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란저우도 크다!"
이 당시에는 란저우가 중국에서 손꼽히게 공기가 더러운 공업 도시라는 것을 몰랐어요. 친구가 란저우에 라면 먹으러 가고 싶다고 할 때만 해도 별 볼 일 없는 지방의 중소 도시라고 생각했고, 아침에 돌아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야시장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현대적이고 번화한 거리였어요. 물론 이것이 그렇게 놀랄 것까지는 아니었지만요. 기차를 타고 여러 도시를 지나가면서 중국 도시는 도심이 엄청 화려하고 그 도심을 벗어나면 엄청나게 낙후된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시든 풀에 달라붙어 배가 뽕뽕해진 진딧물 같은 구조가 바로 중국의 모습이었어요.
친구가 진짜 야시장이라고 찾아서 가고 있는 곳은 正宁路小吃夜市 정닝루 샤오츠 예시였어요.
"우리 야시장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여기 양꼬치 큼지막해서 엄청 유명하다던데 그거 하나씩 뜯을까?"
드디어 배가 고파졌고 식욕이 돌아왔기 때문에 야시장 가는 길이 매우 신났어요.
"여기 뭐? 무슨 크리스마스 명동?"
친구를 따라 길을 가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라서 소리쳤어요.
거리는 사람과 가게로 미어터졌어요. 과장 하나 안 보태고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명동 수준이었어요. 모두가 살과 살을 부비적거리며 걷고 있었어요. 중국에 사람 많다는 이야기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지만, 이 정도로 미어터지게 사람이 많은 줄은 몰랐어요.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어쩌다 몇 번 볼까말까한 어마어마한 인파가 거리를 꽉 채우고 있었어요.
우리나라 서울 명동, 남대문 시장처럼 거리에서 이런 저런 악세사리, 의류 가판대가 쫙 깔려 있었어요.
이렇게 복잡한 시장 속에 음식을 파는 노점상이 빠질 리가 없었어요.
"이건 뭐냐?"
깜짝 놀라서 소리쳤어요. 이것은 신개념이라 할 수 없었어요. 새로 탄생한 것이 있어야 신개념이니까요. 무개념이라고도 할 수 없었어요. 뭔가 있는 게 있어야 무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이것은 그냥 개념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것이었어요. 이 광경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냥 애초에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개념이 없는 거라는 것 외에는 어떤 식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광경이이었어요.
4차선 도로에서 양쪽 끝쪽 차선은 사람들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그 누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요. 더 웃긴 것은 가판대가 차도를 향해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단순히 오늘따라 사람이 미어터져서 사람들이 차도로 삐져나온 것이 아니었어요. 이것은 일상이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가판대가 차도를 향해 열려 있을 리가 없었어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어요. 이들에게 인도와 차도 구분은 태고적부터 존재하지 않아 보였어요.
그냥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어요. 이것은 뭐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미개하다고 해야할지, 개념이 없다고 해야할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그러면 시간에 따라 양쪽 끝쪽 차선은 인도처럼 사용하는 것이냐? 그것은 아니었어요.
당연히 차선은 차선이었어요. 차가 4차선을 꽉 메웠어요. 사람들과 차가 뒤엉켰어요.
사람에 치여가며 간신히 길을 빠져나왔어요. 이제 길을 건널 차례. 육교로 건너는 방법이 있었고, 횡단보도로 건너가는 방법이 있었어요. 이 인파 속에서 횡단보도까지 갈 엄두가 나지도 않았고, 설령 횡단보도까지 어찌 간다고 해도 길을 건너는 것도 문제였어요. 질서 따위는 없었어요. 애시당초 질서라는 것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이런 하찮은 길건너기에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아서 육교로 건너가기로 했어요. 원래 계단 오르내리는 것을 둘 다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횡단보도로 건너가는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전혀 아니었어요.
"야! 잠깐만!"
"왜?"
"나 저거 좀 사진으로 찍게!"
제가 아무리 말해봐야 사람들이 잘 안 믿을 거 같았어요. 그래서 얼마나 아수라장인지 증거 사진을 남기기 위해 친구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어요. 아쉽게도 극도로 혼란스러운 순간은 지나가고 많이 안정이 된 길거리가 되어 버렸어요.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며 또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순간을 기다리기도 그래서 매우 안정적인 상태를 사진으로 찍었어요.
