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여행 준비

좀좀이 2011. 12. 3.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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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까지는 참을만 해요.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가 꾸준히 쌓이기만 하는 것은 참기 어려워요.


"확 어디론가 떠나버릴까?"

차라리 반복되는 일상이 나을 지경. 그래서 결심했어요. 한 번은 가 보아야하는 카프카스 지역. 구실도 있었어요. 논문 작성을 위한 자료 수집. 언제까지 자료 수집을 못 했다고 변명을 댈 수도 없었어요. 더욱이 카프카스 지역을 공부하면서 카프카스 지역을 단 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어요. 그래서 과감히 결정했어요. 까짓거 다녀오자!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돈. 일단 돈을 모아야 했어요.

"뭐 괜찮은 방법 없을까?"

돈을 모을 궁리를 했으나 수입과 지출은 정해져 있었어요. 지출을 한 없이 줄이는 것은 불가능. 물론 수입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지출을 줄여야 하지만 가계부를 쓰거나 꼼꼼하게 지출을 관리하는 것은 체질적으로 불가능.


"이런 게 있었네?"

어떻게 돈을 모아야 하나 고민하며 방에서 뒹굴거리다 인터넷으로 찾은 방법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인터넷으로 가입 및 해지가 가능한 3개월짜리 정기예금 상품. 물론 이자는 매우 적었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단 돈을 못 쓰니까!

그래요. 정기예금에 돈을 집어넣는 순간 3개월간 돈을 못 써요. 3개월 뒤에 돈을 찾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3개월 후 돈을 찾는다고 해서 이 돈을 한 번에 다 써버리는 일은 없다는 것이었어요. 더욱이 원금 손실이 발생할 확률은 0%. 그래서 여행 경비를 모으는 방법으로 3개월짜리 정기 예금을 이용하기로 결심했어요.


여기까지가 2월의 이야기.


그러나 쉽게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어요. 여행 일정도 문제였을 뿐더러 비자 문제도 있고, 아르바이트로 나가고 있던 학원 문제도 있었어요. 비록 큰 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업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데다 원장님과 선생님들, 학생들과도 큰 문제가 없어서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어요. 비록 3월이 되며 여러 일이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인간관계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를 초월한 우리나라 교육부와 학교 진도로 인해 발생한 문제였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여행을 다녀와서도 계속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여행을 가려면 최소 한 달은 쉬어야한다는 것. 더욱이 설날에 아파버리는 바람에 고향도 못 내려갔다 왔어요. 여름방학에 내려가지 않으면 추석때 내려가야 하는데 추석에 내려가는 것은 스스로 지옥의 문을 여는 짓. 추석 기간에 중간고사 대체 과제물이 많이 나오는데 추석때 집에 내려가면 당연히 과제 따위를 할 리가 없죠. 그리고 그 결과...한 학기가 지옥도의 현실화. 그래서 고향에도 꼭 내려가야 했어요. 나름의 절충안을 내린 것이 바로 3주 여행 + 1주일 고향이었지만 문제는 학원에서 쉬게 해 주느냐였어요.


여기까지가 3월의 이야기.


"아...몰라!"

피로가 머리 끝까지 올라온 4월. 4월 애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자 드디어 인내심이 끊어졌어요. 인내심이 끊어진 이유는 다음과 같았어요.

- 중1의 경우 집중이수제 때문에 한 학기에는 사회만 배우고 다른 한 학기에는 도덕만 배워요. 즉 한 학기에 한 과목을 다 끝내버림. (1년치를 1학기에!) 문제는 학원에서 1학기에 사회를 배우는 애가 2명, 나머지 전부는 1학기에 도덕. 이 사실을 3월 말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어요. 당연히 발생하는 두 가지 문제. 첫 번째는 2명을 위해 1학기 문제집을 중간고사 전까지 다 끝내주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나머지 애들은 사회 시험을 아예 안 보고 도덕 시험을 본다는 것. 절충안은 시험 전전주에 사회 시험 보는 애들을 위해 원래 사회 1학기 진도를 다 나가주고 나머지 애들을 위해 시험 전주에 도덕을 가르치는 것.

- 중2의 경우 1년 내내 역사만 배워요. 그나마도 1학기에는 국사만 배워요. 국사는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정말 쓸 일이 없는 과목 중 하나에요. 더욱이 이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는 것이 중요. 이 시기에 재미있는 사극 하나 해주면 그나마 괜찮을 수도 있지만 동예, 옥저 역사를 다룬 사극은 듣도 보지도 못했어요. 작년에는 국사 선생님이 계셔서 저는 사회만 가르쳤어요. 하지만 올해는 얄짤없이 국사도 혼자 다 가르쳐야 하는데 하필 중2는 국사만 배웠어요.


