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40 타이 아유타야 왓 나 프라멘, 왓 로까야 수타

좀좀이 2016. 4. 2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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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디어 섬 바깥 절을 보러 나간다!"


왓 프라람을 보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어요. 섬 안에서 볼 유적은 이제 끝났어요. 남은 것은 섬 바깥에 있는 유적. 섬 바깥에서 볼 유적은 두 곳이었어요. 동선을 보니 북쪽에 있는 왓 나 프라멘을 먼저 본 후, 와불이 있다고 나와 있는 왓 로까야 수타를 보면 깔끔하게 최소한의 목표는 다 달성할 수 있어 보였어요. 섬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다리가 있는 곳으로 먼저 가야 했어요.


지도로 길을 확인한 후, 가벼운 마음으로 자전거 위에 올라탔어요. 자전거를 밟는 발이 매우 가벼웠어요. 왓 나 프라멘, 왓 로까야 수타만 보면 아유타야 일정이 끝날 것이었어요. 설령 시간이 아무리 많이 남는다 하더라도 더 돌아다닐 생각이 없었어요. 지도에 나와 있는 유적 상당수가 그렇게 큰 기대를 하고 볼 만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무심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스쳐지나간 유적도 몇 개 있었을 거에요. 상관 없었어요. 그런 것 하나하나 일일이 다 신경쓸 정신이 없었어요. 그냥 빨리 두 곳 보고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챙겨서 방콕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아유타야에 실망하거나 정나미가 떨어져서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제게 아유타야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도시였어요. 하루라도 더 오래 머무르고 싶었어요. 그러나 너무 더웠어요.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옷인지 탈수를 하지 않은 빨래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어요. 날은 습하고 땀이 비오듯 온몸에서 뿜어져나오고 있다보니 가만히 있어도 옷이 마를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여기 어디이지?"


지도로 길을 확인하고 신나게 달렸는데 분명히 보여야할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미 한 번 본 익숙한 풍경들이 등장해야 하는데, 계속 새로운 풍경이 나오고 있었어요. 게다가 더욱 문제인 것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아야 하는데 거리에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그냥 허허벌판 풀밭과 나무들만 계속 보였어요.


"이거 왠지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은데?"


길에서 제초작업중인 사람들이 보여서 일단 그쪽으로 갔어요.


"실례합니다."


일단 '커톳크랍'이라 말하고, 그 다음부터는 영어로 말했어요. 그런데 이분들은 영어를 거의 모르는 분들이었어요. 어쩔 수 없이 지도를 보여드리고 가고 싶은 위치를 찍은 후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았는데, 아무도 제가 어디로 가고 싶어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어요. 다행히 지도에 목적지인 '왓 나 프라멘'이 적혀 있어서 왓 나 프라멘이라고 계속 말씀드리자 길을 알려주셨어요.


사람들이 알려준 길로 자전거를 몰았어요.


"아, 이 길 알겠다!"


친구에게 뒤따라오라고 하고 길에서 헤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빠르게 열심히 밟았어요. 뒤를 돌아보니 친구도 잘 따라오고 있었어요. 어느덧 세븐일레븐이 나왔고, 여기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쭉 달렸어요. 학교 앞을 지날 때 애들이 차도까지 나와서 놀고 있었던 부분을 제외하면 크게 위험한 부분이 없었고, 포장된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이라 크게 힘들지도 않았어요. 이제 몸체와 묘하게 어그러진 바퀴에 적응이 되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며 몰 수 있었어요.


왓 나 프라멘으로 들어가는 다리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어요.


"걔는 또 어디 간 거야?"


