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지 않고 당하면 고통도 2배. 딱 이꼴이었어요.
"어디 앉아서 쉬자."
편한 일정 될 거라 생각하면서 온 박물관 예상. 완벽히 빗나갔다. 체력은 위험하다고 빨강으로 반짝반짝. 머리도 과부하라고 파랑으로 반짝반짝. 이대로 더는 무리다. 무조건 휴식을 취해야 된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서 있기도 어려울 지경은 아니었어요. 그렇게까지 약골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예상을 아주 빗나가버렸기 때문에 일본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에서 나왔을 때는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처음부터 여기는 4시간 걸리는 곳이라고 단단히 각오하고 들어갔다면 안 힘들었을 거에요. 문제는 여기를 2시간이면 충분히 다 보고도 남을 곳이라 예상하고 들어갔다가 규모에 호되게 당했다는 것이었어요. 완벽한 판단 착오였어요.
그래도 다 봤잖아.
무슨 던전을 하나 다 돈 기분이었어요. 아이템도 많고 재미도 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엄청나게 지치고 힘든 던전요.
대신 나는 너의 체력을 다 갉아먹었지.
일본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은 제게 손을 흔들며 말했어요. 제 체력을 아주 잘 받아먹었대요. 체력과 전시물 관람을 교환했어요. 제가 약간 이득 본 느낌이었지만, 힘든 건 어쩔 수 없었어요. 두 다리가 아팠어요. 저리거나 얼얼한 게 아니라 진짜로 아팠어요. 어디 앉아서 쉬고 싶은 마음 뿐이었어요. 그리고 음료수를 하나 시원하게 마시고 싶었어요. 음료수 마시고 정신 차리고 싶었거든요.
'이 공원 어딘가에 편의점 하나 없겠어?'
일본은 편의점의 나라. 편의점이 잘 발달한 나라에요. 이 넓은 우에노 공원 안에 편의점 하나 없겠냐 싶었어요. 당연히 있고도 남을 것 같았어요.
우에노 공원 대분수 上野公園 大噴水 로 갔어요. 가는 길에 길 끄트머리에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트럭이 보였어요. 공원 입구 정확히 앞에 있었어요. 그냥 아이스크림 파는 트럭이 있다고 여겼어요.
여기라면 편의점이 하나 있을 것 같았어요.
"어? 편의점 어디 있어?"
대분수 주변을 둘러봤어요. 카페는 있었어요. 스타벅스도 있었어요. 그러나 편의점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어요. 편의점 비스무리하게 생긴 것조차 안 보였어요. 간이 매점, 가판대 따위도 없었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편의점은 고사하고 장난감 판매하는 잡상인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분수 옆에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었고, 멀리 스타벅스와 다른 카페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어요.
콤비니와 도꼬데스까!
우에노 공원에서 콤비니는 어디데스까를 외치다.
진짜 당황스러웠어요. 목이 너무 말랐어요.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에서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덥고 습해서 땀이 또 나고 있었어요. 진짜 뭣 좀 마시고 싶었어요. 아주 시원한 것 하나만 마시면 살 것 같았어요. 그 흔해빠진 편의점을 찾아 분수대로 왔건만 편의점 따위는 없었어요.
일본은 편의점의 나라래메!
한국이라면 여기에 분명히 편의점 하나는 있어야 정상. 편의점이 없다면 간이 매점이라도 하나 있어야 정상. 그런데 없었어요. 두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로손, 세븐일레븐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편의점 어디 있지?"
구글맵으로 우에노 공원 편의점을 찾아봤어요.
'미치고 팔딱 뛰겠네...'
이 넓은 우에노 공원 안에 편의점이 단 하나도 없었어요. 제일 가까운 편의점은 아까 우에노 공원 들어올 때 이용한 그 입구 옆 - 그러니까 점심 먹은 롯데리아 옆 편의점이었어요. 거기까지 거리는 상당히 멀었어요. 게다가 계단도 있었어요. 그곳을 제외하면 이번에는 우에노 공원에서 시노바즈 연못을 지나서 아예 나가야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있었어요. 드넓은 우에노 공원 안에 편의점이라고는 단 한 곳도 없었어요.
