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자다 깨다 반복했어요. 조금 자다 깨어났고, 또 조금 자다가 깨어났어요.
오랜만에 자판기 커피를 마셔서 그런가?
그럴 리는 전혀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자판기로 커피를 뽑아 마시지 못했을 뿐이지,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믹스 커피는 항상 잘 마시고 있었어요. 단순히 커피 한 잔 마셨다고 잠을 못 자는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불빛 때문에?
책을 볼 수 있는 불빛이었지만, 그렇다고 신경쓰이게 밝은 불빛은 아니었어요. 책도 불빛에 비추어야 보이는 것이지, 그냥 책 읽듯 보면 안 보일 정도의 불빛. 그 정도 불빛에 일어날 저라면 늦잠 때문에 고민하는 일도 없죠. 이것도 아니고.
결론은 오직 하나. 낮에 아파서 쓰러져 있었더니 잠이 안 오는 것. 그래서 조금 자다 깨어나고 조금 자다 깨어나고를 반복한 것이라 짐작했어요.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일찍 일어나 버렸어요. 다른 사람들이 다 자고 있어서 혼자 조용히 차를 한 잔 끓여서 밖으로 나갔어요.
아침 공기가 선선했어요. 모처럼 메일 확인도 하고, 블로그 확인도 했어요. 게장이 밥 도둑이라면 인터넷은 시간 도둑. 메일 정도 확인하려고 시작한 인터넷을 계속 했어요. 확실히 쓰는 사람도 별로 없는 시간이라 속도도 괜찮았어요. 메일도 보고, 웹툰도 보고, 뉴스도 보고, 이것 저것 검색도 해 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갔어요. 방에 머무르던 여행자들이 하나 둘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시작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급할 것이 없었어요. 일단 오늘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어제 쓴 엽서를 우체국에 가서 부치는 것. 그것 외에는 마땅히 할 게 없었어요. 그냥 오늘 확 현충 공원 Şəhidlər Xiyabani 나 갔다 와? 현충 공원은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가기 위해 남겨 놓은 것. 이것까지 다녀오면 바쿠에서 더 이상 할 게 아무 것도 남지 않아요. 이제 서점 가는 것도 끊었어요. 돈이 없었거든요. 서점도 안 가고, 매일 가던 거리만 걷는다면 이것은 거의 요양 수준. 요양 수준까지는 참을 수 있었어요.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여행 자체를 지루하게 느끼게 되는 것.
여행자들이 다 씻고 다 나갔어요. 그제서야 씻었어요.
"마지막으로 친구한테 엽서나 한 통 부쳐줄까?"
이 친구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 지금까지 제 여행기들 중 두 번 등장해요. '뭐라카네 (2008)'은 이 친구 집에 놀러갔던 이야기. '7박35일 (2009)'에서 제가 헝가리에서 카드 분실 신고 좀 해달라고 전화로 부탁한 친구가 바로 이 친구에요. 지금까지의 제 여행기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맡은 친구. 이 친구에게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엽서를 부치기는 했지만, 바쿠에서도 한 통 더 보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친구에게는 작년 바쿠에 왔을 때 카드를 부쳐주었어요. 그때 우체국에서 엽서를 안 판다는 사실을 모르고 우체국에 갔는데 엽서를 안 팔아서 카드로 부쳐주었거든요. 바쿠 사진이 인쇄된 카드가 없어서 그때 있는 것들 중 가장 괜찮은 것으로 골라 보내주었어요.
근처 기념품점으로 갔어요. 어떤 사진 엽서를 살까 고민하다 처녀의 탑이 찍힌 사진 엽서를 골랐어요.
"얼마에요?"
"50개픽이요."
돈을 내고 나가려는 순간 직원이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았어요.
"한국이요."
"아제르바이잔어 아세요?"
"예."
안다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사실 잘 몰랐어요. 우즈벡어를 통해 아는 것이고, 문법만 공부해서 사전을 가지고 책을 볼 수는 있지만 아제르바이잔어로 이야기하는 건 정말 어려웠어요. 게다가 무엇만 말하려고 하면 우즈벡어가 먼저 튀어나왔어요. 이것은 너무나 당연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동안 계속 우즈벡어를 사용했고, 여기 말도 우즈벡어 토대에 예전에 공부했던 아제르바이잔어 문법을 떠올려 알아듣는 것이었으니까요. 들으면 대충 알아듣는데 말하려고 하면 특히 동사 변화에서 딱 막혔어요. 그래도 아제르바이잔인이 제게 갖고 있는 간단한 호기심들에 대답을 해주고 호스텔로 돌아왔어요.
