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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437

뭐라카네 - 03 경상남도 진주

어제 계획이 크게 뒤틀리는 바람에 진주 올 때 들고 온 여비를 모두 소진해버렸어요. 다리는 알이 배었지만 친구를 향해 괜찮다고 웃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을 참아야했죠. 전날 지리산을 보고 친구는 지리산에 꼭 올라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 국립공원에 전화를 해 보았어요. “지리산이 어제 폭설이 내렸어요. 그래서 아이젠과 스틱, 고글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아이젠만 있으면 된다고 하면 아이젠을 구입해서 가려고 했어요. 그러나 아이젠에 스틱, 고글이라면 돈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 가는 것은 포기했어요. “내일 어디 가지?” “나 산이 너무 좋아졌다.” 친구가 산에 대한 열정을 토로했습니다. 사실 4일간 친구 방에서 뒹굴거리고 하루 여행갔다가 내려갈 ..

무계획이 계획 - 마지막화

드디어 그 날이 찾아왔어요. 말 그대로 소심한 복수. 어차피 더 짤릴 월차도 없어요. 8월에 때려치니까요. 눈은 일찍 떴어요. 그러나 오늘 하루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다보니 아침 9시가 되었어요. 친구는 곤히 자고 있었어요. 슬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뭐라고 이야기해야 정말 약오르고 화나게 할 수 있을까? 사실 무단결근 자체가 열받는 일이겠지만 어설픈듯 하면서 그럴싸한 거짓말을 해야 더 열받게 되는 법. 오늘 하루 무엇을 해야 보람찰지 생각하고 무슨 말로 열받게 할까 생각하다보니 드디어 전화를 할 시간이 되었어요. 아침 10시 반. 오전 작업 지시 및 회의가 아무리 길어져도 오전 10시 반 이전에는 끝났어요. 즉 지금이 전화를 걸 타이밍. 뚜루루루 "여보세요." "파트장님, 저에요." "왜 안 오세..

무계획이 계획 - 06 (2008.08.10)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에는 새벽이었어요. 이미 전철도 끊이고 버스도 끊겨서 이동하려면 무조건 택시를 타야 했어요. 꾸벅꾸벅 졸면서 비틀비틀 걸어나오다 마주친 것은 택시기사들. 하지만 그 아저씨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동서울터미널에서 인사동까지 3만원을 부르고 있었어요. 가볍게 무시하고 가려는데 택시기사 두 명이 일본인 여자 관광객 두 명에게 5만원을 불렀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으로 보아 그 일본 관광객들은 한국에 온 지 얼마 된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 시각에 인사동을 간다고 했겠죠. 새벽의 인사동은 제가 밤에 돌아다녀본 서울에서 가장 추한 지역 중 하나. 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날 뿐, 그 어떤 활기도 안 보이는 곳. 사회 시간에 배우는 인구 공동화 현..

무계획이 계획 - 03 (2008.08.08)

범어사를 가기 위해 전철을 탔어요. 하지만 밀려오는 잠. 친구와 사이좋게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어요. 범어사를 3정거장인가 남기고 다시 일어났어요. 그러나 기억 안 나요. 다시 잔 것 같아요. 친구랑 저랑 엇박자로 깨었고, 서로 깨우지 않고 다시 잤어요. 눈을 떴을 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지하철 종점. "야, 범어사 갈까, 말까?" "가지 말게. 귀찮아." 정말 극도로 피곤했어요. 그냥 만사 귀찮았어요. 어디 드러누워서 푹 자고 싶었어요. 하지만 부산에서 1박 하면 촉박한 여행 일정 때문에 일정이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이렇게 일정 하나하나가 상당히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우리집은 제주도! 그래요. 우리 둘의 집은 제주도에요. 가뜩이나 성수기라 비행기표를 겨우 잡았어요. 만약 비행기를 못 탄다면..

7박 35일 - 프롤로그

2009년 3월 중순. 척박한 환경에서 근무하던 저는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어요. 아무런 준비도 못했어요. 그 기초적인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체크카드조차 준비하지 못했어요. 숙소는 당연히 예약 안함. 뭐가 볼 것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떠났어요. 여행시작 전날. 터키에서 공부하고 있던 분과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만나는 장소는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하지만 송별회라고 술을 잔뜩 먹고 뻗어버리는 바람에 연락을 못하고 푹 골아떨어져버린 나. 다음날 어떻게 만날지, 어떻게 사람을 찾아야할지 마음은 급한데 방법이 없었어요. 겨우겨우 아침에 연락이 닿아 공항에서 별무늬 옷을 입은 여성을 찾으면 된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해방!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올라탔어요. 이것이 투버그의 나..

무계획이 계획 - 02 (2008.08.08)

피씨방에서 할 일 없이 친구와 컴퓨터를 했어요. 슬슬 잠이 오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잠은 잔잔한 파도가 되어 머리를 두드렸어요. 정말 '처얼썩 처얼썩 부딪히는 작고 부드러운 파도'처럼 잠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야, 나가자. 나가서 바다나 보자." 새벽 5시. 친구와 사이좋게 밖으로 나왔어요. 여름인데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았어요. 이제 목표는 광안리. 제 주변 부산 사람들은 한결같이 해운대보다는 광안리를 추천했어요. 그래서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어요. 계획이고 나발이고 뭐가 있어야 효과적으로 움직일텐데 그런 것이 아예 없었어요. 믿는 것이라고는 주변 사람들의 말. 어쨌든 해운대보다 광안리가 좋다고 했기 때문에 광안리에 가서 일출을 볼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광안리 가기도 전에..

무계획이 계획 - 01 (2008.08.07)

회사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가방을 등에 메고 갔어요. 모두에게 여행갈 거라고 자랑했어요. 여행 자금을 조금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 회사에서 혼자 점심에 공부하며 밥을 안 먹고 있었어요. 이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날은 그냥 하루 종일 여행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이제 2주일 정도만 회사 오면 퇴사였기 때문에 제가 마무리하던 일만 적당히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어요. "이야, 좋겠다!" 월차가 밀리는 최악의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월요일에 월차를 쓰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일주일을 버텨서 드디어 금요일이 된 것이었어요. 모두가 아주 여행간다고 잔뜩 티를 내고 출근한 저를 보며 한 마디씩 했어요. 어차피 퇴사가 코앞인데다 여행은 몇 시간 후면 출발할 거라 정신줄 놓고 근무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날 두 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