마지막 좌회전 이후 길이 약간 구불구불하기는 하지만 앞만 보고 죽 달리는 거라 제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굳이 되돌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바닥에 쭈그려앉아 물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가볍게 물 한 통을 다 비우고 친구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10분을 기다렸는데도 친구는 고사하고 자전거조차 제 앞으로 나타나지 않았어요. 제 앞을 지나가는 것이라고는 온통 자동차와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매연 및 흙먼지뿐. 친구가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달려오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주저앉아서 친구가 오기를 계속 기다리는데 친구는 오지 않았어요. 물을 조금씩 아껴마시고 있었는데 워낙 목이 말라서 500ml 한 통을 다 비워버렸어요. 빨리 물을 사러 가게로 가고 싶은데 주변에 가게는 보이지 않았고, 친구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결국 다시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어요.


"분명 여기쯤은 왔을텐데..."


코너를 돈 지점이 거의 다 왔을 때까지 친구는 보이지 않았어요. 혹시 길을 잃어버려서 숙소로 돌아가버린 것 아닐까? 코너를 돌아서 직진해 조금만 더 가면 숙소로 가는 길이 있었어요. 왠지 친구가 숙소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제 예상은 틀렸지만 방향은 맞았어요. 친구는 숙소로 가는 길을 조금 너머서에 있었어요.


"뭐해?"

"너 혼자 막 달려가면 어떻해?"

"내가 쭉 달려서 갈림길 나오면 앞에서 왼쪽으로 꺾으라고 했잖아."

"언제?"


어쨌든 다행히 친구를 찾았어요. 조금 전 쉬어서 충전한 체력은 다 날아갔어요. 땀이 좍좍 쏟아져 내려서 이제 완전히 삶은 고기가 되어버린 기분이었어요. 세수를 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었어요. 땀이 뚝뚝 떨어져서 세수를 하고 얼굴을 수건으로 닦지 않은 상태였어요. 이 몸에서 이렇게 땀이 많이 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어요. 이쯤 되면 몸에 있는 물이 다 빠져나간 거 같은데 그래도 계속 땀이 쏟아져 나왔어요.


자전거를 타고 왔던 길을 돌아가서 작은 다리를 건넜어요. 이제 너무 힘들어서 주변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어요. 다리를 건너서 조금 더 가자 왓 나 프라멘 วัดหน้าพระเมรุ 이 나왔어요. 드디어 섬 밖에 있는 절에 처음 가보는 순간.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어요. 그저 하도 덥고 목이 말라서 빨리 보고 마지막 목적지인 왓 로까야 수타로 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왓 나 프라멘과 왓 로까야 수타 사이에는 유적이 몇 개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다 필요없었어요. 이제는 다 그게 그거였어요. 세심히 들여다보며 차이를 찾아낼 여유는 없었어요. 그 이전에 그런 세심한 차이를 찾아낼 눈도 없었구요. 절터를 적당히 봐야 자세히 보고 감탄도 하는데 오늘 본 절터가 도대체 몇 개인지조차 모를 지경이었어요. 한 개가 두 개 같고, 두 개가 하나같아서 셀 수도 없었어요.


절 앞에서는 입장료를 받고 있었어요. 그런데 입장료를 받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어요. 일단 안으로 들어갔어요.


왓 나 프라멘은 아유타야 왕조 10번째 왕인 라마티보디 2세 재위 시절에 지어졌어요. 여기 역시 버마군의 침략때 폐허가 되었지만 이후 복구가 된 절이에요. 이 절에서 유명한 것은 Phra Buddha Nimitr Vichit Maramoli Sisanpeth Boromtrailokanat 라고 불리는 불상이에요. 이 불상이 유명한 이유는 스타일이 다른 불상들과 다르기 때문이에요. 이 불상은 금속으로 만들고 개금한 불상으로, 왕관, 귀걸이, 목걸이, 흉갑, 팔찌를 한 부처님의 모습이에요.


วัดหน้าพระเมรุ


이런 것을 세세히 따질 정신이 없었어요. 원래 이 시각에 아유타야에서 볼 것을 다 둘러보고 기차역으로 갈 계획이었는데, 실제로는 아직도 다 못 본 상태. 게다가 너무 지쳤어요. 자전거 타고 숙소까지 돌아가는 것이야 별로 힘든 일이 아니겠지만, 숙소에서 다시 기차역까지 걸어가야 했어요. 혹시나 돈 받는 사람이 돌아왔나 하고 보았는데 역시나 자리는 비어 있었어요.


