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48 태국 방콕 왓 아룬 사원 (새벽 사원) วัดอรุณ, Wat Arun

좀좀이 2017. 1. 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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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포 사원에서 나오면서 고민이 하나 시작되었어요.


'점심 뭐 먹지?'


아침을 먹어서 점심을 꼭 먹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점심을 안 먹으면 언제 먹을지 모르는 저녁을 먹기 전까지 배가 많이 고플 것입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아침을 먹었기 때문에 점심을 지금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이 딱 점심 시간이었기 때문에 지금 점심을 먹지 않으면 저녁 먹는 시간까지 덩달아 매우 애매해질 것이 안 봐도 뻔했어요. 평소에도 상당히 어정쩡한 시간에 아침도 아니고 점심도 아닌 식사를 해서 저녁 먹는 시간이 애매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배가 고프지는 않은데 식사를 안 하면 체력이 이따 급격히 떨어질 수 있었어요. 게다가 지금 점심을 먹는다면 길거리 음식을 먹어도 만든지 그렇게 오래된 음식이 아니니 상관없지만, 이따 늦게 뭔가 먹으려 들면 그때는 길거리 음식을 사먹기에는 매우 꺼려질 것이 분명했어요. 일요일이라고 특별히 음식을 조금씩 만들어 바로바로 팔아치우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왓 포 주변에 먹을 것이 무엇이 있나 둘러보았어요.



길거리에서는 꼬치도 팔고 있었어요.


태국 길거리 음식


다른 것이 없나 계속 살펴보았어요.


태국 과일


"과일이다!"


과일 한 봉지가 20바트였어요. 친구와 같이 먹을 것이었고, 점심 대신 먹는 거라 5봉지를 구입해서 나누어먹기로 했어요. 동남아시아 왔으니 과일을 많이 먹는 것이 보람차게 돈을 쓰는 방법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열대과일이 비싸거든요. 여기에서는 한 봉지에 20바트이지만, 우리나라에서의 가격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시세차익이 남는 경험이었어요. 5봉지라고 해야 100바트. 우리나라 돈으로 3500원 정도였기 때문에 전혀 부담없는 가격이었어요. 게다가 이것을 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둘이 나누어 먹는 것이어서 한 끼를 100바트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구요.


파인애플, 수박, 멜론, 구아바, 멜론를 구입했어요. 과일을 구입한 후 그늘을 찾아 기어들어갔어요.



"억! 이거 맛이 왜 이래?"


역시 믿고 먹을 만한 것은 파인애플과 수박이었어요. 이 둘은 매우 맛있었어요. 무릎 탁 치며 '이 맛에 동남아 오지요'라고 외칠 맛은 아니었지만요. 파인애플은 우리나라에서 먹는 파인애플 중 단맛이 강한 파인애플맛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매우 흔한 맛이었어요. 수박도 마찬가지였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먹었던 그 수박에 비할 바가 아니었어요. 딱 우리나라 수박맛이었어요. '이거 한국산 수박이에요'라고 해도 믿을 맛이었어요.


멜론은 정말 실망이었어요. 너무 밍밍하고 향도 약했어요. 이 지역에서 나는 멜론이 당연히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에서 생산되는 멜론보다 질이 많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어요. 그래도 우리나라 머스크 멜론보다는 맛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우리나라 뷔페에서 맛볼 수 있는 멜론보다도 못했어요. 그래도 먹을만한 맛이기는 했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먹던 것보다는 맛있겠지'라는 예상에서 크게 빗나간 맛이었어요.


망고는 그럭저럭 먹을만 했어요. 처음 태국 왔을 때는 맛있는 망고가 아예 없었어요. 그때는 망고 나오는 철이 아니었거든요. 소금 찍어먹는 설익은 망고가 나올 때였어요. 이제서야 슬슬 야채로써의 망고가 아니라 과일로써의 망고가 나오려 하고 있었어요.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가면 언제든 맛있는 망고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어요. 5월말~6월초에는 망고가 없어요. 6월 중순부터 제대로 된 망고가 나오기 시작해요. 이제 과일로써의 망고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망고 맛은 아주 좋은 것이 아니라 돈 내고 먹을까 말까 고민되는 정도였어요.


문제는 구아바. 퍽퍽하면서 딱딱했어요. 이것을 돈 주고 사먹을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20바트조차 아깝게 만드는 맛이었어요. 구아바 주스조차 먹어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구아바에는 무관심했어요. 그냥 과일이니 달고 맛있겠거니 하고 구입한 것이었어요. 그냥 좋은 경험 하나 했다는 것 이상의 그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도 버리지 않고 꾸역꾸역 다 먹어치웠어요.


과일로 배를 대충 채운 후, 왓 아룬을 보러 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갔어요. 왓 아룬에 가기 위해서는 짜오프라야 강을 건너가야 했거든요. 다행히 과일을 구입하며 1000바트 지폐를 헐었기 때문에 배삯 3바트를 100바트짜리 지폐로 내며 100바트 지폐 한 장을 다시 소액권 지폐로 만들었어요.


