어들어갔어요.


다마스를 타고 무키미 공원으로 갔어요.



"사람들 다 어디 갔지?"


토요일인데 공원에 있는 사람 찾기가 어려웠어요. 학생들 몇몇이 보이는 것 외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어요.




정말로 한적한 공원이었어요. 조금 걷자 오래된 건물 하나가 보였어요.



"저것이 궁전인가?"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어요. 저 건물 외에는 궁전처럼 생긴 건물이 없었어요.



"역광이잖아!"


태양이 궁전 뒤에 있었어요. 건물을 살리면 하늘이 날아가고, 하늘을 살리면 건물이 시커멓게 나왔어요. 역광이 아니라도 햇볕이 강해서 사진 찍기 어려운 편인데 역광이어서 더 찍기 어려웠어요. 사진을 찍고 사진을 확인해보니 이게 잘 찍은 것인지 안 찍은 것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어요. 더욱이 햇볕이 강해서 어지간해서는 사진이 그냥 시커멓게 보였어요.


"일단 들어가야겠다."


입구쪽에 우즈벡 학생들이 앉아 있었어요.


"니하오!"

"곤니치와!"


'안뇽'이라고 하기 전까지 내가 대답해주나 봐라.


"어디 사람일까?"

"중국인일까?"

"어디 사람이에요?"

"일본인일거야."

"저 사람 우리 말 다 알아듣는 거 아니야?"

"당연히 모르지."


얘들아, 나 너희들이 하는 말 다 알아듣거든? 자기들끼리 우즈벡어로 수근대는데 어려운 말이 아니라 다 알아들었어요. 한국인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어요. 몇 마디 하면서 어울릴까 하다가 가볍게 무시하고 일단 왕궁을 보고 나오기로 했어요.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아주머니가 저를 불렀어요. 저를 부르더니 러시아어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우즈벡어 아세요? 저 러시아어 아예 몰라요."

"우즈벡어 알아?"


아주머니가 저를 부른 이유는 입장료 내라고 부른 것. 입장료를 내자 표를 끊어주셨어요. 아주머니는 표를 끊어주며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서 언제부터 우즈벡어를 배웠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코칸드에는 왜 왔냐고도 물어보셨어요. 아주머니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드리자 아주머니는 제가 우즈벡어를 안다는 것 자체에 신기해 하셨어요. 하지만 우즈벡어를 안다고 공짜로 들여보내주지는 않으셨어요.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는 복원을 잘 해 놓아서 제 예상보다 상태가 훨씬 좋고 아름다웠어요. 여기는 정말 신경을 많이 쓴 듯 싶었어요.



황금빛으로 치덕치덕 발라놓지 않아도 충분히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인 이유는 바로 벽을 섬세한 부조로 꾸며놓았기 때문이었어요.


천천히 걸으며 다음 방으로 들어갔어요.


"여기는 정말로 아름답구나!"



사진을 찍고 한동안 가만히 서서 아름다움을 머리 속에 새겨놓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렇게 화려한 내부는 우즈베키스탄 와서 처음 보는 것이었어요. 타슈켄트에서 이렇게 화려한 곳은 보지 못했어요. 이런 곳에서 업무를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혼자 바닥에 주저앉아 천장과 주변을 계속 바라보았어요.


그렇게 한참동안 방을 감상하다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안쪽으로 더 들어갈 수 있었어요.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여기는 관광객은 한 명도 안 보이고, 교복을 입은 몇몇 학생들만 보였어요.



여기는 아까와 다른 화려함이 있었어요. 여기도 천장이 화려했지만 처음에 본 방의 화려함이 너무 강렬해서 그냥 '우와!' 하고 감탄을 하며 둘러보았어요.



칸이 쓰던 그릇과 도자기들. 대부분 중국제였어요. 지금은 '중국제'라고 하면 '저질'의 상징처럼 되어 있지만 옛날의 '중국제'는 '명품'의 상징.



이쪽은 무슬림들이 메카 방향으로 기도하기 위해 만든 미흐랍이에요. 무슬림들은 아무 방향으로 기도를 드리는 게 아니라 반드시 메카 방향으로 기도를 드려야 해요. 그래서 만든 것이 미흐랍. 미흐랍이 있는 쪽이 메카 방향이므로 옛날 칸도 이 곳에서 기도를 했다면 이쪽을 보고 기도를 드렸어요. 미흐랍이 이렇게 있는데 미흐랍을 앞에 두고 엉뚱한 방향으로 기도를 드렸다면 그건 엉터리 기도니까요.



부조에 색을 입힌 벽은 아무리 보아도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저를 자꾸 붙잡아 두었어요.



밖으로 나왔어요. 궁전 자체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건성으로 휙 둘러보고 간다면 금방 보고 갈 수 있는 정도였어요. 안쪽에서 한쪽에는 무기와 다양한 동물의 박제가 전시되어 있었어요.




안쪽으로 들어가서 다시 오른쪽으로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자 화장실이 있었어요. 화장실은 당연히 유료. 화장실은 사진을 찍지 않았어요. 화장실이야 당연히 인상적일 것이 전혀 없었거든요. 오히려 이런 곳에서 화장실이 인상적이라면 그건 나쁜 쪽으로 인상적일 확률이 매우 높아요. 다행히 화장실은 인상적이지 않았어요.


화장실 앞쪽은 의외로 인상적이었어요.



화려한 궁전을 보다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곳을 보니 느낌이 묘했어요. 사탕을 빨아먹다가 갑자기 밥을 한 숟가락 먹는 기분이었어요. 벽, 하늘, 바닥. 끝. 기분이 묘해졌어요. 허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어요. 차라리 더럽거나 허름하다면 이상하지 않았을 거에요. 허름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구석에 물건 몇 개 놓인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어서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온 듯 했어요.


궁전을 다 보고 이제 다른 곳으로 갈 때가 되었어요.


'아까 그 방, 한 번만 더 가서 볼까?'


이대로 가기에는 너무 아쉬웠어요. 아까 그 방이 준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이대로 왕궁에서 나가면 계속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저를 계속 잡아당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시 그 방으로 갔어요.


방에 들어갔을 때, 학생 둘이서 미흐랍 앞 금줄 안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제가 들어가자 둘은 머쓱해하며 밖으로 나갔어요. 이 방에 다시 혼자가 되었어요. 아무도 없어서 혼자 왔다 갔다 해 보기도 하고 다시 바닥에 주저 앉아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어요.






왕궁에서 나왔어요. 아까 문에서 놀고 있던 학생들은 전부 사라졌어요.




이제 갈 곳은 조메 모스크 Jome Masjidi.




제가 갈 방향과 왕궁은 반대 방향. 왕궁은 점점 멀어졌어요. 외관부터 너무나 화려한 왕궁. 코칸드 여행의 첫 시작을 외부와 내부 모두 눈부시게 화려한 왕궁으로 시작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코칸드에서 볼 것들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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