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월요일에 가자 (2012)

월요일에 가자 - 02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타지키스탄 비자 받기

좀좀이 2012. 5. 19.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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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기로 결정하자마자 바로 행동으로 옮겼어요.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바로 비자 받기. 타지키스탄은 비자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국가가 아니에요. 당연히 비자를 받아야 해요.


인터넷을 뒤져가며 타지키스탄 비자 정보를 구했어요.


뭔 놈의 비자 정보가 다 달라!


일단은 초청장이 필요하다고 나오는데 초청장 없이 바로 비자를 받았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타지키스탄 여행 정보가 부족했던 것처럼 타지키스탄 비자 정보 자체가 부족하고 어떤 것이 맞는지 분간을 할 수 없었어요.


Lonely planet에 의하면 타지키스탄 비자를 받기 까다로운 곳으로 모스크바와 더불어 타슈켄트를 꼽고 있었어요. 비자를 받기 편한 곳은 키르기즈스탄 비쉬켁. 하지만 우리는 키르기즈스탄에 갈 생각도 없었고, 거기서 비자를 받으려면 거기에서 불필요하게 오래 체류해야 했어요. 우리에게 제일 좋은 방법은 타슈켄트에서 비자를 받는 것.


까짓 거, 들이밀어 보자!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얻기 위해서는 항공권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자를 받지 못하면 정말 낭패에요. 그러나 여기는 육로로 넘어갈 거고, 어차피 비행기 따위는 없기 때문에 (타슈켄트-두샨베 직항 노선 자체가 없어요) 최악의 경우 비자비만 날리면 끝이에요. 어차피 인터넷 뒤져봐야 나올 정보도 아니라서 일단은 대사관에 비자 신청을 넣어보고 퇴짜 맞으면 여행을 포기하기로 했어요.


2012년 5월 5일 토요일.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비자 정보가 나오지 않아 일단은 월요일 아침 일찍 타슈켄트 주재 타지키스탄 대사관에 가 보기로 결정하고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어요.


"나 여권 사본이랑 증명사진 없는데?"


야, 비자 신청할 때 여권 사본과 증명사진은 기본 아니야?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꾸욱 참았어요. 이것은 여행 가기로 결정하고 최대한 빨리 가기로 해 놓고서 아직까지 여권 사본과 증명사진을 준비 못한 친구도 잘못했지만 제 잘못도 분명히 있어요. 미리 알려주고 빨리 준비해서 월요일에 가자고 해야 했는데 저 역시 우물쭈물하다가 일요일에야 가기로 결정했거든요.


대망의 2012년 5월 7일 아침 7시 30분. 타슈켄트 주재 타지키스탄 대사관을 향해 길을 떠났어요. 일단 증명사진과 여권 사본을 준비하지 못한 친구에게는 우리가 먼저 신청을 하고 되면 다음날 대사관 가라고 했어요. 이렇게 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던 이유는 저 역시 비자가 나올지 안 나올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타슈켄트 주재 타지키스탄 대사관 가는 방법은 다음과 같아요.


아미르 테무르 히요보니 (Amir Timur Hiyoboni) 전철역에서 하미드 올림존 (Hamid Olimjon)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 큰 사거리가 있고 둔요 수퍼마켓 (Dunyo Supermaket)이 있어요. 이 사거리 근처에 '골든윙'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무료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고 식사도 괜찮아요. 커피도 마실 수 있구요. 이 사거리에서 둔요 슈퍼마켓 맞은편 버스 정거장에서 2번 버스를 타세요. 이게 가스피탈르 방향으로 가거든요.


버스가 두 번 커브를 돕니다. 두 번째 커브를 돌 때 타슈켄트 역(북역)이 보여요. 계속 버스를 타고 갑니다.


두 번째 커브를 돌아서 가다 보면 버스 오른편에 산업은행이 보이고 버스 왼편에 이런 러시아 정교 성당이 보이는데 러시아 정교 성당 대각선에 버스 정거장이 있어요. 이 정거장으로부터 두 정거장 더 가서 내리세요.


버스에서 내리면 이런 건물이 보여요. 길을 건너 이 건물 쪽으로 가요.


이 건물 쪽으로 가서 2번 버스가 가는 방향으로 계속 쭈욱 갑니다. 가면서 왼쪽 골목을 잘 보세요.


길 건너 오른편에 이런 건물이 보이면 왼쪽 골목길로 꺾으세요.


골목길에 이렇게 철창이 있는 건물이 보여요. 바람이 불면 타지키스탄 깃발이 펄럭인답니다. 바로 여기가 타슈켄트 주재 타지키스탄 대사관이에요.


