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32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카슈가르 성벽

좀좀이 2016. 9. 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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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해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덧 4시 반이 되어 가고 있었어요.



객실 안에는 저와 친구 뿐이었어요. 아침에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벽 한쪽에는 '알라 이외의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신의 사도'라는 경구가 새겨져 있었어요.


친구는 침대에 드러누웠고, 저는 노트북을 꺼내었어요. 스마트폰으로 라인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귀찮았어요. 이왕 노트북을 꺼내 카메라 속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기는 김에 카카오톡을 이용해 친구들과 채팅을 했어요. 친구들은 카슈가르 풍경을 매우 궁금해했어요.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을 노트북 컴퓨터로 옮겨담았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사진 전송을 시도했어요.


사진 전송이 되지 않았어요. 분명히 대화는 잘 되는데 사진은 하나도 전송되지 않았어요.


'용량 문제인가?'


사진 몇 장을 추려서 용량을 줄인 후 전송을 시도해보았지만 사진은 전송되지 않았어요. 왜 안 되는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중국에서 vpn을 사용하지 않고 카카오톡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카카오톡 PC버전에서 사진을 전송할 수는 없다고 나와 있었어요. 컴퓨터 속에 있는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옮겨담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어요. 가뜩이나 스마트폰 용량도 얼마 없는데 사진까지 옮겨담으면 가뜩이나 부족한 스마트폰 용량이 더 부족해질 것이었어요.


그때 마침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어요.


'위구르 전래동화책 안 샀지!'


어차피 교과서 구입은 끝장났어요. 이제 위구르어 교과서는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절대 구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위구르어 교과서에 정신이 팔려서 잊고 있던 것이 있었어요. 저는 요리책과 전래동화도 모아요. 요리책은 투르판에서 이미 구입했어요. 남은 것은 전래동화. 교과서 구입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교과서 구입 비용이 전부 사용해도 되는 돈이 되었어요. 그래서 조금은 여행 경비에 숨통이 트였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을 잊고 있었어요.


제가 다시 나갈 준비를 하자 친구가 제가 어디 가는지 궁금해서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나 나갔다온다."

"어디 가게?"

"서점. 전래동화 좀 사오게. 너 따라가게?"

"어느 서점 갈 건데?"

"어제 교과서 받은 서점."

"응."


친구에게 누워서 쉬고 있으라고 했어요. 멀리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숙소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점에 다녀오는 것이었거든요. 길도 다 알고, 전날 다녀온 곳이기도 했어요. 게다가 거기 주인 아저씨와 직원은 위구르어를 구사하는 위구르인이었어요. 친구가 책에 관심이 있어서 꼭 따라가야겠다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저를 따라나올 필요가 전혀 없었어요. 친구는 제가 서점에 다녀온다고 하자 잘 다녀오라고 하고는 자리에 드러누웠어요.


스마트폰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어요. 스마트폰을 챙겨서 나온 이유는 제 친구들에게 이곳 풍경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어요. 스마트폰으로 여기 풍경 사진을 찍어서 와이파이가 되는 숙소로 돌아간 후 카카오톡으로 전송해줄 생각이었어요.


역시나 더웠어요. 그래도 아까 숙소로 돌아올 때보다는 덜 더웠어요. 확실히 해가 하늘 꼭대기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오니 살 것 같았어요. 숙소에서 샤워하고 조금 쉬고 나온 것도 있구요. 사진을 찍으며 전날 교과서를 받은 서점을 찾아갔어요.


'어느 길로 들어갔더라?'


이드카 모스크 옆까지 와서 길이 갑자기 햇갈리기 시작했어요. 전날 기억을 더듬어 골목으로 들어가보았어요. 전혀 다른 곳이었어요. 다시 이드카 모스크 옆으로 돌아와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어요. 역시나 전혀 다른 곳이었어요. 그렇게 골목을 하나씩 들어가보았지만 서점은 나오지 않았어요. 결국 제일 마지막까지 남은 골목으로 들어가서 쭉 걸어나가자 서점이 나왔어요.


"안녕하세요."

"어서오거라."

