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몰타 방랑기 (2009)

몰타 고급자 코스 - 02. 딩글리

좀좀이 2012. 5. 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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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해피엔딩을 원하시나요?


몰타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저는 절대 망설이지 않아요. 바로 '딩글리'이기 때문이죠.


몰타의 일반적인 시골은 제주도의 시골과 참 미묘하게 비슷한 느낌이에요. 절대 같지 않아요. 아주 달라요. 하지만 참 묘하게 닮은 분위기에요. 섬이라는 것도 그렇고, 휴양지라는 것도 그렇고, 돌로 담을 쌓는다는 것도 그렇고, 밭이라는 것도 그래요. 같지는 않지만 정말 말 그대로 '미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그러나 딩글리쪽은 제주도의 풍경과 비슷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답니다.


저는 바로 위에서 몰타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단연코 딩글리를 꼽는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조건이 따라붙어요.


해질녘의 딩글리!


딩글리는 석양을 보러 가는 곳이에요. 여기가 절벽인데 이곳에서 보는 석양이 정말 끝내주게 아름답거든요. 정말 몰타 모든 풍경을 다 놓고 보아도 여기에서 보는 석양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절대 없답니다. 하지만 석양 없는 딩글리는...정말 비추에요. 석양 없는 딩글리를 보러 갈 바에는 차라리 골든 비치를 가세요. 백주대낮에 가면 정말 볼 게 없답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장소가 따로 있어서 이곳 외에 다른 곳을 가면 정말 더더욱 최악이에요. 거긴 정말 그저 황량하기 그지 없는 바닷가 절벽에 불과하답니다. 게다가 바람까지 불면...아...볼에서 느껴지는 촉촉한 이것은 뭐지?


저는 제대로 된 길로도 가 보았고, 이상한 길로도 가 보았어요. 그런데 이상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그리고 노을 보러 가는 곳인데 '노을이 예쁜 딩글리 절벽'에서 '노을이 예쁜'이 의외로 안 알려져 있어서 아무때나 많이 가요. 그리고 한결같이 돌아와서 아무 것도 없고 식당이라고는 하나 있는데 맛도 없고 가격 더럽게 비싸다고 욕을 하죠.


이곳은 몰타 남서부 끝이며 버스 종점이기도 해요. 그리고 다른 몰타 외곽 지역과 하나도 이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딩글리를 가면 딩글리만 봐야 해요. 문제는 이쪽이 버스가 의외로 일찍 끊기기 때문에 해가 늦게 지는 여름에는 버스로 노을 보고 다시 돌아오기 안 좋다는 것이죠. 그래서 딩글리의 노을은 해가 일찍 지는 겨울에 보기 좋답니다.


버스를 타고 딩글리 가는 길에 Buskett Garden 이라는 곳이 있는데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보기만 했어요. 입구도 안 보이고 버스 정류장도 그 근처에 없답니다. 딩글리행 버스는 매우 한산해요. 딩글리 자체가 번화한 곳도 아니고 꼭 가보아야 하는 관광지도 아니거든요. 하긴 잘 알려진 곳이라면 '노을이 예쁜 딩글리 절벽'에서 '노을이 예쁜'이 생략되었을 리도 없겠죠.



버스 종점에서 버스에서 내려서 길을 걷다 보면 이렇게 선인장을 볼 수 있어요. 몰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인장이에요. 열매를 따서 먹을 수 있는데 열매에도 가시가 많으므로 종이로 가시를 긁어내고 따세요. 안 그러면 손에 가시가 다 박혀요.


종점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딩글리 절벽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줘요. 버스에서 내려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다보면 딩글리 절벽 가는 길이라고 표지판이 있어요. 하지만 이 표지판까지 가는 길 자체가 설명하기 참 애매하기 때문에 그냥 동네 주민들에게 딩글리 절벽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해요. 절대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면 안 되요.


이렇게 마을에서 벗어나 시골로 들어가면 딩글리 관광이 시작됩니다.


딩글리 절벽에 가기 전에 반드시 마실 것을 챙겨가세요. 딩글리 절벽 주변에 가게도 하나도 없고 식당도 제가 설명하는 길로 가시면 없어요. 식당이 있는 길로 가면 볼 게 없고 식당만 하나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지 않아요. 일단 이 시골길로 들어가면 가게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반드시 마실 것은 챙겨가야 합니다. 마실 것 없이 갔다가 목마르면 답이 없는 곳이에요.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갑니다. 정말 이국적인 풍경이에요. 흔히 보는 유럽의 풍경도 아니고 한국에서 본 풍경도 아닌 묘한 분위기에요.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만 본 미국의 농장과 같은 분위기 같았어요.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무조건 직진이에요. 굳이 길을 잃어버릴 필요도 없고, 그럴 일도 없어요.


하루가 끝나가는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바람개비에요. 홀로 생각을 하며 걷기 좋은 시간에 조용한 길을 걷고 있는 거죠. 풍경 자체가 연인과 달콤한 분위기를 느끼며 걷기 보다는 무언가를 정리하기 위해 생각하며 걷는 분위기에 어울려요.