그래서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어요. 바로 표를 알아보았어요. 그러나...

인천-이스탄불 저가 항공권 매진!

4월에 이미 인천-이스탄불 저가 항공권이 매진되어 있었어요. 당장 표 구하는 것이 문제.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저가 항공권을 구할 방법이 없었어요. 더욱이 그나마 남아있던 터키 항공으로 계산해 보니 카프카스 국가까지 가면 표 가격이 얼추 200만원이었어요. 이스탄불에서 육로로 아제르바이잔 바쿠까지 들어갈까? 이왕 가는 터키, 카파도키아도 가보고 싶은데...하지만 이스탄불-그루지야 트빌리시 버스로 27시간...여행 일정이 3주인데 버스로 27시간 이동하면 실제 남는 날이 얼마 안 되었어요. 목표는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를 가는 것인데 21일 - 2일 (비행기) - 2일 (육로이동) = 17일. 국가간 이동을 또 계산해야 하니까 실질적으로 카프카스 지역 여행하는 기간은 불과 2주 남짓.


최종적으로 내린 결정은...


여행사를 이용하자.


다행히 여자친구 아버님께서 아시는 분이 여행사를 하고 계셔서 서울-이스탄불-트빌리시 왕복 표를 150만원에 구했어요.


여기까지가 4월의 이야기.


비행기표를 구했으니 이제 학원에 이야기를 할 차례. 다행히 학원에서 한 달 쉬어도 좋다고 했어요.


이제부터 세부 일정 수립.


카프카스 3국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그루지야를 중심으로 다녀야 해요. 왜냐하면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국경이 막혀 있기 때문이에요. 더욱이 아르메니아 입국 기록이 있으면 아제르바이잔 입국시 입국심사를 극히 까다롭게 한다는 정보도 있었어요. 그래서 여행 코스는 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아르메니아로 확정.


그런데 아제르바이잔은 본토와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사람들이 아제르바이잔 본토 여행은 다녀왔으나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을 다녀온 우리나라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었어요.


"내가 최초가 되어야지!"

이러자 동선이 희안하게 바뀌었어요.


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 본토-아제르바이잔 나흐치반 자치공화국-터키-그루지야-아르메니아-그루지야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어요.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복수 비자로 받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이란 비자를 받아 나흐치반에서 줄파-졸파 국경을 통과해 이란으로 나와 이란에서 아르메니아 들어가는 것은 이란 비자를 받기 위한 금전적 손해 및 정신적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절대 좋지 않은 방법. 나흐치반에 들어가는 순간 나오는 방법은 터키로 정해져 있었어요.


문제는 나흐치반을 집어넣는 바람에 가뜩이나 부족한 여행 일정에 과부하가 걸려버렸다는 것이었어요.


'나흐치반을 포기할 수는 없어...하지만 그러면 아르메니아에 3일? 그건 너무 짧아. 아무리 아르메니아가 볼 것 없다고 해도 그렇지...'


결국 결론은 아제르바이잔 본토에 있는 셰키, 이스마일르, 겐제를 포기하고 바쿠만 본 후 나흐치반행.


"어짜피 여행 일정 꼼꼼히 짜 봐야 제대로 되는 거 하나도 없더라."

몇 차례 외국 여행을 통해 깨달은 사실. 아무리 계획 꼼꼼히 짜도 되는 거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어요. 기껏 기대하고 간 도시에서 볼 것 하나도 없어서 바로 나와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냥 별 생각 없이 당일치기로 갔는데 의외로 볼 것 많고 즐길 것 많아서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대충 며칠 정도 머물면 되겠다 정도로 계획만 세우고 계획 세우기는 끝.


이제 문제는 비자.


그루지야는 무비자.

아르메니아는 전자비자.

아제르바이잔은 비자.