'이거 지도가 잘못된 거지? 편의점이 이 주변에 단 하나도 없다고?'
현실부정. 믿기지 않는 현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잔인한 현실.
타는 목마름으로 편의점이여, 편의점이여, 편의점 만세를 아무리 외친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어요. 진짜 절망적인 편의점 배치였어요. 무슨 광역 편의점 제거 기술을 사용했는지 주변에 편의점이라고는 단 한 곳도 없었어요. 일본 국립 과학박물관 옆에는 일본 국립박물관이 있어요. 이 두 곳 사이 어딘가에 편의점이 하나 있을만할 법도 한데 없었어요. 주변을 둘러보고 지도를 아무리 찾아봐도 편의점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현실이었어요.
당연히 두뇌에서는 강력한 현실부정. 일단 일본 국립박물관 쪽으로 가보기로 했어요. 없었어요. 멀리까지 아예 없었어요. 나무와 도로만 보일 뿐이었어요.
'아, 아까 그 아이스크림 판매중인 트럭!'
문득 떠올랐어요. 그 트럭 앞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이유가 있었어요. 이쪽에서 그나마 저렴하게 시원한 거 사먹을 곳이라고는 그 아이스크림 트럭 뿐이었거든요.
가자. 가자!
아이스크림 판매하는 트럭으로 갔어요. 줄을 섰어요. 트럭 위에는 인공착색료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아이스크림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내가 지금 그딴 거 가리게 생겼냐?
트럭 위에 '우리는 인공착색료 듬뿍 쏟아넣으니 먹을테면 먹어보세요'라고 적어놨다고 해도 사먹을 생각이었어요. 정말 덥고 목말랐거든요. 줄을 서서 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어떤 맛을 먹을지 골랐어요.
멜론맛 아이스크림을 골랐어요. 한국 아이스크림 메로나와 비슷한 맛. 그러나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요. 아주 신의 물방울이었어요. 이거라도 먹으니 살 것 같았어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시 대분수로 돌아왔어요.
"이제 뭐하지?"
"우리 아키하바라 가자!"
"아키하바라? 그 오타구 성지?"
2019년 8월 27일 일정은 오직 하나 - 우에노 공원을 보는 것 뿐이었어요. 이것을 다 본 후 시간이 남으면 공원 근처를 돌아다닐 계획이었어요. 이제 시간은 늦어버렸어요. 박물관은 전부 문을 닫아버렸어요. 우에노 공원 다음에 무엇을 할 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왔어요. 사실 시간이 된다면 우에노 공원을 다 둘러본 후, 지하철을 타고 신주쿠로 넘어갈까 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신주쿠 가기에는 아무리 봐도 늦은 시간이었어요.
그런 곳은 가는 거 아니야!
그때 친구가 아키하바라 가자고 했어요. 여행 계획을 짤 때 아키하바라는 아예 고려 대상에 집어넣지 않았어요. 아키하바라는 오타쿠의 성지. 프라모델, 피규어, 메이드 카페가 득시글한 곳이라고 알고 있었어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가고 싶은 마음이 단 하나도 없었어요. 궁금하지도 않았구요. 이런 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신나는 곳이겠지만, 저는 그런 쪽에 아예 관심이 없었어요. 오타쿠 특유의 기운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예 아키하바라는 갈 계획이 없었어요. 그런데 친구가 지도를 보여주며 아키하바라 정도라면 지금 걸어서 다녀오기 괜찮은 곳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우에노 공원 남쪽 출구에서부터 아키하바라역까지의 거리는 1.4km. 지도를 보니 길도 무지 단순했어요. 어디 골목 골목 들어가고 90도 커브를 마구 그리며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큰 길 따라서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되었어요.
"그래, 가자."