아쉽게도 이것은 매우 좋은 상태의 도로상황이었어요. 불과 1분 전만 해도 꼬리물기에 사람들 다 엉켜 있고 차도 다 엉켜 있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조금만 또 기다리면 멋진 장면 하나 찍을 수 있을텐데 친구가 너무 피곤해하고 있었어요. 친구를 보며 왜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중국에서 오래 체류하고 돌아온 친구들과 지인들 및 그런 사람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중국에서 사람들에게 치이는 것이 정말 싫다고 했어요. 말로만 들었을 때에는 그게 그렇게 확 와닿지 않았어요. 그냥 중국은 사람들 많고 별별 놈들 다 있는데 나쁜 사람을 많이 만나서 싫은 것인가 보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란저우 거리를 걸으며 확실히 깨닫게 되었어요. 정말로 무개념에 무질서하고 자기만 아는 중국인들에 매일 저렇게 치여살다보니 사람 많은 것 자체가 싫어진 것이었어요.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곳은 저도 여러 곳 가보았어요. 세계적으로 교통 체증 문제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방콕, 쿠알라룸푸르, 자카르타 모두 가 보았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교통체증이 심한 외국 도시들도 여기저기 가 보았어요. 그런 곳들의 교통체증을 모두 겪어보았지만 무질서에 무개념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냥 차가 많이 막힐 뿐이었어요. 사진으로 보면 헉 소리 나오는 베트남도 가보았어요. 베트남은 오토바이 때문에 여백의 미가 없을 뿐이었어요.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어서 매우 위험하게 느껴지고 정신없었지만 거리를 하루 돌아다니고 나니 적응되어서 다닐만 했어요. 오토바이가 차선에 공간을 남기지 않고 꽉 채워서 달리는 것이 정신사나울 뿐, 사람은 그들 나름의 규칙에 따라 피해갔거든요.
그 어떤 곳도 이렇지는 않았어요. 아프리카 대륙 끝 모로코부터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동남아시아 국가들까지 가보았지만 차도를 향해 가판을 열어놓고 태연하게 사람들이 차와 엉켜서 차도로 다니고 차나 사람이나 오직 자기만 생각하며 다니지는 않았어요. 다 자기만 생각하며 길을 돌아다니는 것 때문에 하루 종일 피곤했어요. 왜 차도를 건너며 내 목숨은 내가 지켜야한다고 생각해야하는지 의문이었어요. 이런 곳에서 몇 년을 살았으니 중국인 바글거리는 것이 싫고 사람들에 매일 치여대는 것이 싫어서 한국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었어요.
육교를 내려오며 도로를 다시 바라보았어요.
"공안은 저기 뭣 하러 있는 거?"
공안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 혼돈을 방관하고 있었어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에요.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테니까요.
혹자는 이것을 보며 유난 떤다고 하면서 이보다 훨씬 심한 곳도 많다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미개하고 개념없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 누가 더 미개하고 개념없냐는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이면에는 그냥 자기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 불쾌한 것이었구요. 자기 신호때 무단횡단하면 자비없이 들이받아버리겠다며 달려간다 하더라도 정지 신호를 준수하면 문제될 것이 없어요. 이것은 자기 권리와 의무를 다 지키는 것이에요. 그런데 모두가 신호도 안 지키고 자기 좋을대로 하는 이 혼돈은 절대 좋게 보아줄 수 없는 미개함이에요. 차와 가축이 뒤엉키는 거야 많이 경험해보았지만, 그렇다고 차가 가축을 치어버리고 그냥 막 돌진해 자기 갈 길 가겠다고 하는 경우는 아직 못 보았어요. 사람과 차가 뒤엉켜 다니니까 길거리를 향해 좌판을 깔아놓는 것은 대륙의 창의적 발상이 아니라 미개함과 이기심의 결과물이에요. 상식적인 동네라면 인도가 미어터져서 사람들이 차도로 삐져나오는 것은 용인한다 치더라도 차도를 향해 좌판을 깔아놓는 것은 당연히 막겠죠. 무슨 우리나라 명절때 고속도로 교통체증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뻥튀기 파는 것도 아니구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어요.
