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29 아제르바이잔 바쿠 아르메니아 교회, 러시아 교회

좀좀이 2012. 9.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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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분수 광장으로 가는 길.




이체리 셰헤르를 감싸고 있는 성벽을 한 장 찍었어요.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성벽. 하지만 이 성벽에서 중요한 것은 돌이 아니라 돌 사이에 시멘트처럼 발라져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랍니다. 작년에 왔을 때 여기에서 아제르바이잔 친구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이 성벽을 지을 때 계란을 섞어서 돌을 쌓았다고 했거든요. 그때는 이런 것을 찍을 생각도 못했어요. 그때는 갑자기 기온이 껑충 뛰어서 그거에 적응하는 것조차 버거워했을 때였어요. 더욱이 그때 머물렀던 숙소는 지하철 하타이 역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가야 하는 애매한 곳에 위치한 호텔이었구요.


'오늘은 무엇을 해야 시간을 잘 보냈다는 소리를 들을까?'


분수 광장에 가는 이유는 할 게 없어서. 이체리 셰헤르 안에 숙소가 있다 보니 이체리 셰헤르를 할 일 없이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어요. 어차피 다른 곳 갔다가 항상 지나다니는 곳이라 거기를 하루 일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거든요. 다음날 아침 일찍 셰키로 가야 했기 때문에 특별히 멀리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많이 걷고 싶지도 않고 힘들게 바쿠를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렇다고 재미없게 이체리 셰헤르 안을 뱅글뱅들 돌 수도 없는 일. 그래서 무작정 일단 분수 광장으로 갔어요.



벤치에 앉았는데 마땅히 할 게 떠오르지 않았어요.


할 일 없이 거리를 둘러보았어요.



일요일이기는 했지만 이쪽에는 사람들이 그럭저럭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사진 왼쪽 진한 빨강 간판은 환율이 적힌 간판. 1유로를 살 때 0.99 마나트를 지불해야 해요. 유로보다 더 비싼 아제르바이잔 마나트의 위엄. 아쉽게도 아제르바이잔 마나트가 영국 파운드보다는 가치가 낮아요.


이 정말 여행과 안 어울리는 어색한 기분. 여행 와서 무엇을 할 지 모르겠다는 건 제게 너무 어색했어요. 항상 강행군을 하는 여행을 해 왔어요. 그리고 항상 강행군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 준비하고 대비해 왔구요. 미리 조금이라도 현지어를 보아 두고, 심심할 때마다 다른 나라의 역사와 정치, 경제, 문화 관련된 것을 찾아 읽어보는 것 모두 언젠가 어디론가 떠날 여행에서 할 강행군을 위한 준비. 그래서 여행에서 이런 상황이 닥치니 정말 난감했어요. 비싼 숙박비 물어가며 타슈켄트에 있는 집보다 불편한 호스텔에 머무르며 빈둥거리는 것은 너무 시간 낭비에 돈 낭비이고, 하지만 무언가 하려면 반드시 돈이 드는데 돈은 충분하지 않고...이런 시간이 여행 중 한 두 번 있다면 체력보충도 하고 쉬는 날로 적당히 넘기면 되지만, 이번 여행은 이런 시간 투성이였어요. 바쿠에 들어온 후부터는 이런 시간이 이어져 왔고, 이런 시간이 계속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었어요.


이 상황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적응이 쉽지 않았어요. 남은 날 동안 바쿠 숙소에서 빈둥거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일단 셰키 다녀와서 할 일이 없는 것은 그때 해결할 문제이고, 중요한 것은 오늘, 그리고 오늘 중에서도 지금. 계속 바쿠 지도를 보며 오늘은 대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했어요.


"여기 근처에 아르메니아 교회 있다는데?"


바쿠 지도에 아르메니아 교회가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 아르메니아 교회?


