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24 아제르바이잔 바쿠

좀좀이 2012. 9. 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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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기에서 남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아제르바이잔에서 사용하는 아제르바이잔어 교과서 구입.


타지키스탄도, 우즈베키스탄도, 투르크메니스탄도, 아제르바이잔도 전부 고유의 언어를 사용해요. 물론 러시아어도 사용하구요.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아직도 러시아어가 아주 널리 광범위하게 쓰이고,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은 그렇지 않아요. 이것은 국민을 구성하는 민족의 비율, 그리고 지배적 위치에 있는 민족과 그 외 민족의 힘에 따라 달라져요. 투르크메니스탄와 아제르바이잔에서 투르크멘인들과 아제리인들은 러시아인을 비롯한 다른 민족에 비해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러시아어를 박멸하려고 하면 박멸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꼭 그렇다고 할 수 없어요. 게다가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벡인들과 타지키스탄의 타지크인들은 일하러 러시아에 많이 넘어가거든요. 사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최소한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어가 사라지느냐 계속 사용되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정부의 의지에 달렸어요. 우즈베키스탄은 그저 천천히 - 때로는 정부가 중심을 못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러시아어가 널리 사용되는 것이고,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정부가 빠르고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것이죠.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해외에서 취득한 학위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해외가 의미하는 곳이 대부분 어디이겠어요.


저 역시 이런 정책은 매우 잘 하는 정책이고 더욱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꾸앙과 와리바시, 요지를 우리말에서 완벽히 쫓아냈듯이 여기도 자국어인 타지크어, 우즈벡어, 투르크멘어, 아제리어를 써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여행하며 러시아어 하나 알면 편하다는 거 아는데도 웬만하면 현지어를 어떻게 해보려고 바득바득 노력중이에요. 물론 그게 쉽지 않아서 저 역시 생존 러시아어에 어느 정도 의존하기는 하지만요.


사실 현지어를 익힌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발음이 이상하고 억양이 엉망인 건 괜찮아요. 그건 여행중 현지인들 이야기하는 거 들어가며 고쳐도 되는 것이고, 이상하게 말해도 대충 다 알아들어요. 우리가 외국인들이 '빠다 발음'으로 한국어 해도 다 알아듣는 것처럼요. 하지만 언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근본적인 문제죠. 더욱이 여행을 위해서 잠깐 공부하는 것이라면요. '안녕하세요', '얼마에요', '일이삼사오육칠팔구십', '감사합니다' 이 정도만 알아도 여행에서 큰 힘이 되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것만 알고 여행하기엔 무언가 아쉽죠. 그리고 이 지역에서 위에 나온 것만 현지어로 하고 나머지 못한다 싶으면 현지인들은 바로 러시아어로 해 버려요. 이것이 아직도 뿌리 깊게 이 지역에 내려박혀 있는 식민지의 유산이자 소련의 유산.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보려 하면 바로 가장 중요한 문제와 맞닿뜨리게 되요.


교재가 시원찮다.


당연히 한국어로 된 교재는 없죠. 그래서 영어로 된 교재, 또는 불어로 된 교재를 구해 보아야 하는데...지문이 더럽게 재미 없어...


참 어쩌면 그렇게 욕 나오게 재미 없게 교재를 쓸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 이것도 문화의 차이라고 봐야 할까요? 확실히 서양인들이 쓴 교재는 정말로 지문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잘 이야기하는 주제나 표현은 거의 없고, 정말 우리가 안 쓰는 표현 및 주제는 엄청 많은 경우가 많아요. 자기가 주말에 놀았던 이야기로 몇 과 지문을 꾸려가요. 이것까지는 좋아요. 우리도 주말에 노니까요. 그런데 이 노는 것 자체가 우리와 많이 달라요. 정말 그렇게 재미있다는 미국 드라마 '프렌즈' 보고 '저것들은 대체 뭐가 웃기다고 저렇게 깔깔대?'라고 생각하며 채널 돌려버렸던 그 느낌이에요. 그리고 구해지는 교재들이 체계가 없는 것도 많구요. 독학을 할 수록 더욱 좋은 교재가 필요해요. 누가 가르쳐준다면 빠진 내용을 그 자리에서 설명해주면 되기 때문에 상관 없지만 독학은 그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교재들이 좋은 교재는 거의 없었어요. 그냥 닥치고 지문 외워라 식의 교재가 대부분. 제대로 문법, 회화, 강독이 균형을 이루는 교재는...전부 러시아어로 써 있어...아이 좋아...책 한 페이지 읽는데 하루 걸리겠네.


