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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두 개의 장벽 (2012) 47

두 개의 장벽 - 에필로그

이번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여행은 쉽다면 아주 쉽고 어렵다면 아주 어려운 여행이었어요. 최소한 적당히 행운과 불운이 겹쳐서 난이도가 너무 어려워지지 않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여행 계획, 비자 문제, 투르크메니스탄 국경까지는 혀 빼물 정도로 어려웠어요. 단 한 번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처음부터 하도 일이 꼬여서 때려치기엔 너무 억울했거든요. 적당히 꼬여야 포기하든 할텐데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고 꼬이기만 엄청 꼬여서 오기로 버텼어요. 7박35일 때에도 별 다른 준비와 정보 없이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어요. 그때도 정보 없이 가기는 했지만 이 여행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요. 그때는 제가 정보를 찾을 노력도 안 기울이고 그..

두 개의 장벽 - 45 바쿠에서 다시 타슈켄트로

"야, 빨리 일어나!" 친구가 다급한 목소리로 저를 깨웠어요. 2시에 침대에 누웠는데 아마 4시가 되어서야 잠들었을 거에요. 잠을 조금 자나 싶었는데 친구는 저를 흔들어 깨웠어요. "왜!" "택시기사 왔어!" "몇 시인데?" "8시!" 전날. 우리는 택시기사에게 아침 11시 25분 비행기이니 호스텔에 8시에 와 달라고 부탁했어요. 택시기사는 공항까지 금방 가니 아침 9시에 오겠다고 했어요.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을 들어보니 9시에 바로 출발하면 2시간 즈음 전에 공항에 도착할 것이고, 그 정도면 충분했어요. 그래서 9시에 가자고 했는데 택시기사가 아무 말 없이 아침 8시에 왔어요. 택시기사는 자기는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짐 끌고 그쪽으로 오라고 말하고 호스텔에서 나갔어요. 친구가 빨리 준비하라고 재..

두 개의 장벽 - 44 아제르바이잔 바쿠

오늘은 뭐하지? 아직 실내는 어두웠어요. 돌아갈 날이 내일이라 일찍 일어나지는구나. 짐 싸는 거야 금방 싸겠지? 짐을 한 두 번 싸본 것도 아니니까. 여행 가기 전에도 짐은 후다닥 싸는데 이 정도 쯤이야. 무게를 맞추기 위해 친구 짐과 섞어서 싸긴 해야 하지만 정 안 되면 친구 짐까지 내가 싸 버려야지. 둘 다 부서질 것은 없으니 책만 잘 나누어 넣고 나머지는 다 쑤셔박고 때려박아도 돼. 짐 싸고 나서 무엇을 할까? 그냥 시내나 돌아다닐까? 아니면 바쿠 외곽에 있는 예쁜 모스크? 세데렉 시장? 전날 오늘은 푹 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오늘이 되자 그냥 얌전히 집에서 쉬기는 뭔가 아쉬웠어요. 여기를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초청장 받는 것도 문제고 비자 받는 것도 문제이지만, 결정적으로 여..

두 개의 장벽 - 43 아제르바이잔 바쿠 현충공원

모스크 구경을 마무리하고 현충공원으로 향했어요. 급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천천히 걸었어요. 현충공원에서 보는 아제르바이잔의 타오르는 푸른 불...저 건물은 불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저게 진짜 타오르는 불이었다면 진짜로 볼 만 했겠죠. 정말 다행히도 진짜 타오르는 불이 아니에요. 푸른 불이라...국장의 불꽃 색깔은 붉은 색인데 저것은 푸른 색. 저 건물을 진짜 붉은 색 유리로 만들었다면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보기에는 나쁘지 않겠지만, 여름에는 정말 보기만 해도 더 덥게 느껴졌겠지? 붉은 색 건물이어도 나쁘지는 않을 듯 싶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멀리서 보았을 때 거대한 불이 도시를 덮치는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이곳이 현충공원인 이유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때 전사 및 사살된..