"위구르 전래동화 있어요?"


주인 아저씨께서 고개를 기우뚱거리셨어요. 다시 한 번 말씀드렸지만 계속 못 알아들으셨어요. 이때 저는 우즈베크어로 이야기했는데, 우즈베크어에서 전래동화는 ertak 이에요. 그래서 ertak 있냐고 물어보자 계속 못 알아들으셨어요. 순간 이 지역에서는 전래동화 책을 출간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우즈베크어로 설명했어요. 그러자 주인 아저씨께서는 책 몇 권을 찾아주셨어요.


'이게 아닌데...'


아저씨께서 찾아주신 책은 제가 찾는 전래동화가 아니라 문학 작품집이었어요. 위구르 작가들이 위구르어로 쓴 문학을 읽는 것도 상당히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제가 원하던 것은 아니었어요. 문학 작품은 전혀 구입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 나라의 문학 작품을 모으지 않는 데에는 아주 과학적인 이유가 있어요. 왜냐하면 문학 작품은 외국어를 어지간히 공부해서는 읽을 수가 없거든요. 무슨 작품을 음미하고 깊이를 느끼는 그런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문학 작품은 어려워요. 문학 작품은 온갖 기교가 다 들어가기 때문에 문장 구조 파악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게다가 유아어, 은어, 비속어, 방언 같은 것은 현지에서 나고 자란 원어민이 옆에 없는 한 해결도 되지 않아요.


보통 외국어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시에요. 그냥 시는 안 건드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아요. 아저씨께서 찾아주신 문학 작품집은 하필 시집이었어요. 아저씨께는 미안했지만, 시집은 살 마음이 아예 없었어요. 진심으로, 격렬하게 외국어로 된 시집은 거부했어요. 외국어로 된 시를 자유롭게 읽어내고 음미할 수준이면 그 외국어 공부는 그냥 끝났다고 해도 되요.


아쉬워해야하는지 다행으로 생각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위구르 문화 역시 시가 발달한 문화에요. 문학사를 보면 시는 그 기원이 고대 4대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노래 가사가 시니까요. 그러나 소설은 등장 자체가 상당히 늦어요. 만약 위구르 문화에서 소설도 많이 발달했다면 뭣모르고 소설책 몇 권을 집어들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아주 다행스럽게도 시가 크게 발달하고 소설은 상대적으로 덜 발달했기 때문에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어요.


'전래동화, 민담은 아예 출간을 안 하나?'


그래도 어린이용 전래동화집 몇 권은 있을 거라고 추측했어요. 위구르어로 된 책도 여러 종류 있었기 때문에 뒤져보면 어쨌든 뭔가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어린이용 책을 보러 갔어요. 어린이용 책이 꽂혀 있는 곳으로 가면 무언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ertak 을 왜 못 알아들었는지 궁금했어요. 어쩌면 거기에 답이 있을 수 있었어요. 중국에 와서 심카드를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어요. 중국어로 '전래동화'가 무엇인지 알아볼 방법이 당장은 없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는 숙소까지 돌아가야 하는데, 이 단어 하나 알아보겠다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단어를 알아본 후, 또 여기 걸어와야 하니까요.


어린이 서적 코너로 가서 책을 하나씩 찾아보았어요. 위구르어로 된 동화책이 있었어요.


HEKAYE


"아! 헤카예!"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하다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유레카를 외치며 목욕탕에서 뛰쳐나간 것처럼 헤카예를 중얼거리며 아저씨에게 갔어요.


"위구르 헤카예 있어요?"


그러자 아저씨는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코너로 가보라고 알려주셨어요. 거기 가보니 제가 찾던 전래동화 및 민담 책이 있었어요.


어떤 것을 구입할까 하다가 이것들을 골랐어요.