아키하바라 말고는 정말 갈 곳이 없었어요. 오후 5시 30분이었거든요. 어디를 가더라도 전부 애매한 상황이었어요. 그나마 갈 만한 곳은 신주쿠 정도일 건데, 신주쿠는 어차피 다음날 갈 예정이었어요. 친구는 제게 아키하바라 가면 진짜 메이드 카페 메이드 볼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인터넷에 나온대로 피규어가 득시글하고 길가에 메이드들이 일렬도열해 있냐고 물어봤어요. 그러면서 아주 기대하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봤어요.
"나도 모르는데..."
죄송합니다. 저도 진짜 아키하바라는 잘 모릅니다. 그냥 많이 들어보기만 했을 뿐입니다.
저도 아키하바라가 실제 어떻게 생긴지 하나도 몰랐어요. 일본 자체에 관심을 끈 지 한두 해가 아니었거든요. 제가 그나마 드라마 대신 일본 애니메이션 찾아서 보고 할 때는 일본 여행이 지금처럼 크게 붐을 이루고 있지 않을 때였어요. 디지털 카메라가 어느 정도 보급된 상태였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야간에도 삼각대 없이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어요. 포토샵을 이용해 사진 후보정 하는 게 옳은 건지 그른 건지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허구헌 날 맨날 싸우고 있던 시절이었구요. 아키하바라가 어떻게 생긴 지는 저도 하나도 몰랐어요. 그저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가는 곳이라고만 알고 있었어요.
일단 쉬다가 아키하바라로 걸어가기로 했어요. 1.4km면 어떻게 해도 한 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였어요. 그 정도 걷는 것은 아무 무리 없었어요.
앉아서 쉬면서 주변을 둘러봤어요. 일본 국립박물관이 보였어요. 이것도 국립과학박물관 못지 않게 상당히 커 보였어요.
'저기 가면 이번에는 문과적으로 파괴당하는 거 아냐?'
8월 30일 일정은 별 거 없었어요. 그날 시간을 내면 일본 국립박물관도 갈 수 있었어요. 일본 국립박물관을 보니 마음이 참 심란해졌어요. 국립과학박물관에서 이렇게 힘들었는데 저기는 가면 또 힘들 것 같았거든요.
게다가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은 정말 '문과적'인 공간.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은 과학 지식만 어느 정도 갖추고 있으면 매우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일본이라고 자기들 멋대로 이상한 과학 지식과 단위를 만들어 이용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한국도 전류는 암페어 A, 일본도 전류는 암페어 A. 똑같아요. 그래서 굳이 설명을 보지 않더라도 보면 다 알 수 있었어요. 일본 토끼라고 발이 10개 달린 건 아니거든요. 한국 토끼랑 똑같아요. 이딴 건 그냥 눈만 멀쩡하면 다 알 수 있는 사실.
그러나 문과적인 것들이 전시되어 있을 일본 국립박물관은 달랐어요. 일단 한국에서는 일본 역사를 거의 안 가르쳐요. 아니, 그냥 안 가르쳐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으로 가르쳐요. 그러니 배경 지식이 없어도 너무 없었어요. 여기에 일본은 자기네 연호를 써요. 일본 연호는 일본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평생 쓸 일이 없어요. 무슨 헤이세이 몇 년, 레이와 몇 년 이딴 거 몰라도 죽을 때까지 아무 불편함 없이 잘 살 수 있어요. 문제는 왠지 박물관은 이런 연호를 써서 전시물을 전시해놓을 것 같다는 점이었어요. 그냥 연도를 써놔도 일본 역사 지식이 미천해서 이해하기 상당히 힘들텐데 이걸 연호까지 써놓으면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게 뻔했어요.
게다가 예술 작품은 무엇을 포인트로 봐야 하는지 설명을 봐야만 해요. '이거 비싸겠네', '이거 멋지네' 라고 넘어가며 보면 보고 남는 게 없고, 이게 왜 진짜 무려 '일본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일본어를 매우 잘 알아야 해요. 일본 국립박물관은 들어가보지 않아도 일본 국립과학박물관과 달리 관람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요구되는 것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을 거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어요.
