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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제20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 2019 서울퀴어퍼레이드 및 동성애 반대 집회 후기

좀좀이 2019. 6. 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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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어서 아침에 의정부에서 출발해 서울 종로로 갔어요. 종로에서 일을 다 보니 정오 즈음이 되었어요. 이왕 나온 김에 종로를 조금 더 돌아다니고 집으로 가기로 했어요.


길거리에 무지개색 현수막이 보였어요. 그때 서울에서 경찰로 근무중인 지인이 이야기해준 것이 떠올랐어요. 6월 1일은 서울 시청광장에서 2019년 제20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 2019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리는 날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릴 때는 경찰이 안전 유지를 위해 엄청나게 동원되고, 무지 바쁘다고 이야기해줬어요. 일단 서울 기동대는 전부 그쪽으로 투입되다고 봐도 무방하대요. 퀴어 축제는 퀴어 축제대로 열리고 동성애 반대 집회는 반대 집회대로 또 크게 열려요. 이 둘의 충돌을 막아야 하는데 양쪽 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보니 둘이 부딪히게 되면 대참사가 일어날 게 뻔하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어요. 그래서 경찰 기동대가 투입되어 둘의 충돌을 막는다고 해요.


퀴어 문화 축제 간증기(?)는 찾아보면 여럿 있어요.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떤 의경이 적은 퀴어 축제 동원 체험담이었어요. 정신이 분열될 거 같았대요. 한쪽은 쿵짝쿵짝이고 한쪽은 할렐루야라서요. 폭력적이지는 않지만 중립적인 위치에서 양쪽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며 서 있으면 정말로 정신이 혼미해진대요.


'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러지?'


궁금해서 용기를 내어 시청광장 쪽으로 가보기로 했어요. 참고로 저는 이성애자에요. 여자친구도 있고 여자친구와 연애도 아주 잘 하고 있어요.


청계광장에 도착했어요.


청계광장


여기에서 동성애 반대 기독교 집회가 열리고 있었어요.



무대 위에서 누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자가장 자가장 힘찬 일렉트릭 기타의 강렬한 사운드와 날카롭고 시원한 보컬 목소리가 일품이었어요. 그 노래가 개신교 찬송가였어요.


'주님의 가호 +1' 을 획득했어요.


시청광장으로 가는 길. 무지개 깃발, 무지개 장식, 무지개 띠를 두른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어요. 시청에 가까워질 수록 많아졌어요.


퀴어축제


"우확! 푸하학!"


맨 정신으로 1분도 버티기 힘든 상황. 웃음이 빵 터져나왔어요. 진짜 과장이 아니라 이쪽에 진입하는 순간 웃음 터져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어요. 청계광장에서 획득한 '주님의 가호+1'은 아무 소용 없었어요. 멘탈 붕괴 그런 정도가 아니었어요. 그냥 지구상에 이런 상황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정신줄 놓고 웃어버리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서울시청


위 사진에서 오른쪽 끝에서는 반대 동성애 할렐루야를 외치고 있었어요. 길 건너에서는 퀴어 쿵짝쿵짝이었어요. 이 두 소리가 동시에 들어왔어요. 정말로 웃겼어요. 웃음 터져나오는 걸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 1분도 채 못 버티고 두 에너지의 충돌로 인한 거대한 파장에 쓸려나갔어요. 일반인이 맨정신으로 도저히 견뎌낼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어요. 진심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경찰들이 대단했어요. 그냥 견딜 수가 없는 자리였어요.


거대한 두 에너지가 맞부딪혀 만드는 초강력 충격파에 쓸려나갔어요. 일단 명동쪽으로 빠져나갔어요.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어요.


'아, 인권운동하는 친구 저 속에 있겠다.'


고향 친구 중 인권운동 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는 저기 저 시청광장 안에 있을 거 같았어요. 약 99%의 확률이었어요. 친구에게 연락했어요. 역시 예상대로 친구는 2019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장 안에 있었어요.


