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프롤로그 (우즈베키스탄 여행기)

좀좀이 2012. 10. 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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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우즈베키스탄에 온 지도 반년이 넘었어요.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


이사를 가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동네 탐사. 저도 그랬어요. 처음 2월에 타슈켄트 왔을 때에는 매일 걸어서 돌아다녔어요. 그때는 날도 영하 10도까지 떨어지고 툭하면 눈 오고, 거리는 빙판과 눈으로 덮혀 있었어요. 눈 녹으라고 뿌린 물이 얼어서 이게 눈을 녹이기 위해 뿌린 것인지 사람 자빠지라고 뿌린 물인지 구분도 안 되었던 때. 저도 걸어서 돌아다니며 빙판 때문에 몇 번 뒤로 자빠졌어요.


타슈켄트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는 것도 끝나고 얌전히 우즈벡어 공부하며 지내던 시간들. 이때는 어쩔 수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 비자가 단수 비자라서 외국으로 가면 다시 돌아올 방법이 없었거든요. 그때는 어차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즈벡어도 정말로 엄청 못하고 물가도 파악되지 않던 시기라 섣불리 멀리 돌아다닐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드디어 비자를 다시 받고 나서는...


외국으로 가자!


오직 이 생각 뿐이었어요. 무조건 외국으로! 우즈베키스탄 주변 국가는 한국에서 가기 어려워! 이런 기회 아니면 다시는 못 가! 그래서 모든 관심은 우즈베키스탄 주변 국가 여행에 쏠려 있었어요. 그래서 타지키스탄도, 투르크메니스탄도, 아제르바이잔도 갔다 왔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가 우즈베키스탄에 오래 머물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도 웬만한 곳은 한 번씩 가서 직접 보아야 한다는 것. 한국이라면야 적당히 가고 싶을 때 가도 되기 때문에 반드시 올해 안에 한국의 모든 유명한 곳을 다 가볼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여기는 우즈베키스탄. 이번 아니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나라. 물론 마음만 먹으면 다시 오겠죠. 아니, 돈이 있다면요. 어쨌든 여기 왔으니 온 김에,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을 조금 더 알기 위해 돌아다닐 필요는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숙제.



원래 계획은 우즈베키스탄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보는 것이었어요. 타지키스탄 갈 때에는 사마르칸트를 보고 갈 계획이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갈 때에는 부하라를 보고 갈 계획이었구요. 하지만 절묘하게 이 두 도시는 스쳐 지나가는 도시가 되어 버렸어요. 사마르칸트에 갔을 때에는 사마르칸트 근처에 있는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국경인 펜지켄트 국경이 닫힌 데에다 비가 쏟아졌어요. 부하라에 갔을 때에는 기차역과 시내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기차역에서 택시 타고 바로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국경인 파라브 국경으로 가 버렸어요. 두 도시 모두 정말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어요. 그때 중요한 것은 타지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이었지,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는 아니었으니까요.


아제르바이잔에서 돌아오니 어느덧 7월 중순. 우즈베키스탄 국내 여행할 때가 아니었어요. 이유는 하나. 너무 더워서. 타슈켄트도 50도까지 치솟는 더위였는데 그보다 더 더운 지역에 가면 그 결과는 너무나 자명한 것. 관광이 아니라 그냥 자학이죠. 아무리 건조기후라 그늘로 가면 시원하다고 하지만 40도는 가볍게 뛰어넘는 더위 앞에서는 그늘이고 뭐고 없어요. 그늘로 들어가 보았자 한여름 뜨끈뜨끈한 바람을 뿜어내는 에어컨 환풍기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에요. 단지 양달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서 상대적으로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더위가 한풀 꺾인 9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어요. 더 미룰 수 있는 시간도 남아 있지 않았구요. 타슈켄트를 기준으로 동부는 산악지대. 여기는 추위가 빨리 오는 지역이에요. 날이 늦어질수록 동부는 춥고 눈이 쌓여서 돌기 어려워져요. 이 지역이 겨울에 어떨지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현지인들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어요. 타지키스탄에서 어떤지 보았으니까요.


게다가 지금은 목화철.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인 목화를 수확하는 시기에요. 이때가 되면 학생들까지 동원되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목화는 Oq oltin - 즉, 하얀 황금이에요. 이 우즈베키스탄의 어마어마한 목화밭을 보기 가장 좋은 시기가 바로 가을. 대학교는 학생들이 동원되어서 휴교와 다름 없는 상태. 사람들도 지금 돌아다니면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목화밭을 볼 수 있으니 지금 돌아다니는 것이 좋다고 했어요. 게다가 겨울이 오면...여기도 구 소련 지역. 타슈켄트에서 구 소련 지역의 스산함을 제대로 보았기 때문에 스산해지기 전에 빨리 돌아다녀야 했어요.


이제 더 미룰 수도 없었기 때문에 드디어 결심했어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을 돌아다니기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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