일본 국립박물관도 한 번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제가 과연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의문이었어요. 그래서 이건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가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어요.
우에노 공원 안에는 노숙자들도 보였어요. 일본 역시 사람 사는 곳. 당연히 어두운 면이 존재할 수 밖에 없어요.
일본 도쿄 우에노 공원 안에는 신사도 있었어요.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커다란 연못인 시노바즈 연못 - 시노바즈노이케 不忍池 가 보였어요.
이쪽에서는 소나무의 동그랗게 만든 원형 사이로 観音堂 한자가 보였어요.
우에노 공원 안에는 쓰레기통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었어요. 공원 바깥쪽에는 쓰레기통이 매우 귀한 것과 배치되었어요.
드디어 아까 들어온 입구쪽까지 도착했어요. 흡연 구역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어요. 옹기종기 모여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어요. 담배를 태우는 사람 중 몇몇은 흡연구역을 치우러 온 청소부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말을 걸고 있었어요. 청소부는 흡연 구역을 매우 깨끗하게 청소하고 사라졌어요.
"편의점이다!"
그렇게 갈구했던 편의점이 나왔어요. 세븐일레븐 편의점이었어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바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어요.
다양한 음료수가 모두 저를 유혹하고 있었어요. 모두 다 자기를 마시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뭐 마시지?'
음료수를 찬찬히 살펴봤어요. 음료수로 당분과 수분을 제대로 보충하기로 작정한 상태였어요. 아키하바라까지는 1.4km 남짓. 웃으며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어요. 그러나 다리가 아파서 체력이 간당간당한 상태였어요. 당분과 수분이 고갈 직전이라고 온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절규하고 있었어요.
어서 사서 마시라고! 어서!
음료수와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모두 일치단결해서 빨리 음료수를 사서 마시라고 외치는 상황. 주머니 속 동전들은 해맑게 웃으며 어서 자신을 떨어버리라고 약올리고 있었어요. 땡볕 아래에서 하루 종일 갈증에 시달린 황소마냥 눈알이 뒤집어질 것 같은 상태.
호로요이 포도맛과 세븐일레븐 편의점 멜론 음료를 골랐어요.
"너 두 개나 마시게?"
"어."
친구가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저를 쳐다봤어요.
"야, 호로요이 술이야."
"알아. 이깟 3도 짜리."
일단 멜론 음료부터 마셨어요. 아까 먹었던 멜론 아이스크림과 맛이 비슷했어요. 그 다음은 일본 호로요이 차례였어요. 한국에서 마셨던 일본 호로요이 포도와 맛이 똑같았어요. 차이점이라면 일본에서는 훨씬 싸게 판매한다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판매하는 일본 호로요이 포도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었어요.
호로요이를 마시자 온몸이 뜨거워졌어요.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빨개졌어요. 알코올 알레르기가 제대로 올라왔어요. 괜찮았어요. 이제 날이 저물어서 제 얼굴 빛깔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거였거든요.
"가자."
편의점에서 나왔어요.
"어? 저기 시노바즈 연못 볼 수 있는 곳 있다!"
시노바즈 연못 바로 옆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었어요. 이제 당분과 수분이 온몸으로 쫙쫙 퍼지면서 체력이 다시 채워지고 있었어요. 힘이 났어요. 여기에 알코올이 마취제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뭔가 다시 체력이 만땅으로 채워진 기분이었어요. 시노바즈 연못으로 달려갔어요.
수련이 엄청나게 컸어요.
시노바즈노이케 연못가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어요. 사람들이 산책하고 있었어요.
참 평화로웠어요.
연꽃은 이제 피려고 하는 것도 있고 이미 피어서 진 것도 있었어요.
시노바즈 연못 주변에서 다시 큰 길로 나왔어요.
일본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있었어요.
'일본은 우리보다 더 보수적이구나.'
