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우리가 아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갔어요. 버스가 간 길은 큰 길이 아니라 이맘 후세인 모스크 옆 길로 들어갔어요.
"이 버스, 원래 여기로 다니는 버스 맞나?"
이맘 후세인 모스크 주변은 버스가 다니게 생긴 길이 아니에요. 물론 다닌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지만 버스가 다니기에는 일단 길이 너무 좁았어요. 오늘도 현충공원으로 가는 무료 전동차가 운행하지 않는 것과 버스가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있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이맘 후세인 모스크에서 내려서 현충공원까지 걸어가기에는 가깝지 않은 거리. 게다가 지금은 낮이라 그렇게 걷기에는 더웠어요. 버스는 동상이 있는 로타리에서 공원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더니 버스를 세웠어요.
'혹시 여기에서 내려서 가라는 건가?'
다행히 버스는 손님을 내려주고 유턴해서 공원이 있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어휴...공원에서 더 멀어지는 줄 알았네.'
버스 하나 잘못 탄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겠어요. 그냥 많이 걸어가면 되죠. 사실 이게 문제에요. 바쿠는 택시비가 비싸요. 우즈베키스탄이면 버스 잘못 타서 엉뚱한 곳 가면 택시 타고 가도 되요. 하지만 바쿠에서 그러려면 꽤 많은 돈을 주어야 해요. 이제 둘 다 아제르바이잔 마나트가 정말로 간당간당하게 남았어요. 택시비가 설령 2마나트 나오더라도 약간은 부담스러웠어요.
"우리 그냥 내려서 걸어갈까? 이 버스 완전 엉뚱한 곳으로 가 버리는 거 아니야?"
아는 건물이 보였어요. 딱 보니 큰 길을 따라 쭉 직진하면 현충공원까지 갈 수 있었어요. 거리상으로도 그렇게 크게 먼 거리도 아니었고, 그늘 아래로 갈 수도 있었어요. 여기도 생각만큼 습하지 않아서 그늘로 들어가면 양달보다는 시원한 곳.
여기에서 내렸어요.
저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현충공원까지 갈 수 있어요. 저 건물이 일종의 이정표 역할도 해 주고 있었어요.
"가자."
최대한 그늘로 기어들어가 걸어갔어요. 양달에서 걷기에는 살짝 더운 날씨.
외관은 멋있지만 속은 공사중. 유로비전 개최하느라 일단 외관만 빨리 완성한 건가? 멀리서 보면 정말 눈에 띄는 건물이에요. 흙빛 건물들과 달리 이 건물만 유독 진한 푸른색을 뽐내고 있거든요.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속에서 공사하고 있는 것이 훤히 보였어요. 내장 공사 중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미완성 건물.
"다 왔다!"
이제 저기 보이는 쪽으로 쭉 걸어가는 일만 남았어요.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올 때에도 계속 쭉 걸어왔어요. 특별히 방향을 크게 틀은 적이 없었어요. 어쨌든 오늘의 목표인 현충공원에 다 왔어요.
아제르바이잔 의회.
"전동차만 운행했으면 여기까지 힘들게 걸어올 필요도 없는데..."
투덜대며 국회의사당 사진을 찍었어요. 하지만 투덜댄다고 운행을 재개할 전동차가 아니었어요. 전동차는 월요일에 운행 개시. 그리고 우리는 월요일 아침 일찍 출국. 백주대낮에 전동차를 타 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이제 불가능.
"우리 저거부터 천천히 보고 가자."
전동차 승강장 입구 옆에 있는 터키식 모스크. 지난 번에 왔을 때에는 밤이라서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오늘은 여기 있는 모든 것을 다 보고 가기로 한 날. 모스크도 예외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 모스크 근처 역시 바쿠 전망을 보기 나름 괜찮은 곳.
모스크를 향해 느긋하게 걸어갔어요. 오후 6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아직 사진을 찍을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어요. 급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Şəhidlər Xiyabani
사실 '현충공원'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에요. 아제르바이잔어로 şəhid 는 '전사자'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xiyaban 는 '길' 이라는 뜻이에요. 굳이 번역하자면 '전사자의 길' 정도 되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매우 이상해져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현충공원'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이렇게 보면 그럭저럭 볼 만한 모스크. 하지만 규모가 큰 모스크는 아니었어요. 터키식 모스크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나름 좋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터키식 모스크를 많이 본 사람에게는 그냥 동네 모스크였어요.
이쪽은 모스크 반대 방향.
이쪽은 모스크 옆 방향이에요. 이쪽으로 가도 현충공원이에요.
일단 전망을 본 후에 모스크를 보기로 했어요.
"역시 여기서 전망 보는 것도 좋구나!"
전망을 보며 처녀의 탑을 찾아 보았어요. 확실히 여기에서 처녀의 탑을 찾는 것은 배를 타고 아슈하바트에서 바쿠로 들어가는 길에 처녀의 탑을 찾는 것보다 훨씬 쉬웠어요. 바쿠 전망을 보며 즐길 수 있는 놀이라면 아마 이 '처녀의 탑' 찾기일 거에요. 대체로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바다에 둥실둥실 떠 있는 상태에서 찾기는 쉽지 않아요. 각도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는 숨은그림찾기.
이쪽은 확실히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물론 현충공원쪽에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쪽은 더욱 없었어요. 정말 저와 친구 둘만 있었어요. 모스크 내부에 들어가보려고 했지만, 문이 잠겨 있어서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아쉽지는 않았어요. 바쿠에서 벌써 모스크를 세 개나 보았으니까요. 그나마 내부가 볼 만 했던 모스크라면 단연코, 그리고 유일하게 테제 피르 모스크 뿐. 나머지는 그냥 안 들어가도 충분한 모스크였거든요. 여기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라 추측을 해 보았어요.
전동차 승강장과 그 앞에 있는 석상. 출생과 사망 시기를 보니 2차 세계대전 영웅인 듯 했어요. 이 나라도 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나라에요. 아무리 소련이라는 이름하에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해도 이 나라도 2차 세계대전에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참전했으니까요.
한쪽에는 추모비가 있었어요.
터키 국기와 같이 섞여 휘날리는 아제르바이잔 국기. 여기는 정말 러시아로부터 나날이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구나.
이제 이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러시아를 볼 것이 아니라 터키를 보아야한다는 것이 느껴지는 여러 모습 중 한 모습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