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 절은 없나?"
작년에 열심히 모스크를 찾아다녔어요. 모스크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있는 모스크 상당수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얼핏 보면 다 모스크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정 국가 외국인들이 주로 모이는 모스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물론 모스크인 만큼 여러 나라 무슬림들이 와서 이용하기는 해요. 하지만 특정 국가 사람들이 모이는 모스크에 온 다른 나라 무슬림은 조용히 기도만 하고 돌아간대요.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들은 주로 중국,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이중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은 이슬람 국가에요.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몽골은 불교 국가에요. 불교 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절에 모일 거에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이는 절이 어디 있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어요.
"뭐야? 이거 완전 쉽겠는데?"
조계종과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에서 2017년에 '이주민 불교공동체 조사연구 (이주민 법당을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대요. 이거 하나만 구하면 외국인 절이 어디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걸 못 구하겠어...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어요. 이것만 구하면 되는데 이것을 구하는 것이 문제였어요. 아무리 인터넷을 뒤지고 눈알 빠지게 살펴보았지만 보이지 않았어요. 이것만 구하면 우리나라 이주민들의 불교 사찰 찾아다니는 것은 완전 식은 죽 먹기인데...이것을 구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어요.
한참 인터넷과 씨름하다 저것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원래 하던대로 찾아보기로 했어요.
갑자기 난이도 급상승.
진짜 난이도가 확 올라갔어요. 모스크를 찾아다니기 위해 검색을 할 때가 그나마 나았어요. 왜냐하면 인도네시아어는 조금 알고,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서 영어를 잘 쓰거든요. 벵골어와 우르두어 글자는 대충 읽을 줄 알았구요. 게다가 모스크는 한결같이 '마스지드' 비스무리한 발음이라 그것만 어찌 찾아내면 되었어요.
그러나 절은 아니었어요. 베트남어로는 쭈아, 싱할라어로는 빤살라, 태국어로는 왓. 게다가 이들 언어들은 글자도 다 다르고 제가 잘 몰라요. 베트남어와 태국어는 여행갈 때 잠깐 공부해보려 한 적이 있었지만, 그게 2014~2015년 일이에요. 열심히 공부한 외국어도 2년간 안 보면 많이 잊어버리는데 이건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어요. 기억이 날 리가 없었어요.
게다가 절은 모스크에 비해 꼭꼭 잘 숨어 있었어요. 한국 불교와의 연결도 그렇게 잘 되어 있지 않았어요. 모스크 같은 경우, 한국 이슬람과 외국인 노동자 모스크의 연결이 꽤 잘 되어 있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에 나와 있는 모스크를 토대로 하나씩 찾아가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또 찾아나가는 식으로 여러 곳 찾아내고 갈 수 있었어요. 그러나 절은 그렇지 않았어요. 당장 우리나라 불교만 해도 조계종, 태고종 등 종파가 여럿이고, 이들 종파간 교류는 딱히 크게 두드러지지 않아요. 게다가 베트남은 대승불교이지만,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스리랑카는 상좌부 불교에요. 대승불교와 상좌부 불교는 가톨릭과 개신교만큼 차이가 커요.
우리나라에 절이 많이 있다보니 외국인 불교도들이 우리나라의 절을 방문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어요. 없으면 없는대로 있는 절에 가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어요. 큰 행사를 치르는 것이라면 상당히 차이가 많이 나지만, 단순히 가볍게 기도를 하고 나오는 것이라면 딱히 큰 차이가 나지 않거든요. 절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크기는 해요. 우리나라는 완벽히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절을 하지만, 태국, 라오스에서는 앉은 상태에서 허리만 굽혔다 폈다 해요. 그래서 제가 태국, 라오스에서 절에 들어가 삼배를 드리면 드릴 때마다 현지인들이 저를 구경했어요. 부처님께서 보내주신 소소한 재미가 되었어요. 그러나 그런다 해서 문제될 건 없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 절을 찾기 어려운 이유에는 이런 점도 분명히 컸어요. 자신들만의 절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절 중 하나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즉, 모스크를 찾는 것에 비해 절을 찾는 것은 총체적 난국에서의 시작이었어요. 언어도 잘 모르지, 우리나라 절과 호환도 어느 정도 되지, 불교계에서 강력한 연대를 구축하고 DB를 만든 것도 아니지...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어요.
처음부터 찾자.
현재는 인터넷 시대. 인터넷에 그 어떤 단서 하나라도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추적해서 찾아낼 수 있어요.
시작은 '불교 이주노동자'였어요. 뉴스고 블로그고 인터넷에 있는 글을 하나씩 다 읽어가며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절'과 관련된 단어를 하나씩 모아갔어요. 그렇게 점점 더 조금씩 한 걸음씩 다가갔어요. 수많은 뻘글과 무가치한 자료들 속에서 진짜 필요한 한 단어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검색에서 "필수포함검색어", -필수제외검색어 방법을 적극 활용했어요.
그렇게 한참 찾아보다 몽골과 관련된 것을 찾아내었어요. 어느 모임에서 다문화 현장체험을 위해 동대문 일대를 돌아다닌 글들을 찾아내었어요.
"동대문? 여기? 거기 몽골 절이 있었나?"
동대문이라면 제가 참 잘 아는 지역. 거기에 자주 놀러가고, 그쪽에서 일도 해보았어요. 그래서 그쪽 지리는 잘 알아요. 동대문에 몽골타운이 있다는 것은 알아요. 빌딩 하나에 몽골인 식당, 몽골인 가게 등이 몰려 있어요. 그 빌딩을 몽골타운이라고 불러요. 그렇지만 몽골인 절은 본 적이 없었어요. 몽골인 절이 있었다면 제가 그냥 지나쳤을 리가 없어요. 무조건 한 번은 들어가봤을 거에요.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의 절을 가보고 싶지 않아서 안 간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못 간 것이었으니까요.
