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이제 왓 프라 시산펫 보고 점심 먹어야겠다."


일단 주변에 식당이 보이지 않았어요. 점심을 먹으려면 이곳에서 멀리 걸어나가야 했어요. 지금 이 땡볕 아래에서는 1mm라도 덜 걷고 싶었어요. 다행히 배가 크게 고프지는 않았어요. 그저 목이 마를 뿐이었어요. 돌아버릴 것처럼 더웠고, 목만 말랐어요. 액체를 아무리 뱃속으로 흘려보내도 소용이 없었어요. 이 정도로 콜라와 물을 계속 마시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기 마련인데 화장실 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동선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은 바로 옆에 있는 왓 프라 시산펫을 보고 점심을 먹는 것이었어요.


"별로 배고프지도 않고..."


그저 타는 목마름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갔어요. 입장료는 이번에도 50바트.




들어가자마자 이곳이 아유타야를 대표하는 유적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어요. 확실히 지금껏 보아온 아유타야 유적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해도 될 정도였어요.


왓 프라 시산펫 Wat Phra Si Sanphet วัดพระศรีสรรเพชญ์ 은 아유타야에서 가장 성스러운 절이었다고 해요. 1350년, 아유타야의 우 통 왕자 อู่ทอง 가 농 사노 Nong Sano 라고 불리던 구역에 왕궁을 건설할 것을 명령했어요. 우 통 왕자는 나중에 라마티보디 1세 Ramathibodi I รามาธิบดีที่ 1 가 되요. 이 라마티보디 1세가 아유타야 왕조의 첫 번째 왕이랍니다. 그리고 농 사노가 오늘날 왓 프라 시산펫이 있는 자리이구요.


왕궁은 1351년에 완공되었고, 라마티보디 1세는 이곳을 수도로 삼았어요. 이때 왕궁은 목조 건물 세 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각각 "Phaithun Maha Prasat", "Phaichayon Maha Prasat", "Aisawan Maha Prasat" 이라고 불렸어요.


이후 아유타야 왕조 8번째 왕인 Borom Trailokanat 왕이 1448년에 이 왕궁에서 조금 더 북쪽에 새로운 왕궁을 건설했고, 원래 왕궁이 있던 자리는 성지로 바뀌었어요. 이때부터 원래 왕궁은 왕실 전용 절로 바뀐 것이지요. 왓 프라 시산펫과 아유타야 왕궁터의 관계는 방콕에 있는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의 관계라 생각해도 되요. Borom Trailokanat 왕의 아들인 Ramathibodi 2세는 1492년에 아버지의 재와 그의 형인 Borommaracha 3세가 묻힌 자리에 쩨디 (탑) 2기를 세웠어요. 그리고 1592년에는 Borommaracha 4세가 또 하나의 쩨디를 세워서 사진 속처럼 쩨디 3기가 있게 되었어요. 참고로 이 절에 기거하는 스님은 아무도 없었고, 왕실 의식용 절로만 사용되었어요.


그러나 이 절과 왕궁은 1767년 버마군의 아유타야 점령때 완벽히 파괴되었어요. 이후 쩨디 3기는 1956년 복구되었다고 해요.


아유타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이 쩨디 3기가 바로 1956년 복구된 그 쩨디에요. 사진으로 찍으니 새파란 하늘과 우중충한 회색 쩨디, 붉은 벽돌이 서로 잘 어우러진 사진이 나왔어요.


그러나 이때 실제로는...



실제 상황은 이랬어요. 이제 12시 30분을 넘었어요. 기온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었고,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서 거의 수직으로 햇볕을 쏟아내고 있었어요. 진짜 미세먼지가 날아다니듯 사방팔방에서 햇볕이 공기를 꽉 채우고 부유해다니는 것 같았어요. 역광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고, 역광을 피해서 찍어도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기 어려웠어요. 사진은 두번째 문제였어요. 땀은 땀대로 비오듯 쏟아졌고, 다리는 다리대로 아팠고, 허리는 허리대로 아팠어요. 검은 모자는 복사열을 혼자 다 처먹은 건지 실컷 달구어져 있었어요.



여기도 역시나 파괴된 불상들이 있었어요.