두 개의 장벽 - 42 아제르바이잔 바쿠 셰히들릭 모스크

버스는 우리가 아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갔어요. 버스가 간 길은 큰 길이 아니라 이맘 후세인 모스크 옆 길로 들어갔어요. "이 버스, 원래 여기로 다니는 버스 맞나?" 이맘 후세인 모스크 주변은 버스가 다니게 생긴 길이 아니에요. 물론 다닌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지만 버스가 다니기에는 일단 길이 너무 좁았어요. 오늘도 현충공원으로 가는 무료 전동차가 운행하지 않는 것과 버스가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있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이맘 후세인 모스크에서 내려서 현충공원까지 걸어가기에는 가깝지 않은 거리. 게다가 지금은 낮이라 그렇게 걷기에는 더웠어요. 버스는 동상이 있는 로타리에서 공원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더니 버스를 세웠어요. '혹시 여기에서 내려서 가라는 건가?' 다행..

두 개의 장벽 - 41 아제르바이잔 바쿠

잠 못 드는 밤. 이제 여행이 진짜 끝나간다는 것이 진짜 실감났어요. 그 생각이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껴졌어요. 모레면 돌아가는구나.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요. 정말 다행이에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니까요.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꿈에서 깨어난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 내가 아제르바이잔에 있는 것은? 이것은 꿈 속의 꿈. 정말로 행복한 꿈. 꿈 속의 꿈에서 깨어나 꿈 속으로 돌아가기. 사실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는 것에 비한다면 별 거 아니에요. 그러나 아무리 꿈 속이라도 행복한 꿈 속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아무리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자각몽이라 하더라도 그 꿈이 즐겁다면 깨고 싶지 않은 것 처럼요. 마음이 심란하니 잠이 오지 ..

두 개의 장벽 - 40 아제르바이잔 바쿠 중앙우체국

중앙우체국에 가려고 한 이유는 혹시 아제르바이잔 전통의상 우표가 있는지 보러 가기 위해서였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중앙우체국에서 수집용 우표를 따로 팔아요. 단연 우즈베키스탄 뿐만 아니라 체코,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타지키스탄에서도 그랬어요. 알바니아는 직접 중앙우체국에 가본 것은 아니지만 티라나에서 간 우체국에서 수집용 우표 사려면 중앙 우체국에 가라고 알려주었어요. 중앙우체국 가서 우표를 사면 좋은 점이 거리에서 사는 것보다 조금 싸요. 우리나라는 아예 액면가에 팔구요. 아까 우체국에서 중앙우체국은 이쪽에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대학교는 그냥 본 거 하나 늘리고 시간 때울 셈으로 간 거에 비해 여기는 보다 확실한 목표가 있었어요. 그래서 대학교를 찾자마자 재빨리 우체국을 찾기 시작했어요. "중앙우체국..

두 개의 장벽 - 39 아제르바이잔 바쿠 국립 대학교

밤새 자다 깨다 반복했어요. 조금 자다 깨어났고, 또 조금 자다가 깨어났어요. 오랜만에 자판기 커피를 마셔서 그런가? 그럴 리는 전혀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자판기로 커피를 뽑아 마시지 못했을 뿐이지,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믹스 커피는 항상 잘 마시고 있었어요. 단순히 커피 한 잔 마셨다고 잠을 못 자는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불빛 때문에? 책을 볼 수 있는 불빛이었지만, 그렇다고 신경쓰이게 밝은 불빛은 아니었어요. 책도 불빛에 비추어야 보이는 것이지, 그냥 책 읽듯 보면 안 보일 정도의 불빛. 그 정도 불빛에 일어날 저라면 늦잠 때문에 고민하는 일도 없죠. 이것도 아니고. 결론은 오직 하나. 낮에 아파서 쓰러져 있었더니 잠이 안 오는 것. 그래서 조금 자다 깨어나고 조금 자다 깨어나고를 반복한 것이라 ..

두 개의 장벽 - 38 아제르바이잔 바쿠

아침에 일어났는데 콧물, 목 아픔. 어지러움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친구가 약 사줘서 먹고 다시 잤다. 오후 5시에 깨서 정신 차렸는데 우리가 자는 넓은 2인용 침대에 예약한 손님들 왔다고 혹시 비켜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비켜주었다. 원래 우리도 좁은 2층 침대에서 자야 하는데 우리보고 편히 자라고 넓은 침대 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어나서 엽서 2장 사고 밥 먹으러 갔다. 아제리에서는 엽서고 선물이고 암 것도 안 하려고 했는데 결국 하게 된다. 친하게 지내는 아이는 타지키스탄에서 보낸 엽서 몇 글자 해석 불가라 해서 이번엔 작정하고 예쁘게 썼다. 학원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는 아이에게 썼다. 모처럼 예쁘게 글자 쓰려니 힘들었다. 투르크멘서 보낸 건 어찌 읽으려구. 그때는 서..

