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반. 눈을 떴어요. 친구가 자는 것을 보고 저도 다시 잤어요. 그리고 아침 9시. 친구와 사이좋게 기상했습니다.
-끗이라능-
정말 끝이었어요. 아침 첫차를 타겠다는 계획은 완전 다 날아갔어요. 하얗게 백지가 되어 버렸어요. 첫차는 9시 20분인가 40분. 그런데 그 차를 타려면 지금 당장 뛰쳐나가도 모자랄 판인데 머리는 완전 초사이어인 머리. 밤새 까치 한 다스가 제 머리를 방문했는지 아주 난리가 났어요. 머리를 감지 않고 나갔다가는 노숙자로 몰릴 지경으로 도저히 봐 줄 수 없는 머리. 이런 머리 스타일은 2300세기가 올 때까지 단 한 번도 유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 하여간 첫차는 무조건 못 타게 되었어요.
씻고 아침 먹고 2번째 차를 타러 갔어요. 두 번째 차는 10시 50분. 그것마저도 밥 먹고 씻고 나갈 준비하다보니 늦어서 역 근처에 와서는 있는 힘껏 달려야 했어요.
개양역에 도착해 표를 끊었습니다.
“입석 2장이요.”
“입석은 좌석이 모두 다 찼을 때만 발행해요.”
여기서 벌써 계산이 2번씩이나 틀어졌어요. 첫 기차를 탄다는 계획도 틀어졌고, 입석으로 탄다는 계획도 틀어졌어요.
“여기서는 기차역 스탬프 찍어주나요?”
“여기는 작은 역이라서 안 찍어줘요.”
계획이 또 틀어졌어요. 개양역에서 기차역 스탬프를 받을 계획이었는데, 그것마저 잘못 되었어요. 기차역 스탬프를 받고 싶었다면 진주역으로 가야 했던 것이었어요. 그런데 진주역은 사실 아주 멀리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세 번째 틀어진 계획은 돌아오는 과정에서 어떻게 잘 하면 만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항상 도착지의 기차역 스탬프를 받기 때문에 지금 구입한 표에는 하동 기차역 도장을 받고, 하동에서 돌아올 때 진주역으로 가면 진주역 도장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이것은 크게 틀어진 계획이 아니라 계획에 약간 변경을 가했을 뿐이에요.
개양역에서 사진 몇 장 찍자 기차가 왔습니다.
기차 내부입니다.
“하동사람들 말 완전 특이하다. 경상도 말도 아니고 전라도 말도 아니다.”
친구의 여자 친구를 통해 획득한 정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동 사투리는 어떤 사투리일지 매우 기대가 되었습니다. 기차는 점점 산 속으로 들어가더니 하동에 도착했습니다. 하동에 도착하자마자 하동역 스탬프를 받았어요.
하동의 상징은 재첩이었어요. 어디를 방문할 목표만 가지고 있었는데, 먹을 것 목표도 생겼습니다.
“재첩국을 먹자!”
친구는 일단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시내버스를 타고 전부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동은 매우 컸습니다. 저의 예측이 엄청나게 틀렸어요. 이쪽은 인구가 작은 대신 면적이 커요. 예전 충청북도 영동군에 갔을 때 정확히 수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몇만 인구를 사수하자’라는 관에서 건 현수막을 본 적이 있었어요. 하여간 인구가 작은 대신 면적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기 때문에 계획에 엄청난 차질이 발생한 것이었어요. 그래도 아직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점심은 재첩국을 먹고 쌍계사에 갔다가 기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어요. 쌍계사행 버스비는 제가 내고 친구는 점심을 사기로 했어요. 아침에 편의점에서 간식은 친구가 사고 저는 기차비를 냈어요. 그런 식으로 칼 같은 각자부담이 아니라 두루뭉실 액수가 비슷한 것을 돌아가면서 전액 부담하는 식으로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여행 일정이 이제야 좀 정확히 등장했어요. 그래서 처음 목표지점인 시외버스터미널을 찾아 나섰습니다. 하동역에서는 방향을 크게 틀릴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걸어서 대충 읍내로 추정되는 곳에 와서 문제가 발생했어요.