여성 사무직 직장인들 복장을 보자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보수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는 이제 여성 사무직 직장인 복장이 상당히 많이 자유로워졌어요. 물론 지금도 정장 스타일을 입고 출근하라고 하는 분위기가 없지는 않을 거에요. 그러나 일본 여성 사무직 직장인들 복장을 보자 한국 여성 사무직 직장인들 복장은 일본에 비해 정말 많이 자유롭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단순히 소위 '유관순 스타일'이라 부르는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 스커트, 검은 재킷을 입은 일본 사무직 직장인 여성들이 많이 보여서가 아니었어요.
이 날씨에 전부 스타킹 신고 있잖아!
이것이 엄청나게 큰 차이점이었어요. 예전에는 한국도 여성 사무직 직장인들에게 날씨가 아무리 뜨거워도 반드시 스타킹을 신고 출근하라고 했다고 해요. 그래서 스타킹 신은 것처럼 눈속임할 수 있는 '바르는 스타킹'이라는 것도 존재했다고 하구요.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그러지 않아요. 하지만 일본은 아직까지도 전혀 그러지 않은 것 같았어요. 소위 OL 이라 부르는 사무직 직장인 여성들 복장 중 유관순 스타일이 엄청나게 많이 보이는 것은 둘째치고, 하나같이 이 뜨겁고 습한 날씨에 스타킹을 신고 있었어요.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어요. 저녁은 간단히 KFC 가서 먹기로 했어요.
일본 KFC 가 한국 KFC 와 크게 다른 점이라면 덮밥 종류가 있다는 점이었어요. 한국 KFC 에서는 밥 종류를 판매하지 않아요. 그러나 일본 KFC에서는 치킨 덮밥 종류를 판매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치킨 덮밥을 주문했어요.
간장맛에 짜고 달다.
짠맛이 꽤 강했어요. 단맛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았지만 짠맛이 강해서 짠맛의 후폭풍으로 인해 단맛이 강하게 느껴졌어요. 간장 냄새는 아주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먹은 덮밥과 맛이 통하는 것이 있었어요.
'일본은 확실히 간장이구나.'
생긴 것은 한국에서 닭도리탕에서 닭고기 건져서 밥 위에 올린 것처럼 생겼지만 맛은 아예 달랐어요. 어색한 맛은 아니었어요. 한국인들도 간장 많이 먹으니까요. 단맛이 있는 진간장은 한국 요리에서도 많이 이용해요. 그래서 간장맛 자체는 딱히 어색할 것이 없었어요. 그러나 간장향 강하고 짠맛과 단맛의 조화에 전반적으로 맛이 강한 맛은 한국 음식과 확실히 다른 맛이었어요. 대중적인 한국 음식 맛과는 묘하게 다르면서 그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아키하바라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일본 경제 상황에 대해 들은 것이라고는 1980년대 버블 경제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했고, 잃어버린 30년 소리 나오고 있었는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펼쳐서 일본 경제를 기사회생시켰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안 떨어질 것 같은 엔화 가치를 기를 쓰고 떨어뜨렸고, 일본 경제는 조금씩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전망도 하나 둘 나오고 있어요. 물론 아직까지는 아베노믹스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입장이 상당하지만요.
우에노 거리에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았어요. 잃어버린 20년 소리를 듣고 상상한 침울한 일본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거리에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았어요.
기모노를 판매하는 가게도 있었어요.
은행 앞을 지나갈 때였어요. 벽에 벽보가 붙어 있었어요.
'일본 금리 진짜 낮구나.'
住宅ローン金利 라고 적혀 있었어요. 해석하면 주택대출금리. 정확히 어떤 상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출 금리였어요.
변동 금리 연리 0.475%
확정금리 10년 연리 0.6%
확정금리 30년 연리 1.05%
문득 아주 오래 전에 봤던 신문 기사 내용이 떠올랐어요.
한국의 어떤 은행이 일본에 진출했어요. 일본에 진출해 홍보용으로 무슨 정기 예금인가를 특판으로 내놨대요. 그때 금리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가지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당시 한국 기준으로 그런 이율로 이자를 지급하는 예금상품을 출시했다면 지금 사람 갖고 장난하냐고 욕 바가지로 먹을 수준으로 매우 낮은 금리였어요. 그런데 이게 일본에서는 엄청난 이자를 주는 상품이라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리고 장농에 있던 현금도 들고 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대요.