단서는 오직 사진 한 장. 사진 한 장만 갖고 찾아내야 했어요.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번지 표지판이 있었어요. 검색을 해보았어요. 지도에 비슷한 장소가 나왔어요. 다행히 사진에 카페 간판이 있었어요. 그 카페 간판으로 검색을 해보았어요.
"여기? 여기에 무슨 절이 있어?"
제가 그냥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너무나 잘 아는 그곳. 거기에 몽골인 절이 있었어요. 믿을 수 없었어요. 거기를 한두 번 지나가본 것이 아니니까요. 올해도 얼마 전에 그 길을 지나갔어요. 그런데 절 같은 것은 보지 못했어요. 제가 심봉사도 아니고 그걸 어찌 못보나 싶었어요.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거기에 절이 있을 리가 없었거든요. 절이 있게 생긴 곳도 아니었구요.
다음 로드뷰로 위치를 확인해보았어요. 2017년 7월 사진이었어요.
"뭐야? 있잖아!"
경악했어요. 마치 의정부에 모스크가 두 곳이나 있는데 모르고 지나치던 것처럼, 동대문 그 자리에도 몽골인 절이 있었어요. 제가 못 발견한 것 뿐이었어요.
"여기는 가봐야겠다."
제가 그렇게 잘 아는 동네에 몽골 절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어요.
"빨리 가야겠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번 출구로 가야 했어요. 의정부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번 출구로 빨리 가는 방법은 창동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는 것. 절이 몇 시까지 문을 열고 있을지 알 수가 없었어요. 모스크라면 저녁 예배가 있기 때문에 그 시간 전에만 가면 문이 열려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아요. 그러나 절은 알 수가 없었어요. 우리나라 절도 저녁에 항상 문을 열어놓는 절이 있고, 예불이 있을 때에만 문을 열어놓는 절이 있거든요. 6시가 넘어가면 저녁 공양 시간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전에 가는 것이 확실히 좋기는 했어요.
그러나 제 계획과 달리 집에서 출발이 늦어져버렸어요. 몽골 절을 찾고 그 위치를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거든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번 출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6시가 넘어버렸어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번 출구로 나오면 중앙아시아 거리가 있어요. 여기는 우즈베키스탄, 몽골, 러시아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에요. 임페리얼 마트는 러시아 및 구소련 국가들의 먹거리를 판매하는 가게에요. 저기에서 아르메니아 브랜디도 판매했었어요. 상당히 많이 지나다닌 길이에요.
"뭐야? 진짜 있잖아!"
토방골 카페. 제가 몽골인 절을 찾을 때 보았던 바로 그 카페였어요. 그 위에 있는 자주색 간판.
몽골간단사 한국지원 서울포교당
МОНГОЛЫН БУРХАН ШАШНЫ ТӨВ
ГАНДАН ТЭГЧИНЛЭН ХИЙДИЙН СОЛОНГОС ДАХЬ
"АМАР АМГАЛАН" ТӨВ
"이건 1.5층이야?"
철문 앞에 절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어요. 보통 계단을 두 번 올라가야 2층인데, 여기는 한 번만 올라가자 이렇게 문이 나왔어요. 1.5층인줄 알았는데 바로 옆에 토방골 카페 입구가 있었어요.
철문이 잠겨 있었어요.
'아...이럴 줄 알았어.'
여기 절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어요. 문이 잠겨 있어도 저절로 납득이 되어 버렸어요. 잘 해야 주말에만 문을 열거나, 아니면 항상 문이 잠겨 있을 것 같았어요.
나 의정부에서 왔다.
보통때라면 포기했을 거에요. 그렇지만 저는 의정부에서 왔어요. 시간과 돈을 들여서 왔어요. 저는 동대문 일대에 신기한 것이 전혀 없어요. 이 절이 아니라면 한동안 무언가를 구경하러 동대문을 굳이 찾아가지 않을 거에요.
손으로 문을 두드렸어요. 누군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어요. 문이 열렸어요.
몽골인이 문을 열어주었어요. 어눌한 한국어로 지금 식사중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절만 잠깐 볼 수 있냐고 여쭈어보았어요. 그러자 그러라고 허락해주셨어요.
"이것이 몽골 절이구나!"
뭔가 한국 절 같으면서 다른 느낌. 몽골 불교는 라마 불교에요. 대승불교와는 또 다른 불교로 알고 있어요.
한켠에 불당이 조그맣게 마련되어 있었어요. 전체 면적은 조그만 원룸 크기였어요.
한쪽 벽에는 몽골 문자를 서예로 쓴 것이 액자에 담겨 있었어요.
이런 것이 몽골 절의 느낌이구나.
정말 신기했어요. 제가 그렇게 잘 안다고 자신하던 동대문에 몽골인 절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비록 방 한켠에 불단을 만들어놓은 모습이었지만, 이런 것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놀라운 일이었어요.
동대문에 있는 몽골 사찰인 몽골간단사 한국지원 서울포교당은 매우 작은 곳이에요. 여기 하나만 보러 간다면 실망할 확률이 매우 높아요. 주변에 몽골 타운이 있으니 몽골 타운을 구경하고 여기도 같이 보는 식으로 계획을 짜면 재미있는 동대문 방문이 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