호스텔에 돌아와 엽서를 쓰고 책을 보고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친구도 옆에서 책을 보고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벌써 11시네?"
우체국은 12시부터 2시까지 점심 시간. 그래서 우체국에 가서 엽서를 부치기 위해 서둘러 호스텔에서 나왔어요.
우체국에서 엽서를 부치고 또 메르신 카페에 가서 탄투니를 먹고 거리를 돌아다녔어요.
이것이 우리가 바쿠에 있을 때 매일 갔던 메르신 카페. 24시간 영업하는 곳이에요.
"저거 맛있을까?"
폰칙 Ponçik 1개에 10개픽. 10개픽이면 우리나라 돈 150원 정도. 맛 없어서 돈을 날려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액수라 4개만 사서 둘이 나누어 먹어보기로 했어요.
"4개 주세요."
사진에서는 잘 코팅되고 큰 도넛이었지만 실제 나온 도넛은 손가락을 제외한 손바닥 크기보다 조금 작았어요. 도넛은 기계로 만들고 있었어요. 반죽을 기계에 집어넣으면 기계에서 다 튀겨진 도넛이 하나씩 나왔어요. 도넛이 나오면 가게 주인이 도넛을 봉지에 넣고 파우더 슈거를 마구 뿌려주었어요. 이게 가격이 매우 저렴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사먹었어요. 1마나트만 해도 10개이니까요. 가게 앞에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한 번에 많이 사가서 기다려야 했어요.
"이거 괜찮은데?"
도넛이 쫄깃했어요. 갓 튀긴 것이라 더욱 맛있었어요.
"이거 사서 자판기 커피랑 먹으면 후식으로 딱이겠다!"
이것을 왜 이제서야 사먹어 볼 생각을 했을까? 툭하면 지나가던 가게였어요. 그동안 딱 두 가지 생각 때문에 사먹지 않았어요. 첫 번째, 진짜 10개픽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어요. 바쿠에서 도넛 1개가 10개픽? 믿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 정말 10개픽이라면 얼마나 형편없길래 10개픽에 팔고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그런데 크기가 작을 뿐, 꽤 맛있었어요. 전체적으로 20개픽의 가치는 했어요. 이것을 일찍 알았더라면 매일 메르신 카페에서 밥을 먹고 나서 이것을 사들고 이체리 셰헤르 입구에 있는 자판기로 가서 커피를 뽑아 벤치에 앉아 먹었을 거에요. 이러면 정말 풍요롭고 여유로운 생활. 이렇게 한다고 해도 식비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어요. 한 사람당 후식으로 도넛 3개씩 먹는다고 해봐야 한 사람당 추가로 30개픽 나가는 거니까요. 우리나라돈으로 약 450원 더 나가는 건데 450원 투자해서 시간을 보다 더 잘 보낼 수 있다면 당연히 하죠.
일단 이체리 셰헤르 앞까지 왔어요.
이체리 셰헤르 입구 맞은 편에 있는 분수. 물이 귀엽게 나오고 있었어요.
니자미 겐제비 문학박물관. 올해는 박물관 앞이 공사중이라 사진 찍기 안 좋았어요. 그나마 작년 공사하지 않을 때 와서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다행이었어요.
"어디 갈까?"
"분수공원이나 가자."
기껏 분수공원에 왔는데 정말 할 게 없었어요. 일단 근처 맥도날드에 가서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씩 샀어요. 맥도날드 가격이 우리나라보다 비싼 듯 했는데 안은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요.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와 분수공원 벤치에 앉았어요. 둘 다 아무 생각 없었어요. 그래서 사이좋게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오늘은 무엇을 하지?
정말 떠오르는 것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분수공원에서 할 일 없이 하루 종일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일.
"그냥 오늘 현충공원 가?"
"그래. 어차피 이제 여기 머무를 날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그냥 가자."