이것은 분명 갈 가치가 있었어요. 여기는 아르메니아를 지상 최고의 주적으로 여기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 지금도 러시아군이 아르메니아를 지켜주니까 이 동네가 조용한 것이지, 러시아가 이 동네에서 손 떼는 순간 바로 전쟁나도 이상하지 않은 동네에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전쟁은 여러 강대국과 주변 국가들이 얽혀 있는 국제적 문제이니 아직 다시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아제르바이잔 내의 반 아르메니아 감정은 전혀 다른 이야기에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 나라 내부의 문제. 더욱이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의 내부 문제에 전혀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 문제는 전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의 문제. 아제르바이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터키 정부도 아르메니아를 매우 싫어해요. 이런 곳에 아르메니아 교회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분명 놀라운 거에요.


지도에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직 파괴는 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지난해 여기 왔을 때 느꼈던 이 지역 민족 감정이 떠올랐어요. 그 민족 감정과 갈등 속에서 남아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라...


게다가 분수 광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많이 걸을 필요도 없었어요.


"아르메니아 교회 가자! 이 근처에 있어!"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바쿠에 있는 러시아 교회도 가 볼까? 러시아 교회도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있었어요. 전날 모스크 2개를 보았으니 오늘은 바쿠에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와 러시아 교회 구경?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할 게 없던 차에 무언가 할 게 생겨서 좋았어요. 이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요. 친구도 여기에 아르메니아 교회와 러시아 교회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한 번 가보자고 했어요.


지도를 들고 아르메니아 교회가 있다는 곳으로 갔어요.


"여기 맞지 않아?"


분명 지도에 아르메니아 교회가 있다고 나와 있는 지점에 왔는데 교회는 없었어요. 그러면 그렇지. 아르메니아 교회가 멀쩡히 바쿠에 남아 있을 리가 없잖아. 1990년대에 다 때려부셨겠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헤이데르 알리예프는 아제르바이잔이 독립한 후부터 서거할 때까지 계속 아제르바이잔의 대통령이었던 분은 아니에요. 그 전에 '애뷜패즈 엘치베이'라는 분이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었어요. 이분은 극단적 튀르크 민족주의자. 그리고 이분 집권시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은 격화되었고,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에게 대패하고 있을 시기였어요. 이분 집권기에 바쿠에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가 멀쩡히 남아 있었을 거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아마 다 때려부수고 그 위에 아제르바이잔 전몰자 추모비를 세웠다고 하는 게 더 믿음직한 이야기.


그러나 지도에는 분명히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친구와 아르메니아 교회가 있다고 나와 있는 자리를 몇 바퀴 뱅글뱅글 돌았어요. 하지만 당연히 아르메니아 교회는 없었어요.


"그러면 그렇지, 바쿠에 아르메니아 교회가 있을 리 없잖아."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소리. 아제르바이잔인들에게 아르메니아 어떻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다 한결같이 아르메니아는 볼 것 없고 아르메니아인들은 매우 나쁜 사람이라고 대답해요. 아르메니아라면 이를 가는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아르메니아 교회를 멀쩡히 놔두었다구요? 이미 소련 말기부터 아제르바이잔인과 아르메니아인들의 민족 갈등은 악화되고 있었어요.


아제르바이잔 현대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세 개는 다음과 같아요.


1988년 2월 26일-3월 1일 숨가이트 사태

1990년 1월 20일 바쿠 검은 1월 사건 (Black January)

1992년 2월 26일 호잘리 학살


소련 말기,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공화국이 아르메니아와의 병합을 추진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인과 아르메니아인의 갈등이 격화, 결국 폭발하였고, 그 결과 아제르바이잔에 반소 감정이 확 퍼져버렸어요. 이게 결국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공화국의 독립 문제로 시작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러시아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이 대패하게 된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구요. 저 세 개는 이 아제르바이잔 현대사의 흐름의 상징 같은 거에요.


중요한 것은 이런 역사 속에서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 아르메니아 교회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거였어요. 때려 부셔도 열 번은 더 때려부셨을 시간. 지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러시아 교회로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혹시 저거 아닐까?"