Wat Phra Si Sanphet



나무 그늘에서 벗어나 양지로 걸어나가야 했어요. 그런데 밖으로 나가기 너무 싫었어요. 더위로 고생하는 것에 허리가 아파서 일단 쉬고 싶었어요. 바닥에 주저앉아 물을 꺼냈어요. 물을 정신없이 들이켰어요. 웬만한 유적이라면 빨리 보고 나가는 쪽을 선택했겠지만, 이것은 딱 보자마자 다 둘러보려면 시간이 꽤 걸릴 유적이었어요. 나무 그늘이라도 많이 있다면 적당히 다니다 그늘 아래 들어가서 쉬고 다시 다니면 되는데, 여기는 나무 그늘도 별로 보이지 않았어요. 나무 그늘이 있기는 했는데 유적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나무 그늘까지 쉬러 다녀오는 게 일인 곳이었어요.


"밥부터 먹고 올 걸 그랬나?"


마구 후회되었어요. 돈 내고 들어왔으니 이제 이곳을 보고 나가야 하는데, 이곳의 규모는 왓 마하탓 못지 않은 곳이었어요. 아직 제대로 돌지도 않았지만 여기가 장난 아니게 넓은 유적지라는 것이 딱 느껴졌어요. 이렇게 넓은 곳인줄 알았다면, 그리고 나무 그늘이 유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줄 알았다면 밥부터 먹으며 조금 쉬다가 왔을 거에요. 적당히 쩨디 세 개만 보고 나오면 되는 유적이라 생각했는데, 그 쩨디 자체가 일단 컸어요.


"이거 보고 밥 먹고 쉬다가 왓 프라 람 보러 가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쩨디쪽으로 다가가 동쪽으로 돌기 시작했어요.



쩨디 동쪽에는 위한 루앙 viharn Luang 이 있었어요. 이것이 이 절터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고 해요.


viharn Luang



위한 루앙을 구경한 후, 북쪽으로 갔어요.



"확실히 탑이 예쁘긴 예쁘다."



북쪽에서 바라보니 쩨디 너머로 위한 프라 몽콘 보핏이 보였어요. 남쪽에서 쩨디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았지만, 북쪽에서 찍는 것도 상당히 괜찮았어요.



쩨디 서쪽으로 걸어갔어요. 이때부터 머리 속에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물을 아껴가며 계속 마시면서 오직 빨리 이곳을 한 바퀴 돌고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만 계속 하고 있었어요. 쩨디가 아름답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어요. 아유타야 왕조의 역사를 모르니 이곳이 어떤 곳인지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버마군이 철저히 파괴했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아무리 떠올려봐야 '불상 목을 다 파괴한 버마군 나쁜 놈들'이라는 생각 이상의 무언가가 떠오르거나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대충 훑어보며 빨리 유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희안한 것이 등장했어요.



"이건 대체 왜 이 모양이지?"


이건 부실공사야? 태국 아유타야판 피사의 사탑이야? 지진났었어? 아니면 홍수 때문에 지반침하야?


기단이 찌그러져 있었어요. 찌그러진 기단 위의 탑은 비스듬히 서 있었어요. 처음에는 지반에 문제가 생겨서 저렇게 비뚤어진 탑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기단을 보니 의외로 모양이 뭉개지지 않은 상태였어요. 이러자 이 탑이 원래 이런 것인지, 아니면 지반에 문제가 생기며 이렇게 된 것인지 의문에 빠졌어요. 쩨디 3기도 아름답고 인상깊었지만, 이 탑도 만만찮게 인상깊었어요. 이 탑 덕분에 더위와 허리의 통증 속에서 웃을 수 있었어요.




"드디어 다 돌았다!"


왓 프라 시산펫


왓 프라 시산펫을 한 바퀴 다 돌고 나니 어느덧 1시가 넘은 시각이었어요. 이제 점심을 먹으며 쉬어야할 때. 배가 그다지 고프지는 않았지만, 허리 통증 때문에 조금 오래 앉아 있어야 했어요.


마침 위한 프라 몽콘 보핏 왼쪽에 시장이 있는 것이 보였어요.


"시장 안에 식당 하나쯤은 있겠지."


시장에 들어가니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팔고 있었어요.