아침 9시 즈음에 도착했는데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어요. 일단 경비실에 이름을 적었는데 순서가 170번대였어요.


"오늘 받을 수 있을 건가?"


오늘 받기는 고사하고 신청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은 대사관이 문을 열어야 비자 신청을 하기 때문에 대사관 정문 맞은편 그늘로 기어들어갔어요.


"복사 및 사진 해주는 곳이 있네?"


복사집에 들어갔어요.


"여기서 사진 촬영도 해 주나요?"
"아니요. 사진기 없어요. 그러나 여권을 스캔해서 증명사진으로 만들어줘요."


그래서 빨리 친구에게 전화해서 택시타고 오라고 했어요. 증명사진과 여권 사본을 여기에서 해결하면 함께 비자신청을 할 수 있었거든요. 친구는 전화를 받자마자 택시를 타고 오겠다고 했어요.


친구는 오지 않았고 대사관 문이 열렸어요. 사람들이 대사관 정문으로 우루루 몰려갔어요. 저도 다른 친구와 함께 인파 속에 낑겨서 대사관 정문 앞에 섰어요.


"초청장 없으면 비자 안 줘요! 대리 접수 안 되요!"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어요. 사람들이 마구 고함치고 대사관 직원과 싸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경찰이 대사관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문 앞에서 마구 소리쳐댔어요. 대사관 직원도 화가 나서 마구 소리쳤어요. 한참 그렇게 서로 싸우다 화가 나서 여권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우즈벡인도 생겼고, 울면서 돌아가는 우즈벡인도 생겼어요. 그야말로 아비규환.


다행히 사람들이 조금 빠져서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어요. 믿는 것이라고는 우리가 우즈벡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사실.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이 서로에게 비자도 잘 안 내주고 국경심사도 엄청나게 까다롭게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어요. 반면,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에 대한 인상은 매우 좋아요. 최소 3일에 한 번은 뉴스에 매우 좋은 소식으로 꼭 한국이 나와요. 그래서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 하나 믿고 앞으로 마구 비집고 나아갔어요.


문 앞에 우즈벡인들이 엄청나게 몰려 있었지만 경비실과 정문 사이에 길은 만들어져 있었어요. 이것은 나가는 사람을 위한 통로였어요.


거의 정문에 왔을 때 친구가 대사관에 도착했어요. 친구에게 지금 인파 속에 끼어 있어서 뒤로 되돌아갈 수가 없으니 대사관 정문 맞은편 그늘에 들어가면 지하에 복사집이 하나 있고, 거기 가서 사진과 여권 사본을 만들라고 했어요. 그리고 나가는 사람을 위한 통로로 들어가서 여권 보여주고 '나 우즈벡인 아니에요. 외국인이에요!'라고 하라고 시키고, 나가는 통로로 나가서 경찰에게 여권을 보여주며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라고 우즈벡어로 이야기했어요.


비자 신청하러 온 사람이 하도 많아서 한 무리를 들여보내주고 다음 무리를 들여보내주는 식으로 대사관 안에 들어갈 수 있는데 경비실에 적어놓은 순번 따위는 전혀 필요 없었어요. 이건 완전 형식적으로 적어놓는 것이었어요. 외국인이라고 하자 다행히 바로 저와 친구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어요.


대사관 정문 정면에 방이 있는데 거기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거기 들어가자 아까 정문에서 우즈벡인들과 서로 소리치고 싸우던 직원이 우리에게 영어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래서 영어를 안다고 하자 작성해야 하는 서류 두 장을 주고 따라오라고 했어요.


먼저 첫 번째는 비자 요청서. 한 마디로 비자를 원한다고 레터를 쓰는 거에요. 공식 명칭은 청원서 заявление에요.


"따라 적어. I want to go to Tajikistan. Please, give me visa of Tajikistan."


그래서 청원서에 영어 받아쓰기를 했어요. 내가 대사관에 비자를 받으러 왔지 영어 받아쓰기 하러 왔냐? 어쨌든 이어지는...?


"너희 이거 읽을 수 있지? 알아서 써."


비자 신청서는 딱 저렇게 말하고 다시 밖으로 나갔어요. 비자 신청서를 쓰려는데 친구가 전화를 걸었어요.


"이제 어떻게 대사관 들어가?"
"경비실 옆에 통로 있거든? 거기로 가서 경찰한테 '나 외국인!'이라고 하면서 여권 보여줘! 안 그러면 못 들어와!"