친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물.



왜 이것을 계속 지나쳤지?


지도에 '아르메니아 교회'라고 나와 있어서 저 혼자 너무 많은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그냥 별 생각을 안 하고 별 기대를 안 했다면 오히려 쉽게 찾았을 거에요. 그런데 혼자 '아르메니아 교회'라는 말을 듣고 그 이상의 것 - 아직도 교회 기능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했던 것이었어요. 그러니 당연히 못 찾죠. 단지 건물만 남아 있을 뿐이었어요. 들어갈 수는 없었어요. 교회 건물 일부는 다른 용도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었어요.


여기는 정말 바쿠에 아르메니아 건물이 남아 있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어요. 그래도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기적.


다음 갈 곳은 러시아 교회.


'러시아 교회는 그래도 볼 만 하겠지?'



제발 러시아 교회는 아르메니아 교회처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랬어요. 겨우 찾은 목표인데 아르메니아 교회 건물처럼 실망만 가득 얻어오기를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러시아 교회 역시 큰 길가에 있지 않고 골목으로 들어가야 했어요. 한 가지 다행이라면 골목으로 들어가도 크게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다는 것. 그냥 한적한 동네 골목이었어요. 지도를 보며 러시아 교회를 찾아갔어요. 골목에서 크게 헤멜 것 까지는 없었어요.



러시아 교회를 찾아 입구를 통과했어요.



확실히 맞게 찾아왔어요. 딱 보아도 이것은 교회.



응?



정말로 딱 교회였어요. 재미있는 것은 여기 오니 러시아어가 주변에서 들린다는 것이었어요.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당연히 러시아인들. 이들은 여기에서 러시아어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안으로 들어갔어요. 내부 사진은 찍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예배를 보러 오는데 사진은 찍지 말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없으면 사진을 찍어도 상관 없는 곳이었지만, 사람들이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해서 찍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솔직히 사진을 찍을 가치도 없는 곳이었어요. 정말 별 볼 일 없는 예배당 수준이었어요.



이렇게 보면 왠지 무언가 볼 것이 있을 것 같지만 정말로 볼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러시아 교회. 차라리 아르메니아 교회는 못 들어가니까 무언가 신비감이라도 있지, 여기는 들어가보니 실망감만 가득 있었어요.


내가 여기 왜 왔을까?


여기를 왜 가야하는지조차 의문. 스스로 계획을 세워 오기는 했지만 정말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와야할 이유가 정말 없었어요. 제가 러시아 정교 신자라서 예배를 드리러 온 것도 아니고, 그냥 구경하러 온 것인데 구경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우리나라 애오개에 있는 정교 교회가 훨씬 볼만했어요. 아무리 여기가 이슬람 국가라지만 이 정도를 굳이 지도에 표시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러시아인들을 위해 특별히 표시해 놓은 것인가? 대체 왜 이게 지도에 표시가 되어 있을까?


여기 와서 얻은 것은 실망감. 어떻게 시간을 때우기는 했지만 커다란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어쩌면 이게 이 나라에서 러시아인들의 지위가 어떤지 잘 보여주는 지표 역할을 할 수도 있어요. 러시아인들이 힘이 없으니 교회도 저렇게 볼 품 없겠죠. 정말 볼 게 너무 없고 보고 나서 너무 허무해 뭐라 할 말이 없었어요. 기억나는 거라면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너무 낮아서 머리를 박았다는 것 정도. 너무 실망이 커서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아서 오히려 들어가다 문에 머리를 박고 아파서 머리를 문지르며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갔던 것만 뚜렷하게 잘 기억나요.


직접 가서 보기 전에는 나름대로 아름다울 것이라 기대했어요. 하지만 실제 보고 나서의 기분은 딱 하나 뿐이었어요.


정보가 너무 자세해도 여행자에게 좋을 것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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