하동 읍내로 추정되는 거리. 멀리 산이 보여요. 하동은 북쪽은 산이고 남쪽은 바다에요. 대학교 1학년때 기차를 타고 진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진주에서 서울로 가는 막차는 진주에서 전라도로 들어가서 위로 올라가는 기차였어요.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광양역에 가까워지자 엄청나게 화려한 야경과 바다가 보였던 것이에요.
하동의 한 모습이에요. 경치는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하동에서 밤이 많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거리에서 밤을 말리기도 하더군요. 밤을 왜 말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약재로 쓰기 위해 말리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어요.
친구는 스스로 길을 찾아보겠다고 농협에서 돈을 뽑은 후 거리의 이정표를 보며 길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도 시외버스터미널의 입구는 보이지 않았어요. 한참 헤매다 결국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길을 물어보았습니다.
말이 독특해요!
정말 말이 독특했어요. 경상도 방언에 대한 조예가 전혀 없는 제가 들어도 정말 독특했어요. 녹음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한참 우리들 스스로 시외버스터미널을 찾기 위해 하동 읍내로 추정되는 장소를 헤매고 구경하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길을 물어보자 시외버스터미널을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위의 두 번째 사진 길로 쭉 올라가면 되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다른 길로 가서 한참 헤맸던 것이었어요.
12시 40분. 드디어 하동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시외버스터미널에 들어갈 때, 버스 한 대가 출발했어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가 들락날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었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어요.
“쌍계사행 버스 몇 시에 있어요?”
“방금 출발했어요.”
매표소에 물어보자마자 돌아온 것은 좌절이었어요. 우리가 시외버스터미널에 들어왔을 때 출발했던 그 버스가 바로 쌍계사행 버스였던 것이었습니다! 딱 1분 차이로 놓친 것이었어요. 1분만 일찍 왔어도 그 버스를 탈 수 있었어요. 하동 읍내에서 시외버스터미널을 찾아보겠다고 1시간 헤맨 것이 치명적인 타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았어요. 헤매면서 하동 구경을 잘 했거든요.
“어떻게 할까?”
순간 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화엄사’였습니다. 화엄사...그 절이 사실 무슨 절인지 잘 몰라요. 그러나 ‘화엄사’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어요. 일단 제가 ‘화엄사’라는 이름을 매우 친숙하게 여긴다는 것은 ‘화엄사’가 매우 큰 절이라는 뜻. 버스 시간을 보니 화엄사행 버스는 13시 30분이었고, 쌍계사행 버스는 13시 50분.
“우리 화엄사 가자.”
한참 고민하다가 제가 친구에게 제안했습니다. 화엄사라면 지리산에 있는 절이에요. 지리산 등산은 포기했다지만 지리산에 갔다 오고 싶은 마음은 매우 컸어요. 화엄사에 간다는 것은 시간을 20분 절약할 수 있고, 지리산도 갔다 오는 것이고, 엄청나게 유명한 절 중 하나인 화엄사를 구경한다는 3가지 의미가 있었어요. 더욱이 가는 길에 화개도 지나가기 때문에 차를 타고 화개장터를 대충 주마간산으로 구경할 수 있었어요.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화엄사로 가라는 하늘의 계시다!
속으로 늦은 것이 어쩌면 잘 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12시 40분 쌍계사행 버스를 탔다면 점심을 2시 다 되어서 먹어야 했을 거에요. 그러나 지금 화엄사를 간다고 하면 조금 급하게 먹기는 해야겠지만 점심을 1시에 먹고 화엄사에 갔다가 돌아오면 되요. 하동에서 점심을 먹는다면 우리의 목표 가운데 하나인 하동의 재첩국도 먹을 수 있어요. 즉, 어떻게 보면 여행의 내실은 더욱 충만해지는 거에요.