아...그 친구 보러 저 행사장 안에 들어가야 하나...


그 고향 친구를 보려면 저 시청 광장 안에 들어가야만 했어요. 거기 안 들어가면 친구를 볼 수 없었어요. 제가 고향에 갈 일이 없다 보니 지금 아니면 그 친구를 보는 날이 몇 달 후가 될 지, 몇 년 후가 될 지 모르는 일이었어요.


"걔를 봐, 말아?"


진지하게 고민되었어요. 저 시청 광장 안으로는 차마 못 들어가겠어. 아니, 그 근처를 가는 것 자체가 나의 정신력으로는 견뎌낼 수 없는 일이야. 그런데 저 안에 안 들어가면 친구를 못 만나.


퀴어와 할렐루야의 불꽃 튀는 혈투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파장을 뚫고 그 안에 들어간다는 건...일단 그쪽으로 가면 멘탈이 나가서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막 나왔어요.


'그래도 가자. 내 친구인데...'


굳은 결심하고 시청광장으로 갔어요. 퀴어축제는 동성애 반대 집회와 충돌이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입구가 딱 정해져 있었어요. 플라자 호텔 맞은편이었어요.


일단 입구부터 엄청나게 미어터졌어요. 인파에 휩쓸린다? 그 표현은 틀렸어요. 그냥 꽉 들어차서 서 있었어요. 그때였어요. 친구가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다고 했어요.


나 이미 들어와버렸는데!


꽉 끼어있었어요. 나갈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켜질 때마다 사람들이 떼로 시청광장을 향해 몰려왔어요. 이 무리가 얼마나 거대하냐 했냐면 신호등이 한 번 켜질 때마다 버스 3대 면적에 맞먹는 인파가 우루루 길을 건너 시청 광장쪽으로 오고 있었어요. 물론 그 중 다 시청광장 안으로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많은 수가 시청 광장으로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입구에 낑겨버리자 어찌 할 방법이 없었어요.


어떻게 안쪽으로 들어왔어요. 정말 다행인 것은 그렇게 미어터지는데 의외로 사람들 모두 얌전하고 눈치껏 질서를 잘 지키며 안전에 신경쓰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2019년 제20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 2019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장 내 사진은 하나도 없어요. 사진을 찍으려면 마음껏 찍을 수 있지만 사실상 코 앞이 사람이라 찍을 상황이 아니었어요.


내부 분위기는 참 묘했어요.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면 관심을 가져주고, 관심 끄고 있으면 관심 끄고 있는 분위기였어요. 저는 오로지 고향 친구를 만나기 위해 들어간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쪽에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제게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많기는 하나 각자 개인 단위로 놀고 있고 남한테 특별히 관심 안 갖는데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면 관심을 가져주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일단 모여서 집회를 열면 다 일제히 동조해야만 하는 일반 집회 분위기와는 아예 달랐어요.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서 있었어요.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은 바로 방송국 카메라와 기자. 그게 제일 신경쓰였어요. 여기저기 방송국에서 와 있었고 자리를 옮겨가며 촬영하고 취재하고 있었어요. 여기에 간첩(?)이라고 할 수 있는 개신교 동성애 반대쪽에서도 촬영하고 있었구요. 이런 것만큼은 신경써서 피했어요. 나머지야 바로 윗 문단에서 말했듯 남한테 신경 안 쓰고 있으면 저한테 신경쓰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소리가 보인다!


진짜로 소리가 보였어요. 공감각을 가진 사람은 소리가 보인다고 해요. 저는 공감각 따위 없어요. 그런데 소리가 보였어요.


2019년 제20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 2019 서울퀴어퍼레이드 무대를 보면 양쪽으로 엠프가 줄줄이 매달려 있는 크레인 두 대가 보여요. 이게 다 이유가 있었어요.


