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41 태국 방콕 아눗싸와리 (전승기념탑)

좀좀이 2016. 5. 2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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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1일. 눈을 떠보니 아침 9시였어요. 일단 아침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갔어요. 식권을 받아서 음식을 받아서 먹는데 기운이 하나도 없었어요. 전날 땡볕 아래에서 열심히 돌아다닌 부작용이었어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전날 마신 물이 얼마인데도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아침을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대충 먹어치우고 밖으로 나갔어요.


"아, 더워!"


오늘도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태양. 벌써부터 뜨거웠어요.


방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청소하시는 분들이 돌아다니고 계셨어요. 그래서 청소를 부탁했어요.


"저 방에서 사진 찍어도 되나요?"

"예. 찍어요."


제 방 맞은편 방은 비어서 청소를 하기 위해 문이 열려 있었어요. 맞은편 방에서 내려다본 전망이 어떤지 궁금해서 허락을 받고 카메라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청소를 부탁했기 때문에 방을 비워야 했어요. 다시 1층으로 내려갔어요.


'오늘은 방콕 돌아다니기로 했으니 급할 게 없네.'


어제 고생했기 때문에 오늘은 널널하게 방콕 시내를 돌아다닐 생각이었어요. 오늘 또 무리해서 많이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무리 동남아 더위에 일주일 이상 노출되었다고 하지만 어제 더위는 그 일주일의 적응으로 어떻게 해볼 더위가 아니었어요. 저 혼자라면 무리해서 나가는 것도 시도해볼만한 일이었지만, 친구가 버텨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친구는 더위에 매우 약했거든요. 아유타야에서 마지막에는 저도 덥고 힘들었는데, 친구가 그걸 버텨준 것이 신기했어요. 그런데 오늘 또 무리하게 나가면 분명 문제가 생길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저 역시 전날 일정 때문에 상당히 지쳐 있었어요.


"오늘은 어디 가지?"


아유타야를 다녀오며 한 가지 크게 깨우친 것이 있었어요. 저는 방콕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었지, 태국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방콕이 저와 아주 안 맞는 것 뿐이었어요. 주말에 친구와 만나기로 해서 계속 방콕에 머무르기는 하지만,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었어요. 방콕에서 벗어나면 해결될 문제였어요. 방콕에는 와서 잠만 자면 되고, 낮에는 방콕이 아닌 근교 도시를 보러 가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어요.


'어떻게 해야 방콕에서 최대한 안 머무르지?'


아직 방콕 주요 관광지도 다 보지 못한 상태였지만 어떻게든 방콕에서 최대한 벗어나 있고 싶었어요. 방에서 들고 온 가이드북을 펼쳤어요.


"어디를 가야 좋을까?"


당일치기로 방콕에서 다녀올 만한 곳을 찾아보았어요. 방콕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만한 곳은 펫부리, 깐짜나부리 정도였어요. 상당히 무리한다면 롭부리도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유타야를 다녀와본 경험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롭부리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은 무리였어요. 그리고 당장 오늘 갈 곳을 찾고 있는데 롭부리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구요.


'빨리 씻고 페차부리나 다녀올까?'


펫부리로 가고 싶었어요. 펫부리로 가면 오늘은 일단 방콕을 뜰 수 있었어요. 그런데 머리 속에서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어요. 몸을 움직일 정도로 강렬한 열망이 되지는 못했어요. 시간이 어정쩡한 것도 있었고, 전날의 피로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싶다는 생각도 강했어요. 자리에 앉아 있으니 더욱 움직이기 싫었어요. 가이드북만 뒤적이면서 계속 시간을 날려버렸더니 어느덧 정오가 되어버렸어요.


"펫부리는 내일 가야겠네. 오늘은 어디 가지?"


왓 포, 왓 아룬을 가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시각. 보나마나 중국인 관광객으로 미어터져날 것이었어요. 여기를 제외하니 갈만한 곳은 카오산 아니면 씨얌이었어요. 카오산을 가볼까? 카오산은 정말 가기 싫었어요. 어쨌든 방콕 여행온 사람들은 성지 순례하듯 카오산을 가니 가보기는 해야겠는데, 가고 싶다는 생각이 영 들지 않았어요. 아무 것도 안 하고 멍때리고 싶은 날에 정말 억지로 갈 마음이 전혀 없는 카오산에 가야하나 싶었어요. 게다가 카오산은 왓 포, 왓 아룬 너머에 있었어요. 카오산을 갈 거라면 왓 포, 왓 아룬도 묶어서 가는 게 좋은데 왓 포, 왓 아룬을 오늘 가기에는 늦었기 때문에 가려면 카오산만 가야했어요. 씨얌에 가는 것은 나쁜 선택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여기는 이미 가본 곳이기도 하고, 특별히 왜 거기를 가야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어요.