그래서 '교과서'에 주목하게 되었어요. 사건의 발단은 우즈베키스탄. 심심하면 읽을 생각으로 러시아 민족을 위한 교과서를 구입했어요. 그런데 이게 정말 괜찮았어요. 이때부터 그 나라 말이 배우고 싶다면 그 나라 교과서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생겼어요. 문법은 영어나 불어로 된 자료를 구해 읽고, 나머지는 사전 찾아가면서 교과서를 읽어나가는 것은 할 만 했어요. 일단 서양인이 쓴 교재들보다 지문이 재미있었으니까요. 진짜 그 나라의 모습도 느껴지구요. 지난 타지키스탄 여행때에도 타지키스탄에서 사용하는 타지크어 교과서를 구해 왔고, 투르크메니스탄에서도 구했고, 이제 남은 것은 아제르바이잔.


"교과서 어디에서 팔아요?"

"서점."


주인 누나가 알려준 서점은 이미 우리가 갔던 곳이었어요. 거기에서는 교과서를 팔지 않았어요.


"거기 교과서 없어요."

"그럼 쭘 근처 가봐."


주인 누나는 우리에게 쭘 (중앙 백화점) 근처에 서점들이 있으니 거기에 가 보라고 했어요. 참고로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ц를 '쓰'로 발음해요. 그래서 원래는 ЦУМ - 즉 '쭘'인데 '쑴'이라고 해요. 쭘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자 누나는 자기도 어차피 지금 일이 있어서 나가야 하는데 같이 가자고 했어요.


"너희는 좋은 한국인 같아."


좋은 한국인? 칭찬이니 기분은 좋았어요. 그런데 정확한 의미가 궁금했어요. 그냥 좋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이전에 개판 친 한국인이 있다는 의미일까?


누나 말대로 버스를 타고 쭘으로 갔어요. 버스비는 20개픽. 우리나라 돈으로 약 300원. 300원보다 조금 안 되는 돈이었어요. 이 나라도 석유가 풍부한 나라. 비싼 바쿠 물가에 비해 버스비는 매우 저렴했어요.


버스를 타고 쭘 근처 서점들을 둘러보았지만 교과서를 파는 서점은 없었어요.


"28 May 역에 가 봐요."


그래서 다시 버스를 타고 28 May 지하철역으로 갔어요.




햇볕이 쏟아지는데 생각만큼 덥지는 않았어요. 아슈하바트에서 호되게 당해서 더위에 면역이 생겼거든요. 작년에 왔을 때 바쿠는 그다지 건조하지 않고 습했어요. 그러나 지금. 그냥 건조했어요. 아슈하바트가 이상하게 습하기까지 해서 여기는 정말 살 만한 곳이었어요.



서점을 향해 걸어갔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내린 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야 한다고 했어요. 그쪽에 서점들이 몰려 있고, 아마 거기서 교과서를 팔 거라고 알려주었어요. 생각만큼 많이 걷지는 않았어요. 버스에서 내려서 기차역 방향으로 쭉 걸어가자 서점들이 보였어요.


"저기 들어가볼까?"



"저기? 저기 그냥 문방구 아니야?"

"그래도 일단 들어가 보자. 없으면 그냥 나오면 되잖아."


우즈베키스탄에서 축적된 경험으로 들어가는 것이 영 못마땅한 친구. 우즈베키스탄에서는 Kitob 이라고 써 놓고 정말 간단한 책 몇 권만 가져다 놓고 주로 복사집 겸 문방구점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들어가기 싫어하는 친구를 데리고 서점 안으로 들어갔어요.


서점 주인과 직원은 막 식사를 하려고 하고 있었어요. 식사는 빵과 감자 볶음, 오이였어요. 우리가 들어가자 직원이 일어났어요.