그러나 버스 요금의 차이도 있었고, 화엄사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도 문제였습니다. 정말 한참 고민했어요. 저도 고민하고 친구도 고민했어요. 계획은 아주 크게 수틀려 버렸어요. 하지만 화엄사를 갈 수 있다는 것을 본 저는 이미 마음이 화엄사로 기울어 있었어요. 단지 비용과 시간 문제로 쌍계사와 저울질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화엄사 가자!”
더 생각한다고 해서 정답이 나올 것도 아니었어요. 차라리 빨리 결정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는 것이 현명했어요. 그래서 화엄사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버스표를 구입한 후, 재첩국을 먹으러 식당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식당이 많은 길과 시외버스터미널은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우리 김밥천국 불신지옥 갈까?”
전국에서 발에 채이는 것이 김밥천국 불신지옥이라지만 맛이 획일화 되어있는 것은 아니에요. 정말 맛있는 김밥도 있고 1000원 받고 먹으라고 해도 먹기 싫은 김밥도 있어요. 김밥을 정말 좋아하기는 하지만 하동까지 와서 김밥천국 불신지옥에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원래 목표인 재첩국 파는 식당을 찾았어요.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 식당이 많은 길로 가기엔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시장에 들어갔는데 시장에도 식당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재첩국 파는 식당 찾았다!”
시장 안에서 재첩국 파는 식당을 찾았어요. 그래서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마자 재첩국을 달라고 했습니다.
“재첩국은 다 떨어져서 없는데요.”
다시 한 번 좌절. 또 틀어진 계획. 그러나 희망은 있었어요. 아까 시외버스터미널 입구에서 한 할머니께서 재첩국을 팔고 계셨거든요. 밥은 일단 여기에서 먹고 재첩국은 시외버스터미널 입구에서 먹으면 되요. 아직 완벽히 수틀린 것은 아니에요.
“비빔밥 2개 주세요.”
그래서 이런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동태찌개가 국 대신 나왔어요. 큼지막하게 썰린 버섯이 가장 눈에 띄는 존재. 진주비빔밥은 육회가 들어가는데 하동의 비빔밥에는 버섯이 들어갔습니다. 계란만 없다면 산채비빔밥에 가까워요. 맛은 산채비빔밥에 계란후라이를 얹은 맛이었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제가 비빔밥을 감상하고 지금까지 먹었던 다른 비빔밥들과 비교하며 사진을 찍는 동안 친구는 비빔밥을 먹으며 시간이 없으니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습니다.
결과 : 제가 다 먹는 동안 친구는 절반 먹었어요.
평소 밥을 천천히 먹는 친구는 무슨 맛인지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빨리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비빔밥 양이 착해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재첩국을 먹을 여유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동으로 돌아와 재첩국을 먹기로 하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너무 배가 불러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창밖을 보았어요. 전형적인 시골의 시외버스터미널이었습니다. 아쉬움 같은 것은 전혀 없었어요. 왜냐하면 이따 또 돌아올 것이었으니까요. 비록 계획이 많이 변경되었고, 지각에 지각의 연속이었지만 하동 여행은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창밖을 보며 좋게 지금까지의 일정을 평가하려는데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무인가?!
직행버스 표지판에는 진교와 진주가 적혀 있었습니다. 진교 옆에는 ‘월, (’훌‘로 추정되는 글자) 목’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러면 진교를 들리는 날은 월요일과 목요일인가 보군요. 그런데 진주 옆에 적힌 글자는 ‘무인가’였어요. 무인카? 무인가? 무인카는 아닌 거 같아요. 아직 기사 없이 스스로 달린다는 버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카’로 보이게 만드는 획 한 개는 원래 있던 얼룩이나 쓰다가 삐끗해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저 ‘진주’ 옆에 적힌 글자는 분명히 ‘무인가’에요. 그러면 무인가 시외버스?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인가받지 않은 시외버스가 진교를 거쳐 진주로 들어간다? 뭐 그런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표지판의 글자.