그때 마침 주말에 만나기로 한 태국 친구와 연락이 닿았어요.


"뭐해?"

"오늘은 아파서 병가 내고 집에서 쉬는 중이야."

"많이 아파?"

"지금은 좀 괜찮아."


태국인 친구가 오늘 마침 병가를 내고 쉬고 있다고 했어요.


"무슨 문제 있었어?"

"응..."


친구가 이야기해준 것을 믿을 수 없었어요.


"며칠 전, 내 집 문 앞이 피투성이였어."


문 앞이 피투성이?


"그래서 관리인에게 말했는데, 관리인이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하는 거야. 돌아와보니 피는 없었어."


문 앞이 피칠갑인데 문제가 없다고?


"너무 무서워서 계속 신경쓰여. 집에 말했더니 어머니께서 방콕으로 와보시겠대."


문 앞이 피투성이인데 관리인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는데도 별 말이 없다. 이게 이해가 되는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태연하게 아무 일 없었다고 말하는 관리인, 그리고 깨끗하게 사라진 피. 친구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보았어요. 그러고보니 얘가 몸이 안 좋다고 말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야. 꽤 되었어. 내가 여행 출발할 즈음에도 얘는 몸이 안 좋다고 했었어. 그리고 내 친구는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지 못해. 이건 분명 무언가 생략되어 있는 말일 거야.


순간 머리속에서 그동안 보아온 태국 공포영화인 셔터, 디 아이 등이 떠올랐어요.


아, 태국은 귀신이 많은 나라지!


친구의 말에서 생략된 부분이 무엇인지 깨달았어요. 이건 친구가 귀신을 본 거야. 최근 들어서 계속 몸이 안 좋다보니 자기 혼자 헛것을 보든가 귀신을 보든가 한 것일 거야. 안 그러면 문 앞에 피투성이인데 관리인이 아무 것 아니라고 했겠어? 코피 나서 바닥에 한 두 방울 떨어진 것 가지고 피투성이라고 할 애는 아닐 거고 말이야. 이건 말로만 듣던 태국의 귀신 사례구나!


얘가 귀신을 보았다고 생각하자 친구의 말이 납득이 갔어요.


"그런데 너는 오늘 뭐해?"

"오늘은 쉬고 있어. 내일은 펫부리 가려구. 펫부리는 어떻게 가는 게 좋아?"

"펫부리는 버스 타고 가."


태국인 친구는 펫부리로 버스를 타고 가라고 알려주었어요. 이번에는 친구 말을 듣기로 결심했어요. 후아람퐁역이 숙소 바로 근처라서 친구 말을 듣지 않고 아유타야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가 연착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날려버렸어요. 기차가 연착했다고 친구에게 말하자 친구는 그것은 아주 당연한 일을 겪은 것이라는 반응이었어요. 자기가 그럴 줄 알고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다고 말해주었어요. 아유타야야 1박2일 일정으로 갔기 때문에 기차가 연착했어도 어떻게 볼 것은 다 보고 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펫부리는 아니었어요. 펫부리는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펫부리에 예상 도착 시각에 비슷하게 도착해야 했어요. 아유타야 갈 때처럼 기차가 연착했다가는 아무 것도 못 보고 다시 방콕으로 돌아와야 할 수도 있었어요.


"지금은 몸 상태 어때?"

"지금은 괜찮아."

"이번 주말에 만날 수 있어?"

"음...봐서. 주말에 아유타야 내려갈 수도 있어."

"그러면 오늘 이따 잠깐 만날래?"

"가까운 곳이라면."


그렇게 저녁 6시에 친구와 파혼요틴역에 있는 유니언 몰 Union mall 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어요.


이렇게 약속을 잡고 나니 오후 2시가 넘어버렸어요.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정말 어정쩡하게 남았어요. 이 정도면 그냥 근처를 돌아다니든가 약속장소 근처에서 놀다가 약속 장소로 가는 것 외에는 마땅히 할 게 없었어요.


"전승기념탑이 있는 아눗싸와리나 갔다와야겠다."