두 개의 장벽 - 37 아제르바이잔 바쿠 기차역

2012년 7월 11일의 아침이 밝았어요. 오늘은 일찍 일어났어요. 목에 가래가 껴서 잠에서 일찍 깨어났어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목이 전날보다 더 아프고 머리가 무거웠어요. 일어난 김에 일단 씻고 차를 끓여서 밖으로 나갔어요. 자전거 여행 중인 프랑스 아저씨가 드디어 출국한다고 하셨어요. 아저씨는 카자흐스탄 악타우로 가는 배가 없어서 아제르바이잔 비자가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호스텔에 머물고 계셨었어요. 프랑스 아저씨는 체크 아웃한 후, 관청에 가서 벌금을 물고 배를 탈 거라고 자신의 일정을 알려주셨어요. 혹시 오늘 배가 뜨지 않으면 다시 호스텔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을 남기며 호스텔에서 나가셨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보내지 못한 둘에게 엽서를 쓰기 시작했어요. 한 명은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한 ..

두 개의 장벽 - 36 아제르바이잔

꽤 춥다고 생각하며 잤어요. 두꺼운 이불을 덮지 않았다면 정말 추워서 잠을 들지 못했을 거에요. 친구가 깨워서 일어났어요. "목이 왜 이렇게 아프지?" "갑자기 왜?" "모르겠어. 목이 아파. 지금 일어나야 해?" "아니, 아직 여유 있어." "그러면 나 조금 더 누워 있을게." 목이 헐어서 그런지 아팠어요. 크게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서 다시 침대에 누웠어요. 조금 누워 있으면 금방 좋아질 것 같았어요. 어제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오늘은 또 다시 정말 맑은 날. 그래도 가는 날은 맑아서 다행이었어요. 아브토바그잘로 갈 때 어제 그 폭우가 내렸다면 정말 돌아가는 내내 고역이었을 텐데요. 보나마나 차에서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 것이고, 그러면 바쿠 도착하는 내내 추위에 시달려야 하니까요. ..

두 개의 장벽 - 35 아제르바이잔 셰키

원래 예정대로 숙소 근처에 있는 유리 가가린 식당으로 갔어요. 식당은 노천에서 먹게 되어 있었어요. "여기 비싸지 않을까?" "어쨌든 숙소비 아꼈잖아." "한 번 정도 여기 음식 먹어볼까?" 바쿠에서 외식은 상상도 못했어요. 너무 비싸서요. 그래서 레스토랑 같은 곳은 당연히 절대 안 갔어요. 우리가 항상 끼니를 때운 곳은 메르신 카페. MUM 옆에 있는 작은 카페인데 가격이 저렴하고 양도 괜찮은 편이었어요. 게다가 맛도 좋았구요. 정말 이럴 때 아니면 아제르바이잔 음식들을 맛볼 기회가 없었어요. 바쿠에서 먹는다면 정말 몇십 마나트 나올테니까요. 앞서 말했듯 1달러가 0.785 마나트 정도 되요. 1마나트가 0.785 달러쯤 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에요. 일단 한 사람 당 음식을 하나씩 시켰어요. 저는 ə..

두 개의 장벽 - 34 아제르바이잔 셰키 시내

이름으로 보아서 이 모스크는 셰키에서 가장 큰 중요한 모스크 아닐까 생각했어요. 항상 이런 생각이 딱 맞아드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주메'라고 하면 어느 정도의 중요성은 있는 모스크이거든요. 대박은 보장 못하지만 중박은 보장해주는 이름. 아잔이 울리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어요. 친구는 안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혼자서 들어갔다 올까? 예배가 잠깐 절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망설여졌어요. 제대로 구경하려면 예배가 끝나야 하는데, 예배가 짧지는 않다는 게 문제였어요. 그렇다고 무슬림들 예배드리고 있는데 들어가서 사진 찍고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이상하구요. 정문 옆에는 이렇게 수돗가가 있었어요. 물은 나오지 않았어요. "나 혼자 들어갔다 올게." 모스크 건물 안은 들어가지 않기로 했어요. ..