타이 절


절을 나오자마자 콜라 500ml 와 생수 500ml 를 구입했어요. 먼저 콜라. 콜라를 시원하게 마셨어요. 콜라를 마시니 조금 살 것 같았어요. 말이 좋아 조금 마신 것이지, 절반 넘게 그 자리에서 다 마셨고, 깩깩거리면서 계속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순식간에 다 마셔버렸어요. 이렇게 마시고 또 물을 한 모금 마셨어요. 음료수와 물을 합쳐서 2리터는 넘게 마신 것 같은데 액체가 뱃속으로 계속 들어간다는 게 놀라웠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그렇게 널널하지 않았어요. 2리터 넘게 마셨는데도 그냥 한없이 목이 마르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진짜 마시는 족족 피부로 다 흘러나와버리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이제 드디어 마지막 목적지인 왓 로까야 수타만 남았어요. 자전거 페달을 꽉꽉 밟았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 친구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빨리 달리지는 않았어요. 바로 옆에 거대한 벌판, 그리고 그 속에 듬성듬성 벽돌 바닥이 보였어요. 분명 유적이었어요. 보통 상태였다면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을 거에요. 지금은 그 어떤 관심도 생기지 않았어요. 그냥 절이겠거니 하고 지나쳤어요. 나중에야 그 벌판이 바로 왕궁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덕분에 한동안 아유타야에서 왕궁을 보지 못하고 왔다고 생각했고, 바로 그 자전거 타고 가면며 무시하고 지나갔던 벌판이 왕궁터라는 것을 알고난 후에는 왕궁터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정작 보기는 보았는데 찍은 사진은 없어요. 웬만해서는 기록을 사진으로 다 남기려 하는데, 아유타야 마지막 부분은 유독 사진이 없는 편이에요. 이유는 바로 이때 더위와 제가 흘린 땀에 너무 지쳐버렸기 때문이었어요.


작은 운하 위에 있는 다리를 건너서 방향을 왼쪽으로 꺾었어요. 시원하게 달렸어요.


"도착했다!"



드디어 아유타야 유적지 중 거대한 와불이 있는 곳에 다다랐어요. 여기는 유적이 3개 모여 있는 곳이었어요. 풀밭에 자전거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유적 위에 아이들이 올라가서 놀고 있었어요.


타이 초등학생


물을 마시며 천천히 풀밭을 걸어갔어요.


타이 유적


이 절터는 왓 라캉 Wat Rakhang วัดระฆัง 이었어요.


타이 불상


왓 라캉의 불상 표정은 무언가 해맑아 보였어요. 어떻게 보면 '될 대로 되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 다음 유적으로 갔어요.



이 절터의 이름은 왓 워라쳇따람 Wat Worachettaram (วัดวรเชษฐาราม)이었어요.



이 절의 쩨디는 전형적인 중기 아유타야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해요. 이 절은 나레쑤언 왕 King Naresuan 이 버마 똥 우 왕 King Tong-U 의 침략에 맞서다 사망한 1593년에 그의 형이자 이후 왕이 된 애까토사롯 왕 King Aekathosarat 이 지었고, 여기에서 나레쑤언 왕을 화장할 때 천여 명의 승려를 초청했대요. 지금은 버마가 태국보다 훨씬 약한 국가이지만, 영국에게 점령당하기 이전까지는 버마가 태국을 정말 끔찍하게 괴롭혔어요. 미얀마가 영국 식민지가 된 것도 미얀마가 먼저 영국령 인도로 쳐들어갔다가 역공을 당해 점령당한 것이지요. 어찌 보면 아유타야는 태국이 버마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잘 보여주는 곳이었어요.


타이 불교


왓 워라쳇따람의 대법당 터에는 까무잡잡해진 불상이 홀로 하늘이 뚫린 법당 안을 지키고 있었어요. 벽이 남아있어서 더욱 쓸쓸해 보였어요.


