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02 우즈베키스탄 코칸드 양기 바자르

좀좀이 2012. 10. 1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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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자정을 남기고 여행갈 날이 되었어요.


잠이 안 와!


설레서 잠이 안 오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냥 잠이 오지 않았어요.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자고 싶은데 잠에 안 오는 것이었다면 누워서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을 거에요. 그런데 그런 잠들고 싶은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아니었어요. 그냥 진짜로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분명 이성적으로 지금 누워서 자야 한다는 것은 알았어요. 야간 이동도 아니고 아침에 코칸드로 바로 이동해야 했거든요. 코칸드에서 며칠 머무르는 일정도 아니고 코칸드를 다 보고 파르고나로 이동하는 일정. 파르고나 숙소 역시 정보가 없어서 가서 헤매어야 했어요. 지금 안 자면 언제 잘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졸리든 피곤하는 어떻게든 코칸드 일정을 완수해야 했어요. 안 그러면 안디존 일정에 차질이 생기니까요. 그런데 자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이 여행기의 여행 준비편까지 다 썼는데도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머리는 안 돌아가는데 몸 상태는 쓸 데 없이 최상이었어요.


블로그에 글을 여러 개 예약 발행하면 이상하게 다음뷰에 등록되지 않고, 요즘은 예약 발행이 아니라 그냥 글을 올려도 티스토리 메인에 안 올라가는 경우가 있어서 '두 개의 장벽' 중 한 편만 예약발행했어요. 그리고 멍하니 앉아 인터넷을 하다가 종종 화장실에 소변 보러 갔어요. 우즈베키스탄 멜론 종류 글 쓴답시고 하루에 멜론을 세 통 먹어치웠더니 계속 화장실에 가고 싶었어요.


이렇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짐 싸는 것은 순식간이었어요. 양말 10켤레, 속옷 4벌, 셔츠 2벌, 바지 1벌, 반바지 집어넣으니 준비 끝. 사실 지금 여행보다 더 길게 간 여행인 '두 개의 장벽' 때에는 이보다도 더 간단히 준비해 갔어요. 이렇게 옷 짐을 끝내니 나머지 짐 싸는 건 정말 눈 깜짝할 사이. 모자 챙기고 우즈베키스탄 숨 뭉치 챙기고 여권과 기차표, 달러 챙기고 디지털 카메라와 충전기들 챙기니 모든 준비 끝. 이제 청소하고 나가는 일만 남았어요.


"그래도 눈은 붙여야겠지?"


밤을 새는 것과 한 시간이라도 자고 일어나는 것은 엄청난 차이. 잠이 부족해 체력적으로 무너지는 것도 있지만, 잠을 못 잤다는 생각에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어요. 그래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로 했어요. 제가 어디에서 읽고 해본 결과 꽤 그럴듯해서 지금도 지키는 것 중 하나가 잠을 3의 배수의 시간으로 자는 것. 시계를 보니 4시였어요. 인간의 수면 주기가 3시간이라 4시간 자는 것보다 3시간 자는 것이 일어났을 때 훨씬 덜 피곤하게 느낀다는 글이었는데 직접 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거든요. 4시에 자서 3시간 자고 일어나면 7시. 이때 일어나서 씻고 집 좀 정리하고 8시에 택시타고 쿠일룩 바자르 가면 12시 조금 넘어서 코칸드 도착하겠지? 그래서 자리에 누웠어요.


당연히 눕자마자 잠이 올 리 없었어요. 그래서 한참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어요.


'이러면 여행 망하는데...'


이 밤을 새고 여행을 떠나면 여행을 망칠 확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어요. 파르고나까지야 어떻게 잘 들어가겠지만, 그 다음날에 엄청난 잠이 밀려올 것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으나...안 오는 잠을 억지로 오게 할 방법이 없었어요.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어요. 한참 그렇게 노력하다 눈 뜨기를 몇 번. 그러다 잠이 들었어요.


7시에 잠에서 깨어나기는 했어요.