저 이율을 보자 일본 이율이 진짜 낮기는 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출 금리가 저랬으니까 예금 금리는 그냥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주변을 구경하면서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어요. 뭔가 차가운 것이 얼굴로 떨어졌어요. 빗방울이었어요.
"비 온다!"
아침에 본 일기예보 내용이 문득 떠올랐어요
일기예보에서 강수 확률 60%라고 했어.
아직은 어쩌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정도였어요. 신경쓰일 정도까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어요.
'이건 한국이랑 풍경이 너무 비슷한데?'
너무나 한국적인 풍경. 止まれ 라는 글자만 지우고 '이거 서울이야'라고 하면 누구라도 믿을 것 같은 광경.
바로 도로 노면 주차 때문이었어요. 일본 길거리와 한국 길거리 풍경에서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어요. 똑같은 일본 도쿄 우에노 길거리였지만 차도 한쪽에 차가 일렬로 쭉 주차되어 있으니 한국 도로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모습이 되어버렸어요. 여기에 차도에 자기 멋대로 줄 쳐놓고 화분 갖다놓고 작물 키우는 장면, 짐 쌓아놓은 장면이 더해지면 그때는 중국 길거리 모습과 구분할 수 없을 거에요.
상당히 웃긴 장면이었어요. 똑같은 길이라도 길에 아무 것도 없으면 일본, 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한국, 차량 주차에 추가로 뭔가 잔뜩 쌓여 있고 자기 멋대로 자기 영역 표시해놓으면 중국.
네가 여기에서 30km/h로 운전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만큼 잔뜩 있다.
이걸 말하고 싶은 건가?
30km/h 존 교통표지판이 있었어요. 할아버지, 등교하는 아이들, 개 끌고 산책하는 사람에 집까지 교통표지판 하나에 다 집어넣어놨어요. 우리나라 관점이라면 아이들만 넣어도 충분할 거에요. 그런데 이 교통표지판에는 아이들 때문에, 할아버지 때문에, 개 끌고 산책하는 사람 때문에, 그리고 주택가니까! 그러니까 반드시 30km/h 속력 넘기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었어요. 애들 없다고 30km/h 속도보다 빠르게 가지 말고 할아버지 없다고 30km/h 속도보다 빠르게 가지 말고 개 끌고 산책하는 사람 없다고 30km/h 속도보다 빠르게 가지 말라고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었어요.
한국인 관점에서 본다면 '뭘 저 정도까지 따박따박 이야기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교통표지판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애들 있잖아요!'라는 말 하나로도 충분하거든요.
도미빵 판매하는 가게가 나왔어요.
빗방울은 슬슬 한 방울 맞을 때마다 신경 거슬리는 정도까지 커졌어요.
모스버거 아키하바라 스에히로쵸점 モスバーガー 秋葉原末広町店 앞에 왔어요.
"우리 뭐 먹고 가자."
"또?"
"어. 배고파."
일본 음식은 열량이 높아요. 그러나 양은 적어요. KFC에서 치킨 덮밥 먹은 걸로는 저녁 식사가 되지 않았어요. 아침에는 편의점 도시락, 점심은 롯데리아 햄버거, 저녁은 KFC 치킨덮밥. 그에 비해 돌아다닌 것은 많았어요. 열량은 아마 하루 섭취 열량을 충분히 채웠을 거에요. 그러나 문제는 양이었어요. 이따 돌아갈 때도 걸어서 돌아갈 예정이었어요. 벌써부터 슬슬 배가 비어간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은 뭔가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모스버거 안으로 들어갔어요. 햄버거 하나를 주문했어요.
'이 티슈 상자 종이 참 탐난다.'
말차 밀크티가 그려진 티슈 상자 종이가 매우 예뻤어요. 일본 느낌 물씬 나는 디자인이었어요. 이런 것을 기념품으로 판매한다면 하나 구입하고 싶었어요.