두 개의 장벽 - 33 아제르바이잔 셰키 구시가지

구시가지로 돌아가는 길은 칸사라이 갔던 길을 그대로 되밟아가는 길. 그러므로 길은 당연히 내리막이었어요. 매우 빨리 구시가지로 가는데 별로 힘들지도 않고 숨이 차지도 않았어요. 내려갈 때에는 올라갈 때와 달리 주변을 감상하며 천천히 내려올 여유는 없었어요. 이제 시간이 늦었거든요. 성문 앞에서 사진 찍었을 때가 저녁 5시 50분. 하늘만 보면 아직 시간적 여유가 많아 보였지만 시간을 확인해보면 그렇지 못했어요. 카라반사라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 53분이었어요. 내리막길이라고 신나게 내려왔더니 3분만에 내려왔어요. "이제 천천히 가자." 친구가 천천히 가자고 했어요. 저도 빨리 갈 마음이 없었어요. 카라반사라이부터는 천천히 둘러볼 생각이었거든요. 카라반사라이는 대상들이 머물던 숙소에요. 지금도 ..

두 개의 장벽 - 32 아제르바이잔 셰키 칸사라이

우리가 머물 숙소 위치가 매우 이상한 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카라반사라이와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칸사라이부터 갈까?" 이미 4시였어요. 여기도 밤은 늦게 찾아올 거에요. 하지만 밤이 늦게 온다고 해서 가게와 박물관도 늦게 문을 닫는 것은 아니었어요. 큰 길로 걸어나가는 길. 이미 여기에서부터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라고 느끼고 있었어요. 칸사라이는 큰 길을 타고 쭉 올라가야 했어요. 칸사라이부터 신시가지까지 이어지는 길은 경사가 있는 길이었어요. 칸사라이쪽은 올라가는 쪽. 푸른 산과 고풍스러운 건물들. 중앙아시아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의 건물들이었어요.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산지라서 그런지 그렇게 많이 덥지는 않았어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계속 걸어올라갔어요. 셰키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정말 유..

두 개의 장벽 - 31 아제르바이잔 셰키

아침 일찍 씻고 호스텔에서 나왔어요. 호스텔에서 나와 주인 아저씨께서 알려주신대로 버스를 탔어요. 이체리 셰헤르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 이체리 셰헤르 역 앞 버스정거장에서 137번 버스를 타면 버스 터미널까지 바로 가요. 아침이라 그런지 버스에 사람이 많았어요. 버스는 익숙한 길을 지나 낯선 길로 접어들었어요. 하지만 왠지 본 듯 했어요. "이거 작년에 바쿠에 도착했을 때 그 버스정거장이다!" 처음 가는 길인줄 알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작년에 갔던 그 길이었어요. 창밖에 28 May 역이 나타났어요. 만약 굳이 전철로 버스 터미널에 가겠다고 고집한다면 이 역에서 내려서 한참 걸어들어가야 해요. 터키 청년은 아마 이 역에서 내려서 걸어갔겠죠. 그렇게 전철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니까요. 하지만 주인..

두 개의 장벽 - 30 아제르바이잔 바쿠 하즈 술타낼리 모스크

바쿠에 있는 러시아 교회를 보고 나니 갈 곳이 없어졌어요. 일단 발길 가는 대로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마음을 비웁시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어요. 여기는 아제르바이잔 바쿠. 투르크메니스탄이 아니야. 시간에 쫓기지 않아. 우즈베키스탄과 비교하며 보려는 태도는 이제 필요 없어. 예전에 했던 것처럼 그냥 보고 느끼면 돼. 그런데 저건 우즈베키스탄에서 보던 구멍가게랑 다를 게 없잖아! 여기는 아제르바이잔이야. 언제나 그래왔듯 내게 여행이란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확인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 확인을 하고 느끼며 다니면 돼. 그런데 지금 내 머리 속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우즈베키스탄이고, 지난 여행에서 느꼈던 아제르바이잔이야. 다를 게 없잖아! 모든 걸 다 잊고 돌아다닐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그..

