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월요일에 가자 (2012)

월요일에 가자 - 19 타지키스탄 샤흐리스탄

좀좀이 2012. 5. 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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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조브도 가뿐히 넘었는데 샤흐리스탄 정도 쯤이야."


이미 넘기 어렵다는 안조브도 넘었고 길이 고약한 이스칸다르 쿨도 다녀왔어요. 그래서 간이 부었어요. 샤흐리스탄 Shakhristan이 지도상 안조브보다 더 높았고, 기사 아저씨 말씀으로는 해발 3600미터라고 했는데 별 거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이스칸다르 쿨 만큼 하겠어?"


적당히 포장된 길로 올라가고 멋진 설경이나 구경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속도라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이스타라브샨에 도착할 것이고, 그러면 호텔을 찾아 짐을 풀기도 꽤 쉬울 거라고 생각하니 오늘 여행이 다 마무리된 것처럼 아쉬움도 들었어요.


"마지막 고비이기는 하지만 별 거 없을거야."


론니플래닛에서 이 길은 정말로 힘든 길이라고 했는데 양놈들 엄살에 불과했어요. 정말로 멋진 경치를 보며 갈 수 있는 길이었어요...라고 생각했는데...


지옥문이 열렸다


샤흐리스탄도 터널 공사중이고 조만간 개통될 거라고 기사 아저씨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이 터널 개통식 때 당연히 대통령이 여기에 올 거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이것은 어쨌든 미래의 이야기. 지금은 비포장 도로를 20km 넘어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비포장도로로 들어서자마자 차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아래 터널 입구가 바로 지금 중국이 공사하고 있는 샤흐리스탄 터널이에요. 이게 뚫리면 정말로 두샨베에서 후잔드까지 차로 다닐만해져요. 안조브도 터널이 없었을 때에는 정말 극악의 코스 중 하나였는데 터널이 생기며 이제는 그냥 높은 곳을 가는 정도가 되었어요.


도로 상태 보이시나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차로 넘어가는 길이에요. 날이 봄이라 눈 녹은 물이 진흙으로 된 길 위로 떨어지고 고여서 노면 상태는 극악. 아까 이스칸다르 쿨 가는 길은 지금 이 길에 비하면 정말 고속도로였어요.


가끔 자전거로 세계일주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만약 자전거로 두샨베~후잔드를 가실 생각이 있으신 분이시라면 정말 진심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말릴 거에요. 이건 어디까지나 터널이 완성된 후에 도전하라고 할 거에요. 이유는 간단히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어요.


첫 번째. 도로 상태 최악.


이건 벌써 파악이 되셨을 거라 믿어요. 그냥 길이 아니라 진흙길이에요. 길 자체도 차 한 대가 지나가는 곳 투성이인데 길이 진흙탕에 엉망이라서 차들이 양보해주고 비켜줄 수가 없어요. 그랬다가는 자기 차 바퀴가 진흙 구덩이에 빠져서 곤란해지니까요. 양보를 요구한다는 것은 남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으라고 요구하는 것. 길이 차 두 대가 갈 수 있는 길이라 해도 워낙 엉망진창이라 1차선처럼 차가 지나다니고 있었어요. 즉, 구덩이와 진창을 피해 도로 전체를 이용하며 올라가고 내려가는 길이에요.


두 번째. 차량 많음.


타지키스탄 여행 정보를 모으며 타지키스탄 글을 보았는데 대부분 파미르를 넘으신 분들이셨고, 한결같이 차가 별로 없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이 길은 차가 많이 다니는 길. 그것도 적당한 승용차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컨테이너 운송 트럭이나 지프들이 대부분이에요. 승용차로 넘는 사람들도 있는데 현지인조차 그건 정말 무모한 짓이라고 말하는 판이에요. 길 자체가 좁고 엉망인데 다니는 차들이 많고, 그 다니는 차들 대부분이 중형, 대형 차량들이에요.