버스는 화개에서 잠시 정차한 후 전라남도 구례로 갔습니다. 버스가 화개 시외버스터미널로 들어갔다 나오는 동안 버스 안에서 화개장터를 얼핏 볼 수 있었어요. 잘 보았든 스쳐지나가며 보았든 화개장터를 보기는 본 거에요. 청학동은 못 보았지만 하동에서 구경하기로 계획했던 화개장터는 보았습니다.
버스는 구례 시외버스터미널을 거쳐 화엄사로 들어갔습니다. 주차장에서 내리자 지리산이 보였습니다. 지리산 관광안내소도 있었습니다. 일단 지리산 관광안내소에 들어가서 하동으로 돌아가기 위한 교통편을 물어보았습니다.
“15시 10분에 버스가 있어요.”
14시 30분. 드디어 화엄사를 향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15시 15분 버스를 타고 하동에 가서 16시 20분에 있는 진주행 기차를 타는 것이었어요. 안내원의 설명으로는 화엄사까지 걸어가면 왕복 30여분. 10분 구경하고 내려올 때 죽어라 달리면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이때의 계획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아요.
14시 50분 - 화엄사 도착
14시 50분~15시 - 화엄사 관람
15시 15분 - 하동행 버스 탑승
16시 10분 - 하동 도착, 하동역으로 전력질주
16시 20분 - 진주행 기차 탑승
올라갈 때는 시간에 맞추어서 올라갔습니다. 정확히 14시 50분에 화엄사에 도착했습니다. 화엄사는 관람료를 받기 때문에 돈을 내고 표를 끊었습니다. 표에는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어요. 주어진 관람시간은 10분. 그 동안 반드시 화엄사를 구경했다는 인증사진을 찍고 4사자 3층 석탑을 봐야했어요.
그 짧은 시간동안 열심히 절 안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구경했습니다. 대웅전에 들어가서 삼배도 드렸어요. 삼배를 드리고 대웅전 앞에서 사진을 찍다가 네 마리의 사자가 있는 탑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저 4사자 석탑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 해!”
시간은 1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어요. 15시 15분 버스 출발이었기 때문에 목표 도착시간은 15시 12분 정도였어요. 그래서 부리나케 달려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표와는 조금 달랐어요. 눈앞의 4사자 석탑은 황량함 속에 있는데 표 안의 4사자 석탑은 숲속에 있었어요.
“그새 절 공사했나?”
시간도 없고 절도 워낙 공사를 많이 하니 예전에는 이곳에 나무가 많았지만 무슨 이유가 있어서 전부 베어냈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10분 만에 화엄사 구경을 마치고, 안에 있는 국보 및 보물도 다 보았어요. 너무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즐거운 마음에 마구 달렸어요. 그러나 나중에는 숨이 차고 다리가 무지 아팠어요. 처음에는 쫓기는 무언가와 경쟁한다는 생각을 하며 마치 질주본능이 있는 것처럼 날아가듯이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갔어요. 거의 뛰쳐 내려가는 것처럼 내달렸어요. 그러나 중간 채 못 와서 다리는 후들거리고 숨은 턱 아래까지 찼어요.
멀리 주차장이 보였어요. 시계를 보았습니다.
15시 08분
화엄사에서 달리기 시작했을 때가 15시 01분 정도였어요. 하여간 엄청나게 달렸어요. 버스를 타고 하동 가서 기차를 타고 진주역으로 가 스탬프를 받는 일이 계획대로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버스가 출발하려면 7분이나 남아있었습니다.
“야, 힘들다. 우리 이제 걸어가자. 7분이나 남았다.”
사실 마지막으로 죽어라 달린다면 15시 10분 전에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동 시외버스정거장에서 하동역까지도 달려야 했어요. 여기에서 무리하게 힘을 다 써버리면 정작 하동 가서 일을 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체력을 보존하고자 걸어갔습니다. 버스 한 대가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것을 보았어요. 이제 조금 후, 15시 15분이 되면 우리가 탄 버스가 여기에서 출발하겠죠. 그러면 정말 최고로 박진감 넘치는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되는 거에요. 비록 출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러 번 계획이 변경되었지만, 마지막에는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어요.