"교과서 있나요?"

"어떤 교과서?"

"아제르바이잔어요."

"몇 번째 권?"

"전부요."


친구가 말하자 아저씨가 구석에 가서 책을 뒤지며 하나 하나 책을 빼기 시작했어요. 1권은 없고 2권부터 있다고 했어요. 순식간에 2권부터 11권까지 다 구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교과서와 달리 아제르바이잔의 아제르바이잔어 교과서는 한 무더기였어요. 그리고 2권부터 4권은 책이 유독 컸어요.


"저도 이렇게 주세요."

"응?"


주인 아저씨가 제 말을 못 알아들었어요. 나 분명히 아제르바이잔어로 이야기했는데? 아무리 까먹었어도 이 정도는 아직 해요.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자 친구가 다시 이야기했어요.


"제 꺼랑 똑같이 주세요."

"응?"


친구가 말해도 못 알아들었어요. 아까 책 어디 있는지 보았는데 내가 가서 찾아올까? 친구는 아저씨가 어떻게 해 달라고 하는지 말을 이해 못하자 자기가 가서 책을 뽑기 시작했어요.


"2부터 11까지 주세요."

"아!"


아저씨께서 다시 똑같이 아제르바이잔어 교과서 2권부터 11권까지 뽑아 오셨어요. 저는 거기에 학교에서 교과서로 쓰는 보조 교재 4권까지 추가로 샀어요. 친구야 아제르바이잔어를 유차하게 잘 해서 읽기용 보조 교재가 필요 없었지만, 저는 필요했거든요. 일단 교과서를 쌓아놓고 다른 책 있나 구경했어요.


"이거 이야기책이네?"


아제르바이잔 민담집을 찾았어요. 문제는 이게 한 권 짜리가 아니라 5권 짜리. 사고는 싶은데 이렇게 5권 짜리를 다 사야 하나 망설여졌어요. 주르륵 넘겨보는데 눈에 딱 띄는 페이지가 있었어요. 거의 맨 마지막 페이지였는데 이게 매우 중요하고 다른 이야기책과는 차별이 되는 페이지였어요.


누가 어디에서 수집한 이야기인지 다 정리되어 있다.


이건 꽤 중요한 것이었어요. 누가 어디에서 수집한 이야기인지 정리가 되어 있다는 것은 참고 문헌으로 쓰기 좋다는 이야기에요. 누가 지어낸 것인지 원래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인지 명확히 나와 있으니까요. 세상에 민담집이야 많고 많지만 이렇게 출처가 명확히 드러나 있는 민담집은 거의 없어요. 이것은 단순히 민담집으로써의 가치가 아니라 학술용으로의 가치도 함께 가지고 있었어요.


'살까...?'


하지만 덥썩 사기에는 부담되는 가격. 낱권으로 하나씩 살 수도 있었지만 이런 것은 사려면 한 번에 다 사야 해요. 우리나라라면 그냥 가서 한 부 사오고 재미있으면 또 사오고 하면 되요. 하지만 여기는 아제르바이잔. 한 권 사고 나중에 '이 책 좋네' 하면서 또 사려고 아제르바이잔 갈 수는 없는 노릇. 사자니 가격이 비싸고 안 사자니 너무 탐난다...일단 보류.


"아제르바이잔의 믿음과 관련된 책 있나요?"


그러자 이슬람 관련 서적을 보여주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구! 내가 원하는 것은 아제르바이잔의 미신과 풍습이라구! 의상과 관련된 서적이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춤출 때 입는 의상을 그림으로 그린 책 한 권 밖에 없다고 했어요. 이번에는 음식과 관련된 책이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그건 있다고 하며 몇 종류 보여주었어요. 큰 것을 살까 작은 것을 살까 하다가 일단 작은 것으로 샀어요. 저는 요리책 보고 그 나라 문화 구경하는 목적이지, 제가 요리를 하고 요리를 연구할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교과서는 아제르바이잔어 교과서 2~11가 총 46마나트, 읽기 교재가 16마나트, 총 62마나트 나왔어요. 교고서만 82달러. 돈이 한 방에 크게 훅 날아갔어요.