비자 신청서의 칸을 하나하나 채우고 있는데 또 전화가 왔어요.
"이제 들어왔는데 어디로 가? 여기 아무 것도 없는데?"
"너 들어와서 어디로 갔어?"
"들어와서 왼쪽으로 꺾었는데?"
"정문에서 꺾지 말고 바로 들어와!"


이때 시간이 10시가 넘었어요. 비자 접수는 오전 11시 30분까지. 타지키스탄 대사관 앞에는 비자 신청서가 비치되어 있지 않고 대사관 안에만 비자 신청서가 비치되어 있어서 대사관 안에 들어가야만 비자 신청서와 청원서를 직원으로부터 받아올 수 있는데 정문에서 대기하고 있는 우즈벡인들은 모두 비자 신청서와 청원서를 손에 들고 있었어요. 그 이유를 안에 들어와서야 알았어요. 11시 30분이 되면 칼 같이 접수를 끝내버리고 그때 서류를 작성하고 있던 사람들은 모조리 다 쫓아내버리기 때문이었어요.


여행 일정을 쓰는 칸을 채워야 하는데 며칠로 쓸까 고민하다가 너무 뒤로 잡아 놓으면 비자 발급 자체가 늦어질 수 있고, 여행이 얼마나 될 지 모르는데 기간을 짧게 쓰면 나중에 비자 때문에 도망나와야 할 수 있고, 그렇다고 일정을 너무 길게 쓰면 불순한 목적을 숨기고 비자를 신청한다고 트집잡힐 수 있기 때문에 적당히 5월 12일부터 5월 23일까지로 썼어요. 타지키스탄 체류지도 적어야 하는데 여기는 론니플래닛에서 본 두샨베에 있는 파루항 호텔을 썼어요. 호텔 주소를 적은 게 아니라 그냥 'Hotel Paruhang, Dushanbe'라고만 큼지막하게 썼어요.


"야, 어디야!"


시간 없어서 죽겠는데 늦게 온 친구가 계속 전화를 걸었어요. 마침 창밖을 보았는데 어리버리대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어요.


"야, 여기로 와!"


서류를 쓰다가 친구에게 제 서류를 잘 보고 있으라고 하고 밖으로 나와 친구를 서류 받는 사무실에 집어넣고 서류를 받아 작성하는 방으로 오라고 했어요.


잠시 후. 친구가 왔어요.


"외국인이라고 먼저 보내주지 않던데?"
"그게 먼저 보내준 거야. 여기 한 무리씩 집어넣거든. 너 먼저 안 보내주었으면 지금도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친구에게 청원서와 비자 신청서를 쓰는 것을 도와주었어요. 친구가 비자 신청서와 청원서를 다 쓰자 재빨리 비자 신청하는 곳으로 갔어요. 비자 신청하는 곳은 정문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있어요. 정문에서 쭉 가서 철문을 넘어가면 서류를 받고 쓰는 방이고, 정문에서 바로 왼쪽으로 가면 비자 신청하는 곳이에요.


드디어 우리 순서. 시간은 10시 30분. 간신히 통과되었다고 좋아하고 있었어요.


"초청장 가져와요."
"초청장이요?"


아놔...걸렸구나!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결과 무조건 초청장 받아오라고 대사관 옆 여행사로 보내버린다는 말도 있었고, 초청장 없이 그냥 받을 수도 있다는 말도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 들이밀어본 것이었는데 저희는 재수가 참 없는 쪽. 일단 아침에 아수라장 속에서 들은 말로는 비자 발급을 위해서는 초청장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게 다시 강화된 건지 아니면 우리가 재수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여행사 가서 받아오면 된다는 것이었어요. 한국서 비싼 돈 주고 초청장 받을 필요는 없어요. 만약 우즈베키스탄부터 온 후 타지키스탄 간다면 타슈켄트에서 다 해결 가능해요.


대사관을 나와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3월에 왔을 때 대사관이 있는 거리를 다 돌아다녀 보았지만 여행사 따위는 그 길에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는데 사람들 모두 여행사는 몰랐어요. 그저 타지키스탄 대사관 저기 있으니 대사관 가라는 말 뿐이었어요. 그 길에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물류회사와 레스토랑 밖에 없어요. 복사집은 당연히 복사만 해주고 여권 스캔 떠서 증명사진 만들어 주는 것만 하구요. 경찰에게 여행사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경찰도 모르겠다고 했어요. 경찰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찾아!


친구들이 둘이서 가스피탈르 방향으로 가는 동안 저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물류 회사 안으로 들어갔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초청장을 줄 만한 곳은 물류회사였지 레스토랑은 아니었어요. 설마 음식 시켜먹어야만 초청장 준다고 할까.