"야, 상하이도 원래 이랬냐? 너 처음 왔을 때."
"상하이도 원래 이랬지."
"얘들은 뭐 이러냐? 다 자기만 생각하면서 다니네?"
"원래 중국이 그래. 내가 그래서 사람 많은 곳 싫어하잖아."
"이건 진짜 심한데..."
"중국은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여러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만 기본적으로 양보, 배려 같은 건 기대하지 마."
친구는 예전 상하이도 만만치 않았다고 알려주었어요. 친구와 웃으며 드디어 란저우 정닝루 야시장 兰州 正宁路 夜市 에 도착했어요.
야시장에 도착하자마자 양고기를 손질하는 회족이 보였어요.
"야, 저거 유명한 거래!"
가격을 보니 10위안이었어요. 이러면 신장 위구르 자치구보다 비싼 가격이었어요. 친구에게 먹겠냐고 물어보자 자기는 별로라고 대답했어요. 친구는 이미 수많은 인파에 치이며 모든 기운을 중국인들에게 흡성대공으로 다 빼앗겨버렸어요. 친구의 눈을 보니 눈이 풀려버렸어요. 아까 백탑산 올라갈 때는 단순한 짜증이 보였는데, 지금은 짜증과 피로가 보였어요. '이 지긋지긋한 것을 내가 또 겪어야 하나' 하는 눈빛이었어요. 야시장도 당연히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저 커다란 양꼬치를 혼자 사먹을까 말까 고민하며 혹시 다른 먹을 것 없나 둘러보는 순간...
나는 봐버렸다...
사람들이 양꼬치를 사서 먹고 커다란 나무 꼬챙이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었어요. 당연히 쓰레기통이니까 사람들이 침도 뱉고 쓰레기도 버리고 있었어요. 한 남자가 그 쓰레기통으로 와서 나무 꼬챙이만 빼서 모아갔어요. 쓰레기통 속 나무 꼬챙이만 모아가는 이유는 이 버려진 나무 꼬챙이를 재활용하기 위해서였어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알라후 아크바루! 할렐루야!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라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종교 시설을 5곳이나 돌았더니 세계 3대 종교인 불교, 기독교, 이슬람이 이렇게 저를 살려주시는군요!
이 사진은 시안에서 찍은 것이에요. 시안에서도 똑같이 거리에서 커다란 꼬챙이에 양꼬치를 꿰어서 구워서 팔거든요. 그리고 시안에서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이 나무 꼬챙이만 따로 사람들이 재활용하기 위해 수거해가고 있었어요.
글로만 적으면 아마 안 믿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에요. 믿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에요. 저 양꼬치 구이에서 사용하는 나무 꼬챙이는 다른 통에 따로 모아놓는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재활용 안 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에요. 그런데 제가 봐버렸어요. 설마 저것이 양꼬치용 나무 꼬챙이만 따로 모아놓은 쓰레기통으로 보이시나요.
우리나라 식당에서 불판을 강한 염기성 화학약품에 담가서 씻는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어요. 그거 보고서 사람들이 혹시 그 약품이 불판에 남아 있을까봐 엄청 걱정을 해대었지요. 그런데 그게 차라리 나아요. 저 나무 꼬챙이는 진짜 나무 꼬챙이거든요. 나무에 배어들어간 것을 뭔 수로 다시 뽑아내나요. 금속제는 화공약품에 집어넣은 후 잘 헹구어내면 약품이 씻겨내려가기라도 하지, 저건 화공약품에 담그면 화공약품도 나무에 배어들어서 문제에요. 나무 꼬챙이는 뭔 짓을 해도 답이 없어요.
천만다행이었어요. 이것을 못 보았다면 여기에서야 친구가 넋이 나가버렸기 때문에 안 먹고 그냥 간다 쳐도 시안 가서 B와 중국 온 기념으로 하나 사먹었을 거에요. 그런 참사를 피할 수 있게 하늘이 도와주었어요. 다시 한 번 이 행운에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오늘 열심히 절도 가고 모스크도 가고 성당도 간 것이 보람이 있었어요. 앞으로 남은 일정 동안 무조건 쇠꼬챙이에 끼운 꼬치만 먹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어요.