"이거 대체 뭐야?"


기념품 자체는 놀랄 것이 없었어요. 이것은 왓 마하탓에서도 팔고 있는 것이었어요. 중요한 것은 가격. 왓 마하탓 기념품 가게에서 부르던 가격의 1/2~1/4 수준의 가격이었어요. 게다가 여기는 가격이 정찰제였어요. 친구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태국에서 흥정은 얼추 70% 정도 깎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70% 깎아도 바가지를 크게 쓰는 수준이었어요. 베트남에서는 1/2면 대충 맞는 가격이었는데, 여기는 1/2도 바가지 수준. 여기는 정말로 1/4까지 후려쳐야 제대로 된 가격에 구입하는 건가? 태국에서 어떻게 흥정을 해야하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시장을 돌아다니는데 재미있는 음식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가 보였어요.


아유타야 전통 음식


전병을 부치고, 그 속에 싸서 먹는 누런 옥수수 수염 같은 것을 같이 팔고 있었어요. 뭔지는 몰랐지만 일단 궁금해서 하나 구입한 후, 시장 안쪽으로 더 들어갔어요. 시장 가장 깊숙한 곳에는 식당이 있었어요. 식당에서 음식을 시킨 후, 아유타야 출신 친구에게 말을 걸었어요.


"나 지금 위한 프라 몽콘 보핏 근처 시장이야."

"그래? 그 근처에 내가 다녔던 대학교 있어."

"정말?"


친구에게 왓 프라 몽콘 보핏 사진을 보여주자 친구는 매우 좋아했어요.


"그런데 너 이 음식 무엇인지 알아?"


친구에게 제가 구입한 음식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너 그거 먹어보았어?"

"아니, 이제 먹어보려구. 이거 아유타야 음식이야?"

"응! 그거 아유타야 음식이야."

"이거 이름이 뭐야?"

"로띠 사이마이."


친구에게 태국어로 어떻게 적냐고 물어보자 친구는 태국어로 โรตีสายไหม 라고 적는다고 메시지를 보내주었어요. 참고로 사이마이 สายไหม 는 태국어로 솜사탕이래요. 이 누런 옥수수 수염 같은 것을 전병 안에 적당히 넣고 둘둘 싸서 먹는 아유타야 지방 간식이라고 해요. 그냥 생긴 것이 재미있게 생겨서 구입한 것이 아유타야 지역 간식이라고 하자 왠지 횡재한 기분이 들었어요.


식당 음식은 방콕에서 먹었던 음식들에 비해 훨씬 맛있었어요.


"방콕만 벗어나면 돼!"


음식을 먹으며 어떻게든 방콕에서 벗어나야한다는 결심을 했어요. 하루라도 더 방콕에서 벗어나 있을수록 저의 여행 만족도는 쭉쭉 올라갈 것이었어요.


식사를 마치고 누런 옥수수 수염 같은 것을 전병에 싸서 먹어보았어요.



"이거 은근히 맛있잖아!"


지나치게 달지도 않고, 로띠의 구수한 맛이 누런 옥수수 수염 같은 사이마이와 잘 어울렸어요.


"아유타야에서 2박할껄!"


이제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원래는 섬 전체를 다 둘러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기차를 탈 체력조차 남지 않을 것이 확실했어요.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위를 먹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었어요. 전력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만 한다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달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유적도 하나하나 다 보며 돌아다니려면 남은 시간으로는 택도 없었어요.


점심을 먹고 로띠 사이마이도 다 먹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이제 가야하는 곳은 왓 프라 람. 왓 프라 람으로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어요. 자전거를 왓 프라 람 입구에 세워두고 왔기 때문에 왓 프라람에 들어가든 말든 그쪽으로 일단 가야 했어요. 그나마 위안이라면 왓 프라 람 역시 아유타야에서 매우 유명한 유적 중 하나라는 것이었어요. 이 유적이 유명한 유적이 아니었다면 자전거를 왜 거기에 세웠는지 뼈아플 정도로 후회했을 거에요.




시장 안에 있는 가게 주인들이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서 대충 두 장만 찍고 밖으로 나와 왓 프라 람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코끼리다!"


저건 전쟁터에서 보면 진짜 무섭겠구나...