다음날 페차부리 가는 미니밴을 타려면 아눗싸와리로 가야 했어요.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미니밴을 타러 가야 했어요. 아침에 아눗싸와리 가서 미니밴 타는 곳 찾는다고 어리버리댈 시간이 없었어요. 1분 1초라도 일찍 펫부리에 도착해야 조금이라도 더 널널하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요. 이왕 이렇게 된 것, 내일 미니밴 타는 곳도 알아보고 전승기념탑도 구경할 겸 해서 아눗싸와리를 가기로 했어요.


"아눗싸와리로 버스로 어떻게 가요?"


1층 리셉션에 가서 물어보았어요. 리셉션 아주머니께서 후아람퐁역 바로 옆에서 29번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고 알려주시면서 간단한 약도를 그려주셨어요.


숙소에서 후아람퐁역으로 오니 오후 2시 반이었어요.



후아람퐁역 근처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29번 버스를 탔어요.



버스 요금은 13바트. 이 버스에는 에어컨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버스보다 요금이 비쌌어요. 이게 얼마나 가격이 높은 것이냐 하면, 에어컨 없는 버스 가격에 비해 2배 가격이었어요. 에어컨이 있는 버스답게 바닥도 나무 바닥이 아니었어요. 의자도 나름 신식 의자. 고급 버스를 타니 돈도 더 내야 하는 이 합리적인 가격 구조. 납득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돈이 없으면 같은 번호 버스 중 에어컨 없는 버스가 올 때까지 주구장창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노선에 따른 차등요금제가 아니라 버스 종류에 따른 차등요금제. 그러면 10바트만 있는 사람은 저렴한 버스가 올 때까지 무턱대고 기다려야 할까? 좋은 시설을 비싼 돈 주고 이용하는 것은 분명 합리적인 발상인데, 이런 경우는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매우 궁금했어요.


드디어 아눗싸와리에 도착했어요.


아눗싸와리


전승기념탑은 로터리 한가운데에 있었고, 둥근 로터리 주변으로 둥글게 거대한 원형 육교가 설치되어 있었어요.



"여기도 생각보다 볼 게 있구나."


전승기념탑 주변은 차가 상당히 많았어요. 당연히 길이 꽤 막혔어요. 사람도 많고 매우 북적이는 곳이었어요. 이쪽 역시 나름 상업이 발달한 지구. 로터리 주변으로 이런 저런 가게들이 많이 있었어요.



"햇살이 너무 세다."


사진을 찍는데 도저히 제대로 찍을 수가 없을 정도로 햇살이 강렬했어요. 밝은 쪽은 너무 밝고, 그늘은 너무 어두웠어요. 밝은 쪽을 살려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그늘이 아예 까맣게 나왔고, 어두운 쪽을 살려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이번에는 밝은 쪽이 아예 하얗게 날아가버렸어요. 둘의 중간에 맞추어서 사진을 찍으면 밝은 부분은 하얗고 어두운 부분은 검게 나왔어요. 어느 장단에 맞추어서 사진을 찍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우리나라 여름에도 이 정도로 사진 찍기 어려운 적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이것은 제 경험을 벗어난 극단적인 명암 대비였어요.




간식을 파는 가게도 있었어요.


태국 주전부리


재미로 간식을 하나 사먹어볼까 했지만 덥고 목이 말라서 그렇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았어요. 비록 전날 아유타야보다는 덜 더웠지만, 이날 역시 덥기는 매한가지였어요. 얼마 돌아다니지도 않았는데 벌써 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어요. 조금만 걸어도 땀이 좍좍 흘러나왔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늘에서 가만히 있는다고 특별히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고, 땀이 금방 마르는 것도 아니었어요.



지도를 보며 다음날 펫부리행 미니밴을 타야할 곳을 찾아 걸어갔어요.




아직 오후 4시를 넘기기 전인데도 거리에는 차가 꽉꽉 들어차 있었어요.


"어디에 있다는 거지?"


지도를 보며 롭부리행 미니밴 타는 곳을 찾아다니는데 어디인지 찾을 수 없었어요. 날이 뜨거웠기 때문에 걷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미니밴을 타는 곳이 나오지 않아서 계속 걸어야 했어요. 게다가 여기서 땀범벅이 된 후 바로 숙소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여기서 땀범벅이 되든 삶은 족발이 되든 미니밴 타는 곳을 찾은 후 태국인 친구를 만나러 파요혼틴역으로 이동해야 했어요. 그러니 더욱 땀이 나는 이 상황이 매우 못마땅했어요. 하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오늘 그 미니밴 타는 곳을 찾아내지 못하면 내일 또 헤매야 하는데, 내일은 당장 펫부리로 가야 했거든요.


