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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2006) 8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7 (마지막화)

새벽 2시 52분 단양 출발 청량리 도착 무궁화 열차의 특징은 바로 이 기차가 중앙선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영동선을 타고 내려온 기차가 중앙선으로 갈아타고 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단양에서 타면 큰 차이는 없다. 단양에서 청량리까지는 중앙선을 타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좌석에 앉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H군이 잤는지 자지 않았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밖은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맑은 날 밤에도 창밖은 열차 안의 불빛으로 인해 거의 보이는 것이 없는데, 비까지 내리니 보이는 것은 창밖에 맺힌 빗방울 뿐이었다. 정신없이 잠을 잤다. 도중에 딱 한 번 깨어났다. 내가 깨어났을 때, 기차는 무슨 강 비슷한 것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강을 ..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6 충청북도 단양

덜커덩 덜커덩 풍기에서 청량리로 가는 막차가 움직였다. 풍기에 대한 아쉬움과 안동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뒤로 하고, 일단은 북서쪽을 향해 몸을 맡겼다. "날씨 좋겠지?" "좋을 거야." 이 짧은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기차 창문에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점점 세게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표는 단양까지만 끊었다. 평일 막차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타지는 않을 것이다. 이대로 쪽팔림을 무릅쓰고 청량리에 갈까? 풍기역에서 청량리행으로 표를 끊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풍기만 해도 날씨가 다시 개고 있었지만, 딱 기차에 타자마자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가 단양까지만 표를 끊었기 때문에 단양 이후부터 우리 좌석은 ..

나의 정말 정신나간 여행기 - 05 경상북도 풍기

풍기에 드디어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풍기에 딱 하나 있는 농협으로 달려갔다. 정말 내가 아는 모든 신이라는 신의 이름은 다 부르며 은행에 뛰어가서 잔액을 확인해 보았다. 과연 끝나지 않는 고난의 행군은 계속될 것인가? 그 결과는 바로 '오늘만은 고난 끝, 행복 시작'이었다! 드디어 매달 들어오기로 되어 있으나, 학교 파업으로 인해 들어오지 않던 봉급이 들어온 것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전날, 학교 직원 앞에서 한 푸닥거리를 한 효과가 바로 나타난 것이었다. H군에게 빌린 돈을 단번에 청산하고, 집에서 빌렸던 돈 역시 모두 갚자 내 수중에는 돈이 또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도 이것이 어디냐...돈 500원을 아끼기 위해 고시원에서 제공되는 김치를 볶아서 매일 밥을 비벼먹다가, 그것도 질려서 나중에는..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4 경상북도 풍기

풍기에서 부석사까지 오는데 기억이 나는 것이라고는 내가 버스비를 2천원 넘게 냈다는 사실 뿐이었다. 버스에서 바로 골아떨어졌기 때문에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풍기로 가는 길 중간에 소수서원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이 났다. 버스가 소수서원에 도착했을 때, 잠시 잠에서 깨어났다. 그때 내가 본 것은 소수서원이 아니라 소수서원 매표소였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돈 내고 들어가는지 돈을 내지 않고 들어가는지만 보였다. 돈을 내고 들어간다고 하면 그 다음부터는 눈에 마땅히 보이는 것이 없었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밤에 몰래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버스비가 비쌌기 때문에 걸어내려가기로 했다. 20km가 조금 넘는 거리였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인간이 한 시간에 도보로 걸을 수..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3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

돌발상황이란 다름아닌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시간이 많이 남았는지 벌써부터 시간을 보낼 생각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불과 30분만에 시장을 거진 다 둘러볼 수 있었다. 골목골목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그 '풍기 인삼시장'이라는 곳만은 얼추 본 셈이었다. 이제 무엇을 하지? 무엇을 하지? 돈만 있다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내게 돈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은 아무리 탈탈 털어보아야 H군에게서 빌린 3만원 가운데 차비를 제하고 받은 7천원과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2천원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벌써 약간 써서 슬슬 위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나 혼자라면 왕복 차비가 있고, 돈 7천원 정도 있으면 최소 이틀간은 실컷..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2 경상북도 풍기

H군이 나를 깨웠다. 너무 피곤해서 다시 자려는데, H군이 말했다. "이제 거의 다 완."(이제 거의 다 왔어) "어디?"(어디인데?) "단양." "풍기 도착함 깨워. 나 넘 피곤행 눈 좀 붙여사켜."(풍기 도착하면 깨워. 나 너무 피곤해서 눈 좀 붙여야겠다) 얼마 후, H군이 나를 다시 깨웠다. "어디?" "풍기." 창밖을 보았다. 풍기역이 보였다. 부리나케 짐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에서 나와 검표원에게 기념으로 표를 가지겠다고 말한 후, 표를 들고 역 밖으로 나왔다. 풍기역 앞에서 H군은 속이 조금 좋지 않다며 화장실에 갔고, 그 사이에 나는 느긋하게 풍기역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운 후, 풍기역 사진을 찍었다. 풍기역은 그냥 평범했다. 특별한 것은 전혀 없는 역이었다. 처음 와보는 곳이기 ..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1 청량리역에서 기차 타고 경북 풍기 가기

H군의 전화로 인해 새벽 한 시에 잠을 깨버리고 말았다. 땡전 한 푼 없어 굶주림을 잊기 위해 일찍 잠이 들었는데, H군의 전화가 나에게 굶주림을 되돌려주고 말았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러나 한 번 도망간 잠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6월 9일에는 시험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이래저래 쉽게 집중이 되지 않았고, 결국 새벽 6시, H군과 나는 당일치기 기차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H군이 전날, 내게 함께 새병열차를 타고 여행을 갈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나는 전날 저녁에 영월에 가서 동강까지 걸어간 후,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도 보고 동강 및 영월을 구경하다가 점심때쯤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H군은 피곤하다고 아침에 여행을..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프롤로그

2006년 초여름. 처음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했어요. 여행답다는 표현을 쓰니 매우 이상하네요. 하지만 기껏해야 지방에 사는 친구집 놀러가는 수준이었던 제가 처음 '여행'으로 생각하고 여행을 갔어요. 이때만 해도 나름 부지런해서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여행기를 썼어요. 지금 여기 올리는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는 2006년 여행 다녀오자마자 쓴 글이에요. 그래서 말투도 상당히 투박하답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겨우 글을 찾았는데 글을 올린 곳의 이미지 서버가 날아가서 사진은 하나도 없더군요. 별도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사진을 정리해 놓은 것도 아니라서 부랴부랴 사진을 찾았어요. 즉, 예전에 쓴 여행기를 다시 복구하는 작업을 했어요. 저의 첫 여행,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