태국 방콕 짜오프라야강 선착장


배에 올라탔어요. 생각보다 배가 많이 흔들렸어요.





"여기는 왜 입장료 받는 곳이 안 보이지?"



배에서 내리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덮쳐왔어요. 우리나라에 '새벽 사원'이라고 잘 알려진 왓 아룬 사원 วัดอรุณ, Wat Arun 은 태국 방콕 관광의 상징. 태국 방콕 관광 홍보물을 보면 짜오프라야강과 그 너머에 보이는 크메르 양식 탑인 쁘랑이 있는 사진이 있는데, 그 아름답고 거대한 쁘랑이 바로 왓 아룬 사원이에요. 아주 어렸을 적 태국을 앎과 동시에 접한 것이 바로 왓 아룬 사진이었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접해오고 있는 것이 왓 아룬 사원 사진이었어요. 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진이니까요.


이 절이 왓 아룬인지 새벽사원인지 วัดอรุณราชวรารามราชวรมหาวิหาร 인지 Temple of Dawn 인지 몰라도 좋아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태국 방콕에 대한 환상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절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넘실거리는 짜오프라야 강물과 왓 아룬. 왓 포, 왓 프라깨우가 뭔지 모를 수 있고, 거기 사진을 못 보았을 수도 있지만 태국 여행에 1나노그램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짜오프라야 강과 그 너머의 왓 아룬이 찍힌 사진을 못 보았을 리가 없어요.


그러므로 여기로 무수히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것은 굳이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자명한 사실이었어요. 그런데 입장료를 받는 곳은 안 보였고, 여기저기 보수공사중이었어요. 어떤 느낌이었냐면 마치 경복궁 안에 들어갔는데 매표소는 안 보이고 곳곳이 보수작업중인 기분과 같았어요. 여기는 정말로 아주 유명한 곳이라 분명히 입구부터 입장료를 받아야 정상일텐데 입장료 받는 곳은 안 보이고 보수 작업중인 곳만 엄청 보이니 불길한 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어요.


왓 아룬 입구


보수 공사를 위해 쳐놓은 가림막 사이로 보이는 장식은 매우 화려했어요.


타이 전통 공예


여기저기서 문화재 보수 작업이 진행중이었어요. '왓 아룬 사원' 그 자체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태국에서는 문화재 보수 작업을 어떻게 진행하나 구경했어요. 이때는 벽 위에 발라진 칠을 벗겨내고 있었어요. 하얀 도료를 벗겨낸 후 그 위에 다시 반죽을 입히고 하얀 칠감을 바를 거에요. 아예 철거하고 다시 세우는 작업은 아닐테니까요. 칠을 벗겨내는 작업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흰 먼지가 날리고 하얀 덩어리가 아래로 툭툭 떨어지고 있었어요.


태국 문화재 보수 작업 현장


"공사 안 하는 곳만 찾아서 둘러보아야겠네."


공사중이라 관광객은 별로 없었어요. 그 점 하나는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제대로 구경 못한다는 것은 안 좋았지만요.



불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왓 아룬 불당


불당 안으로 들어가서 절을 드리고 조용히 무릎꿇고 앉아서 내부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을 찍고 다시 밖으로 나왔어요.





절을 둘러보다 노천에 불단이 마련된 곳에 도달했어요.



이 맞은편에는 쩨디가 있었고, 쩨디 너머에 쁘랑이 보였어요.


Wat Arun in BKK


이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입장료 50바트를 내야 했어요. 50바트 입장료 내는 곳이 왜 없나 했는데 이쪽으로 들어갈 때 50바트를 내어야 했어요.


'여기 들어갈까?'


안으로 들어가려면 50바트를 내어야 했어요. 그런데 딱 봐도 내부는 보수공사중이었어요. 50바트를 내고 들어가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의문이었어요. 원래는 오른편 쁘랑을 올라갈 수 있다고 하는데 공사중이라 올라가게 해줄지도 의문이었어요.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워서 고민되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봐야 공사 현장만 볼 것이 명약관화했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어요.


들어가지 말자.


어지간하면 돈 내고 다 들어가지만, 보수 공사 현장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보수 공사 현장이라면 이 지점까지 오면서 이미 많이 보았다. 여기까지 와서 왓 아룬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들어가서 실망할 바에는 그냥 안 들어가고 아주 약간이라도 환상을 남겨놓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들어가서 실컷 불평만 하고 나올 바에는 안 들어가고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 낫겠지. 어차피 들어가나 안 들어가나 아쉬움의 크기는 똑같을 테니까.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결과가 같을 테니, 그러면 차라리 50바트 절약이나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입구 맞은편 노천 불단에서는 태국인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어요.



입구 옆에서는 물과 음료수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어요. 그 누구도 거기에 돈을 내고 있지 않았어요. 물과 음료수만 받아갈 뿐이었어요.


'설마 나도 그냥 받을 수 있을 건가?'