서점에서 나왔는데 친구가 옆 가게에 혹시 1권이 있나 보겠다고 들어갔어요. 저는 필요 없으니 살 거라면 혼자 사라고 했어요. 잠시 후. 친구가 1권도 사 왔어요.


"응?"


책을 정리하고 이제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거장으로 가려는 순간 멈추어섰어요.


"이제 우리 뭐하냐?"


여기에서의 목적을 모두 달성했고, 어려운 일도 다 끝냈어요. 교과서를 이렇게 빨리, 그리고 쉽게 구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여기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교과서 구하기만큼 어렵지는 않겠지만, 숙소 잡고, 돈 뽑고, 교과서 사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나 쉽게 모든 것이 다 끝나버렸어요.


"일단 돌아가자."


친구가 일단 호스텔에 돌아가서 책도 가져다 놓고 쉬면서 생각하자고 했어요.



전철을 타고 갈까 하다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어요. 서점 바로 근처가 바쿠역이었어요. 바쿠역으로 가서 그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호스텔로 돌아갔어요.


집에 돌아왔는데 주인 누나 얼굴이 편하지 않았어요. 무슨 일 있나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양파 냄새가 진동했어요.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들이 집 가장 안쪽에 있는 작은 주방에서 양파를 썰고 있었어요. 이 호스텔은 주방이 두 곳 있어요. 밖에 하나 있고, 안에 하나 있어요. 안에 있는 주방의 용도는 주로 차를 끓여 마시고, 냄새가 별로 안 나는 감자나 옥수수를 정도 삶아 먹는 곳이에요. 왜냐하면 가장 안쪽에 있고, 주방에 창문이 없어서 환기가 잘 안 되거든요. 그런데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들은 안에서 당당히 양파를 썰어 요리하고 있었어요. 참다 못한 주인 누나가 냄새 안 빠지니 양파는 밖에서 조리하라고 하자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들은 양파를 끝까지 양파를 다 썰고 나서 밖에 가서 볶기 시작했어요. 정말 무개념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람들이었어요.


"우리도 저녁 먹어야하지 않을까?"


우리는 요리를 할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작년에 갔던 카스피해 해변에 있는 공원에 있는 케밥집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어요.


"벌써 밥 먹기는 조금 이른데 바쿠나 돌아다니다 갈까?"

"그러자."


바쿠를 돌아다닌다고 해봐야 갈 곳은 정해져 있었어요. 이체리 셰헤르 안을 돌아다니고 맥도날드가 있는 쪽으로 갔다가 해변으로 가는 것.








이체리 셰헤르는 크게 변했다는 느낌이 오지 않았어요. 그냥 작년에 왔을 때와 비슷했어요.


이체리 셰헤르를 나와 분수 광장으로 갔어요. 분수 광장을 거쳐 니자미 거리로 갔어요.




이쪽은 작년에 리모델링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크게 놀랍지 않았어요. 확실히 저녁때가 되니 사람들이 많았어요. 아제르바이잔인들은 다시 보아도 외모가 딱 티가 났어요. 아제리인들은 다른 튀르크인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얼굴을 가졌어요. 남자든 여자든 인상이 날카로워요. 우즈벡인, 투르크멘인은 물론이고 터키인과도 확연히 차이가 나요. 아제리인들은 외모는 튀르크 민족보다 오히려 카프카스 민족에 많이 가까웠어요. 특히 여자들 얼굴이요.



특별히 놀라울 것이 없어서 대충 돌아다니다 카스피해 해변으로 가는 길.


"이런 것이 생겼네?"



그것은 바로 곳곳에 생긴 지하보도. 솔직히 이 시각에 돌아다니며 가장 짜증나는 것은 교통체증이었어요. 바쿠의 교통체증은 악명 높아요. 이곳이 교통체증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옛날에 생긴 도시라서 도로폭이 좁거든요. 도로 뚫자고 100년 된 건물들을 마구 부술 수도 없고, 건물들은 이미 리모델링 다 했구요. 그래서 진짜 모든 도로가 차로 꽉 차 버려요. 그냥 차가 막히는 거면 괜찮아요. 저야 걸어다니는 사람이므로 차가 막히든 말든 알 바 아니에요. 문제는 이 나라 사람들도 교통체증을 인내할 만큼 인내심이 강하지 않다는 것. 일단 멈추고 기다린다 싶으면 바로 경적을 빵빵 울려대었어요. 이게 한 곳에서만 빵빵이 아니라 사방 팔방에서 빵빵 경적을 울려대어서 시끄러워 정신없었어요.