물류회사에 들어가자 매우 청순하고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제게 러시아어를 아냐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저는 모른다고 하고 우즈벡어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직원이 우즈벡어는 모르고 영어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래서 영어 안다고 했어요.


"무엇 때문에 오셨어요?"
"타지키스탄 비자 받으려면 여행사에서 초청장 받아야 한대요. 여행사 어디에요?"
"잠시만요. 상사에게 물어보고 올게요."


시간은 오전 11시. 그냥 여기서 뛰쳐 나가서 거리를 뛰어다녀볼까 생각했지만 일단은 기다려보기로 했어요. 여직원은 안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책상 위에 놓여진 두툼한 전화번호부를 들고 제 앞으로 왔어요.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더니 제게 전화번호부 오른쪽 구석에 있는 주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이 길에 있는 여행사는 여기 하나 밖에 없어요. 주소가 47a네요."
"고맙습니다."


시간이 벌써 11시였기 때문에 급한 마음에 'thank you very much'를 'very thank you'라고 말하고 급히 뛰어 나와 대사관 앞으로 달려가서 할아버지께 길을 여쭈어 보았어요.


"이 길에서 47a가 어디에요?"
"경찰에게 물어봐요."


그래서 경찰에게 갔어요.
"이 길에서 47a가 어디에요?"
"아...47a? 타지키스탄 비자 때문에?"
"예."


이 망할 놈. 아까는 모른대메?


경찰이 데려다주겠다고 해서 같이 가는데 왠 도도하게 생긴 금발 여성이 보이자 경찰이 불렀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그 여자를 따라가라고 했어요.


"타지키스탄 비자 때문에요?"
"예. 대사관에서 초청장 필요하다고 해서요."
"따라오세요."


그 여자가 데려간 곳은 타지키스탄 대사관 바로 오른편에 있는 레스토랑의 바로 오른편 골목 첫 번째 파란 대문. 여행사라는 팻말도 없었어요. 이러면 누가 찾아!


친구 하나가 반대편으로 한참 갔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저를 따라온 친구에게 빨리 전화로 불러서 대사관 옆 레스토랑으로 달려오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제 전화기는 이상하게 전화 걸기만 안 되거든요. 제 아이폰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오직 전화 걸기 빼고 다 되는 아이폰이에요. 어떻게 메뉴를 건드려보면 전화 걸기가 되는데 그나마도 잠시. 또 제 멋대로 전화가 안 걸려요. 친구가 전화를 걸어서 오라고 하고 전화를 끊자 친구에게 사무실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어요. 길 반대편으로 간 친구가 달려오는 것을 보자 빨리 오라고 해서 사무실에 들어갔어요.


"대사관에서 가라고 했나요?"
"예. 서류 작성은 다 했는데 대사관에서 초청장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초청장은 100달러에요."
"100달러요?"


지금 장난하나? 오직 초청장만 100달러면 타지키스탄 비자 따위는 포기해버릴 생각을 했어요. 이건 해도해도 너무 비쌌거든요.


"오직 초청장만 100달러에요?"
"100달러 주면 여기서 초청장 발급해서 비자 찍어서 줘요."


여기에 여권을 맡기라는 건가? 서로 횡설수설의 시작. 결국 직원이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어요.
"비자 신청비 55달러에 초청장 35달러에요."


어떤 놈 말이 맞는 거야? 직원은 비자 신청비에 초청장 합쳐서 100달러, 대사관 직원은 비자 신청비 55달러에 초청장 35달러 - 도합 90달러라고 했어요.


"오늘 비자 발급 되나요?"
"오늘은 안 되요. 5월 9일은 공휴일이어서 쉬고 5월 10일에 와서 초청장을 여기에서 받아서 아침에 비자를 접수하면 오후 5시에 받을 수 있어요."
"지금 바로는 안 되나요?"
"오늘 넘어가나요? 언제 가시는데요?"
"5월 12일이요."
"그러면 시간 많이 남으셨네요. 제게 100 달러 주고 10일 오후 5시에 비자 찾으러 오실래요, 아니면 45달러 주고 아침에 초청장 받아서 대사관 가시겠어요?"


오늘은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시계를 보니 11시 25분. 이미 오늘 접수하기는 글렀어요. 직원 말로는 우리가 대사관에서 서류 작성 다 했고, 비자 접수하러까지 갔는데 거기에서 오직 '초청장이 없다고' 퇴짜맞은 것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100달러를 주면 초청장을 오늘 발급해서 대사관에 초청장과 여권, 신청서류, 비자비를 넣어준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면 10일 아침에 대사관 올 필요가 없고 오후 5시에 여권을 찾으러 오기만 한다면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여권과 여권 사본, 증명사진 1장을 직원에게 주고 터벅터벅 걸어나왔어요.