결론적으로...대관령 따위와 비교하지 마세요. 경사도 대관령 옛길, 말티재보다 훨씬 급해요. 그런 길이 아주 좁고 도로 상태는 그냥 질척이는 진흙 투성이에요. 게다가 차는 꽤 다녀요. 길이가 20km여서 차가 많다고 느껴지지 않을 뿐이에요. 이 길을 자전거로 넘는 건 정말 목숨 버리고 하는 짓.


길 상태 안 좋아 보이죠?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어요. 벌써 놀라시면 안 되요.


이슬람 수도자가 보이자 아저씨께서는 차를 세우시고 수도자께 1소모니를 드렸어요. 이슬람 수도자는 안전 운전을 기원하는 기도를 해 주었어요.


이슬람 수도자를 뒤로 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탄 차는 정신없이 흔들리며 계속 힘차게 정상을 향해 나아갔어요. 아저씨도 안조브와 이스칸다르 쿨에서와는 달리 긴장하신 모습이었어요. 사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아저씨께서 전날도 이 길을 달리셨다는 사실. 전날 스위스인을 태우고 이 길을 넘어 두샨베로 넘어왔고, 오늘은 우리를 태우고 이 길을 넘고 있는 거에요.



당연히 사고가 나는 곳. 이 길은 이런 곳이에요.


정상으로 갈 수록 풍경은 더욱 멋있어졌어요.



트럭 하나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돌을 구해와 아래에 계속 깔아넣고 있었어요. 트럭이 기울은 각도가 예술이었어요.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어요.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어요. 모두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고 좋아했는데 정상을 지키고 있는 군인이 갑자기 차를 가로막아섰어요.


군인은 우리쪽으로 오는 모든 차가 넘어간 다음에야 우리 차가 갈 수 있다고 했어요. 군인은 아마 30분 정도 걸릴 거라고 했어요. 이때가 18시 30분.


정상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눈 내린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눈이 내린다고 깜짝 놀라자 친구들이 차창 밖을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기사 아저씨께서 전날 눈이 내렸다고 하셨을 때 저는 농담이나 과장인 줄 알았어요. 그러나 진짜로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그 시작은 그냥 싸리눈.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딱 이 말이 맞는 상황이었어요. 밖은 바람이 불고 엄청나게 기온이 떨어지고 있었고, 싸리눈은 조금씩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어요.


우리 모두 앞만 바라보았어요. 차량 행렬이 끝날 줄 몰랐어요. 문제가 된 곳은 딱 두 구간. 두 구간이 딱 차량 하나만 통과할 수 있어서 군인이 길을 막은 것이었어요. 더욱 문제는 대형 트럭들이 대부분이어서 그 한 구간을 어떻게 넘어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싸리눈이라고 무시하고 5월에 눈 내리는 것을 본다고 신기해하고 좋아했는데 싸리눈이 매섭게 내리기 시작했어요.


환장의 크리스마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


바로 이 차가 더욱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었어요. 차가 퍼져버린 것인지 구덩이처럼 푹 패인 곳을 못 넘는 것인지 한참 저 자리 - 즉 첫 번째 문제가 되는 구간에서 버티기 시작했어요. 몇 번 시동을 걸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기는 했는데 계속 넘지 못하고 뒤로 미끄러져 버렸어요.


결국 이 트럭은 오늘 넘기를 포기했는지 옆에 세워서 길을 비켜주었어요. 기상은 더욱 악화되었어요.


바로 앞에 보이는 눈은 전부 우리들이 정상에 도착한 다음에 쌓인 눈이에요. 정상에 올라왔을 때에만 해도 훤히 잘 보였는데 이제는 구름과 눈 때문에 멀리 잘 보이지 않았어요. 사진 왼쪽,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일렬의 점이 차량이에요. 특히 큰 컨테이너 운송 트럭들.


