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http://zomzom.tistory.com/880 와 같은 때의 이야기랍니다.
아르메니아 브랜디를 두 병 구입한 후, 시계를 보니 매우 애매한 시각이었어요. 집에 돌아가면 그냥 놀아버릴 것 같고, 학원 가서 혼자 공부하자니 그러려면 집에 들려서 술은 놓고 가야 하는데 그러기에도 애매하고, 여기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는 혼자 마땅히 할 것이 없었어요.
가방에 구입한 술 한 병은 집어넣었지만, 한 병은 손에 들려 있었어요. 이대로 어딘가 돌아다니기도 귀찮았어요. 어차피 오후 6시가 되어 가고 있었는데, 이 즈음에는 마땅히 갈 만한 곳도 없었어요. 기껏해야 제가 갈 만한 곳이라면 영풍문고나 교보문고. 그러나 여기는 불과 며칠 전에 다녀왔기 때문에 또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소나기는 계속 좍좍 퍼붓고 있었어요. 우산을 쓰고 돌아다녔지만 바짓가랑이는 젖어버렸고, 더 걸어서 돌아다녔다가는 구두 속 양말까지 다 젖어버릴 듯 했어요.
브랜디를 구입한 가게 근처에 비를 피할 곳이 보여서 그 아래로 들어갔어요.
"형, 오늘 우리 만날까요? 제가 맛있는 거 살께요."
"그래? 그런데 어디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 5번 출구로 오세요."
친한 형은 빨리 와야 7시일 거라고 했어요. 남은 시간은 한 시간. 가게 지붕 아래에서 비가 잦아들기만 기다리며 멍하니 서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가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저거 내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자주 사먹던 파이인데?"
파이를 보자 이왕 여기 온 김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 온 이유는 아르메니아 브랜디를 판다는 말에 신기해서 와본 것이지만,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 우즈베크인을 본 적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고, 그러다보니 제가 사는 곳에서 우즈베키스탄 관련된 것을 볼 수 없었어요. 이러니 우즈베키스탄에서 자주 사먹던 파이를 보니 너무나 반갑고 다시 먹어보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했어요.
"형이랑 만나기로 했는데...게다가 지금 술 한 병 들고 있는데 거기에 저것까지 들고 있기는 조금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다 비를 피할만한 곳을 찾았어요.
비를 피하고 있는데 가게 안을 보니 멜론이 보였어요.
"저거 우즈벡에 있을 때 먹었던 멜론인데?"
멜론을 보자 매우 반가웠어요. 저것은 왠지 샤카르 팔락이랑 비슷해 보였어요. 우즈베키스탄 있었을 때 흔히 보던 멜론이었죠.
밖에서 계속 비를 피하고 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탁자가 놓여져 있었어요.
"저기 들어가서 파이라도 하나 먹을까?"
밖에서 계속 비를 피하다가 어차피 형이 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었기 때문에 안에 들어갔어요. 안에서는 차와 파이를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어요.
제가 먹은 것은 나폴레옹 토르트와 홍차.
"이거 우즈베키스탄에서 먹던 그맛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우즈베크어를 배울 때, 쉬는 시간이 되면 1층에 있는 카페에 가서 파이와 커피를 먹곤 했어요. 그때 바로 이 파이를 종종 사먹곤 했지요. 맛은 비슷했지만, 다른 것이라면 가격.
가게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굼마도 팔고 있었어요. 굼마도 먹어볼까 했지만 저녁 약속이 있어서 굼마는 먹지 않았어요.
안에서 파이와 홍차를 마시며 적당히 시간을보낸 후 비가 멎자 밖으로 나왔어요.
참고로 이 가게는 전에 아르메니아 브랜디를 파는 가게 바로 근처랍니다. 아르메니아 브랜디를 구경하러 왔다가 우즈베키스탄에서 먹었던 파이까지 먹었던 날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