"그래도 오늘 접수한 게 어디야."


원래 목표는 오늘 비자 발급까지 받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신청까지는 성공했어요. 처음 목표가 너무 컸다면 컸어요. 당일 바로 초청장 없이 타슈켄트에서 타지키스탄 비자를 발급받은 건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어요. 그나마 성공이라면 초청장 받아서 아침부터 또 이 아수라장 속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5월 10일 오후 4시. 다시 대사관 앞에 갔어요. 대사관 정문에 붙어 있는 공고에 의하면 아침 8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비자 접수,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비자 및 여권 수령이었어요. 여행사 직원은 오후 5시에 가면 된다고 했는데 공고에 의하면 5시면 업무가 끝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오후 4시부터 대사관에 서 있었어요.


오후 4시인데 대사관 문은 닫혀 있었고, 역시나 많은 우즈벡인들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도 그늘에서 서서 대사관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한국인이세요?"
"예."
우리에게 말을 건 우즈벡인은 타지크계 우즈벡인이었어요. 눈을 보면 타지크계인지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남자의 눈은 갈색 빛이 도는 에메럴드색이었어요.
"당신들은 운이 좋은 거에요. 오늘은 사람이 적어서 빨리 받을 수 있어요."


사람이 적다고 운이 좋다고 했는데 비자 신청하러 왔을 때만큼 많은 사람들이 대사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한 시간 동안 기다려서 결국 오후 5시가 되자 대사관 문이 열리고 여권을 나누어주기 시작했어요.


"우리도 슬슬 저쪽으로 가야 하나?"


이것이 중앙아시아다!


대사관 정문을 보니 다시 한 번 한숨만 나왔어요. 비자 신청할 때와 마찬가지로 또 아수라장 무질서 그 자체. 저건 정말 노인이고 여성이고 마구 밀치지 않는 한 절대 돌파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뒤에도 나오지만 노인 우대, 여성 우대 하다가는 정말 끝도 없어요. 새치기, 밀치기 하지 않으면 뭐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평소에는 노인 우대, 여성 우대 철저히 하는 우즈벡인들이지만 정말 대사관 앞과 국경에서는 그딴 거 절대 없어요. 내가 먼저 가냐 내가 밀려나냐 오직 이 둘 중 하나 뿐인 아수라장이에요.


한숨을 푸욱 내뱉고 대사관 정문으로 슬슬 걸어가는데 여행사 여직원이 우리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어요.


"왜 벌써 여기 와 있어요? 제가 전화 준다고 했잖아요."


비자 신청하던 날, 여행사 여직원의 마지막 말을 잘 이해 못했어요. 전화를 준다고 하고 오후 5시에 오라고 한 것만 이해했는데 그날 여직원의 마지막 말은 '비자가 5시에 나오면 자기가 받아서 우리에게 전화 연락을 주겠다. 그때 여권 찾으러 와라'라는 말이었던 것이었어요.


"여기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요."


여직원은 인파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더니 잠시 후 우리의 여권을 들고 나왔어요. 우리들과 여직원은 서로 웃으며 헤어졌어요.


"어디...타지키스탄 비자 얼마나 예쁜가 확인이나 해볼까?"


비자는 손으로 적혀 있었어요. 지금은 타자기도 사라진 시대. 이제는 컴퓨터에 입력해서 프린트하는 시대에요. 비자도 당연히 프린트하는 시대. 그런데 여기는 타자기는 고사하고 아직도 손글씨로 비자를 작성하고 있었어요.


"아놔...뭐야?!"


오늘은 비자 발급 받은 5월 10일. 비자 개시일 역시 5월 10일. 분명히 여행 계획에는 5월 12일로 써 놓았는데 비자 개시일이 5월 10일이었어요. 게다가 비자 만료일은 5월 25일. 딱 15일 비자를 주었는데 개시일이 오늘이었어요. 원래 계획은 5월 12일 출발. 그러면 벌써 15일 중 2일을 까먹어요. 만약 타지키스탄이 여행하기 좋은 나라라면 가서 파미르 퍼밋을 받아서 파미르도 돌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기에는 매우 짧은 비자 유효기간이었어요. 게다가 원래 계획은 사마르칸트 가서 레기스탄 광장 (우즈벡어 : Registon)을 보고 근처에 있는 펜지켄트 국경을 넘어 두샨베로 들어갈 계획이었어요. 이러면 남는 비자 유효 기간은 12일.


"당장 오늘 출발해야 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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