'좋게 생각하자.'


오늘 헤매든 내일 헤매든 한 번은 헤매야 했어요. 오늘 지금까지 못 찾는다는 것은 내일 아눗싸와리 와서 헤맬 시간을 대신 헤매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길에서 팔고 있는 구운 생선이 저 같았어요. 땀이 났다가 말랐다가 하다보니 온몸이 고농축 땀투성이였어요. 목을 만지면 찐득거리고 미끌거렸어요. 땀이 마르면 영락없는 저 구운 생선과 비슷한 상황.


"찾았다!"



펫부리행 미니밴 타는 곳은 센추리 플라자 Century plaza 옆에 있었어요.


"펫부리 가나요?"

"예, 가요."

"얼마에요?"

"120바트요."

"롭부리는 몇 시간 걸려요?"

"롭부리는 2시간 반 걸려요."


몇 번을 확인했어요. 다음날 아침에 바로 여기로 와야 했거든요.



이것이 펫부리행 미니밴 요금표. 펫부리 종점이 아니라 펫부리를 거쳐 후아힌으로 가는 미니밴이었어요.



이것이 펫부리행 미니밴 시간표에요.


마음 같아서는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샤워를 한 후, 태국인 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었어요. 시계를 보니 그렇게 하면 약속 시간에 늦어버릴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바로 파요혼틴역으로 가기에는 이른 시각이었어요. 밖을 돌아다니자니 조금만 걸어도 땀이 좍좍 나는 더운 날씨라 무리였어요. 체력적 무리가 아니라, 태국인 친구를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땀에 절어서 나가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방법은 하나 뿐이었어요. 그냥 바로 옆에 있는 센추리 플라자 들어가서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 파요혼틴역으로 넘어가는 것이었어요.



센추리 플라자 문을 여는 순간.


얼굴에서부터 열기가 뒤로 사아악 날아간다!


에어컨 바람이 훅 타왔어요. 땀에 절어있고 적혈구까지 뜨겁게 달구어져 있던 몸에 찬 기운이 사아아 들어왔어요. 광고에서 모래가 바람에 사아아 날아가는 그 느낌이었어요. 들어가는 순간 바로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센추리 플라자가 어떤 곳인지는 전혀 상관없었어요. 더위에 푹 익은 흐물흐물한 수육덩어리가 되어버린 몸이 에어컨 바람의 냉기를 맞고 다시 응고되어간다는 느낌 그 자체만으로도 여기는 매우 만족스러운 곳이었어요. 저는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아요. 에어컨 바람을 상당히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이때만큼은 21세기 과학의 승리를 찬양했어요.


센추리 플라자 지하에 가니 마트가 있었어요. 목이 말라서 무엇을 마실까 살펴보았어요. 액티비아 리치맛이 있어서 하나 집어들었고, 망고맛 떠먹는 요구르트도 하나 집어들었어요. 계산을 하고 나와 바로 둘 다 먹었어요. 요구르트 두 개 다 정말 맛있었어요. 우리나라 요구르트보다 훨씬 더 맛있었어요. 이런 것은 왜 우리나라에 수입되지 않는지 정말 궁금했어요. 이런 것이 수입된다면 꽤 인기가 있었을 텐데요.


야구르트를 다 먹고, 안을 조금 더 구경하다가 파요혼틴역으로 갔어요.



친구는 정말 몸이 안 좋아보였어요. 사진으로 보았던 모습과 달리 얼굴이 핼쓱했어요. 친구는 Union Mall 로 가자고 했어요.




차가 엄청나게 막히는 장면을 보며 길을 건너 유니온 몰로 들어갔어요. 친구가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어보았어요. 태국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하자 어느 식당으로 데려갔어요.


"뭐 먹을래?"

"글쎄..."


아쉽게도 이날까지 맛있게 먹은 태국 음식이 마땅히 없었어요. 아유타야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맛있었지만, 솔직히 그 음식들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어요.


'태국음식은 똠얌이니까 그걸 먹어봐야지.'