야시장 안은 아까보다 더 혼자하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난을 파는 상인도 있었어요.
계란과 우유를 섞어 만든 죽을 파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 죽은 牛奶鸡蛋醪糟 라고 한대요. 이 시장에서 유명한 음식 중 하나래요. 이것을 보고 한 번 먹어보고 싶었지만 친구는 어서 가자고 재촉할 뿐이었어요. 친구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었어요.
저 나무 꼬챙이를 보자 조금 전 보았던 그 꼬챙이가 떠올랐어요.
친구가 오래 살고 싶으면 먹지 말라고 한 가재도 팔고 있었어요.
이렇게 양머리도 팔고 있었어요.
친구는 완벽히 넋이 나가서 여기에서 탈출할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저는 여기에서 혹시 저녁을 먹을 수 있나 계속 둘러보았어요.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어요. 음식을 구입하는 거야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정작 먹을 곳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탁자와 의자는 전부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어요. 가게 뒤로 가서 바닥에 주저앉아 노숙자처럼 밥을 먹고 싶지는 않았어요. 일단 되는대로 먹자고 한다 쳐도 바닥이 깨끗하지도 않았구요.
양머리가 전시된 것은 여기까지 오며 종종 보았지만 지금까지 양머리를 그릇에 내놓는 것을 본 적은 없었어요. 마침 양머리를 음식으로 그릇에 내놓는 곳이 보여서 사람들을 비집고 어떻게 그릇에 내놓는지 지켜보았어요.
이렇게 도마 위에 먼저 양 머리를 올려놓아요.
이 양 머리를 둘로 쪼개요. 그러면 양 머리 단면을 볼 수 있어요. 양 뇌 구조도 보였어요. 이렇게 양 머리를 반으로 쪼개서 접시에 올려주었어요.
이 할아버지가 파는 牛奶鸡蛋醪糟 앞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줄을 서 있었어요. 맛집으로 꽤 유명한가 본데 줄이 너무 길어서 먹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중국인 많은 곳 싫어하는 친구를 잡아끌고 줄 끝에 서서 기다려볼까 했지만 줄을 서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어요. 줄이 다른 가게 앞까지 쭉 이어져 있었고, 그 끄트머리가 어디인지 인파로 인해 분간이 가지 않았어요. 끄트머리야 줄 따라 가면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줄 끝으로 가기 위해서는 계속 쏟아져들어오는 사람들을 다 어깨로 쳐내고 팔로 밀어내며 길을 되돌아가야 했어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 한 마리가 되어서 중국인 인파에 맞서지 않는 한 줄 끝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야시장을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어요. 뒤에서 계속 밀어대어서 쓸려내려갔어요. 친구는 이 인파의 쓰나미에 극도로 짜증나고 진빠져서, 저는 먹을 자리가 안 보여서 거대한 흐름을 타고 하류를 향해 휩쓸려 내려갔어요.
하류 끝까지 휩쓸려 내려온 후 뒤를 돌아보았어요.
다시 거슬러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고생해야할 이유도 없었구요. 먹을만해 보이는 곳이든 안 먹을만해 보이든 곳이든 빈 자리가 없었어요. 여기에서 무언가를 먹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운좋게 빈자리가 나는 곳에 바로 들어가서 자리잡고 앉지나 않는다면요.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빈 자리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먹어야 한다면 가서 먹을 필요가 없었어요.
친구 얼굴을 보았어요. 친구는 진심으로 피곤해하고 있었고, 짜증이 많이 나 있었어요.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이마에 '여기 진짜 싫어, 빨리 사람 없는 곳으로 좀 가자' 라고 딱 써 있었어요. 더 있어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피로와 친구의 짜증 밖에 없었어요. 란저우 라면은 아침에 파는 음식이라고 했고,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식당이 란저우 라면만 팔 리 없었어요.
드디어 야시장에서 완벽히 빠져나왔어요.
