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외국어 학습교재

한국 아랍어 교재의 괴물 - 종합아랍어

좀좀이 2013. 3. 16. 10:42
728x90

한국에서 아랍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책

그리고 그들 가운데 많은 수가 듣자마자 얼굴이 굳어버리는 책

가뜩이나 어렵다는 아랍어를 책 한 장 펼치자마자 한없이 어렵게 만들어버리는 책

조악한 인쇄 때문에 보기만 해도 보기 싫어지게 만드는 책

1988년에 출판되어 출판된 지 20년도 넘은 책


위의 세 개를 보면 지금쯤 절판되어서 한때 악명을 떨치던 책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아직까지도 출판되고 있으며 굳건히 아랍어 교재 세계에서 좋은 교재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는 것.


이제는 우리나라에 아랍어 교재도 이것 저것 다양하게 나왔어요. 옛날처럼 한국어로 된 교재 자체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밖에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는 고사하고 아예 선택지도 없던 시대는 지나갔어요.


그래요. 상식적으로 맨 처음 문단대로라면 애저녁에 절판되어 없어져야 정상이에요. 정말 교재 개발 하나도 안 되어서 다른 교재가 아예 없다면 모를까 말이죠. 그런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아직까지도 좋은 교재의 위치를 지키고 있어요.


그 책은 바로 '종합아랍어 1,2권'이죠. 일명 '엠사'.




친구가 책을 정리하다가 버릴까 팔까 고민하길래 제게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 책을 받고 들어보니 저도 추억에 잠기게 되었어요. 송산출판사에서 1988년에 출판한 종합아랍어 1,2권.


참고로 인터넷 서점에서는 둘 다 절판이라고 나와요. 대신 '새로 펴낸 종합 아랍어1' 이라는 책이 나와 있죠. 그런데 속은 옛날 종합아랍어 1과 똑같답니다. 대체 뭐가 달라졌는지 알지를 못하겠어요. 새로 펴낸 종합아랍어 1을 본 순간 그냥 크기만 조금 작게 만들고 가격을 더 올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온라인 서점에서 파는 곳은 없고, 오프라인 서점 중에는 아직도 파는 곳이 있어요. 재고가 남아서 파는 것인지, 아직도 팔리고 있는 것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일단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누군가 아랍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제게 물어보면 저는 고등학교 아랍어 교과서를 권하는 편이에요. 이건 오직 아랍어에 국한된 경우가 아니라, 질문하는 상대가 '한 번쯤 해 볼까?'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물어보았을 때에는 전부 해당해요. 그게 불어든, 러시아어든, 일본어든 간에요.


제가 고등학교 교과서를 권하는 이유는 먼저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에요. 바로 위에서 말했듯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해볼까 하는 사람에게 어떤 책을 권해주어도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많이 보고 경험했거든요. 정말 책과 뭔가 통해서 확 끌리지 않는 한요. 그런데 그런 책 찾는 게 중국어와 일본어를 제외하면 어려운 게 사실이죠. 게다가 좋은 교재는 좋은 값을 해요. 가격이 비싸거나, 부피가 크거나, 두껍거나, 어렵든가요. 이 조건 중 하나만 해당하는 경우도 있고, 4개 다 해당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진지하게 공부하려고 결심한 게 아니라면 그냥 저렴한 값에 어떤 외국어인지 맛이나 보라고 고등학교 제2외국어 교과서를 추천해줘요.


그렇다고 단순히 싸고 두껍지 않기 때문에 고등학교 교과서를 처음에 권하느냐? 그건 아니에요. 그럴 거면 포켓용 여행 회화집을 보라고 하고 말죠. 고등학교 교과서는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든 책이다보니 혼자 보기도 좋아요. 그리고 구성도 괜찮은 편이구요. 가격 및 가성비를 고려한 선택인 것이죠. 진지하게 굳은 결심을 하고 공부하겠다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래요. 진지하고 굳은 결심을 한 사람은 대부분 제게 이런 것을 물어보지도 않아요. 그냥 학원 등록해 버리거든요.


만약 제대로 아랍어를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참 보는 사람 정 떨어지게 하는 힘이 있지만 종합아랍어를 보라고 할 거에요. 그리고 그 사람은 종합아랍어를 구해 그 책 크기와 무게 때문에 짜증이 나고 책장을 펼치는 순간 정나미가 떨어져 버리겠죠. 하지만 이게 '아랍어 따위 때려치게 하려는' 악의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라 아직까지 제가 본 한국어로 된 교재들 가운데에서는 그나마 가장 낫기 때문이에요.


