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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무계획이 계획 (2008) 8

무계획이 계획 - 마지막화

드디어 그 날이 찾아왔어요. 말 그대로 소심한 복수. 어차피 더 짤릴 월차도 없어요. 8월에 때려치니까요. 눈은 일찍 떴어요. 그러나 오늘 하루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다보니 아침 9시가 되었어요. 친구는 곤히 자고 있었어요. 슬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뭐라고 이야기해야 정말 약오르고 화나게 할 수 있을까? 사실 무단결근 자체가 열받는 일이겠지만 어설픈듯 하면서 그럴싸한 거짓말을 해야 더 열받게 되는 법. 오늘 하루 무엇을 해야 보람찰지 생각하고 무슨 말로 열받게 할까 생각하다보니 드디어 전화를 할 시간이 되었어요. 아침 10시 반. 오전 작업 지시 및 회의가 아무리 길어져도 오전 10시 반 이전에는 끝났어요. 즉 지금이 전화를 걸 타이밍. 뚜루루루 "여보세요." "파트장님, 저에요." "왜 안 오세..

무계획이 계획 - 06 (2008.08.10)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에는 새벽이었어요. 이미 전철도 끊이고 버스도 끊겨서 이동하려면 무조건 택시를 타야 했어요. 꾸벅꾸벅 졸면서 비틀비틀 걸어나오다 마주친 것은 택시기사들. 하지만 그 아저씨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동서울터미널에서 인사동까지 3만원을 부르고 있었어요. 가볍게 무시하고 가려는데 택시기사 두 명이 일본인 여자 관광객 두 명에게 5만원을 불렀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으로 보아 그 일본 관광객들은 한국에 온 지 얼마 된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 시각에 인사동을 간다고 했겠죠. 새벽의 인사동은 제가 밤에 돌아다녀본 서울에서 가장 추한 지역 중 하나. 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날 뿐, 그 어떤 활기도 안 보이는 곳. 사회 시간에 배우는 인구 공동화 현..

무계획이 계획 - 05 (2008.08.08~09) 강원도 속초

사이좋게 분노해서 강릉을 떠나기로는 했는데 어디 갈 지 결정은 못했어요. "서울을 그냥 일찍 들어가 버릴까?" "거기 일찍 가봐야 할 거 없어." 가뜩이나 서울에서 5년간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불필요하게 오래 머무는 것은 내키지 않았어요. "어디 가지?" 일단 술값을 계산한 후 밖으로 나왔어요. "PC방가서 한 번 찾아보자." PC방에 들어갔어요. 그래도 일단 강원도에서 하나라도 더 보고 가고 싶었기 때문에 강원도 전 지역을 찾아보았어요. "동해 어때?" 지도를 보았어요. 강릉처럼 차 없이 돌아다니기에는 최악의 조건. "영월 어때? 동강 있잖아." 영월도 마찬가지. "춘천 어때?" 춘천도 마찬가지. "아...진짜 어디 가지?" 어디를 가든 차 없이 돌아다니기에는 다 최악. 아무리 검색해도 답이 없었어요..

무계획이 계획 - 04 (2008.08.08)

강릉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 이 사실 하나로 강릉 여행이 어땠는지 확실히 설명된다. 강릉에 도착했어요. 둘 다 피로에 절어 있었어요. 날은 엄청나게 뜨거웠어요. 가만히 서 있는데도 땀이 좍좍 났어요. 계획 없이 왔기 때문에 당연히 길도 모르고 정보도 없었어요. 강릉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면 오직 하나 - 경포대 해수욕장 뿐이었어요. 일단 택시를 잡아타고 경포대로 갔어요. 경포대 해수욕장이야 워낙 유명하니까 거기에서 저렴한 민박에 들어가 짐을 풀고 쉴 생각이었어요. "망했다..." 그래요. 이때는 성수기. 어마어마하게 더운데다 방학이라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었어요. 저렴한 방이 있을리 만무한 상황. 그때 우리 예산으로는 1박 5만원이었는데 경포대에서 방을 빌리려면 1박 10만원. 이건 매우 중요한 문..