"더 자야지."


도저하 일어날 수 없었어요. 너무 졸려서 더 자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지금 안 일어나면 코칸드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냥 코칸드는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 정도로 너무 졸려서 다시 잤어요.


몇 번 자다 깨다 반복하다 8시 반 넘어서야 완벽히 일어났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정신차리니 8시 50분. 세면도구 챙기고 짐을 한 번 확인해보니 9시 정각. 이때부터 집을 후딱 쓸기 시작했어요.  천만다행으로 집이 작아서 10분만에 집을 대충 다 쓸었어요.


"이제 출발해야겠다."


9시 10분. 집에서 나왔어요. 집에서 쿠일룩 바자르까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가려면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어요.


"저기에 왠일로 경찰이 서 있지?"


항상 제가 택시를 잡는 곳에 오늘따러 하필이면 경찰이 서 있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누구나 자기 차를 가지고 택시 일을 할 수 있어요. 이게 불법이기는 한데 누구나 이렇게 택시를 이용해요. 오히려 진짜 택시는 비싸서 잘 이용하지 않아요. 재미있는 것은 이게 원래는 불법. 그래서 경찰이 서 있으면 차를 세워주지 않아요. 경찰 앞에서 택시 일하면 벌금 물거든요.


경찰이 안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택시에서 돈뭉치를 세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쿠일룩까지 가나요?"

"예."


돈뭉치 세는 것을 보니 왠지 쿠일룩까지 가자고 하면 갈 거 같아서 말을 걸어보았는데 간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바로 택시를 타고 쿠일룩 바자르로 갔어요.


"쿠일룩 바자르에 있는 코칸드 가는 택시 있는 곳으로 가주세요."

"예."


쿠일룩 바자르에서 타슈켄트에서 동쪽으로 가는 택시가 있다는 것만 알았지, 정확히 쿠일룩 바자르 어디에 택시가 있는지는 몰랐어요. 하지만 택시의 좋은 점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 외국인은 잘 모르지만 현지인들은 웬만한 곳은 잘 알거든요. 참고로 쿠일룩 바자르는 규모가 아주 크기 때문에 무턱대고 쿠일룩 바자르에서 내렸다가는 한참 헤매며 걸을 수 있어요.


택시에서 내려서 장거리 택시 정거장으로 들어가는데 역시나 택시기사들이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어요.


"안디잔!"


그러나 저의 목적지는 코칸드. 택시 기사들이 우왁스럽게 잡아대지도 않아서 입구에 장벽처럼 진 치고 있는 택시 기사들을 쉽게 넘어갔어요. 정거장 안에 들어가서 코칸드행 택시를 찾아보려는데 누가 뒤에서 외쳤어요.


"코콘?"


우즈벡어로 코칸드는 코콘 Qo'qon 이라고 해요. 그래서 뒤를 돌아보았어요. 택시 기사가 코칸드 가냐고 물어보고 있었어요.


"지금 딱 2명만 더 타면 바로 출발이야."


그래서 25000숨 주고 택시로 가기로 했어요.





장거리 택시 정거장 사진을 찍고 택시에 탔어요. 제 자리는 뒷좌석 가운데 자리. 이렇게 뒷좌석 가운데에 끼여서 탄 것은 아주 예전에 모로코에서 모로코-스페인 국경 갈 때 이후 거의 처음이었어요. 뒷좌석 가운데 끼어서 타면 정말 안 좋은 것이 창 밖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는 것. 문쪽에 앉고 싶었지만 어르신이 타셔서 제가 가운데에 앉았어요. 불편한 것은 둘째치고 창밖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답답했어요.


'잠이나 자자.'