아르메니아 전자비자를 어떻게 받아야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어요. 아르메니아 전자비자 발급 사이트를 찾은 것 자체가 우연이었어요. 아르메니아 국경 비자를 요즘 잘 안 내준다는 소식이 있어서 아르메니아 비자 관련 정보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아르메니아 전자비자 사이트를 발견했어요. 일단 아르메니아 전자 비자는 가격이 너무나 저렴했기 때문에 (21일 단수 비자가 USD 15)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발급받기로 결정. 문제는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발급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초청장이 필요해요. 문제는 이 초청장을 획득하는 것이 일이라는 것이었어요.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초청장을 발급받으려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모두 실패. 아제르바이잔인들에게 물어보아도 답이 없었어요. 결국 여행사를 통해 초청장을 발급받았어요. 초청장을 발급받는 조건은 아제르바이잔 현지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호텔에서 2박하기. 원래는 3박을 해야 초청장이 나오지만 2박으로 해 주었어요. 아마 비수기의 힘이 아닌가 해요. 어쨌든 이렇게 초청장+호텔 예약 문서 (컨펌 레터)+여행 바우처를 획득.


이것이 5월의 이야기.


아제르바이잔 비자 발급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들고 주한 아제르바이잔 대사관에 갔어요.


준비물 : 여권, 증명사진 2장, 관련 서류 (초청장, 비행기 티켓, 여행 바우처)

참고로 아제르바이잔 단수 비자는 50달러인데 여행바우처가 있으면 20달러입니다.


서류 접수할 때 영사가 서류 체크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더군요. 질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어떻게 초청장을 발급받았는가?

- 초청장 원본이 아니어도 됩니다. 출력해서 가져가도 문제는 없는데 어떻게 발급받았는지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아제르바이잔에 있는 한국 여행사 직원분께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2. 비용은 얼마 들었는가?

- 서류 발급비용과 호텔 숙박 비용을 물어보았습니다. 세부항목별로 돈이 기억나지 않아 그냥 총액으로 이야기했습니다.


1,2번 질문은 초청장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물어보는 것 같았습니다.


3. 언제, 어떻게 아제르바이잔을 들어갈 것인가?

- 비행기표가 그루지야 왕복이어서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야간에 육로로 아제르바이잔 입국할 것이고, 나흐체반으로 가서 터키 동부로 나올 예정이라 그루지야 왕복으로 끊었다고 했더니 별 말 없었습니다.


4. 여행 일정은?

- 바쿠에만 머물 것이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바쿠에 있다가 나흐체반으로 넘어갈 거라 했습니다.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받자마자 아르메니아 전자비자 신청. 역시나 쉽게 되지는 않더군요. 몇 번 튕기고 안 되다가 겨우 신청했어요.


비자 문제가 끝나고 남은 문제는 과제 제출과 발표, 그리고 학원 시험 준비기간...


마지막 발표는 못했어요. 전날 다른 수업 보강하고 그 수업이 종강했는데 종강 기념 술자리가 늦어져서 집에 들어왔을 때가 새벽 5시. 이미 술에 잔뜩 취해서 제 정신이 아닌데 발표 준비는 하나도 안 되어 있었어요. 컴퓨터를 켜놓은 것까지는 기억나요. 하지만 바로 잠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아침 8시 반.

"아...망했다...어떻하지?"

선택지는 2개

1. 발표 준비를 후딱 하고 지각해서 발표를 엉망 진창으로 한다. 아마 교수님의 대분노 예상.

2. 그냥 결석하고 오후에 발표 준비물과 과제를 제출한다. 과제 제출일이 2주 후였지만 과제 제출을 같이 함으로써 약간의 자비를 노려본다. (과제 제출을 일찍 해 '나는 절대 발표 준비를 못해서 결석한 게 아니에요! 라고 주장해본다)

당연히 제가 선택한 선택지는 2번. 제 발표일이 종강일인데 그냥 안 가고 집에서 퍼질러 잤어요.


이제 학원 시험 준비기간만 무사히 넘기면 여행 시작!


한 달 쉬기로 했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요. 한 달 쉬는 게 영원히 쉬는 게 될 수 있다는 것쯤은 아르바이트 해보면 알게 되는 삶의 진리.


애들 사회 진도 다 끝냈으니 이제 도덕 가르칠께요!

도덕도 다 끝냈으니 미술 가르칠께요! (집에 가서 한 번만 읽어보고 모르는 용어 찾아보기만 하면 됨)

애들이 일본어 알려달라던데요? 일본어 가르칠께요! (일어 공부 안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같은 것 가르치는 데에는 문제 없음)


기말고사 기간 동안 사회, 국사, 도덕, 미술, 일본어 - 총 5과목을 가르치는 기염을 토했어요. 이 정도면 일단 휴가 전 나름 유종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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