코끼리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섭다는 것이었어요. 실제 행렬을 이루어 걸어가는 코끼리들이 초대형 트럭 같았어요. 저것을 전쟁터에서 만난다면 충격과 공포 그 자체일 듯 했어요. 코끼리가 덤벼들면 정말 대책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사람이 모는 안전한 코끼리 대열이었지만, 그 근처에 얼쩡거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한편으로는 걷기 귀찮고 재미있는 경험일 것 같아서 코끼리를 타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어요. 그러나 코끼리 타는 요금이 비싸서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어요.


코끼리를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받는 충격은 어마어마했지만, 전투 병기로는 약점이 너무 뚜렷해서 전장 그 자체를 지배하지는 못했다고 해요. 먼저 워낙 육중하다보니 방향전환이 매우 느렸고, 그래서 돌진하는 코끼리는 맞부닥치는 게 아니라 그냥 진형을 조절하여 지나가버리게 했대요. 이러면 말 그대로 자기 혼자 광란의 질주. 그리고 코끼리는 소음을 싫어해서 일제히 소리를 지르거나 나팔을 부르면 도망치는 경우가 많았대요. 여기에 코가 예민한 부위인데 코를 공격하기 쉬운 편이었고, 정신적으로 민감한 동물이라 전쟁상황을 못 견디고 미쳐서 폭주하는 경우도 발생했대요. 이렇게 코끼리 자체의 약점과 더불어, 코끼리 조종수는 코끼리 목에 걸터앉아 코끼리를 몰다보니 완벽히 무방비 상태였고, 이런 코끼리 조종수가 죽거나 다치면 코끼리는 바로 무력화되었대요.


이런 약점에 또 하나 문제점은 코끼리 유지비가 상상을 초월했다는 것이었어요. 분명 약점이 너무나 뚜렷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동물이기도 해요. 문제는 이 코끼리 부대를 운용하려면 무지막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 코끼리가 먹을 식량, 식수 준비 자체가 엄청난 돈 그 자체였어요. 이러다보니 약점이 뚜렷하지만 매우 강력한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함부로 운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해요. 동남아시아에서 코끼리를 매우 아끼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문화는 어찌 보면 이렇게 쉽게 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재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코끼리를 넋놓고 보다가 왓 프라람으로 갔어요. 여기 역시 입장료는 50바트. 입구에는 이런 표지판이 있었어요.


무례한 서양인


"대체 서양놈들이 얼마나 어이없게 만드는 짓을 많이 해댔으면 이런 것까지 만들어서 세워놔?"


이때까지만 해도 서양인 관광객들에 대한 반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이 표지판은 앞으로 목격할 일들의 예고편 같은 것이었어요.


그리고 여기에서 재미있는 사진 찍는 요령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애초에 불상은 꿇어앉아 보는 것이다보니 불상 사진을 찍을 때 무릎을 굽히고 찍으면 똑바로 서서 찍는 것보다 훨씬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왓 프라람에 들어오자마자 쁘랑이 눈에 딱 들어왔어요.




적당히 쁘랑 하나 보고 가면 되는 곳이라 생각하며 휙휙 둘러보고 있는데 쁘랑 위에서 누가 저를 불렀어요. 고개를 들어 쁘랑을 올려다보니 태국인들이 자기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오라고 손짓하고 있었어요. 쁘랑은 계단이 있어서 거기까지는 그냥 올라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태국인들은 계단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기어올라가 있었어요.







태국인들이 올라오라고 해서 올라갔더니 이번에는 뭐라고 제게 말을 걸었어요. 아쉽게도 그들이 말하는 태국어를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그냥 미소만 짓자 제가 자기들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다른쪽으로 돌아갔어요.


쁘랑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광고 촬영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어요.



쁘랑을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멀리서 볼 때에는 그냥 다른 쁘랑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부조가 그나마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어요.





쁘랑에서 내려왔어요. 이제 표를 4장이나 모았어요.



위에서부터 왓 랏차 부라나, 왓 마하탓, 왓 프라 시산펫, 왓 프라 람 입장권이에요. 같은 표 위에 도장만 다르게 찍혀 있어요.


반응형

Posted by 좀좀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