위구르 전래동화


왼쪽 상단은 위구르 전통놀이, 나머지 세 권은 위구르 전래동화였어요. 이것은 시리즈로 여러 권 있었어요. 전부 구입하고 싶었지만, 그럴 경우 여행 경비 및 운반 문제 둘 다 걸렸어요. 당장 모레 쿠처에서 짐을 다 들고 돌아다녀야 하는데, 책을 욕심부려서 다 구입하면 상당한 문제였어요. 가방에 책을 다 넣는 것 자체가 일단 문제였고, 그 무게를 다 등에 짊어지고 돌아다니는 것 또한 문제였어요. 게다가 여행 경비에도 당연히 문제가 생길 것이었구요.


책을 네 권 구입한 후, 숙소로 다시 돌아왔어요. 숙소 돌아오자마자 바로 샤워를 했어요. 몸에 비누칠을 하고 씻으려는데 샤워기에서 갑자기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나왔어요.


"앗, 뜨거! 이거 왜 이래?"


왼쪽으로 돌려보아도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왔고, 오른쪽으로 돌려보아도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도저히 몸을 씻을 수 있는 온도의 물이 아니었어요. 김이 펄펄 나는 물이었어요. 비누칠을 한 상태라 그대로 수건으로 닦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 난감해하다 오른쯕으로 수도꼭지를 돌리고 가만히 기다리자 다행히 찬물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간신히 샤워를 마치고 침대로 돌아왔어요.


침대에 앉아 친구들에게 사진을 전송한 후, 컴퓨터를 켰어요. 스마트폰에 위구르어 교재를 옮겨담아야 했거든요.


"아, 얘들 왜 자꾸 과거로 이야기하지?"


스마트폰으로 위구르어 교재를 옮겨담는데 문득 위구르인들이 자꾸 과거로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났어요. 교재 파일을 열고 동사 변화를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이거 때문이었구나!"


이유를 찾아내었어요. 일단 우즈베크어나 위구르어나 i 모음 발음이 일관되지 않아요. 대체로 '으' 처럼 발음하는데, '이' 라고 발음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것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딱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발음되는 것이 아니다보니 꼭 '이'로 발음해야 하는 경우 외에는 '으'로 읽어주는 편이에요. 우즈베크어를 책으로만 배웠는지, 다른 사람에게서 발음 교정을 받아가며 배웠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알파벳 i 를 어떻게 읽느냐에요. 책으로만 공부한 사람은 무조건 '이' 로 읽어요. 물론 i 를 전부 '이'로 발음해도 우즈베크인들이 별 문제없이 알아듣기는 해요. 단지 현지 사정을 정말 잘 모르는 외국인처럼 보일 뿐이지요.


우즈베크어에서는 동사 현재시제를 나타내는 접사로 a를 사용해요. 위구르어에서는 이 접사가 i 에요. 그리고 우즈베크어, 위구르어 모두 동사 현재 시제에서 3인칭 단수를 나타내는 접사 di 가 붙어요. 이 di 는 과거 시제를 나타내는 접사이기도 해요. 그래서 우즈베크어에서 'biladi' 라고 하면 '그는 안다', 'bildi' 라고 하면 '그는 알았다' 가 되요. 위구르어에서는 'bilidi' 라고 하면 '그는 안다', 'bildi' 라고 하면 '그는 알았다' 가 되요.


우즈베크어 biladi : bil (알다) a (현재시제) di (3인칭 단수)

우즈베크어 bildi : bil (알다) di (과거시제)

위구르어 bilidi : bil (알다) i (현재시제) di (3인칭 단수)

위구르어 bildi : bil (알다) di (과거시제)


바로 위에서 말한 우즈베크어와 위구르어의 i 모음의 발음상 특징과 위구르어에서 현재시제를 나타내는 접사로 i를 사용한다는 점, 여기에 우즈베크어보다 확실히 빠른 위구르어의 특징이 결합해서 계속 이 사람들이 이상하게 과거를 많이 쓴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계속 우즈베크어를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소한 오해였어요. 이것을 아니 이제 우즈베크어를 보다 위구르어처럼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위구르어 문법을 조금 보다 드러누워서 잠깐 잤어요. 잠에서 깨어나보니 오후 6시가 넘어 있었어요.


"나 공금에서 100위안만 뺄께."

"갑자기 왜?"

"책 사서 위안화가 별로 없어."