15시 10분.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하동행 버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어떻게 타야하는지 물어보기 위해 지리산 관광안내소에 들어갔습니다.
“하동 가시려면 15시 10분 버스는 방금 막 떠났고, 다음 버스 타셔야 해요.”
아까 달렸어야 했어요. 정말 죽어라 마지막으로 달렸다면 탈 수 있었어요. 아까 분명 같은 안내원께서 15시 10분이라고 알려주셨는데 뭐에 홀렸는지 저와 친구 모두 15시 15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멀리 주차장이 보이고, 떠나는 버스가 보였어요. 그 버스였어요. 반드시 그 버스를 타야만 했어요. 그 버스를 놓쳐버렸기 때문에 기차로 진주에 가는 방법은 전부 사라져 버렸습니다. 환승해서 가는 방법도 없었어요. 더욱이 기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구례라서 더욱 방법이 없었습니다. 구례에서 진주로 바로 가는 버스도 없었어요. 계획은 모두 망해버렸어요.
그날. 버스가 떠나버린 주차장에 눈이 내렸습니다.
전라남도 구례의 지리산 자락은 아직도 겨울이었습니다. 함박눈이 바람과 함께 정신없이 얼굴을 때렸습니다.
그렇게 눈 내리고 추운 구례에도 봄이 오고 있었어요.
눈 오고 바람오고 정신없는 날씨에 허탈감까지 몰려왔습니다. 이건 내 인생 최고의 바보 같은 여행이었어요. 관람료라도 안 냈으면 억울하지나 않아요. 관람료를 다 내고 10분 만에 매우 볼 것이 많고 큰 절인 화엄사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다 보고 나왔어요. 아무리 볼 것이 없는 곳을 가도 처음 가는 곳이면 10분은 구경해요. 하다못해 이름 없는 평범한 정자에 올라가도 10분은 구경해요. 그런데 그렇게 좋은 절을 돈 내고 10분만에 다 보았다고 나와서 다리에 알 배이도록 죽어라 달렸어요. 돈 날리고 몸도 피곤한데 얻은 것은 없어요. 정말 내 생애 최고로 짧은 여행 기록 갱신. 그 이상의 그 어떤 의미도 없어요. 최고로 박진감 넘치는 여행이 아니라 최고로 막 간 감 넘치는 여행이 되어 버렸어요. 정말 무계획으로 마구 간 여행이라고 느꼈어요. 그리고 냉정히 보았을 때 사실이었습니다.
날은 추운데 지리산 관광안내소에 다시 들어가자니 우리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어요. 버스 시간 물어보느라 이미 3번이나 들락날락 거렸기 때문에 차마 더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또 들어가면 ‘어머, 저 바보들 좀 봐’라고 생각할 것 같았어요. 그러나 한 시간 동안 바깥에서 벌벌 떨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달리느라 땀이 꽤 많이 났고, 그 땀이 식으면서 매우 추웠거든요. 그래서 지리산 관광안내소 입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본관 안으로 들어갈 엄두는 차마 나지 않았어요.
그때 이런 것을 발견했어요. 나무로 만든 실로폰 비슷한 악기였습니다. 저 뱀 머리 같이 생긴 것이 바로 이 악기를 두드리는 채랍니다. 시간은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화엄사에 다시 돌아가서 구경하고 내려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다시 갔다 올 수는 있지만 시간을 보니 이번에도 또 내려올 때 달려야했어요. 이제 달리기 싫었습니다. 지금도 다리가 아파서 후들거리는데 달릴 힘이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사실 올라갈 힘이 있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이래저래 애매하던 차에 우리는 정말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입니다. 친구가 연주하고 있는 모습으로, 친구의 팔이 참조출연했습니다.