먼저 대체 어떻길래 이렇게 악담을 퍼붓나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책 내부를 보여드리자면




타자기로 친 것 같기도 하고 손으로 쓴 것 같기도 한 조악한 아랍어 활자들. 저 글자들 때문에 책을 펼치자마자 인상 딱 굳게 되요. 저건 솔직히 눈에 쉽게 안 들어오거든요. 저 아랍어 활자들을 Times new roman 으로 바꾸어주기만 해도 훨씬 접근하기 쉬워질 거에요. 참고로 Times new roman 글자체로 아랍어를 치면


السلام عليكم


이렇게 나와요. 훨씬 읽기 수월하죠. 혹시 아랍어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그놈이 그놈 같다고 말씀하실 분들이 계실 수도 있으니 차이점을 말씀드리자면, 점 몇 개인지 셀 수 있고, 삐죽삐죽 튀어나온 게 몇 개인지는 셀 수 있죠? 그게 중요하답니다. 점과 삐죽삐죽한 게 빨리 눈에 들어와야 읽기 편한데 종합 아랍어의 아랍어 활자는 그게 눈에 잘 안 들어와요.


그런데 새로 나온 종합 아랍어 1권 역시 아랍어 활자가 그대로에요...


설명은 그럭저럭 볼 만해요. 하지만 가끔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울 때도 있어요. 왠지 설명을 하다 만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구요.


그리고 이런 게 튀어나오면...




공식 ㅁㅈㅁㅈㅁ -> ㅁㅈㅈㅁ


이건 나도 모르겠다...


저도 저건 다른 사람에게서 배워서 알았지, 설명을 보고 터득한 건 아니에요. ㅁ이 모음이고 ㅈ이 자음이란 것도 이 글 쓰려고 사진 찍으며 알았어요. 저 책 가지고 공부할 때에는 그냥 뭔지 알 수가 없어서 무시해 버렸어요. 이런 문제는 1권은 그나마 덜한데, 2권은 부분에 따라 심한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지문과 예문, 문제들...진심으로 재미없어요. 처음에 그런 건 이해해요. 아랍어에서 기본 회화를 위해 필요한 단어들 상당수가 문법적으로는 초급을 다 뗀 뒤에 배우는 난이도이고, 동사 변화도 완료형은 간단한데 미완료형이 복잡하다보니 완료형부터 배워서 처음에 흥미면에서 많이 떨어져요. 이건 원래 아랍어가 그런 거니 그렇다 하는데...


استقبل


종합아랍어로 공부했다면서 저 단어 모르면...에휴, 답이 없어요. 이스티크발라...'영접하다'라는 뜻인데 처음부터 주구장창 질리지도 않고 계속 나와요. 출현 빈도도 높아요. 다른 단어들이 많이 나와서 저건 이제 그만 나와도 될 거 같은데도 저건 계속 나와요. 이 단어는 정말 쓸 일이 얼마나 있을지가 의문인데 아주 세뇌를 시켜버려요. 지문, 예문 모두 문법 난이도가 높아져도 심히 재미없다는 것 역시 이 책의 문제.


이런데도 이 책을 굳이 추천하겠다고 한 이유는 바로 이 책이 미시간 대학교에서 1975년에 미시간 대학교에서 출판된 Elementary Modern Standard Arabic 을 토대로 만든 책이라는 것이죠. 이 책 자체가 꽤 좋은 책인데, 그 책을 경량화와 약간의 개조를 거쳐 만든 책이 바로 종합아랍어 1,2권인 것이죠. 게다가 아랍어 자체가 표준 아랍어는 코란의 아랍어라고 딱 정해져 있기 때문에 불변의 언어에요. 즉, 문법 교재는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지문들 - 예를 들면 일상 회화인데 전보가 나온다든가 하는 지문들만 조금 바꾸어주면 계속 우려먹을 수 있어요.


원본이 워낙 잘 되어 있는 책이다보니 그것을 살짝 개조하고 번역한 종합아랍어도 꽤 준수한 책이 된 셈이죠. 구성 자체는 매우 좋은 편이에요. 보기 좋게 하는 대신 내용을 많이 빼버리는 요즘 책과 달리 가독성 따위는 일단 무시하고 많은 내용을 우겨넣는 옛날 책의 특성도 가지고 있고,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시중에 나와 있는 초급부터 다루는 아랍어 교재들은 종합아랍어와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어요. 종합아랍어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많이 참고되었으니까요. 단, 난이도가 초급부터 종합아랍어 2권 45과 문법까지 다 올라가지는 않지요. 아직까지는 한국어로 된 아랍어 교재로만 공부할 경우, 결국은 종합아랍어와 마주하게 됩니다. 관용구, 숙어와 같은 사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순수한 문법적 문제를 놓고 보았을 때 국내에서 가장 어려운 레벨의 아랍어 교재로 가장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바로 종합아랍어이죠.


설명 조금 보충하고, 활자 좀 보기 좋은 것으로 바꾸고 가독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훨씬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기본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죠. 종합아랍어를 이 부분만 좀 손을 대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물론 저는 아랍어를 제대로 공부하겠다는 사람에게는 이 책을 권하겠지만요.


참고로...매우 괜찮은 원서를 번역한 책인데 종합아랍어보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더 무서운 놈이 있답니다. 국내에서 가장 어려운 레벨을 다루는 아랍어 교재와 종합아랍어보다 더한 놈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밝히도록 할게요.


p.s. 영어로 된 교재 보는 게 더 편하신 분들은 영어로 된 아랍어 교재를 구해서 보시면 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