"그러면 계산 어떻게 되는 거지?"

"네가 나한테 100위안 주고, 내가 낸 공금을 3300위안에서 3200위안으로 줄이면 되지."


공금을 전부 친구가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제가 공금으로 낸 돈에서 100위안을 돌려달라고 했어요. 위안화가 부족하긴 한데, 당장 환전해야할 만큼 부족한 것인지 100위안 정도만 있으면 되는 문제인지 애매했거든요. 일단 공금을 100위안 줄이고 그 100위안까지 합쳐서 제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다 부족하면 더 환전할 계획이었어요. 공금 자체가 간당간당하기는 했지만, 이것은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정 부족하면 일단 친구 돈으로 여행을 한 후, 나중에 여행 경비를 계산해서 친구에게 공금에서 구멍난 만큼 돈을 주면 되었거든요. 제게 위안화가 남는다면 위안화로 건네주고, 제게 위안화가 없다면 친구의 한국 계좌로 송금해주면 되는 일이었어요.


"이제 우리 뭐하지?"

"구시가지 남쪽은 못 보았으니까 남쪽 보고 돌아와서 야시장 보자."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숙소에서 나왔어요.


위구르 케밥


거리에서는 여기 저기에서 양고기 케밥을 구워서 팔고 있었어요.


위구르 화덕



저녁시간인데도 계속 위구르식 빵인 난을 굽고 있었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 꿀


"여기 꿀 진짜인가보다."


꿀을 파는 가게 앞에 벌집이 있었어요. 유심히 구경하고 있자 주인이 한 번 맛보라고 꿀을 조금 주었어요. 먹어보니 달고 맛있었어요. 꿀맛이었어요. 왜냐하면 꿀이었으니까요.



가게 문에 레닌과 마르크스 사진이 걸려 있었어요. 마오쩌둥만 질리게 보다 레닌과 마르크스를 보니 신기했어요. 중앙아시아 및 카프카스 여행을 할 때에는 마오쩌둥은 거의 보지 못했어요. 구소련 지역 국가들을 여행하며 정말 많이 본 것은 바로 마르크스와 레닌이었어요. 골동품을 파는 가게나 좌판을 보면 마르크스와 레닌은 항상 있었어요. 소련과 중국이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고 해도 중국이 마르크스, 레닌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니 이상할 것까지는 없었어요. 중국이 소련을 수정주의자라고 비난을 가하기 시작한 것은 흐루쇼프부터니까요. 어쨌든 마르크스와 레닌 사진을 보자 중앙아시아에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거 내일의 양꼬치 아니?"

"응? 뭐가?"

"저거."



친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양 두 마리가 매여 있었어요. 친구의 표현에 깔깔 웃었어요.



양뿔도 모아서 내다팔고 있었어요.


큰 길로 나가는데 사람들이 거리에서 무언가 팔고 있었어요. 무엇을 팔고 있나 보니 오디를 팔고 있었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오디


튀르크 민족


"나 저거 살래."

"저거? 너 저거 다 먹어질래?"

"들고다니면서 먹으면 되지."

"그러려면 그래라."


자기 사비로 구입한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어요. 친구는 검보랏빛 오디가 수북히 담긴 한 손만한 플라스틱 통을 구입하고 싶다고 했어요. 아주머니께 위구르어로 얼마냐고 물어보자 5위안이라고 대답했어요. 친구는 흥정을 시도했어요. 친구가 부른 가격은 4위안. 그러나 아주머니는 계속 무조건 5위안이라고 하셨어요. 친구가 흥정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시던 위구르인 아저씨께서 4위안에 주라고 아주머니께 말씀하셨어요. 아주머니는 안 된다고 하시며 계속 무조건 5위안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결국 친구는 5위안 내고 오디를 구입했어요.



친구는 몇 알 집어먹더니 슬슬 제게 오디를 들어달라는 눈치를 보내기 시작했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것을 손에 들고 있으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오디는 저 한 줌도 실제 먹어보면 상당히 많은 양이에요. 달아서 많이 먹을 수가 없어요. 달아서 금방 물린 데다 사진도 못 찍으니 이래저래 불편할 수밖에 없었어요. 친구가 계속 들어달라고 말없이 신호를 보내자 오디가 담긴 플라스틱 통을 달라고 했어요. 저는 이 거리에서 특별히 사진을 찍을 것이 없었거든요.