길 옆에 비킨 트럭이 가뜩이나 좁은 첫 번째 문제 구간을 더욱 좁게 만들어 이 곳을 빠져나가는 데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게 만들고 있었어요. 커다란 컨테이너 운송 트럭들은 이 트럭과 긁히듯 지나갔고, 아예 못 지나가는 트럭들도 있었어요. 어떻게 비켜줄 수 있는 길이 아니라서 길 옆에 비킨 트럭이 어떻게 어떻게 조금 움직여 틈을 넓혀주면 그제서야 겨우 넘어가는 게 몇 번 있었어요. 그때마다 차 한 대가 저 구간에서 시간을 왕창 잡아먹었어요.


30분 정도 걸릴 거 같다는 군인의 말과 다르게 차량 행렬은 끊이지 않았어요. 아주 멀리 보이던 차들이 계속 뒤에 붙는데 바로 이 첫 번째 문제가 된 구간을 못 넘어가서 계속 차가 밀리고 정체되다보니 아주 멀리 있는 차까지 이 행렬 꼬리까지 바짝 붙어버려서 언제 끝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어요.


"이 멍청한 놈들아! 차가 힘 딸려서 못 나가면 내려야 될 거 아니야!"


진짜 속터지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어요. 이 첫 번째 문제의 구간을 못 넘어서 낑낑대는 차가 엄청나게 많았어요. 트럭도 못 넘고 지프도 못 넘고 승용차도 못 넘고...트럭은 그렇다 쳐요. 지프와 승용차가 힘이 없어서 못 넘는 건데 안에 사람들이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참고로 승용차와 지프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타냐 하면 사람을 거의 짐짝 수준으로 우겨넣은 정도. 게다가 짐은 차 위에 가득 실려 있었어요. 차가 힘이 없어서 못 넘고 빌빌대는데 절대 내리지 않고 다 안에서 멍하니 주변이나 둘러보고 있었어요. 정말 속터지는 상황. 차가 힘이 딸려서 못 넘어가면 사람들이 내려서 차를 뒤에서 밀어주든가 아니면 사람들은 걸어서 그 구간만 넘어가라고 해야 하는데 몇 분이고 차는 그 자리에서 빌빌대고 그 누구도 내릴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몇 분 동안 빌빌대고 전진과 밀려나기를 반복하다 어떻게 어떻게 넘기는 넘었다는 것. 만약 못 넘었다면 길이 완전히 막혀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두를 위해서 어떻게는 넘어야만 했어요.


저희 뒤쪽 차량들은 우리들의 기사 아저씨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기사 아저씨께서 문을 열고 화를 내셨어요. 그런데 그게 화를 내는 건지 부드럽게 타이르는지 참 구분하기 애매한 목소리였어요. 우리 뒤에 있던 차 두 대가 우리를 추월해 앞으로 갔어요.


너희라고 답이 있을 거 같냐?


절대 끝나지 않는 꼬리물기. 이 길에서 양보 따위란 없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양보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 길은 극도로 안 좋은데 당연히 가로등도 하나도 없어요. 괜히 밤에 장거리 운전 안 한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로 위험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 거에요. 맞은 편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밀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 문제의 구간을 지나갈 방법이 없었어요.


맞은 편으로 오는 차량들과 뒤쪽 차량들과 헤드라이트로 신호를 주고 받기를 몇 번. 잠깐 첫 번째 구간이 비었고, 기사 아저씨께서는 재빨리 두 번째 문제의 구간으로 진입했어요.


그러나 두 번째 구간 역시 마찬가지.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건 똑같았어요. 계속 뒤에서 따라붙었기 때문에 끝도 보이지 않았어요. 다시 그저 차가 그만 꼬리 붙기를 바라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요.


저녁 8시 30분. 드디어 긴 차량 행렬이 끝났어요. 기사 아저씨께서는 재빨리 차에 시동을 거셨어요.


살려만 주십시오.