밖에서 동성애 반대 집회에서 우와아악 할렐루야 외치고 있었어요. 이 소리를 지우기 위해 중저음을 엄청나게 증폭시켜놨어요. 그걸 크레인 두 대에 매달린 엄청난 엠프들로 쏴서 동성애 반대 집회 소리를 밀어내고 지워버리는 것이었어요. 무대 공연 및 노래가 끝나고 잠시 조용해지면 밖에서 날카로운 고음의 동성애 반대 집회 소리가 안으로 밀려들어왔고, 다시 무대 공연 및 노래가 시작되면 엄청난 중저음이 동성애 반대 집회 소리를 밖으로 밀어냈어요.


이건 소리의 전쟁.


소리가 보였어요. 그렇게 느껴졌어요. 밖에서 동성애 반대 집회의 고음이 들어오면 귀가 찌잉하고 고막이 자극되었어요. 안에서 퀴어 축제의 강력한 중저음 파동이 시작되면 그 소리가 뱃속을 흔들며 지나가는 게 느껴졌어요.


동성애 반대 집회의 고음이 치고 들어오고 퀴어 축제의 중저음이 그걸 밖으로 밀어내는 두 소리의 영역 싸움.


안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자기들끼리 놀고 하는 건 솔직히 별 거 없었어요. 옛날에는 정말로 음란한 옷에 음란한 행위도 있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딱히 그런 것은 못 봤어요. 사실 그런 게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워낙 많아서 다 돌아다니며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애초에 퀴어 문화 축제를 보러 들어간 게 목적이 아니라 행사장 안에 있는 고향 친구 만나러 들어간 게 목적이었구요.


오히려 이 소리의 전쟁이 몇억배 인상깊었어요. 양쪽의 엠프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어요. 그냥 멘탈 깨지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아예 엄청나게 벗어난 상황이라 정신분열 걸릴 거 같다고 하는 게 아니었어요. 양쪽에서 소리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깨져버릴 것 같았어요.


그렇게 30분 정도 서 있었어요. 앉아 있을 곳이 아예 없었어요. 그냥 사람들이 시청 광장에 꽉 차 있었고 이들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무 곳에나 주저앉을 수 없었어요. 게다가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함부로 벗어났다가는 친구를 못 만나게 생겼기 때문에 그 장소에서 멀리 떨어질 수도 없었어요.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무대 공연을 보았어요. 무대 공연은 재미있었어요. 딱히 선정적이거나 외설적이지 않았어요.


드디어 일을 보고 온 친구가 왔어요. 친구에게 인사하고 바로 나왔어요. 친구를 오랜만에 봐서 반갑기는 했지만 대화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퀴어 문화 축제 앰프가 쏘아대는 엄청나게 증폭된 중저음 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다 깨져버렸고, 밖에서 쏴대는 고음 때문에 고막이 아팠어요.


밖으로 나왔어요.




동성애 반대 집회 쪽도 결사항전(?)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억!"


다시 한 번 뿜어져 나온 박장대소.



"아, 미치겠네!"


태극기 집회도 엄청난 규모로 열렸어요. 태극기 집회 행진도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어요.


자, 여기에서 과연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골든 트리플 크로스가 발생했어요. 이건 정말 굉장했어요. 아니, 굉장하다는 표현 하나만으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태극기 집회 행렬 + 동성애 반대 개신교 대집회 + 서울퀴어문화축제


장난 아니었어요. 이 순간은 정말 전세계의 자랑이었어요.


퀴어 반대 집회


서울 퀴어문화축제 한쪽 바깥 경계에서는 이렇게 동성애 반대 개신교도분들이 안쪽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2019년 제20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그 너머는 퀴어 문화 축제 쿵짝쿵짝이었어요. 과장 아니라 진짜 저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서울시청 광장에 있는 옛날 시청 건물로 들어갔어요.


서울특별시


양 길가는 동성애 반대 개신교 집회였고, 차도에서 행진하고 있는 무리는 태극기 집회 행렬이에요.


덕수궁 쪽으로 갔어요.