두 개의 장벽 - 29 아제르바이잔 바쿠 아르메니아 교회, 러시아 교회

오늘도 어김없이 분수 광장으로 가는 길. 이체리 셰헤르를 감싸고 있는 성벽을 한 장 찍었어요.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성벽. 하지만 이 성벽에서 중요한 것은 돌이 아니라 돌 사이에 시멘트처럼 발라져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랍니다. 작년에 왔을 때 여기에서 아제르바이잔 친구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이 성벽을 지을 때 계란을 섞어서 돌을 쌓았다고 했거든요. 그때는 이런 것을 찍을 생각도 못했어요. 그때는 갑자기 기온이 껑충 뛰어서 그거에 적응하는 것조차 버거워했을 때였어요. 더욱이 그때 머물렀던 숙소는 지하철 하타이 역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가야 하는 애매한 곳에 위치한 호텔이었구요. '오늘은 무엇을 해야 시간을 잘 보냈다는 소리를 들을까?' 분수 광장에 가는 이유는 할 게 없어서. 이체리 셰헤르 ..

두 개의 장벽 - 28 아제르바이잔 바쿠 처녀의 탑

2012년 7월 8일 일요일. 느긋한 일요일 아침. 여행 계획을 짤 때 정말 신경 많이 써야하는 부분이 있어요. 저 역시 여행을 처음 할 때에는 이 부분에 신경을 안 썼고, 그로 인해 낭패를 크게 본 적이 있었어요. 일요일을 조심하라. 바로 이거에요. 일요일은 정말 조심해야 해요. 반드시 여행 계획 짤 때 필히 체크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우리나라는 그래도 일요일에 문 여는 가게들이 많지만 그것은 우리나라 이야기. 특히 유럽은 일요일에 당연히 놀아요. 지금 생각해 보아도 몰타에서의 일요일 오후는 정말 최악으로 심심한 시간. 제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아도 몰타에서의 일요일 오후만큼 심심했던 시간은 많지 않아요. 일요일은 뭘 해도 심심하고 흥이 안 나요. 더욱이 환전 문제까지 걸려 있다면 더더욱 최악. 월요일은..

두 개의 장벽 - 27 아제르바이잔 바쿠 테제 피르 모스크

호스텔에 돌아와보니 우리와 같이 놀던 터키 청년이 짐을 싸고 있었어요. "오늘 가?" "응. 버스로 조지아 가려구." "지금?" "아니, 이따 밤에." 터키 청년은 야간 버스 이동을 해서 조지아 트빌리시에 갈 거라고 했어요. 트빌리시 도착하면 새벽 2시라고 했어요. "너 러시아어 알아?" "아니." 이 녀석 정말 걱정되네. 이 터키 청년의 계획은 버스에서 내려 밤을 새고 공항으로 가는 것. 러시아 가는 비행기표가 그 시각에 밖에 없어서 그렇게 한다고 했어요. 오늘 바쿠를 구경하고 가느라 그 방법 밖에 없다고 했어요. 너 어제도 머물렀잖아? 야간 이동 자체가 걱정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야간 이동은 피곤해서 문제이지, 위험한 것은 아니니까요. 문제는 트빌리시 도착 시각. 이게 새벽 2시라고 했어요. 이건 피..

두 개의 장벽 - 26 아제르바이잔 바쿠 테제 바자르

역시나 우리가 가장 늦게 일어났을 거라 생각했어요. 오늘도 9시를 훌쩍 넘겨서 시작하는 아침. "우리 말고도 아직 자는 사람들이 있긴 있구나." 전날 새로 들어온 노르웨이인 두 명은 아직도 자고 있었어요. 둘은 어제 제가 잠들 때까지 호스텔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전날 1시에 제가 잤으니 정말 꼭두새벽에 들어왔겠죠. 지금까지 자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느긋하게 맞이하는 아침. 특별한 일정도 없는 아침. 느긋하게 차를 한 잔 마시며 하루를 시작할까 하는데 아랫배가 싸르르 아팠어요. 아무래도 전날 케밥이 맛있다고 두 번 먹었는데 이게 탈이 난 것 같았어요. 워낙 기름기도 많고, 며칠 거의 굶다시피 하다 갑자기 마구 먹어대서 문제가 생긴 것.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여행지에서 이런 일을 ..