새벽에 잠을 아주 조금 잤어요. 창밖도 잘 안 보이는 뒷좌석 가운데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잠자기. 그래서 코칸드 도착할 때까지 잠만 잤어요. 전날 잠을 푹 자서 정신이 맑았다면 꽤 짜증났을 거에요. 하지만 잠을 별로 못 잤기 때문에 가운데 자리에 낑겨서도 매우 잘 잤어요. 간간이 목화밭도 보고 천산산맥을 넘는 것도 보았어요. 천산산맥 꼭대기에는 만년설도 조금 남아 있었어요. 도로 상태는 매우 좋은 편. 그래서 더욱 큰 감흥 없이 잠을 잘 잘 수 있었어요. 이 길에서 특징이라면 터널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는 것 정도 뿐이었어요.


"멀었어요?"

"다 왔어."


실컷 자다가 깨어서 사람들에게 아직 코칸드까지 많이 남았냐고 물어보았어요. 사람들은 이제 다 왔다고 했어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서 승용차가 시장에 멈추어 섰어요. 차에 탄 사람들이 다 내렸어요.


"어디로 가?"

"궁전이요."


일단 궁전으로 간다고 대답했어요. 그 순간 머리 속에서 중요한 생각이 확 떠올랐어요.


'거기에 밥집 없으면 어쩌지?'


지금 와 있는 곳은 양기 바자르. 시간은 오후 1시. 여기에서 내리면 시장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어요. 게다가 점심 시간이라 다양한 우즈벡 음식 중 제가 원하는 것으로 골라 먹을 수 있었어요. 밥 시간 놓치면 그 다음에는 무조건 카봅 (샤슬릭). 여행 중 먹는 것도 하나의 재미인데 그 재미를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타슈켄트라면야 오늘은 카봅 먹고 다음날 점심에 다른 음식 먹으면 되지만 이 도시는 오늘 보고 떠날 도시. 평소 먹는 것은 토할 정도로 맛없지만 않으면 만족하고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 만족하는 저에요. 하지만 이번에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어요.


각 지역의 오쉬를 먹어보자!


오쉬 osh 는 흔히 '플로브' 또는 '팔로브'라고 하는 기름밥. 우리로 치면 볶음밥 조금 비슷한 음식이에요. 단, 우리나라 볶음밥보다 더 느끼하다는 것이 특징. 그 자체도 느끼한데 그 위에 오쉬 만들면서 솥에 고인 기름을 다시 퍼줘요. 이거 먹고 한국의 볶음밥보다 담백하다고 하는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에요. 집에서 볶음밥 만들 때 기름 양을 조절 못 하거나 제대로 만들지 않은 오쉬를 먹었거나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오쉬가 각 지역마다 다르다는 것. 만드는 법도 다르고 들어가는 법도 다르고, 어떻게 한 그릇을 담아 내어놓느냐도 달라요. 참고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맛있다고 하는 오쉬는 타슈켄트 오쉬에요.


우즈베키스탄도 각 지역마다 최고라고 하는 음식이 따로 있어요. 문제는 제가 이 '최고라고 하는 음식'을 비교할 방법이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우즈베키스탄의 주식인 빵 '논' non 과 '오쉬'라는 것. 각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만 골라먹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한 가지 음식을 정해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게다가 오쉬는 제가 타슈켄트에서 시장에서도, 레스토랑에서도 먹어본 음식이자 정말 자주 먹는 음식. 타슈켄트식 오쉬는 확실히 맛과 형태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 오쉬와 비교하기 딱 좋았어요.


하지만 논은 이런 비교가 참 어려운 대상. 우즈벡인들의 주식은 논이고, 이 논도 지역마다 종류가 다양해요. 게다가 주식이다보니 이건 오쉬와 달리 시간의 제약도 받지 않아요. 정말 맛 볼 생각만 있다면 그냥 사서 먹으면 되는 것. 거리에 사람만큼 논이 허다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아주 흔하고 구하기도 쉬워요. 문제는 이게 너무 다양하다는 것. 타슈켄트에서만도 몇 종류의 논을 팔아요. 물론 저 역시 그 논을 다 먹어보지도 못했어요. 이건 진짜 현지인의 영역. 저도 여러 가지 논을 먹어보았지만, 지금까지 확실히 아는 것은 그 유명한 '사마르칸트 논'이 어떻게 생긴 것 정도에요. 그래서 이것은 아직 현지화가 덜 된 제가 감히 도전할 영역은 아니었어요. 그냥 적당히 몇 종류 맛만 보고 느낌을 전달하는 정도.


