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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산수 6학년 2학기 교과서 - 주산을 배우셨나요 (동묘앞 벼룩시장)

좀좀이 2015. 1. 1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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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친구와 동묘앞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다 헌 책을 파는 곳에서 제가 어렸을 때 사용했던 교과서들을 발견했어요.


초등학교도 아니고, '국민학교' 를 다닌 제게 그 교과서들은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책이었어요. 그 교과서들 중 특히 간직하고 싶은 교과서가 몇 있었는데, 다 찾지는 못하고, 몇 개만 찾아내었어요. 사회 교과서 - 특히 딱 한 학기 - 3학년 1학기에 각 지역별로 나왔던 사회 교과서에서 '제주도'편은 찾을 수 없었어요.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제주도 책으로 배웠는데, 그건 인쇄 부수 자체도 매우 적을 뿐더러, 그 책이 육지까지 올라와 있을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 책은 정말 다시 한 번 보고 싶지만 아마 다시 보기 매우 힘들 것 같아요.


어쨌든, 그 반드시 간직하고 싶었던 교과서 3권 중 2권을 찾아내었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6학년 2학기 산수 교과서'이지요.



벌써부터 보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리시는 분들 분명히 계실 거에요. 하지만 다행이라면 진짜 머리 지끈거리는 것들은 6학년 1학기 산수 교과서에 있고, 여기는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지요.



1991년 9월 1일 발행이지요. 그래도 산수책은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어린이들을 괴롭힌 책 가운데에서 보스급은 아니었답니다. 보스급은 바로 '쓰기' 책과 '산수익힘책'이었지요. 특히 쓰기책은 꼭 분지나 기름종이를 붙여서 두 번 쓰게 하고, 선생님 마음에 안 드는 글씨면 다 지우고 새로 쓰게 시켰지요. 산수익힘책은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산수 문제였구요.



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국민교육헌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달 외우게 시키지는 않았어요.요즘 애들은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라는 말을 들으면 '이게 뭔 말이야' 하겠죠.



목차는 다음과 같아요.

1. 정수

2. 분수와 소수의 혼합 계산

3. 연비

4. 도형의 닮음

5. 입체도형

6. 도수분포표와 그래프

7. 경우의 수

8. 수판셈

9. 여러 가지 문제


이 교과서에서 제가 이 책을 구입하게 만든 단원은 세 가지 있어요.


먼저 연비.



사실 연비 자체는 크게 인상적이지 않아요. 하지만 이 단원이 매우 인상적인 이유는...



바로 비례배분 때문이에요.


학원에서 애들에게 수업하거나 자습지도 하다가 가끔 비례배분을 써야할 일이 있어요. 비례배분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꽤 크지요. 안다면 정말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는 강력한 하나의 무기가 되고, 모르면 꽤 피곤해져요. 저는 이것을 이렇게 초등학교때 배웠기 때문에 당연히 애들도 알 거라고 했는데 '비례배분' 자체를 모르더라구요. 안 배운 건지, 배웠는데 모르는 건지 아직도 미스테리에요. 하지만 공부를 잘 한다는 애들조차 비례배분을 모른다는 사실이 꽤 충격이었어요.



연이율 11%


우와!!!!!


저때 지금처럼 돈을 벌어서 저축을 했어야 했는데!!!!!


그리고 보면 월이율 '1푼3리' 라는 말이 있지요. 할, 푼, 리는 이제 야구에서나 쓰는 말이 되었지만, 저때만 해도 꽤 자주 쓰던 말이었지요. 지금 보면 궁금한 것이, 원리합계를 구하라고 하는데 그럴 거면 원금 x (1+이율) 을 하라고 알려주지 않고 저렇게 알려주었을까요?



경우의 수는 개인적으로 싫어했던 단원이었어요. 그 이전 히스토그램은 일일이 찾고 연필로 검게 칠하는 게 귀찮아서 싫었고, 이것은 그냥 재미없고 싫어했어요. 그리고 그 성향은 고3때까지 이어져서 확률과 통계를 수학 전체에서 제일 싫어했지요.


이런 것들도 저의 흥미를 끌었지만, 제가 이 책을 그리워했고, 구입하고 싶게 만든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주판을 학교에서 배우셨나요?


어렸을 때에는 동네에 주산학원이 있었어요. 보통 주산학원과 속셈학원이 같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록 주판은 빠르게 사라져갔어요. '계산은 컴퓨터가!' 라는 주장이 강력한 믿음으로, 그리고 그 믿음이 현실화 되어 갔어요. 국민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집에 컴퓨터가 있는 학생듪이 거의 절반에 가까워졌어요. 어느 집에 가든 주판은 흔히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 쓰는 모습은 국민학교 6학년 학생이 되었을 때 거의 보지 못했어요.


하필이면 수판셈이 뒤에서 두 번째에 있다 보니 기말고사 범위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있는 단원이다보니 학교에 주판을 들고가서 저것을 배우기는 했어요. 주판을 흔들 때 그 차락 차락 소리, 그리고 주판 알을 정렬시킬 때 그 '드르르륵'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애들 모두 쓸 데 없이 주판을 흔들어대고는 했지요.



교과서에서 배우는 주판은 덧셈, 뺄셈까지였어요. 곱셈, 나눗셈은 배우지 않았죠.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께 주판으로 곱셈, 나눗셈 하는 법을 배우기는 했는데 다 잊어버려서 저 역시 주판으로는 딱 덧셈, 뺄셈 밖에 하지 못해요.


위의 사진은 수판셈 연습문제에요. 산수 교과서 각 단원 맨 마지막에는 이렇게 연습문제가 꼭 있었지요. 그런데 이 주판 단원은 문제가 워낙 쉬운데다 이것을 주판으로 풀었는지 그냥 계산하듯 풀었는지 풀어온 것만 보아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를 주판으로 풀지 않고 그냥 계산하듯 푸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도 학교에서 풀라고 하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열심히 주판으로 풀었었지요.


이 단원이 끝나면 마지막 단원인 '여러 가지 문제' 단원이 나와요. 말이 좋아 '여러 가지 문제'이지, 여기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경우도 많아요. 어느 정도는 일종의 다음 학기 맛보기 역할을 하는 단원이지요. 그래서 그 누구도 이 단원은 좋아하지 않았어요. 새롭고 어려운 것도 나오는데 제대로 설명이 되어 있고 설명을 듣는 것도 아닌데다, 결정적으로 2월에 배우는 단원이었거든요. 정말 이 단원은 매 학기마다 '여러 가지 괴롭히는 방법'이었어요.


이 산수책을 볼 때마다 참 많이 달라진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동묘앞 벼룩시장에 가게 되시면, 한 번 헌책들도 뒤져보세요. 재미있는 옛날 교과서들도 곳곳에 숨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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