"이제 하나 남았네."


왓 워라쳇따람을 뒤로 하고 열심히 앞으로 걸어갔어요.



드디어 나타난 표지판. 그리고 멀리 와불과 쁘랑이 보였어요.



"다 왔다."


성취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냥 무언가 살짝 긴장이 풀리며 온몸에서 힘이 조금 빠지고 허파에서 공기 한 덩이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래. 이걸 보고 싶었어. 지도에 나와 있던 와불. 얼마나 유명하길래 지도에 그렇게 그려져 있었던 걸까. 그 호기심을 풀기 위해 여기로 왔어요. 원래는 이대로 더 내려가 섬을 한 바퀴 돌 생각이었지만 이제 그럴 생각은 하나도 없었어요. 이것을 보았으니 다 끝났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이 절터의 이름은 왓 로까야 쑤타 Wat Lokaya Sutha วัดโลกยสุธา. 이 절터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길이 37미터, 높이 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와불 때문이에요.


아유타야 상징


이 거대한 와불의 이름은 프라 붓다 싸이 얏 Phra Buddha Sai Yat 이에요. 아유타야에서 가장 큰 와불이에요.


이 와불은 얇은 천 하나 걸치고 노숙중이신데 표정이 매우 밝았어요. 왠지 앞에 TV나 노트북 컴퓨터가 있으면 딱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누워 있는 자세가 너무나 편해 보였어요. 역시 방바닥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것이 최고라는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건가. 이건 정말 잘 만든 와불이야. 이걸 보고 있으니 나도 그냥 모든 생각 다 끄고 조금 눕고 싶을 지경이야.


그러나 누울 수 없었어요. 그냥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조금 쉬다가 와불의 발바닥을 보러 갔어요.



발바닥에는 아무 무늬도 없었어요. 부처님 발가락 지문이 그려져 있나 기대하고 갔는데 없어서 조금 실망했어요. 지문이 없어도 괜찮았어요. 그 약간의 실망감 가지고는 저 완벽한 폼과 표정이 준 감동에 그 어떤 흠집도 낼 수 없었거든요.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을까?'


마침 앞에 가게가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을까 하고 가게로 갔어요.


'먹지 말자.'


가격도 비쌌고, 전부 우유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이었어요. 가뜩이나 목마른데 지금 이거 먹었다가는 타는 목마름으로 아유타야의 더위를 저주하며 다음 가게를 눈빠져라 찾으며 자전거를 탈 게 뻔했어요. 아무리 유심히,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우유가 들어가 있지 않은 깔끔한 맛을 가진 아이스크림은 보이지 않았어요. 물통의 물만 꼴깍꼴깍 삼킨 후, 다시 풀밭을 가로질러 자전거를 세워놓은 곳으로 갔어요.


이제부터는 진짜 달리는 일만 남았어요. 이제 친구도 길을 알았어요. 친구를 잃어버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아는 길이니까, 왔던 대로 가면 되니까. 그냥 페달을 꽉꽉 적당히 밟았어요. 밟는다고 빨리 나가는 자전거도 아니었고, 혼자 막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게다가 제가 탄 자전거는 묘하게 앞바퀴의 핸들과 몸통이 이상하게 안 맞아서 습관적으로 핸들을 움직이면 자전거가 삐딱하게 나갔어요.


편의점 앞에 도착하자 자전거를 잠그고 의자에 앉았어요. 친구도 금방 편의점으로 도착했어요.


"우리 뭣 좀 마시고 가자."


당연히 친구도 좋다고 했어요. 안에 들어가서 시원한 음료 하나를 구입해서 의자에 앉았어요. 둘 다 아무 말 없이 음료만 마셨어요.


"가자."


숙소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했어요.


"저...죄송한데 샤워 좀 할 수 있을까요?"