"어? 이거 흡연실 아냐?"
제가 앉은 맞은편은 유리벽이 있었어요. 그 너머에 좌석이 있었어요. 분명히 흡연실이었어요. 흡연실이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설마 진짜 흡연해도 되려구.'
'흡연실'이라고 적혀 있고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어요.
"뭐야? 진짜 흡연실이야?"
패스트푸드점 안에 흡연실이 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어요. 흡연실 이용에는 아무 제약 없었어요. 흡연실 입구에 있는 재떨이를 들고 들어가서 담배 태우면 되었어요. 담배를 다 태우면 재떨이를 들고 나와서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곳에 같이 마련되어 있는 담뱃재 비우는 곳에 재떨이 속 담뱃재와 꽁초를 버리고 재떨이를 쌓아놓으면 되었어요. 안에서 식사도 할 수 있었어요. 제 맞은편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사람은 흡연실 안에서 햄버거를 먹고 담배를 태우고 있는 것이었어요.
저도 입구 옆에 있는 재떨이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래서 길거리에서 담배 꽁초가 아예 안 보이는구나.'
괜히 일본이 선진국이 아니었어요. 일본 길거리가 깨끗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담배를 태우고 싶으면 이렇게 흡연실이 마련되어 있는 패스트푸드점 안으로 들어가서 담배를 태우면 되었어요. 물론 당연히 공짜는 아니죠. 먹을 것을 사서 들어가야죠.
패스트푸드점에서 음료를 구입한 후, 음료를 들고 흡연실로 들어가서 음료 마시며 담배를 태우면 되요. 모스버거에서 저렴한 음료는 100엔 후반대에요. 이 정도는 흡연실 이용하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지불하면 되요. 2000원 내고 음료 하나 받아들고 흡연실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한국에서도 그거 이용하는 사람 많을 거에요. 길거리에서 숨어서 담배 태우고 할 바에는 그냥 음료수 하나 마시는 셈 치고 당당하게 흡연실 들어가서 음료수 마시며 담배 태우는 것이 훨씬 낫거든요.
한국의 흡연구역정책, 금연구역정책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확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한국은 멀쩡한 카페에서조차 흡연실에 음료를 들고 갈 수 없게 금지시켜놨어요. 그나마 카페에 비치된 흡연실조차 지금 못 없애서 안달이에요. 한국 관료들, 공무원 수준이 뻔하죠. 일단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는 식이니까요.
차라리 모스버거 흡연실처럼 선택적으로 흡연실을 운영하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훨씬 행복한 결과를 가져와요. 담배 태우고 싶은 사람은 저렴한 음료 사서 흡연실 이용하면 되고, 담배 안 태우는 사람은 비흡연구역을 이용하라고 하면 되요. 흡연 좌석, 비흡연 좌석은 그냥 시장 원리에 맡기면 되요. 수요가 있다면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정 마음에 안 든다면 전체 좌석 중 일정 비율은 반드시 금연석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법을 만드는 방법도 있어요. 예를 들어 흡연 좌석을 설치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흡연 좌석은 전체 좌석 중 20%를 넘겨서는 안 된다고 제한을 거는 거죠.
흡연할 수 있는 공간을 여기저기 잘 갖춰놓고 거기로 흡연자를 몰아가야 모두가 행복해져요. 감정적으로 빼액거리면서 금연구역만 설정하고 흡연구역은 쓰레기 같이 만들어놓고 그나마도 이상한 곳에 숨겨놓는 것은 미개하고 원시적이고 멍청하고 유아적인 행동이에요.
더욱 인상적인 것은 환기 시설도 매우 잘 되어 있다는 것이었어요.