설령 못 받는다 해도 쪽팔림은 한 번이야. 게다가 나는 외국인이잖아? 여기에 관광객이기까지 해. 지금 내 꼴을 보면 누가 봐도 외국인 관광객이야. 무례한 짓만 안 하면 어떤 바보짓을 해도 모두가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관대하게 이해해주지. 물을 받는다면 이득. 못 받으면 여행기에 쓸 내용 하나 늘어나는 것이야. 가만히 보기만 한다면 여행기에서 '물과 음료수를 나누어주더라' 라는 문장 한 줄로 끝나겠지만, 일단 다가가서 나도 주나 얼쩡거려본다면 이 이야기로 몇 문장은 뽑아낼 수 있어.


물과 음료수를 나누어주는 사람들에게 다가갔어요. '커톳'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미소를 지으며 제게 음료수를 가져가라고 했어요. 이분들은 공덕을 쌓기 위해 음료수와 물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어요. 물과 음료수 중 무엇을 가져갈까? 공양을 드리기 위해 들고온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니 몇 개 들고 간다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지만, 제게도 '양심'이란 것이 있었어요. 저 말고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야죠.


저는 아직 수행이 부족해 제 욕심을 채우기는 해야겠습니다.


어떤 것을 골라갈까 고민하다 얼음물에 손을 집어넣고 음료수를 움켜쥐었어요. 사람들 모두 생수보다는 음료수를 선호했어요. 그래서 물은 많이 남아 있고 음료수는 거의 없었어요. 제가 평소 정신수양을 많이 했다면 남을 위하여 일부러 생수를 집어들었겠지만, 저의 타락한 마음은 한 개 집어가는 것 이상의 양보를 용납하지 못했어요. 음료수를 손에 쥐고 합장을 한 후 '코쿤크랍'이라고 말하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어요.


왓 아룬이 공사중이라 실망했지만, 그 실망은 이 음료수 한 통으로 날아갔어요. 제가 단순한 것인지, 이 음료수에 불교의 깊은 뜻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단 기분이 매우 좋았어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었어요. 공짜로 음료수 한 통 받았다. 이것은 불변의 사실이고, 이것 때문에 기분이 매우 좋아졌어요. 뚜껑을 따고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어요. 기분이 더 좋아졌어요. 아주 신났어요. 길거리에서 만원짜리 지폐 주운 것만큼 신났어요.


철문 앞에 걸린 현수막에는 태국 방콕 주요 사찰과 사진이 표시되어 있었어요.



이 절 9개가 방콕의 주요 불교 사찰인 듯 했어요. 절의 위치와 모토가 나와 있었어요.


'이것을 진작 발견했다면 방콕 주요 사찰 9개소 다 돌아보는 건데...'


아쉬움이 밀려왔어요. 쓸 데 없이 아눗싸와리 간 날, 매일 느적거리며 버리던 아침 시간, 어디 갈 지 마땅히 끌리던 것이 없어서 고민하던 시간들이 눈 앞에 한 장면씩 떠올랐어요. 다음날 밤 기차로 방콕을 떠나니 작정하고 돌아다닌다면 다 볼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야간 이동으로 치앙마이로 가는 것이라 어딘가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보다 땀이 덜 나는 것이 중요했어요. 샤워 못 하고 밤새 기차 안에 있어야 하니까요.


'쁘랑 사진이나 찍자.'


어쨌든 왔으니 보이는 만큼은 보고, 멀어서 잘 안 보이는 것은 망원 렌즈로 찍어서 확대해서 보면 되요. 디지털 카메라 줌 기능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멀리 떨어져서 잘 안 보이는 곳을 줌으로 당겨찍은 후 사진으로 보다 선명하고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왓 아룬의 쁘랑이 화려한 것 같기는 한데 멀고 공사중에 장식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줌 기능을 이용해 사진을 찍은 후, 그 사진을 보며 감상하기로 했어요. 그게 싫다면 50바트 내고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보아야 하니까요.







쁘랑 사진을 찍은 후 다른 장소를 보러 자리를 옮겼어요.



불당 안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요. 저도 안으로 들어가 절을 하고 사진을 찍은 후 밖으로 나왔어요.



저 건물은 뭐지?


뭔가 정자처럼 생긴 건물. 들어가지 말라고 입구를 막아놓지도 않았고, 계단을 통해 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어요. 이 건물이 어떤 건물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 안으로 들어가보았어요.



이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이거 하나만은 알겠어. 태국인들 불심 정말 깊구나.




동전을 살짝 밀어내고 돌바닥을 들여다보니 부처님의 발 지문을 그려놓은 것 같았어요.



"잘 봤다! 음료수도 잘 얻어마시구!"



어쩌면 내가 무의식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곳이 왓 아룬일거야. 어렸을 적부터, 정확히는 '태국' 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던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왓 아룬 사진을 보아 왔거든. 그 사진이 왓 포인지 왓 아룬인지 방콕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어. 정확히는 어제야 그것이 왓 아룬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됐어. 수리중이라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 대신 태국인들의 깊은 불심을 느낄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된 거야. 이거면 만족스러워. 게다가 음료수도 얻어마셨구.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어요. 이제 왓 아룬은 제 기억에서 '음료수 공짜로 얻어마신 절'로 기억될 거에요.


이제 떠날 시간이오. 다음 행선지로 가야 하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10분이었어요.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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