두 개의 장벽 - 25 아제르바이잔 바쿠

2012년 7월 6일 햇볕이 많이 안 드는 방이라 정말 정신 없이 잤어요. 아마 긴장이 다 풀려서 그랬을 거에요. 여행을 다니며 걱정이 있고 근심이 있다는 것은 자양강장제를 먹는 것보다 좋아요. 이런 걱정과 근심은 자신을 긴장하게 만들고, 이게 힘을 주고 통증을 잊게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여행에서 오래 버티는 요령은 어느 정도의 걱정거리와 근심거리를 꾸준히 제공하는 거에요. 며칠 머물다 이동해야 한다든지, 너무 푹 퍼지지 않게 일정을 적당히 조절하거나요. 그런데 교과서를 구입한 후 너무 마음을 놓아버렸어요. 바쿠에서의 일정은 아주 길었어요. 그런데 바쿠는 작년에 와서 한 번 둘러보고 갔어요. 정말 급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갑자기 그렇게 크게 통증을 느낀 게 아닌가 싶었어요. 눈을 뜨니 오전 10시..

두 개의 장벽 - 24 아제르바이잔 바쿠

이제 여기에서 남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아제르바이잔에서 사용하는 아제르바이잔어 교과서 구입. 타지키스탄도, 우즈베키스탄도, 투르크메니스탄도, 아제르바이잔도 전부 고유의 언어를 사용해요. 물론 러시아어도 사용하구요.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아직도 러시아어가 아주 널리 광범위하게 쓰이고,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은 그렇지 않아요. 이것은 국민을 구성하는 민족의 비율, 그리고 지배적 위치에 있는 민족과 그 외 민족의 힘에 따라 달라져요. 투르크메니스탄와 아제르바이잔에서 투르크멘인들과 아제리인들은 러시아인을 비롯한 다른 민족에 비해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러시아어를 박멸하려고 하면 박멸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꼭 그렇다고 할 수 없어요. 게다..

두 개의 장벽 - 23 아제르바이잔 바쿠

배가 항구에 정박할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여권!" 배에 탈 때 여권을 걷어갔어요. 그 여권을 아직 돌려받지 못했어요. 이제 곧 내려야 할 텐데 여권이 없었어요. 똑똑똑 선원이 우리에게 내릴 준비하고 방에서 나오라고 했어요. 그리고 열쇠를 가져갔어요. 짐은 이미 깔끔히 다 쌌어요. 여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뿐이었어요. 일단 나오라고 해서 나갔어요. 출구쪽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 배에 탄 사람들이 얼마 없어서 배에 탄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는데 크게 북적이지는 않았어요. 단지 통로가 좁아서 그 적은 인원으로도 북적거리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선원이 사람들 이름을 호명했어요. 호명된 사람이 선원에게 가면 무슨 종이쪼가리가 꼽힌 여권을 주었어요. 드디어 우리 차례.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실..

두 개의 장벽 - 22 카스피해

'아제르바이잔에서 얼마나 머무를 수 있지?' 배에 누워 있는데 마음이 무작정 편하지는 않았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예상보다 지출이 컸던데다 아제르바이잔 바쿠는 숙소비 비싸기로 유명한 곳. 친구가 숙소를 찾아보았는데 저렴한 숙소는 딱 한 곳 밖에 없다고 했어요. 론니플래닛 구 버전 (2012년 최신판 나왔음)에 나온 저가 숙소는 죄다 없어졌어요. 당장 숙소비가 문제였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은 시간과의 싸움이었고, 아제르바이잔은 돈과의 싸움이었어요. 남아 있는 달러는 얼마 안 되었어요. 이 돈으로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정해진 일정까지 버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 우즈베키스탄으로의 귀국일은 2012년 7월 16일이었어요. 7월 16일까지 버텨야 하는데 물가 비싼 아제르바이잔에서의 일정은 오히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

두 개의 장벽 - 21 투르크메니스탄 결산

갑판 위에서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다 다시 객실로 들어왔어요. "사람 더 들어올까?" "글쎄..." "왠지 안 들어올 거 같지?" "그렇기는 해." 사람에 비해 객실이 많았어요. 게다가 우리는 외국인에 동양인. 러시아인이라면 투르크메니스탄인, 또는 아제르바이잔인과 섞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왠지 우리 방에는 사람을 더 집어넣을 거 같지 않았어요. 더 들어온다 해도 상관 없었어요. 둘이 마땅히 할 것도 없었거든요. 2층으로 올라가 시트를 깔고 드러누웠어요. "자려고?" "좀 누워 있게." 어제 에어컨에 시달려 몸도 안 좋고 잠도 설쳐서 피곤했어요. 친구는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했어요. 창문으로 바다 냄새가 들어왔어요. 이 얼마만에 맡아보는 바다 냄새냐. 작년 여름에 잠깐 내려갔다 왔으니까 바다 냄새 못 맡은지..