한국 흡연구역의 가장 큰 문제는 환기시설이 아주 개판이라는 것이에요. 아무리 넓은 흡연구역이라 해도 환기 시설은 정말 엉망이에요. 누구 하나 담배 태우면 담배 연기가 환기시설을 통해 빨려들어가는 게 아니라 흡연구역 안을 둥둥 떠다녀요. 이것도 한국 흡연구역정책에서 상당히 큰 문제에요. 폐쇄된 흡연구역 문을 여는 순간 담배 연기가 밖으로 쏟아져 나와요. 이러면 당연히 비흡연자들은 엄청나게 싫어하죠. 그나마 한국에 있는 카페들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이 이중문을 설치하는 거에요.
여기는 이중문을 설치해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담배 연기가 둥둥 떠다니지 않았어요. 몇 사람이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도요. 담배 연기는 환풍구를 향해 쭉 올라갔어요.
한국에서는 패스트푸드 체인점 업체들이 계속 카페화를 추진하고 있어요. 이걸 대놓고 실천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 곳은 맥도날드. 하지만 꼭 맥도날드 한정이 아니에요. 버거킹, 롯데리아에 던킨도 카페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거든요.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에요.
만약 이들 패스트푸드 체인점 업체들이 카페화를 추진하고 있다면 흡연실 운영 - 특히 환기시설 문제에 크게 신경을 써야 할 거에요.
패스트푸드 체인점에 들어가면 공통적인 냄새가 있어요. 바로 케찹 냄새에요. 산도 높은 소스 냄새가 상당히 크게 느껴져요. 커피향 진동하는 카페와 패스트푸드 체인점은 냄새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많이 나요. 이 냄새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환기 시설에 엄청나게 신경써야 해요. 커피향으로 덮을 수 있는 소스 냄새가 아니거든요. 커피 하나로 끊임없이 판매되는 햄버거가 풍기는 소스 냄새와 패티 냄새를 덮을 수 없어요. 아무리 다 쓴 커피 가루를 곳곳에 배치해놓는다 해도 소스 냄새와 패티 냄새가 워낙 강하다보니 한계가 있어요.
그러므로 카페화를 추진한다면 반드시 환기 시설에 신경 엄청 써야 할 거에요. 아무리 여기가 카페라고 자기세뇌를 하려 해도 자극적인 냄새를 맡는 순간 '여기가 무슨 카페야? 햄버거 가게지'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흡연실 운영도 고려해볼만 해요. 현재 한국은 무조건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흡연을 할 수 없게 법으로 완벽히 금지시켜놨어요. 아주 열등하고 미개한 관료들의 수준 드러나는 작품이죠. 좋아요. 법이 그따위인 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어쨌든 간에 카페에 흡연실 자체는 마련해놓을 수 있어요. 이 점을 적극 이용하는 거에요. 영수증 하단에 흡연실 비밀번호를 적어놓아서 음료든 뭐든 구입한 사람에 한해 흡연실에 들어가서 담배를 태울 수 있게 하는 것이에요. 패스트푸드 체인점 음료는 그다지 비싸지 않아요. 편의점에서 음료 사마시는 것과 비슷한 편이에요. 이러면 흡연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패스트푸드점에서 음료를 구입한 후 흡연실을 이용할 확률이 꽤 있어요.
이것은 비흡연자들에게도 좋아요. 흡연자들을 거기로 몰아넣으면 되니까요. 막말로 '돈 1500원 없어서 길거리에서 남에게 민폐 끼치며 담배 태우냐?'라고 말하며 몰아넣을 수도 있어요.
모두가 행복해져요. 흡연자는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 사서 마시는 정도로 당당히 흡연실 들어가서 담배 태우고, 비흡연자는 흡연자를 길거리에서 흡연실에서 몰아넣을 수 있어서 좋고, 패스트푸드 체인점은 흡연자들에게 흡연실 이용대가로 음료수 팔아서 돈 벌구요.
이러니 일본 길거리에 담배 꽁초가 안 보이지.
개인 재떨이 들고 다니는 문화에 곳곳에 흡연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여기에 흡연 시설 관리도 매우 잘 되고 있었어요. 한국이 정말 본받아야 하는 점이었어요.
일본 도쿄 모스버거 아키하바라 스에히로쵸점에서 나왔어요. 이제 아키하바라가 매우 가까워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