태국 와서 똠얌을 먹어보고 '이건 정말 입에 안 맞다'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건 분명 맛없는 집이었을 거고, 이번에 다시 도전을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과감히 똠얌을 시켰어요. 역시나 맛이 별로였어요.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정말 이건 아니었어요. 태국 음식이 맛있다고 왜 찬양하는지 이해가 어려웠어요.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먹었던 음식과 비교했을 때 태국 음식은 상당히 별로였어요. 이 정도면 나와 태국에서 정말 음식운이 안 따라주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태국 음식이 이런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정도였어요. 방콕에서는 무엇을 먹든 거의 다 실패였거든요.


저녁을 먹고 바로 헤어지기는 아쉬워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이야기 좀 더 나누다 헤어지기로 했어요. 아이스크림 가게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주문했어요. 친구는 입맛이 없고 배부르다고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았어요. 일단 제가 친구를 위해 준비해온 선물을 주었어요. 친구는 급히 나오느라 선물을 준비해오지 못했다면서 태국 과자를 선물로 주었어요.




"너 몸 괜찮아? 귀신 봤다면서."

"귀신?"


친구 몸 상태가 정말 좋아보이지 않아서 친구에게 몸이 괜찮냐고 물어보았어요. 친구는 몸은 괜찮은데 무슨 귀신 이야기냐고 되물어보았어요.


"너 문 앞이 피투성이였다면서."

"그거 귀신 아니야. 진짜 피였어."


응? 진짜 피?


아까 친구와 채팅할 때, 친구 집 앞이 피투성이였던 것은 친구가 귀신을 본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든 것이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친구에게 다시 물어보자 친구가 그것은 귀신을 본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어요. 그것은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이 아니라 진짜 피였고, 그래서 건물 관리인에게 말했고, 정말 무서웠다는 것이었어요. 친구의 말을 들으니 진짜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대체 문 앞이 진짜 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는데 왜 그게 별 일 아니라는 것이지?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계속 머리의 절반은 '대체 그 피란 무엇인가?'라는 생각 뿐이었어요. 대화는 아주 천천히 이루어졌어요. 두어 시간 이야기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갔어요.


지하철역으로 가기 위해 육교를 건너는데, 교통체증은 아까 낮에 본 것보다 더 심했어요. 우리나라 추석 귀경길 수준으로 막히고 있었어요.


"여기 차 정말 많이 막히는구나. 오늘은 특별한 날이야?"

"항상 그래."


친구는 이 심각한 교통체증이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어요. 지하철 역에서 저는 후아람퐁행을 타야 했고, 친구는 반대편으로 가는 전철을 타야 했어요.


"잘 가."

"선물 고마워."


친구가 갑자기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인사했어요. 순간 당황했어요. 나도 지금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인사해야 하나? 인사야 저도 여러 번 받아보았어요. 선배로써, 군대 선임으로써, 그리고 학원 강사로써 인사를 받아왔어요. 그런데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순간 얘가 왜 90도로 인사하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내게 왜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구요. 정말 선물이 너무 고마워서 그렇게 허리 굽혀 인사한 것인지,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식으로 인사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어요.


'미래에는 어떤 가이드북이 떠오를까?'


지금까지 가이드북을 4종류 사용해 보았어요. 모두 장점도 있었고, 단점도 있었어요. 딱 하나 골라서 '이것이 제일 좋아요'라고 추천할만한 것은 없었어요. 그렇다고 여행 한 번 할 때 가이드북 여러 종류를 끌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책은 부피는 작지만, 무게는 적지 않게 나가는 짐이니까요. 별 것 아니라고 책 짐을 늘려놓으면 그 무게가 어마어마해요.


여행을 다니며 가이드북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을까? 이건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였어요. 가이드북이 없으면 분명히 불편해요. 그러나 가이드북을 예전만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분명 아니었어요. 가이드북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도. 맛집 소개, 숙소 소개 등은 가장 사용하지 않는 항목. 맛집 및 숙소 소개를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가이드북 출판 시점과  가이드북 집필을 위한 조사 시점의 시간차가 꽤 크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가이드북에 한 번 소개가 되면 서비스 및 맛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구요. 소량 판매와 대량 판매는 엄연히 다른 것이니까요. 조금 만들 때 잘 만든다고 그것을 대량으로 생산해야 할 때 잘 만들 거라는 보장은 없지요.