"내가 오늘 여기서 카봅으로 한 끼를 때우지는 않겠어!"


택시를 급히 세웠어요. 거창한 '각 지역의 오쉬를 먹어보자'는 목표보다 점심 시간 놓쳐서 카봅으로 한 끼를 때울 수 없다는 생각이 10배는 더 컸어요. 카봅을 좋아하기는 해요. 그러나 이것은 정말 저녁 먹을 때 되면 선택지가 없이 무조건 선택하는 것에 가까운 음식이라 여행중 이런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어요. 어차피 저녁도 먹는다면, 그 메뉴는 약 99.99%의 확률로 카봅일 테니까요.



양기 바자르에서 내렸어요. 내리자마자 마주친 것은 어마어마한 인파.



시장에서 식당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아니, 아주 쉬웠어요. 제가 내린 길가에 식당이 있었고, 카봅 굽는 연기가 뿌옇게 피어오르고 있었거든요.


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식당으로 갔어요. 오쉬가 떨어지면 못 먹거든요. 기다렸다가 저녁에 먹고 그런 거 없었어요. 식당에 가자 마자 오쉬를 시켰어요.


"이건 너무 단순한데?"


원래 오쉬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단순한 모습. 맛도 정말로 단순했어요. 이건 정말 밥을 먹는 기분이었어요. 재료도 타슈켄트 시장에서 먹던 오쉬에 비해 종류가 확실히 덜 들어갔어요. 그냥 기름과 밥, 노란 당근을 넣고 볶아 만든 듯한 맛이었어요.


오쉬를 다 먹고 돈을 내고 시장을 둘러보았어요.



"여기 큰 도시였어?"


코칸드가 그렇게 큰 도시라고 들어본 적은 없었어요. 여기는 나름 코칸드 칸국의 수도였던 도시이지만 그렇게까지 크다고 알려진 도시는 아니었어요. 타슈켄트 기준으로 동부 지역의 주요 도시는 파르고나, 안디잔이지 코칸드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시장은 정말 사람이 꽉 차 있었어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사진을 찍을 공간조차 별로 없었어요. 진짜 이렇게 코칸드가 사람들 많이 사는 곳이었나? 그런데 왜 안 알려져 있었지? 이 이유가 궁금했어요. 발 디딜 틈도 없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시장 내부는 진짜로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사진기를 꺼내보았자 소용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뭐 찍고 말고 할 거리가 아예 안 나왔거든요. 그렇다고 사람 뒤통수를 접사로 찍어댈 수도 없는 일.


사람들을 비집고 다니며 시장을 둘러보는데 희안하게 생긴 음식이 보였어요.


"이거 뭐에요?"

"호박 솜사."


호박이 나오는 계절이라서 호박 솜사도 나오는구나! 신기한 마음에 하나 사서 시장 밖으로 나왔어요. 왕궁 가기 전 이것을 후식으로 먹을 생각이었어요. 호박 솜사는 대체 무슨 맛인지 궁금해서 한 입 베어 물었어요.


"음..."


뭐라 말로 표현하기 참 애매한 맛. 호박 솜사를 제 돈 주고 다시 사먹고 싶지는 않아요. 호박죽을 상상하면 절대 안 되는 맛. 저는 호박 솜사라고 해서 달콤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단 맛은 아주 조금. 게다가 겉의 빵도 얇은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부친 것이었어요. 처음 본 것이라 사 먹어 보기는 했지만 우즈베키스탄 떠나는 그 날까제 제 돈 주고는 절대 안 사먹겠다고 다짐했어요. 맛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단, 맛이 있다고도 말을 못할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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