오늘 현충공원 가고 내일은...알아서 되겠지. 설마 이틀간 할 일이 없어서 방바닥이나 긁고 있겠냐며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일단 호스텔로 돌아가 샤워를 다시 한 번 하고 잠시 쉬었어요. 굳이 더울 때 무리하게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거든요. 잠깐 호스텔에서 앉아서 쉬다가 현충공원까지 바로 올라가는 무료 케이블카로 향했어요.
카펫을 형상화한 건물인 것 같은데 제 눈에는 롤케익 모양 건물로 보였어요.
이 건물은 대체 무엇을 형상화한 것일까요? 딱 봐서 알 수가 없었어요.
케이블카 앞에는 직원과 경찰만 있고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어요. 우리가 다가가자 돌아가라고 손짓을 했어요. 돌아가라고 손짓하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운행을 하지 않는 것이 확실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케이블카로 갔어요. 언제 다시 운행하는지 알아야 공짜로 편하게 현충공원에 갈 수 있으니까요.
직원은 오늘은 대통령이 명령해서 전동차를 운행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오늘만 운행하지 않는 것이고, 내일부터는 다시 운행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현충공원은 다음날 가기로 했어요.
그러면 오늘은 뭐 해?
순간 떠오른 기억이 있었어요.
"너 이번에 여행 다녀왔다면서?"
"응."
"대학들도 가 보았어?"
"그딴 데를 왜 가냐?"
"야, 공부한다는 사람이 외국 가 보았으면 당연히 그 나라 대학교를 가 보아야지!"
"뭔 헛소리하고 앉아 있어."
정확히 언제인지, 누가 그랬는지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친구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하여간 누가 제가 외국 여행 다녀왔다고 하자 대학교에도 가 보았냐고 했어요. 그래서 그런 곳을 왜 가냐고 하자 공부한다는 사람이 당연히 그 나라 대학교를 가 보아야 할 것 아니냐고 했어요. 물론 그때 그 말을 듣고 무시했어요. 상상과 현실은 다르니까요. 외국 여행 중 같이 다니는 사람이 정말 꼭 가고 싶다고 하지 않는 한 대학교는 안 가요. 그 시간에 서점을 가죠.
하지만 지금은 정말 할 것이 없었어요. 다음날 전동차가 정상운행한다는데 굳이 오늘 바득바득 현충공원까지 기어올라가고 싶지 않았어요. 문제는 현충공원 외에 갈 곳이 없다는 것. 그때 마침 이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어요.
"우리 이왕 온 김에 바쿠 대학교나 갔다 올까?"
"거기? 왜?"
"그냥.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잖아. 정말 할 것도 없구."
"그래. 거기라도 다녀오자."
대학교에 대한 기대? 전혀 없었어요. 지금은 아제르바이잔도 방학. 그 이전에 대학교 구경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없었어요. 그냥 바쿠에서 '이런 곳도 갔다'라는 것을 추가하기 위한 목적 뿐.
전동차 타는 곳 근처에 있는 분수. 물 높이가 참 절묘했어요. 왠지 들면 물이 쏴악 쏟아질 것 처럼 생겼어요. 가운데 조각은 뱀을 잡는 용사. 그러면 이 분수의 물은 뱀 수프가 되는 건가? 하지만 이게 이순신 동상과 책 읽는 동상도 아니고 뱀의 목을 내리칠 일은 없겠죠.
전철을 타고 엘름레르 아카데미야스 Elmlər Akademiyası 역으로 갔어요. 이 역에 간 이유는 바쿠 국립 대학교 구경 외에 한 가지 다른 이유가 더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중앙 우체국 구경. 중앙 우체국이 이 근처에 있다고 했거든요.
평범한 길을 계속 걸어갔어요.
바쿠 기술대학교가 나왔고
바쿠 국립 대학교가 나왔어요.
문이 잠겨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그냥 밖에서 대충 사진만 찍었어요. 여기 왔으니 일단 하나는 성공했어요. 애초에 '어디 갔다'라는 것을 추가하기 위해 간 것이어서 안에 들어가지 못 한다고 아쉬운 마음도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정말 아쉬운 것은 근처에 서점이 있다는 표지판을 보았는데 그 서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
이제 가야할 곳은 중앙 우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