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첫 걸음 (2007)

첫 걸음 - 18 지브롤터

좀좀이 2011. 12. 1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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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3단 콤보


일행 전부 모였어요. 다음날 일정을 결정해야 했는데 알헤시라스는 볼 게 없었어요. 그래서 일행분들은 지브롤터에 다녀오기로 했어요. 그러나 저는 지브롤터는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저는 그냥 여기 돌아다니면서 카페에서 차나 한 잔 마시고 쉴게요."

이제 드디어 식사를 해도 되었지만 지독한 설사를 겪은 후 정말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현재는 완벽한 걸어다니는 민폐. 튀니지, 모로코 까지는 일행 중 유일하게 불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 여행에 도움이 되었지만 여기는 불어도 안 통하는 땅. 더욱이 제게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휴식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지브롤터에 가지 않고 혼자 알헤시라스에 남아 기다리기로 했어요. 일단 일정은 이렇게 결정되었어요.


방에서 씻고 쉬려는데 일행 한 분이 저를 불렀어요.

"너를 여기 남기고 가는 건 내가 불안해서 안 되겠다. 일단 여기는 볼 것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혼자 돌아다니기엔 매우 위험해. 그러니까 내일 같이 가자."

"예."

경험자가 위험하다면 위험한 것. 그래서 그냥 지브롤터도 같이 가기로 했어요.


여담이지만 스페인 남부 여행하는 내내 한인 민박 가서 들은 말이 '모로코인 조심하라'였어요. 스페인으로 밀입국한 모로코인들이 여행객을 대상으로 소매치기, 강도짓을 매우 빈번하게 저지르기 때문에 항상 모로코인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갑자기 얼굴을 가격하기, 뒤에서 갑자기 목졸라 기절시키기는 그나마 양반. 가장 무서운 것은 허벅지를 칼로 찌르고 물품을 털어가는 것. 왜냐하면 누구를 찌른 칼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칼에 찔리는 것보다 칼에 묻어 있는 세균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었어요. 강도들이 칼을 깨끗이 소독하고 찌를 리는 없으니까요. 경찰들도 여행객들이 당하는 것은 별로 신경 안 쓴다고 했어요. 자국민을 건드리면 아주 족을 쳐서라도 잡아내는데 여행객들이야 어차피 스쳐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귀찮아하고 당연히 잃어버린 물건은 못 찾기 때문에 당한 사람만 바보가 되요.



지브롤터의 아침. 저 거대한 돌산이 지브롤터의 상징.


지브롤터는 영국 영토에요. 그래서 당연히 스페인에서 들어가려면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해요. 그런데 여권에 스탬프조차 찍어주지 않았어요. 스페인에서 들어오는 거라서 그냥 건성건성 보는 듯 했어요. 말 그대로 여권을 가지고 있나만 보고 다 통과시켜 주었어요. 여권을 펼쳐보지도 않았어요.



일본인들은 정말 여행 안 가는 곳이 없구나...그런데 이상한 일본 글자. 확실히 뭔가 이상해요. '우' 저렇게 작게 안 쓰는데? 다른 나라 글자에는 별로 큰 관심 없는 듯.



정말 한적한 지브롤터.



지브롤터의 해변.


천천히, 천천히!


예...알았어요...


전혀 급한 것이 느껴지지 않는 지브롤터. 이른 시각이라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그나마 보이는 사람은 전부 노인들 뿐이었어요. 너무나 조용하고 고요해서 저절로 축 쳐지고 느려지는 분위기였어요.


이런 분위기 싫어!


그러나 축 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사람이 북적이고 왁자지껄한 곳을 돌아다니다가 이런 분위기에 빠지니 전혀 신나지 않았어요. 차라리 알헤시라스에서 시간 보낼 걸 후회가 되었어요. 그래도 여기는 작정하고 오지 않으면 오게 되지 않는 정말 외진 곳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어요. 어쨌든 저는 영국에 왔어요.



지브롤터 시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어요.



역시나 문 닫은 가게 뿐.



모두가 잠자는 도시.


그래요. 오늘은 일요일. 여행을 망치는 진정한 3단 콤보 작렬! 페스(이슬람) 금요일, 세우타 토요일, 지브롤터 일요일. 휴일이 연속 3일이 되었어요. 당연히 활력 따위는 있을 리 없지. 휴일이라 모두가 잠자고 쉬고 있어요.


지브롤터는 면세 지역이에요. 세우타도 면세 지역인데 스페인 국력이 영국에 밀리기 때문에 지브롤터가 훨씬 더 잘 되어 있어요. 확실히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만 보더라도 세우타보다 훨씬 괜찮아 보였어요. 하지만 그러면 뭐해요. 가게가 문을 안 여는 일요일인데요. 그래서 내린 결정은 지브롤터 투어. 지브롤터 투어라고 하면 지브롤터의 상징인 돌산을 가는 거에요.



저 돌산을 차로 기어올라가는 거에요. 앞의 모스크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세운 거래요. 왜 세웠는지는 모르겠어요. 여기 무슬림이 많나? 무슬림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일단 여기는 진짜 유럽. 그리고 주요 밀입국 루트도 아니에요. 여기로 들어오면 다시 영국-스페인 국경을 넘어야 해요. 아니면 지브롤터에 갇히는 꼴.



지브롤터의 등대와 바다.



원숭이. 이 돌산에는 원숭이가 많이 살아요. 그래서 원숭이에게 소지품 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꽤 많이 세워져 있어요. 입구 쪽에는 별로 없었는데 중턱 쯤 가니까 그때부터 원숭이들이 출몰하기 시작했어요.



동굴 극장.



동굴 안에 공연장이 있다는 것보다 동굴 그 자체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정상에서 내려다본 지브롤터 항구.



활주로와 지브롤터 시내.


활주로 바로 옆이 공동묘지. 이게 지브롤터에서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거에요.


지브롤터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투어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 기사의 운전 솜씨. 돌산의 길은 생각보다 매우 가파라요. 그리고 길은 거의 180도에 가까운 커브 투성이. 그런데 아주 고속으로 시원시원하게 운전을 했어요. 커브 돌 때마다 차가 뒤집히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확 꺾어버리는데 아무 일 없이 잘 내려갔어요.


지브롤터 투어를 마친 후 다시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돌아와 알헤시라스로 돌아갔어요.



매우 좋은 날씨. 여관에서 짐을 찾아 버스 정거장으로 갔어요.



"일 안 해!"

드러누운 표지판.



알헤시라스 버스 터미널 안. 우리가 타고 가는 버스는 말라가를 거쳐서 그라나다를 가는 버스였어요.


버스 터미널에서 매우 놀라운 장면을 보았어요. 아마 모로코 여자였을 거에요. 한 여자가 버스터미널 구석에 작은 카펫을 펴놓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어요. 모로코, 튀니지에서 이렇게 공공장소에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보았어요. 아잔이 나오든 말든 자기 할 것만 하고 있었어요. 정작 이슬람 국가에서 보지 못한 공공장소의 예배를 반 이슬람 성향이 강한 스페인에서 목격하게 되었어요. 매우 의미있는 장면이었어요.



버스에서 본 알헤시라스.



버스에서 본 말라가. 말라가 해변도 보기는 했는데 제가 앉은 쪽이 아니라 맞은편에 바다가 펼쳐져서 사진은 못 찍었어요.


해가 저물어서야 그라나다에 도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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