이 상태로는 도저히 기차역으로 갈 수 없었어요. 땀에 몸이 푹 불어버렸어요. 이건 찝찝함을 뛰어넘은 것이었어요. 땀이 나고 마르고를 계속 반복하니 온몸에 풀이 발린 기분이었어요. 찐득거리고 미끌거리는 최악의 느낌. 안 된다고 하면 적당히 흥정이라도 해서 샤워를 꼭 하고 가고 싶었어요.


"되요. 저기서 씻어요."

"감사합니다!"


연신 코쿤크랍을 외치고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스태프용 방으로 들어갔어요.


"헉..."


숨 쉴 수 없는 더위. 손님방은 그래도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어요. 이 방은 진짜 습식 사우나 그 자체. 눈에만 안 보일 뿐이지, 안개 사우나였어요. 턱 하고 막혀드는 숨. 그리고 또다시 쏟아지는 땀. 중요한 것은 뭐가 어쨌든 샤워였어요. 옷을 몸에서 뜯어내고 화장실로 달려들어갔어요. 햇볕에 달구어져 뜨뜻미지근해진 물이었지만 씻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너무 행복하고 고마웠어요.


물로 땀을 닦아내고 화장실을 나오는 순간...


땀이 난다...


안도 덥고 밖도 더운 상태. 솔직히 밖이 안보다 조금 덜 더웠어요. 씻자마자 땀이 또 나기 시작했어요. 진짜 대책없는 더위였어요. 밖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빨리 밖으로 나갔어요.


친구가 다 씻고 나오자 기차역까지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이제 오후 6시였어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어요. 해가 저물어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더위가 사라져야겠지만...그런 건 문학 작품에서나 나오는 말이었어요. 이런 더위 속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게다가 습하다면 더더욱 그런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아요. 해가 저물어도 더웠어요. 단지 햇볕이 약하기 때문에 이제 모자를 벗고 다녀도 된다는 것 하나 뿐이었어요.



다시 배를 타고 강을 건넜어요. 이번에는 돈을 받았어요.


아유타야 기차역으로 터벅터벅 걸어갔어요. 뭔가 보기는 보았는데 귀찮아서 사진을 하나도 찍지 않았어요. 분명 날은 한낮보다 조금 선선해졌어요. 대신 저는 걸어가고 있었어요. 등에는 배낭도 매달려 있었어요. 낮에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던 것보다 훨씬 가혹한 상황. 사진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빨리 역에 가서 앉아서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올 때와 다른 길로 왔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어요.


"Hello. Where are you going?"


힘들어서 휘청거리며 걸어가는데 태국인이 어디 가냐고 말을 걸었어요.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요. 택시 기사였어요.


"안 타요."

"뭐? 내가 언제 타라고 했어? 어디 가냐고 물어보았잖아!"


태국인이 기분이 상한 듯 말했어요.


"기차역가요."


태국인이 웃으며 말했어요.


"택시 타."

"안 타요."


그러면 그렇지. 택시기사를 쫓아내고 계속 걸어갔어요.  더 걸어가다 도저히 목이 마르고 더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마침 차를 파는 가게가 보이자 차를 사서 마셨어요. 작은 컵이 아니라 500cc 조금 안 되는 컵이었어요. 빨대를 있는 힘껏 빨아들였어요. 이번에도 순식간에 차를 다 마셔버렸어요. 차를 다 마시고 나서 얼음을 입에 넣고 쪽쪽 빨아먹었어요. 얼음이 조금씩 녹아서 너무 감질났어요. 얼음을 마구 깨물어먹고 싶었지만, 이가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참았어요.


태국 얼음이 더럽다고 해도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내일 일어날 배탈을 걱정하며 오늘 쓰러질 바에는 오늘 일단 방콕 후아람퐁역 근처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서 내일 쓰러지는 게 나았어요. 얼음을 계속 먹으면서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서 걸어갔어요. 분명 먼 거리가 아닌데 의정부역에서 서울 입구까지 걸어가는 기분이었어요. 큰 건물이 아닌데 왜 이렇게 건물 하나 지나가는 게 힘든지 알 수가 없었어요.