어차피 이거 친구가 더 이상 못 먹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계속 하나씩 집어먹었어요.


"너 중국인이냐? 무슨 해바라기씨하는 것처럼 먹어?"

"뭐 있으면 먹는거지."


돈 주고 구입한 것인데 버리는 것은 아니라서 계속 먹었어요. 그냥 집에서 땅콩 쌓아놓고 먹는 것처럼 하나씩 쉬지 않고 입에 집어넣었어요. 어차피 씹을 것도 별로 없어서 계속 입에 집어넣어도 계속 삼킬 수 있었어요.


"이제 너가 들고 다 먹어."

"너 혼자 이만큼 먹었어?"

"어. 이제 달아서 도저히 못 먹겠다. 그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응. 저녁 먹고 먹을께."


먹다먹다 혀가 단맛에 푹 절여지고 나서야 통을 친구에게 들고 가라고 돌려주었어요.


"저 식당은 진짜 비둘기 파는 걸까?"

"맞을걸?"


비둘기 고기


"저기서 저녁 먹을까?"

"우리 그냥 맛있는 거 먹게."


친구가 장난으로 비둘기 고기 파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것 어떠냐고 물어보자 바로 싫다고 대답했어요. 저 비둘기가 식용으로 키운 것이기는 하겠지만, 비둘기 자체가 싫었거든요. 먹어본 적은 없지만, 비둘기라고 하면 그 뒤룩뒤룩 살쪄서 걸어다니는 그 새부터 떠올랐어요. 그런 비만 비둘기를 매일 보다보니 그것부터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저 식당은 뭔데 안에 아이들이 바글거리지?"

"한 번 들어가보자."


식당 안에 위구르 어린이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어요. 저녁을 뭔가 먹기는 해야 할 것 같고, 마땅히 어디서 먹어야할지 안 보이던 차에 사람이 많은 식당이 보이자 안으로 들어갔어요.



주방에서는 위구르인들이 수타면을 뽑아내고 있었어요.



이 식당에서 어떤 메뉴를 골라야할지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었어요. 이곳의 메뉴는 하나 뿐 - 아토슈식 레그멘 뿐이었거든요. 가격은 비쌌어요. 1인분에 14위안이었어요. 다른 곳에서 레그멘 하나가 10위안인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고급식당이었어요. 약 1.5배 비싼 것이었으니까요. 참고로 아토슈 역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지역이에요.



빨간색에 양념이 수북히 올라가 있었어요. 이것은 정말 맛있었어요. 일단 면에서 제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식초 냄새가 조금 나기는 했지만, 양념맛이 상당히 강해서 양념과 같이 먹으면 식초 악취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어요. 생긴 것과 달리 맵지는 않았어요. 풍성하게 올라간 볶은 야채와 고기가 반찬 역할을 해 주었어요. 면발은 상당히 탱탱했어요. 양도 적지 않았어요. 한 그릇 다 비우니 배불렀어요.


레그멘을 먹고 이드카 모스크 건너편에 도착하니 저녁 9시였어요.


"이제 야시장 열렸다!"


위구르 전통 음식


카슈가르 야시장


중앙아시아 해바라기씨



아직 해가 저물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공식 시간으로는 밤이었어요. 이제 야시장이 열리고, 상인들이 음식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어요.


"우리 빨리 성 남쪽 보고 여기 와서 뭐 먹자."


친구와 발걸음을 재촉했어요.


kashgar


화려한 모습은 점점 사라져갔어요.



이삿짐이 실린 트럭이 길을 막고 있었어요. 조심조심 피해서 계속 앞으로 걸어갔어요.








확실히 낮에 본 그 올드 타운보다 훨씬 나았어요. 여기는 그래도 건물을 계속 보수해나가고 있었어요.