친구는 음악에 많은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이런 악기 같은 것이 있으면 꽤 관심을 보이곤 하는데, 여기에서 엄청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라면 대충 몇 번 두드려보고 갈 텐데 친구는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안 맞는다며 자신의 핸드폰을 가지고 일일이 무슨 음인지 맞추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친구의 정렬로 우리는 다행히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버스 시간이 돼서 버스를 탔습니다. 기사아저씨께서는 화엄사에서 구례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그냥 타고, 구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화엄사에서 하동 가는 표를 끊으라고 하셨습니다. 화엄사에서 구례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버스로는 금방 갔습니다. 구례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표를 끊고 담배를 한 대 태우자마자 다시 버스에 올라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동 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왔어요.
하동 시외버스터미널에 돌아와서 진주행 버스 시각을 알아보았습니다.
18시에 있었습니다.
너무 시간이 남아돌아!
한 시간 조금 못 되게 남아있었어요. 그리고 더욱 좌절스러운 것은...
재첩국 파는 할머니께서 사라지셨다!
확실히 여비를 너무 많이 썼어요. 제가 전혀 계산하지 못했던 지출이 너무 많이 발생했어요. 일단 계산 자체에 존재하지 않았던 비용은 화엄사 관람료. 그리고 예상보다 많이 들어간 부분은 지금까지의 일정 전부.
나의 생각 : 하동까지 기차 입석
현실 : 하동까지 기차 좌석
나의 생각 : 하동에서 쌍계사까지 시내버스 왕복
현실 : 하동에서 쌍계사까지 시외버스 왕복
나의 생각 : 하동에서 쌍계사까지 시외버스 왕복
현실 : 하동에서 구례까지 시외버스 왕복
계획이 어그러질 때마다 추가지출이 발생했어요. 문제는 추가지출이 웃어넘길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녁으로 재첩국을 사먹을 여유자금은 고사하고 진주로 돌아갈 비용도 빠듯했어요. 저와 친구 모두 계획에 없던 엄청난 추가지출을 해버렸기 때문에 저녁은 진주에 가서 먹기로 했습니다. 하동에 가서 반드시 먹기로 다짐했던 ‘재첩국’은 이렇게 허무하게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반드시 진주역 스탬프를 받겠다는 일념으로 막차가 이미 예전에 떠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친구를 끌고 하동역까지 걸어갔어요.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해가 지는 하동역에서 왔다 간다는 인증사진을 찍고 담배를 태우며 시외버스터미널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어요. 하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동역까지 왔다 가는 바람에 기다리는 시간을 참 잘 보냈습니다.
하동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도착했을 때, 버스에 타기까지 시간은 아주 조금 남아있었고, 우리 둘 다 다리는 끊어지게 아팠습니다. 그래서 아까 시외버스터미널에 갈 때 보지 못했던 나무 의자가 눈에 들어왔어요. 의자 위에는 검은 매직으로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 여기에 오는 기사들은 순번을 지키지 않으면 자진해서 퇴장할 것.
양심을 지키고 만약에 위반시에는 개씹으로 빠졌다고 기사들 모두 인정함
여기 오는 기사 일동.
2008년 1월 10일 15시부터 시행-
하동을 떠나기 전, 보물찾기에서 상품을 찾는 아이도 상품을 주는 어른도 모두 사라진 후 그 자리에서 보물을 줍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진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되새김질했습니다. 화엄사 표를 꺼내 4사자 3층 석탑 사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어요. 어쨌든 10분 내에 모든 것을 다 보았습니다. 비록 가장 짧은 여행이었지만 절에서 보아야할 국보와 보물은 다 보았어요.
창밖으로 섬진강이 조용히 흐르고 해는 저녁 먹고 발 씻고 자려고 산 너머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섬진강과 노을을 보며 지리산 관광안내소에서 가져온 관광안내서를 펼쳤습니다. 거기에는 화엄사 지도도 있었습니다.
워매...!
4사자 3층 석탑은 화엄사에서 산 쪽으로 들어가야 있었어요. 4사자 3층 석탑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표 앞면을 장식하고 있던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이 아니었어요!
섬진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