무계획이 계획 - 03 (2008.08.08)

범어사를 가기 위해 전철을 탔어요. 하지만 밀려오는 잠. 친구와 사이좋게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어요. 범어사를 3정거장인가 남기고 다시 일어났어요. 그러나 기억 안 나요. 다시 잔 것 같아요. 친구랑 저랑 엇박자로 깨었고, 서로 깨우지 않고 다시 잤어요. 눈을 떴을 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지하철 종점. "야, 범어사 갈까, 말까?" "가지 말게. 귀찮아." 정말 극도로 피곤했어요. 그냥 만사 귀찮았어요. 어디 드러누워서 푹 자고 싶었어요. 하지만 부산에서 1박 하면 촉박한 여행 일정 때문에 일정이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이렇게 일정 하나하나가 상당히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우리집은 제주도! 그래요. 우리 둘의 집은 제주도에요. 가뜩이나 성수기라 비행기표를 겨우 잡았어요. 만약 비행기를 못 탄다면..

무계획이 계획 - 02 (2008.08.08)

피씨방에서 할 일 없이 친구와 컴퓨터를 했어요. 슬슬 잠이 오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잠은 잔잔한 파도가 되어 머리를 두드렸어요. 정말 '처얼썩 처얼썩 부딪히는 작고 부드러운 파도'처럼 잠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야, 나가자. 나가서 바다나 보자." 새벽 5시. 친구와 사이좋게 밖으로 나왔어요. 여름인데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았어요. 이제 목표는 광안리. 제 주변 부산 사람들은 한결같이 해운대보다는 광안리를 추천했어요. 그래서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어요. 계획이고 나발이고 뭐가 있어야 효과적으로 움직일텐데 그런 것이 아예 없었어요. 믿는 것이라고는 주변 사람들의 말. 어쨌든 해운대보다 광안리가 좋다고 했기 때문에 광안리에 가서 일출을 볼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광안리 가기도 전에..

무계획이 계획 - 01 (2008.08.07)

회사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가방을 등에 메고 갔어요. 모두에게 여행갈 거라고 자랑했어요. 여행 자금을 조금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 회사에서 혼자 점심에 공부하며 밥을 안 먹고 있었어요. 이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날은 그냥 하루 종일 여행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이제 2주일 정도만 회사 오면 퇴사였기 때문에 제가 마무리하던 일만 적당히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어요. "이야, 좋겠다!" 월차가 밀리는 최악의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월요일에 월차를 쓰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일주일을 버텨서 드디어 금요일이 된 것이었어요. 모두가 아주 여행간다고 잔뜩 티를 내고 출근한 저를 보며 한 마디씩 했어요. 어차피 퇴사가 코앞인데다 여행은 몇 시간 후면 출발할 거라 정신줄 놓고 근무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날 두 가지 ..

무계획이 계획 - 프롤로그

2008년 여름. 회사를 그만두기로 작정했어요. 그러던 중 다니던 회사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 곳을 발견했어요. 근무는 열악하지만 일단 고향을 떠날 수 있고, 월급이 다니는 직장보다 괜찮았어요. 사실 집에서 출퇴근하며 부모님과의 다툼이 많았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일만 하고 오는 것은 힘들었어요. 더욱이 대학을 고향에서 나오지 않아 ‘동질성’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동기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느끼는 답답함은 친구들을 만나 푸는데, 집에서는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는다고 상당히 싫어했어요. 사실 집에서 그 회사 다니는 것 자체를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부모님과 수시로 다투었어요. 집에서조차 쉴 수 없으니 상당히 피곤했어요. 나름 전망이 있겠다고 생각해 들어간 회사에서 느낀 것은 전망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