시장을 빠져나와 계속 기차역 방향으로 걸어갔어요.
"중국인 바글대는 곳 진짜 싫어!"
그제서야 친구가 말을 했어요. 친구가 굳이 저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어요. 야시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친구가 가슴 속부터 짜증이 울컥 솟구쳐오르고 있다는 것을 계속 느끼고 있었거든요.
"우리 저녁 어디에서 먹지?"
"이쪽에 먹을만한 곳 없을까?"
친구와 계속 길을 걸으며 저녁을 먹을만한 식당이 있나 살펴보았어요. 확 끌리는 식당이 없었어요.
"그냥 기차역 가서 그 근처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먹자."
"기차역까지 어떻게? 걸어서? 아니면 버스 타고?"
"버스 타자."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갔어요. 친구가 교통상황을 보았어요. 걸어서 한 시간 거리이고, 버스로 40분 걸린다고 알려주었어요. 길을 보니 길이 꽉 막힌다고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었어요. 걸어서 한 시간에 버스로 40분이면 길이 막혀도 엄청나게 막힌다는 이야기. 짐 없이 걷는 것이니 이 정도면 버스를 타나 걸어가나 걸리는 시간은 얼추 비슷하게 걸릴 것이었어요. 시간 차이는 20분 차이였지만 지도에 나오는 것보다는 어쨌든 빨리 걸어갈 수 있을 테니까요.
"걸어서 한 시간이고 버스 타면 40분이란다. 어떡할래?"
"버스 타자."
차도를 또 건널 생각을 하니 얌전히 버스 타고 가는 것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아까는 낮이라 잘 보이기라도 했지, 지금은 어둠이 내려앉았어요. 친구가 시력이 안 좋아서 밤에 잘 못 보기 때문에 밤에 차도를 건너는 것은 진짜로 위험했어요. 저 하나 챙기기도 바쁜데 친구까지 챙겨야 하니까요. 모험이고 절약이고 지금은 안전제일이 최우선이었어요. 바로 다음날 B가 시안으로 오니까요. 게다가 저도 지쳐버렸구요. 친구 때문에 란저우 라면 먹고 분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친구가 있어서 웃을 수 있고 그나마 재미있었던 것이었지, 친구 없이 혼자 왔다면 짜증 폭발할 상황이었어요. 물론 친구가 없었다면 이따위 도시에는 오지도 않았겠지만요.
버스가 오자 버스에 올라탔어요.
란저우역에 도착하자 밤 8시 40분이었어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식당을 찾아갔어요.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저는 볶음밥인 차오판을 시켰어요. 차오판이 나오자 한 숟갈 떠먹었어요. 역시 믿고 먹는 차오판이었어요.
"차오판 맛있어?"
"어. 진짜 란저우 라면이랑 비교할 수가 없는 맛이네! 내가 진짜 란저우 라면만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맛없었어?"
"내가 방구석에서 끓여먹던 라면을 왜 여행까지 와서 또 끓여먹어야 하나 싶더라. 그딴 것도 명물이라고..."
차오판을 먹으니 아침의 그 란저우 라면 대참사가 다시 떠올랐어요. 친구는 자기도 란저우에서 파는 란저우 라면이 그런 맛인줄 몰랐다고 대답했어요. 친구가 아침에 구입한 과자를 제게 먹어보라고 권했어요. 싫다고 딱 잘라 말했어요. 친구가 하루 종일 그 과자를 들고다니며 제게 과자 좀 들어달라고 은근히 신호를 보냈지만 그때마다 '나는 분명히 그거 사지 말라고 했다. 너가 샀으니 너가 책임져라'라고 응수했어요. 돗자리 가방에 넣고 다니라고 하니 과자가 너무 부드러워서 그러면 다 부서진다고 하면서 끝까지 들고 다녔어요. 친구는 처음에는 제게 과자를 먹이고 맛있다는 반응을 이끌어내서 제가 과자를 들어주기를 바랬지만, 이제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 과자 자체가 꼴도 보기 싫었어요.
"그건 네 업보야. 네가 다 먹어. 나는 그거 안 먹어."
9시 14분. 란저우역으로 돌아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