태극기 집회 행진


경찰분들은 경찰분들대로 무리를 이뤄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어요. 경찰들은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태극기 집회도 무지막지하게 컸고, 동성애 반대 개신교 대집회도 무지막지하게 컸고, 서울퀴어문화축제도 무지막지하게 컸어요. 이 셋 중 둘이 뒤섞이면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 셋이 섞이면 그냥 서울 도심에서 빅뱅 발생해서 그냥 혼돈, 파괴, 파멸 예정.


경찰분들이 진짜 엄청나게 고생하고 계셨어요.


뉴스에 나온 거 다 엄청나게 축소된 거에요. 이건 정말 실제 가서 봐야 해요. 태극기 집회, 동성애 반대 개신교 집회, 퀴어 축제 셋 다 어마어마했어요. 각각 하나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한데 이 셋이 시청광장 및 시청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이어지는 세종대로에 총집합했어요. 이제 정신이 세토막 났어요.


서울시청 퀴어 축제


맨 뒤는 퀴어축제, 그 앞은 동성애 반대 개신교 집회, 제일 앞은 태극기 부대 행렬.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철저히 격리되어 있었어요. 시청광장에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있었고, 그 주변을 경찰이 에워싸고 있었고, 그 주변을 다시 동성애 반대 개신교 집회측에서 에워싸고 있었어요.


2019년 제20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 2019 서울퀴어퍼레이드 및 동성애 반대 집회 후기


정말 장관이었어요. 굉장했어요. 멋졌어요. 따봉 천만개 박아도 부족할 지경이었어요. 이건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퀴어축제가 일단 슈퍼 초거대한 한 무리, 동성애 반대 개신교 집회가 또 슈퍼 초거대한 한 무리, 태극기 부대 행렬도 또 슈퍼 초거대한 한 무리, 여기에 이 셋이 뒤엉키는 최악의 참사를 막기 위해 동원된 경찰 기동대 소속 경찰분들이 또 거대한 한 무리.


거대한 무리 4개가 한 공간에 있었어요.


경찰분들은 소리치지 않으셨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소리는 3종류. 뭐 이딴 상황이 다 있냐 정도가 아니었어요. 규모에서 발생한 거대한 아우라 세 개가 또 미친 아우라를 만들어내었어요. 이쯤 가면 이제 생각이 없어져요. 누구가 좋고 누구가 싫고 그딴 생각 하나도 안 들어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요. 넋이 나가버린다는 게 맞을 거에요.


소련 깃발


누가 퀴어 축제로 소련과 쿠바 국기가 걸린 장대를 들고 갔어요. 그리고 저 앞을 태극기 물결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삼위일체


삼위일체의 장면. 셋 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니 각자 뿜어내는 소리의 파동이 장난 아니었어요. 너는 소리로 이미 나노입자 단위로 분해되어간다는 수준이었어요.


이건 동영상 촬영으로 그 분위기를 전달할 수 없었어요. 동영상 촬영도 해봤지만 전혀 실감이 안 났어요. 어떤 분위기였는지 느껴보고 싶다면 고개를 좌우로 30번 빠르게 흔들어보세요. 그리고 사진을 보면 아마 이 당시 현장 분위기가 어땠는지 느껴지실 거에요.



드디어 대망의 동성애 반대 행진이 시작되었어요!


동성애 반대 행진


야, 너네가 더 잘 놀아!


솔직히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보다 동성애 반대 집회가 약 3배 더 재미있었어요. 어떻게 된 게 서울퀴어퍼레이드보다 이쪽이 훨씬 더 잘 놀았어요.


시청광장 퀴어 행사장 옆쪽에서는 동성애 반대 집회측에서 단을 만들어 사람들이 북을 치고 있었어요. 혼신의 힘을 다해 열광적으로 북을 치고 있었어요. 무아지경을 뛰어넘었어요. 접신의 경지였어요. 락 콘서트 실황 영상에서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드러머가 분위기에 완전히 빠져 정렬적으로 드럼을 치는 장면조차 저 단 위에서 북을 치는 사람들의 혼신의 힘을 다해 접신의 경지에 올라 북을 치는 모습에 비하면 아이들 재롱잔치 수준이었어요. 방방 뛰며 두 팔을 쫙쫙 위로 시원하게 치켜들며 있는 힘껏 북을 내리치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어요.