길을 따라 걸어가다보니 성벽까지 다다랐어요.




성벽 아래 폐허 같은 곳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어요.



성벽에서 내려가는 길이 있어서 그 길로 내려갔어요.



"이거 뭐냐?"

"이거 완전 사기 아니야?"

"진짜 얘들 가지가지한다."



보고서 어이없게 만든 그것은 바로 입장료였어요. 카슈가르 구시가지로 들어가기 위해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딱 이곳에서만요. 그것도 무려 30위안이었어요. 도시 전체를 관광지로 지정한 경우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기는 해요. 단지 왜 볼거리 하나 없는 일반인 사는 쪽으로 들어가는 곳에 이렇게 입장료 받는 입구를 만들어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어요. 다만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 도시의 성벽이 고작 중앙아시아 국제 교역 바자르 쪽에만 있고, 제대로 그럴싸하게 성문을 만들어놓은 곳은 중앙아시아 국제 교역 바자르에서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큰 길에 있었어요. 만약 그 큰 길에서 입장료를 받으려 하면 상당히 정신없을 거에요. 게다가 중국인들 특성상 그렇게 하면 보나마나 다른 돈 안내는 입구로 가버릴 거구요. 주민 불편만 가중되겠죠.






"이제 야시장 가자."

"그러자. 어차피 볼 것도 없는데."


친구와 야시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잠깐, 저거 뭐지?



진짜 뭐지?



가까운 곳은 멀쩡한 풍경이었어요. 이렇게 보면 이상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여기까지는 괜찮았어요. 나름대로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초록빛 풀밭과 건조함을 보여주는 흙벽 가옥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어요.



"아...이런 쓰레기 같은..."


나는 진짜 너희들을 존경한다. 이렇게 정품도 짝퉁 쓰레기 같이 만들 수 있는 너희의 창의력과 감수성을 존경한다.


입에서 온갖 욕이 쏟아져 나왔어요. 친구가 욕을 쏟아내는 저를 보더니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어요. 친구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저게 여기 왜 있어? 여기 원래 한족 영토였냐?"

"당연히 아니지!"

"저거 위구르 건축 양식?"

"그럴 리가 없잖아!"


친구도 같이 욕을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정품도 짝퉁으로 만들어내는 그 무한한 방사능 폐기물 같은 생각에 박수 갈채를 보내었어요. 다이너마이트로 저런 것을 왜 폭파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저건 폭파시키고 아예 연못으로 만들어버려야 해요. 저따위 더러운 것을 어떻게 여기에 세울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한족들을 이쪽으로 대량 이주시켜서 한족의 땅으로 점령해나가는 것도 모자라서 저런 것을 지어놓았어요. 절대 고운 말이 나올 수 없는 장면이었어요. 저걸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눈동자가 없을 거에요. 이건 이 지역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잘못된 것이 느껴지는 장면이었어요. 대놓고 저 높은 곳에 한족 건물을 지어놓은 것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냥 이 지역 자체가 역사도 족보도 없는 짝퉁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니? 이렇게 대놓고 저런 장면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요. 알아야 보이고, 모르면 안 보이는 불편한 장면만 있는 줄 알았어요. 힐링은 얼어죽을 힐링이고 실크로드의 낭만은 얼어죽을 실크로드의 낭만이었어요. 피압박 민족의 설움이 느껴졌고, 킬링이 되고 있었어요. 더럽고 역겨운 것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눈이 썩고 마음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어요. 좋은 표현? 좋게 봐주기? 민족들의 단결과 평화? 이 지역에 처음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마구 전해져왔어요. 다른 나라, 다른 민족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오르는 기분이었어요. 반인륜적 민족말살 패악질을 목격하고 있었어요. 이 따위 짓을 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것이 웃겼어요. 너나 잘하세요. 이쪽 문화를 아예 모르는 친구도 저와 함께 고통받고 있었어요.


성 앞에는 되도 않는 낙타 석상이 있었어요.



성벽 위로 올라갔어요.



"어서 야시장이나 가자."


둘 다 충격받은 상태로 비틀비틀 야시장을 향해 걸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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