저녁 6시 44분. 드디어 아유타야 기차역에 도착했어요.


railway station in Ayutthaya


기차역에 들어가자마자 표를 구입했어요. 제일 저렴한 3등칸으로 구입하니 요금은 20바트였어요.



기차는 저녁 7시 5분 아유타야 출발, 밤 9시 방콕 후아람퐁역 도착 예정이었어요. 기차표를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가 역으로 들어왔어요.



창밖은 깜깜했어요. 그냥 어두운 창밖을 계속 내다보았어요. 계속 아쉬웠어요. 분명 볼 것이 많은 아유타야였어요. 폐허와 돌무더기 밖에 볼 것이 없다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게는 너무나 좋은 곳이었어요. 제 태국 친구의 고향이기도 하고, 그 폐허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숙소도 좋았고, 음식도 맛있었어요. 왜 아유타야에서 1박만 한다고 했을까? 사실 일정이 이렇게 된 것은 아유타야 출신 친구와 만나기 위해서였어요. 만약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방콕 일정을 줄이고 아유타야로 넘어와서 2박 한 후, 수코타이로 올라갔을 거에요. 방콕에는 큰 미련이 없었거든요. 아니, 어떻게든 방콕을 떠나고 싶을 뿐이었어요. 분명히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아침 일찍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도 아유타야를 다 보지 못했어요. 아유타야 출신 친구가 알려준 수상 시장, 그리고 그 수산 시장쪽에 있는 근사한 유적은 보지도 못했어요. 왜 아유타야 여행기를 보면 거창하게 섬을 다 보겠다고 당일치기로 왔다가 와서 일정을 바꾸거나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 데에만 집중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유적을 다 보려고 들면 아유타야는 당일치기로는 무리인 곳이었거든요. 그냥 그 섬 자체가 하나의 유적지 같은 곳이었어요.


타이 기차역


기차는 방콕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21시.


기차 3등칸


기차가 방콕 후아람퐁역에 도착했어요.



반갑다, 끄룽뗍!


전혀 반갑지 않았어요. 인생이 다운그레이드된 심정이었어요.



역에서 나오는데 아무도 누가 지나가든, 뭘 하든 관심이 없었어요. 모두가 TV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오늘 무슨 사고라도 났나?'


사람들이 TV에 너무 몰두하고 있자 혹시 큰 사고가 하나 터진 것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어요. 태국이 다른 나라와 전쟁이 날 일이야 없겠지만, 남부 무슬림이 무슨 중요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혹은 정치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지 않거든요. 한둘이 텔레비전에 집중하고 있다면 그러려니 하는데 모두가 텔레비전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 뭔가 심상찮은 일이 터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어요.



무슨 일이 보도되고 있길래 저렇게 TV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나 하고 TV를 보았더니 태국 대 베트남 축구 경기가 중계중이었어요. 태국인들도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네요. 태국 사람들이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한다고 말은 들어보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광적인 응원, 사람들의 고함소리야 그러려니 해요. 그런 건 축구를 진짜 좋아하는 소수의 행동이라 해도 믿을 수 있어요. 몇몇 소수가 난리치면 어쨌든 시끄럽고 그 주위에 광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니까요. 그런 광적인 태도만 가지고서 모두가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한다고 판단내리기는 어려워요. 오히려 이렇게 모두가 숨죽이고 누가 지나가던 무슨 일이 일어나던 신경끄고 TV에서 중계되고 있는 축구 경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야말로 이 나라 사람들이 축구 경기 관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편의점으로 가서 물과 콜라를 구입한 후 숙소로 돌아갔어요.


내가 오늘 도대체 물과 콜라를 합쳐서 몇 리터나 마셨을까?


더 놀라운 것은 숙소에 돌아온 그 순간까지 소변이 전혀 마렵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일단 2리터는 가볍게 넘게 마셨는데도 소변이 마려워서 화장실 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숙소에 들어와 샤워를 하는 그 순간까지도 소변을 누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방광과 요도에 아무 신호가 없었어요. 그냥 방광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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