엄청난 열기와 열정이었어요.


그래, 너희도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할 때가 있어야 했을 거야.


그렇게 밖에 해석이 되지 않았어요. 열기가 대단했어요. 서울퀴어퍼레이드를 지루하게 만들어버리는 여과 없이 솟구쳐 올라오는 그 열기와 열정에 감동받을 지경이었어요. 비꼬는 게 아니에요. 진짜에요.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장 안은 솔직히 앰프빨이었어요. 그냥 복작복작하고 자기들끼리 질서정연하게 차분히 노는 분위기였어요. 폭발하는 열정이 부족했어요. 그러나 동성애 반대 집회와 퍼레이드에는 거대한 화산폭발 같은 열정이 있었어요. 그 열정이 세종대로를 넘어 저 우주 끝까지 솟구치고 있었어요.


지하철역 앞에서 예수님 믿으세요 할렐루야 말하며 찬송가 부르는 정도로는 저분들도 끓어오르는 신앙심을 만족시킬 수 없었을 거에요. 몸 속 손가락 발가락 끝 말초신경 모세혈관까지 꽉 차오른 신앙심의 뜨거운 열기에 괴로웠을 거에요. 그걸 마음껏 분출시키는 자리였어요. 이럴 때 아니면 그 태양조차 폭발시켜버릴 엄청난 신앙심의 압력을 어찌 견뎌내겠어요. 동성애 반대 집회 퍼레이드에 참여한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거대한 수소폭탄 차르봄바의 폭발력에 맞먹는 신앙심의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었어요.


그 엄청난 아우라에 휩쓸리고 빨려들어가버릴 것 같았어요. 무슨 공연이니 뭐니 하는 데에서 소리지르고 열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얘들아, 돌아와라!"


2019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는 서울시청 광장을 향한 우렁찬 소리. 빵 터졌어요.


막 몰입되어버릴 거 같았어요. 그때 퀴어 축제 퍼레이드도 시작되었어요. 길을 건너갔어요.


2019 서울퀴어퍼레이드


서울특별시 세종대로


사진 속 저 크레인에 매달린 거대한 앰프 2개가 바로 엄청나게 증폭된 중저음을 쏴대는 앰프에요. 동성애 반대 집회의 고음 공격을 막아내는 서울 퀴어 문화축제 측의 방어무기에요.



아...이쪽은 쏘울이 약해.


퀴어 행렬은 매우 길었어요. 규모는 엄청났어요. 그렇지만 규모만 컸어요. 트럭 위에서 춤추고 놀며 공연을 하고 거기에 호응하는 소리가 있었지만, 그거 외에는 그냥 질서정연하고 조용했어요. 동성애 반대 집회측의 폭발하는 에너지가 결여되어 있었어요. 동성애 반대 집회 퍼레이드 보다가 퀴어 문화 축제 퍼레이드 보니 밋밋하고 재미없었어요. 그냥 무지개색이 눈에 띄더라 정도였어요. 솔직히 볼 만 한 것은 퀴어문화축제 행진이 아니라 오히려 동성애 반대 집회 행진이었어요.


퀴어 행렬보다 이들을 보호하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경찰분들의 피나는 노력이 더 눈에 띄었어요. 가드레일 설치하고 치우고 뛰어다니고 하시며 엄청나게 고생하셨어요.


이건 한 번 경험해볼 만 했어요. 정말 굉장한 경험이었어요. 실제 가서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리고 경찰분들 정말 엄청나게 많이 고생하셨어요. 그분들께서 그렇게 고생하고 희생하시기 때문에 이 나라가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는 자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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