"아, 진짜 시끄러워 죽겠네!"


경적을 울린다고 빨리 가는 것도 아닌데 일단 앞 차가 안 가면 무조건 빵빵빵. 거기에 사람들까지 끼어들면 난장판이므로 이렇게 지하보도를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 놓았어요. 게다가 지하보도 내에서는 사진 촬영 가능. 제대로 돈을 쓰고 신경써서 만든 티가 팍팍 났어요.


공원에 가서 그때 먹었던 그 케밥을 먹었어요.


"돌아가자."


제가 먼저 돌아가자고 하자 친구가 깜짝 놀랐어요. 저도 마음 같아서는 더 걷고 싶었어요. 그러나 도저히 더 걸을 수 없었어요. 누가 양쪽 무릎을 가로로, 양쪽 종아리를 세로로 칼로 쑤시고 잘라내는 것 같았어요. 정말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데 너무 아팠어요. 이렇게 다리가 끊어지게 아픈 건 처음이었어요. 게다가 왼쪽 손목이 너무 저렸어요. 하도 저려서 계속 오론손으로 주물렀지만 하나도 소용없었어요.


호스텔에 돌아왔는데 주인 누나가 아제르바이잔어 하는 사람 왔다고 매우 좋아했어요. 아제르바이잔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은 제 친구였어요. 그래서 저는 거의 듣고, 친구에게 아제르바이잔어로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아제르바이잔어를 조금 공부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너무 오래되었고, 이게 우즈벡어랑 비슷하면서 또 많이 달라서 들으면 알아듣는 것도 많고 못 알아듣는 것도 많았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아까 왜 우리에게 '좋은 한국인'이라고 했는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여기 온 한국인들 어땠냐고 물어보았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듣는 제가 쪽팔릴 정도였어요. 주인 누나는 호의를 베풀었는데 한결같이 악의로 되돌려주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침대와 관련된 이야기였어요. 이 호스텔 2층에는 더블 베드가 하나 있어요. 여기는 말 그대로 2명이 자는 침대. 한 한국인이 왔는데 그때 주인 누나가 호의를 베푼다고 그 침대에서 자라고 했대요. 그리고 며칠 후, 그 침대를 예약한 두 사람이 왔어요. 주인 누나는 예약 손님이 왔는데 비켜줄 수 있냐고 하자 내 침대인데 왜 비켜주어야 되냐고 마구 화를 내었대요. 그리고 예약한 손님들이 침대를 보려고 하자 침대를 마구 흔들어대며 난리를 피고 다 쫓아냈대요. 그래서 주인 누나가 할 수 없이 예약한 손님들에게 돈을 물어주고 다른 호스텔로 보냈대요. 이것 말고도 별 진상들이 다 왔다 갔더군요. 웬만한 건 문화의 차이라고 이야기를 해 줄텐데 이건 문화의 차이가 아니라 그냥 닥치고 무례한 짓.


주인 누나 말로는 좋은 사람만 오면 편하고 나쁜 사람만 오면 최악인데 섞여 오는 일보다 한 번은 호스텔 손님들 전부 좋은 손님, 한 번은 호스텔 손님들 전부 나쁜 손님들 - 뭐 이런 식이라고 했어요. 요즘은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 무리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했어요. 하루가 멀다하고 문제를 일으켜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누나 이야기를 들어보나, 아까 밖에도 주방이 있는데 환기 안 되는 주방에서 굳이 양파를 썰고 사용한 식기와 도구는 씻지도 않고 던져놓는 것을 보나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 무리가 좋은 여행자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집에서 안 하는 짓을 돈 내었다고 남의 집에서 마구 그러면 안 되죠.


이야기를 하다 시간이 늦어 씻고 잠을 청했어요. 그때까지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 무리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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