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무계획이 계획 (2008)

무계획이 계획 - 02 (2008.08.08)

좀좀이 2011. 10. 2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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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씨방에서 할 일 없이 친구와 컴퓨터를 했어요. 슬슬 잠이 오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잠은 잔잔한 파도가 되어 머리를 두드렸어요. 정말 '처얼썩 처얼썩 부딪히는 작고 부드러운 파도'처럼 잠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야, 나가자. 나가서 바다나 보자."


새벽 5시. 친구와 사이좋게 밖으로 나왔어요. 여름인데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았어요. 이제 목표는 광안리. 제 주변 부산 사람들은 한결같이 해운대보다는 광안리를 추천했어요. 그래서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어요. 계획이고 나발이고 뭐가 있어야 효과적으로 움직일텐데 그런 것이 아예 없었어요. 믿는 것이라고는 주변 사람들의 말. 어쨌든 해운대보다 광안리가 좋다고 했기 때문에 광안리에 가서 일출을 볼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광안리 가기도 전에 날 새버렸어...


나름 일출 보려고 일찍 나왔는데 동이 터 버렸어요. 그래도 마땅히 갈 곳도 생각나지 않고 기껏 생각해낸다는 곳이 자갈치 시장, 남포동이라고 일단 광안리 해수욕장 가서 다음에 무엇을 할 지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낭만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어...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일출을 보는 것은 애초에 글렀어요. 그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무언가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어요. 한 가지 신기했던 점은 백사장을 청소하는 모습이었어요. 사람도 없고 아무 것도 없었어요. 나름 새벽이지만 사람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어요.



그래...생각해보면 지금 바닷가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다...


물론 바닷가에 사람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어린 학생들도 보였고 연인도 보였고 술 취한 아저씨도 보였어요. 이 사람들은 원래 부산 사람일까, 관광객일까?



누군가 파놓은 웅덩이. 즐거워야할 여행 첫 아침이 급격히 우울해졌어요. 둘이 사이좋게 바닥에 신문지 깔고 주저앉아 이빨로 소주병을 까드득 뜯어 병나발 불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 멍하니 앉아있기도 그렇고 할 것도 없고 기분은 우울했어요.


"여기서 지금 갈 곳 어디 있지?"

"남포동이나 가자. 여기에서 뭐 해?"

"그러면 용두산 공원 갈까?"


순간 떠오른 그 곳, 용두산 공원. 꽃시계가 있다는 공원이었고, 무슨 높은 전망대가 있다는 그곳. 거기서 시간 좀 때우다가 아침 먹고 범어사 보고 강릉으로 가면 대충 시간이 맞을 것 같았어요.


"일단 가자."

왠지 여기에 오래 있으면 우울증에 걸려버릴 것 같았어요. 점점 잠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어요. 이 우울한 기분에 잠의 파도까지 합쳐지면 이건 뭐 버틸 방법이 없었어요.



용두산 쪽으로 가는 버스에서 본 돼지국밥 가게. 정말 내려서 한 그릇 먹고 가고 싶었어요. 역시 돼지국밥은 부산!


용두산 공원에 도착해 전망대 앞까지 기어 올라갔어요. 한여름이라 땀이 줄줄 흘렀어요. 동네 분들은 운동하러 올라오시는데 아무렇지 않아 보였어요. 하지만 우리는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아서인지 밤을 새서 그런 것인지 너무 힘들고 더웠어요.



"와...높다!"

한 번 들어가볼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입장료도 비싸고 한참 기다려야 해서 안 들어갔어요.



용두산 공원에서 바라본 부산.



용두산 공원 꼭대기에서 부산을 내려다보고 계시는 이순신 장군님. 그런데 이순신 장군님께서는 부산까지는 안 오시지 않으셨나...?


다시 정처없는 발걸음이 이어졌어요.



자갈치 시장 뒷쪽.



당연히 아침에 자갈치 시장이 제대로 열었을 리 없었어요.


다시 돌아온 질문. 어디를 갈 것인가? 그리고 오늘 하루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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