결국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는 것은 볼 거리가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이동 방법 정보와 지도 때문. 그런데 이제는 스마트폰 덕택에 지도도 그렇게 많이 사용하는 편이 아니었어요. 어디로 갈 것인지 목적지만 알고 있다면 구글 지도등을 이용해서 쉽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어요. 종이 지도 들고 위치를 찾고 길을 찾는 경우는 별로 없었어요. 아주 기초적인 독도법 - 눈 앞에 보이는 두 곳을 지도에서 찾은 후 눈 앞에 보이는 두 곳과 지도상의 바로 그 두 곳을 선으로 이어 접점이 내가 있는 현재 위치라는 것을 알아내는 방법을 가지고 돌아다녀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할 바에는 그냥 편하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심카드를 구입해 구글 지도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했어요.


아마 앞으로는 단순한 관광지 소개가 아니라 민담, 풍습 중심으로 바뀌지 않을까?


이제 관광지 소개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유명한 관광지 정보라면 한국어로 된 정보도 인터넷으로 쉽게 구할 수 있어요. 한국어로 된 정보가 별로 없는 관광지 정보도 영어로 찾아보면 쏟아져나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만 하더라도 외국에 여행가서 인터넷 사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어요. PC방 (인터넷 카페)을 찾아 돌아다니거나, 숙소에 있는 인터넷이 되는 공용 컴퓨터에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스마트폰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현지 심카드만 끼워넣으면 끝이었어요. 모바일 페이지를 적용하는 사이트도 많다보니 인터넷 속도도 예전만큼 아주 중요하지는 않았어요. 앞으로는 주요 관광지 정보는 그냥 여러 링크 모음이 대체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제 더 이상 관광지 정보에 대해 새로 집필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할 정도였거든요. 제 아무리 최신 가이드북이라 해도 며칠 전 다녀온 사람이 블로그에 올려놓은 여행 정보보다는 부정확하고, 한국인들이 한둘 해외여행 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가이드북 집필자' 라는 사람들과 관광객의 차이는 이제 정말 많이 줄어들었어요. 인터넷만 잘 활용하면 둘의 차이는 솔직히 그렇게 크지 않다고 봐요. 게다가 이제는 구글 번역기도 성능이 꽤 좋아져서 영어를 아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영어로 된 정보를 쉽게 이용할 수 있어요. 자기 이름 영어로 써넣고 번역기 번역 세 번 돌려보면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것이 튀어나오는 시대는 이제 끝났어요. 중학교 영어만 똑바로 배운 사람이라면 영어로 된 글 전문을 번역기로 돌리고, 원문과 비교해보며 번역기 내용을 보면 어떤 내용인지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나 여행객이 아직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그것은 바로 민담, 풍습. 이쪽은 아직 정보도 많지 않고 잠깐 스쳐지나가는 여행객이 알아내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에요. 이쪽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생산해내는 것은 보이는 것 그대로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서 불교도, 기독교도, 이슬람도 지역에 따라, 문화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요. 무턱대고 그 보이는 모습만 쓰는 것으로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이에요. 한 지역에서 무턱대고 오래 산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에요. 한 지역에서 오래 살았지만 '이놈들은 그렇게 하더라구, 이상한 놈들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엄청나게 많아요. 그렇게 보이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여행객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왜 그런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학습 둘 다 따라주어야 해요.


게다가 이제는 상품 그 자체를 파는 시대가 아니라 이야기를 파는 시대. 요즘 소비 형태를 관찰해보면 상품 그 자체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비약해서 말하자면 이야기를 구입하고 상품은 덤이라는 식이에요. 기술의 발달로 상품들이 어느 정도의 품질은 다 보장되니 그 상품이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가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고 있어요. 생각이 오감을 뒤틀어버린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일반 상식.


나날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는데, 앞으로 가이드북은 단순한 관광 정보보다 민담, 풍습을 안내하는 쪽으로 진화하지 않을까? 이쪽은 일반 여행자들이 절대 손을 댈 수 없는 영역. 지금까지 '여행 전문가'라고 하면 여행 경비 잘 줄이고 경제적 관점에서 매우 효율적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제 이쪽 정보는 웬만한 지역이라면 인터넷을 이용해 예전보다 훨씬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그러나 민담, 풍습 등은 섣불리 다룰 수 없는 영역이고 정보도 많지 않아요. 아마 앞으로 여행전문가, 그리고 가이드북은 이쪽으로 발전할 거에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도태되어 사라지거나요.


어두운 밤. 생각이 많은 어둠 속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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