빛이라고는 오직 우리가 탄 차량의 헤드라이트. 어디까지가 길이고 어디부터가 낭떠러지의 시작인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헤드라이트를 켜고 가는데 낭떠러지가 코앞에 있어야 낭떠러지라는 게 확인 가능했어요. 운전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바로 땅의 색깔. 위에서 보면 알 수 있지만 흙 색깔이 검어요. 바퀴가 길가에 쌓여있는 흙에 올라가기를 수 차례. 사진에서는 그냥 별로 경사가 없어 보이지만, 저 길을 넘어가면 경사가 엄청 심해져요. 아저씨께서는 커브를 돌든 내리막을 내려가든 앞에 차가 오든 계속 시속 30km를 유지하셨어요. 차 앞바퀴는 수시로 낭떠러지 경계까지 올라갔어요.


'사고가 나더라도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는 반드시 알고 죽겠다.'


그래서 두 눈에 힘을 주고 조수석에서 아저씨의 운전과 우리들이 가는 길을 온 신경을 집중하여 보았어요. 기사 아저씨께서는 길을 외워서 가시는 것 같았어요.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낭떠러지의 시작인지 헤드라이트로는 구분도 되지 않는데 절대 속력을 줄이지 않고 달리는 것으로 보아 하도 많이 이 길을 다니셔서 길을 외우신 것 같았는데...사고가 한 번 제대로 날 뻔 했어요.


왼쪽 커브 표지판이 있었어요. 그래서 기사 아저씨께서는 왼쪽으로 차를 틀었는데


이 미친 새끼야!


왼쪽이 낭떠러지인 오른쪽으로 돌아야하는 커브길이었어요. 아저씨께서는 핸들을 급히 틀으셨어요. 정말 다행인 것은 이 길은 다행히 좁지 않고 컨테이너 운송 트럭 두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넓이의 길이었고, 우리 차가 오른쪽에 붙어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크고 이상하게 커브를 도는 수준으로 끝났다는 것이었어요. 이때는 정말 위험했어요. 만약 속도를 더 빨리 몰았다면 정말 큰일날 뻔한 상황. 진짜 커브 표지판을 반대로 달아놓은 새끼를 진심으로 죽여버리고 싶었어요. 세상에 실수할 게 따로 있지, 커브 방향을 반대로 해 놓으면 뭘 어쩌라는 거야!


2012년 5월 15일 21시. 드디어 지옥에서 탈출했어요. 내려오는 길은 정말로 무서웠어요. 정말 놀이동산 가서 일부러 무서운 거 탈 필요가 없었어요. 그건 그냥 어지러운 거고, 이건 정말로 기사 아저씨께서 삐끗하면 골로 간다는 생각에 후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웠어요. 특히 커브를 반대로 그려놓은 표지판.


산에서 다 내려오자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정말 5월의 악몽이었어요.


"살았다..."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어요. 온몸에 긴장이 쭉 풀렸어요. 뒤를 돌아보니 갑과 을 모두 자고 있었어요. 갑과 을은 그때 그 공포스러운 30분을 잘 모른대요. 그냥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대요.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수고했다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밤하늘에는 별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어요.


"우로 테파로 갈래요? 후잔드로 갈래요?"


기사 아저씨께서 물어보셨어요. 저는 우로 테파로 가자고 했어요.


이스타라브샨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호텔도 못 찾았어요.


"후잔드로 가요. 후잔드에 싸고 좋은 호텔 많아요."


기사 아저씨께서는 이스타라브샨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 후잔드로 가자고 하셨어요. 거리상으로는 90km인데 길이 좋아서 금방 간다고 하셨어요.


23시. 후잔드 도착. 기사 아저씨께서는 우리들을 에흐손 호텔 Ehson Hotel 에 데려다 주셨어요. 그리고 흥정도 해 주셨어요. 방을 보기는 했는데 너무 피곤하고 어지러워서 일단 이 방에서 자자고 했어요. 모두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대충 방을 둘러보고 이틀치 숙박비를 지불했고, 아저씨께 돈 150달러에 팁으로 15불 더 얹어드린 후 방에 가서 쓰러지듯이 잠들었어요.


이 일정으로 을의 체력이 완벽히 고갈되어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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