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20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좀좀이 2012. 1. 4.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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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는 처절했던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했지만 1984년 동계 올림픽이 개최된 도시이기도 했어요.



기대보다는 너무 밋밋하고 단조로웠어요. 일단 버스 터미널로 돌아갔어요. 이제 구 유고 연방 국가 중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만 남았어요. 그런데 슬로베니아는 유로를 쓰는 나라여서 정말 가기 싫었어요. 이제 다음 목적지는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그렇게 칭찬하는 아드리아해의 절경을 보러 크로아티아에 가는 일만 남았어요.


"크로아티아행 버스 없어요."

"예?"


다행히 영어가 통해서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내린 곳 - 즉 지금 있는 곳은 동사라예보 버스 터미널. 여기에서는 베오그라드를 비롯해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가는 버스가 출발해요. 크로아티아로 가기 위해서는 시내에 있는 다른 버스 터미널로 가야 했어요.


더욱 큰 문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자국 화폐가 있어서 반드시 환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주변에 은행이나 환전소가 보이지 않았어요.


"하...미치겠네..."


돈이 있어도 쓸 수가 없었어요. 일단 빨리 은행을 찾아야 하는데 어디에 은행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일단 무작정 거리를 걷기 시작했어요.



밋밋하고 단조로움? 그딴 거 없어요. 그건 착각일 뿐이에요.


아파트가 나오자마자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전쟁의 흔적. 큰 땜빵은 박격포일 것이고 작은 것은 소총, 기관총의 흔적일 거에요. 사람들마저 얼마 보이지 않아서 아주 스산한 분위기였어요.



전쟁 때문에 주민들이 다 피난가서 텅 빈 도시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어요.



이건 폐허 속 영광이라고 해 두죠. 올림픽이 열렸으면 뭐해요. 지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전쟁의 흔적 투성이.


지금 이런 것을 감상할 시간이 없었어요.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환전 문제. 환전을 못하면 간단히 말해서 '망해요'. 시간은 이미 오후 4시를 넘겼어요. 이제 슬슬 은행이 문을 닫을 시각. 마음은 급한데 은행은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을 잡고 물어보았지만 사람들은 은행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직감에 의존해 거리를 걷다보니 드디어 은행이 나왔어요. 은행이 문을 연 것을 보자마자 전력질주했어요. 이것은 달리는 게 아니었어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어요. 환전을 못하면 운이 좋아야 바가지 잔뜩 쓰고 1박 하기. 그나마 이것도 운이 좋은 시나리오였어요. 짐이 무겁다는 것도 잊고 무거운 짐을 끌고 미친듯이 은행에 뛰어들어갔어요.


간신히 환전을 했어요. 환전을 하고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우체국이 보였어요. 여기도 우체국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마찬가지로 PPT였어요.


"이런 유령이 나올 거 같은 동네 당장 떠날 테다!"

"예, 빨리 떠나요! 여기 정말 으스스해요!"


사라예보에 단 1분이라도 더 머물기 싫었어요.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왔지만 정말 으스스했어요. 누군가 뒤에서 기관총을 난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정말 적응되지 않는 풍경.




다행히 여기도 사람들은 친절했어요. 일단 버스 터미널이 센트럴 시티에 있다고 했기 때문에 센트럴 시티로 가기로 했어요. 우리가 센트럴 시티로 어떻게 가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한 보스니아 청년이 우리를 도와주었어요. 그 청년 덕분에 무사히 트롤리 버스에 올라탔어요. 이번에도 세르비아 때와 마찬가지로 뒤로 타서 뒷자리로 갔기 때문에 돈을 내지 않고 무임승차 했어요. 사실 돈을 어떻게 내는지 몰랐어요. 그 청년도 돈을 내는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고 우리와 함께 돈을 내지 않고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았어요. 암울하고 으스스한 풍경의 연속이었어요. 정말 프리슈티나보다 더 심했어요. 프리슈티나는 개발이 잘 되어 있지 않을 뿐이었지 이렇게 건물이 총과 포탄 자국 투성이까지는 아니었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여기가 센트럴 시티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렸어요.


"이게 센트럴 시티라고? 진짜너무하네..."

아무리 전쟁이 심했다지만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빨리 이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혹시 한국분이세요?"


한국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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