뒤를 돌아보면 이래요.


돌담과 선인장. 그리고 바람개비. 황량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 있어요.


생각할 거리가 있다면 있는 대로, 없다면 없는 대로 걷기 좋은 길이에요. 간혹 차가 지나다녀서 길을 비켜주어야하는 것 외에는 정말로 조용하답니다.


간혹 집이 보인답니다. 왠지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보신 할아버지께서 나오셔서 하늘을 감상하시고 그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부엌으로 들어가는 할머니가 계실 것 같은 집이죠.


드디어 딩글리 절벽입니다.


조금 다가가서 보면 이래요.


절벽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요.


이 길을 타고 바다까지 내려가지는 못해요. 그러나 절벽 아래쪽 밭까지는 내려갈 수 있어요.


첫 번째 밭까지 내려왔어요. 여기는 나름 계단식 밭처럼 되어 있답니다.


다시 내려갑니다.


이런 길을 타고 내려온 것이죠. 


이 사진을 보면 좀 더 잘 알 수 있어요.


사진을 보면 길이 한 번 꺾어져요. 그 꺾어지는 곳이 바로 첫 번째 밭이 있는 층이에요.


이쪽에도 예전에는 건물이 있었고 사람도 살았던 흔적이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냥 버려진 폐허.




여기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볼 수도 있어요.


여기에서 이름 없는 섬도 보인답니다. 사방이 절벽이죠.


저는 절벽에서 보는 노을도 좋지만 한적한 길에서 보는 노을이 더 좋았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돌담과 바다가 어우러진 곳에서 노을을 보는 것은 꽤 어렵다는 거에요. 노을 보기 좋은 자리에는 집이 있어서 돌담과 바다, 노을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돌담 위에 올라가야 한답니다. 하지만 절벽에서 보는 노을도 정말 장관이에요.


다시 딩글리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정말 '몰타스럽다'는 말이 나오는 마을의 모습도 볼 수 있어요. 노을의 붉은 빛과 몰타 특유의 흙빛이 섞인 마을의 모습도 꽤 볼만한 풍경이랍니다.


노을을 보고 나서 버스를 타러 가다 보면 정말 조용하다는 생각 뿐이에요. 정말로 '오늘이 끝났구나'라는 느낌이 검푸른 저녁빛을 타고 덮쳐오죠.


몰타 여행의 마지막은 딩글리 절벽에서 노을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시는 것을 추천하고 싶어요. 정말로 아름답답니다. 단, 노을을 보러 가는 게 아니시라면 가는 것을 절대 추천하지 않아요. 아니, 오히려 비추에요. 어차피 시골길이라면 임디나 가는 길에서도 충분히 보고 다른 곳 가는 도중에도 충분히 볼 수 있어요. 발레타-슬리에마-세인트 줄리언스-파처빌 구간을 제외하면 시골을 볼 수밖에 없어요. 딩글리의 시골길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늦은 오후라는 시간과 황량함이 어우러져야만 나오는 것이에요. 햇볕의 힘이 빠진 딩글리는 그냥 평범한 시골이고, 볼 것 없는 평범한 바다와 절벽이랍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마르사슐록의 어시장이 발레타 벼룩시장과 같은 때 열리고 끝나는 바람에 둘 중 하나를 놓고 고민해야하는 문제가 있다면 여기는 그렇게 둘 중 하나를 놓고 골라야하는 문제는 없거든요. 단지 버스 시간이 조금 걸리고 날씨가 안 따라준다면 - 특히 겨울에는 비가 종종 내리고 흐려요. - 볼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죠. 그리고 여기까지 가려면 오후 일정이 애매해지구요. 아무리 작은 몰타라도 하루에 세 곳 보는 것은 솔직히 쉽지 않아요. 그리고 절대 권하지도 않구요. 세 곳 보려면 정말 휙휙 보고 지나가야 하는데 가뜩이나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 극히 적은 몰타에서 그렇게 다니면 그저 몰타에 대한 실망만 증폭될 뿐이거든요.


즐거운 마무리 되셨나요? 딩글리에서 석양을 보셨다면 나머지 날동안 몰타에서 잠만 자다 끝났다 하더라도 진정한 해피엔딩을 보셨다고 박수를 쳐드리고 싶어요.


몰타 고급자 코스는 유명하지 않고 숨겨진 비경이 아니라 시간적 제약이 큰 곳 두 곳이었어요. 아쉽게도 몰타 곳곳을 다 돌아다녀 보았지만 숨겨진 비경은 없었어요. 몰타에 있는 동안 모든 버스 종점까지 다 가 보았어요. 하지만 특별히 안 알려졌는데 아름답고 좋은 곳은 없더라구요. 만약 있다면 버스가 극히 일부 지역만 들어가는 남서부에 있겠지만 여기는 버스가 아예 없는 지역들이라 섣불리 탐험할 방법이 없더라구요. 몰타도 유로존이라서 택시타고 아무 곳이나 휙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에요. 물론 택시를 타고 갈 수는 있으나 택시비가 꽤 비싸거든요. 해피 엔딩을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것을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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