두 개의 장벽 - 20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멘바쉬

"여권!" 11시. 경찰이 대합실 사람들에게 여권을 달라고 했어요. "무슨 여권 검사하나?" 경찰은 단순히 여권을 검사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여권을 싹 걷어갔어요. 20명 채 안 되는 인원들이 끼리끼리 무리지어 있었는데 우리는 3등 했어요. 1, 2등 모두 그룹. 1등은 러시아 여권을 건넨 가족. 딸 한 명과 대머리 러시아 남자와 여자였어요. 2등은 투르크멘인 무리. 3등은 우리였어요. "오늘 가기는 가나 보다!" 이 지루함. 이 추위. 이 콧물. 이것들로부터 드디어 해방인가? 이 나라는 들어올 때도 기다렸는데 나갈 때도 기다리는구나. 다시 한 번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받기 위해 기다렸던 그 기다림들을 떠올렸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 악몽 같던 나날들. 제발 비자 나오라고 빌던 ..

두 개의 장벽 - 19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멘바쉬

기차에서 나와 거리로 나왔어요. 기차역 건물을 통과하지 않고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여서 건물 안은 들어가지 않았어요.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달려드는 택시기사들. 버스를 타고 가든 걸어 가든 웬만해서는 돈을 아끼고 택시를 탈 마음이 없었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므로 가격을 물어보았어요. "항구." "5마나트." "에...안 타요." 일단 항구는 기차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쭉 가면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택시 요금은 한결 같이 5마나트를 불렀어요. 3마나트면 타겠는데 모두가 5마나트라고 불러서 택시 기사를 뒤로 하고 길을 건넜어요. 정말 '워크잘'스럽게 생겼네... 철 냄새가 풍길 것 같은 바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차역. 아무리 보아도 저건 놀이동산이지 기차역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정말 이 나라 정부..

두 개의 장벽 - 18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 - 투르크멘바쉬 기차

기차에 타서 정해진 좌석으로 갔어요. 설마 우즈베키스탄 기차랑 비슷할 건데 침대가 세 개 있겠어? 세 개 있다면 그건 진짜 폐급 기차다. 말이 3층 침대이지 실제로는 2개만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기차 안으로 들어갔어요. 당신은 정확히 틀리셨습니다. 일단 기차가 우즈베키스탄 기차와는 비교도 안 되는 최신식 기차였어요. 내부는 꽤 깨끗했어요. 그리고 방은 정확히 침대가 3층으로 2개 있는 6인실이었어요. 꽤 재미있었던 것은 방문을 잠글 수 없게 되어 있었다는 것. 그냥 문을 잠그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문이 없었어요. 아주 예전에 다녀오신 여행자분들 글을 보면 문을 잠그고 안에서 해바라기씨 까먹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제는 문이 아예 없으므로 잠그고 나발이고 없어요. 일단 가방은 1층 침..

두 개의 장벽 - 17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

교과서를 못 구했다. 잠 못 드는 밤은 아니었어요. 잠은 아주 실컷 잘 잤어요. 꽤 깊게 잘 자서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났어요. 오늘은 아슈하바트를 떠나는 날. 저녁 기차를 타고 투르크멘바쉬로 이동하는 날이에요. 저녁까지는 시간이 있었어요. 전날 대충 세수비누로 빨아놓은 옷은 모두 잘 말라 있었어요. 짐을 하나하나 꾸리며 오늘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했어요. 심란한 아침이다. 마음이 편할 리 없었어요. 포기하면 쉬워. 그냥 포기해버려. 이렇게 생각을 하며 세뇌를 시키려 했지만 되지 않았어요. 제가 묵었던 다이한 호텔 방이에요. TV를 틀어 보았는데 나오는 채널도 없고,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지도 잘 몰라서 딱 한 번 틀어보고 말았어요. 가장 열심히 사용한 건 에어컨과 냉장고. 호텔 카운터에 혹시 짐 좀 맡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